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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여름, 가을, 겨울 어느 계절이 아름답지 않을까만 가을이 시작하던 늦여름과 초가을이 교차하던 지난 8월 말,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다. 1년에 2번 이상은 제주를 품에 안고 싶어서다. 걷고 바다도 실컷 보고, 한라산에도 오르고. 비가 오거나 흐리거나 해가 쨍쨍한 가능한 많은 날의 제주를 보고 싶은. 그래서 이 여행은 말그대로 즉흥, 무계획, 마음가는 대로의 여행이다.

4개월 전 얼리버드로 비행기 티켓과 렌터카만 예약해두고 잊고 지냈다. 예정된 날짜에 시크하게 공항으로 향했다. 제주도는 요즘 효리네 민박의 영향으로 여행객들이 많이 늘었다. 또 제주 이민이 유행처럼 번져 카페며 맛집, 게스트하우스나 독채펜션 같은 다양한 형태의 숙박 시설이 많아 인터넷을 조금만 찾으면 숙소도 착한 가격으로 손쉽게 구할 수 있다.

이번 여행은 무계획이면서 동시에 쉬지 않고 접속해서 새로고침해 보는 SNS로부터 조금 자유로운 시간을 가져 보기로 다짐한 여행이기도 했다. 각종 SNS와 스마트폰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시간을 거슬러 스마트폰이 없던 몇 년 전만 해도 공항에서 구한 큰 지도 하나 펴놓고, 버스노선 궁리해가며 뚜벅이여행을 씩씩하게 잘만 했으니까. 시간을 몇 년 전으로 돌려 3박 4일의 시간 제주도를 크게 한바퀴 돌기로 했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 바다의 술책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 김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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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 바다의 술책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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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목적지는 제주특별자치도 건축문화대상을 받은 애월성당과 협재 해수욕장으로 정했다. 아직 제법 볕이 따가웠기에. 공항을 출발해 해안도로를 따라 제주도 바다 바람을 있는 그대로 마음껏 받아들이며 달렸다.

천천히 달리다 맘에 드는 곳이 보이면 차를 세우고 잠시 내려 사진도 찍고 넋을 놓기도 했다. 그렇게 성당에 들렀다 협재로 내려가는 길, 우리를 유턴 시킨 것은 한림읍 한림해안로에 위치한 독립서점 '바다의 술책'이었다. 바다의 술책이라니 첫걸음부터 우리는 바다의 그 꾐에 기분 좋게 발걸음이 묶였다.

'미스 럼피우스'라는 동화책을 소개하며 주인공처럼 살고 싶어 바다에 집을 구했는지도 모르겠다던 손글씨가 인상적이던 '바다의 술책'. 그곳에는 훌륭한 음료는 물론 어른들이 읽어도 좋을 동화책들이 많이 자리잡고 있었다. 어느 자리에 앉아도 책의 배경이 바다와 하늘. 말그대로 바다의 음흉하고도 달콤한 술책이었다.

이곳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위치한 독립서점들의 위치가 그려진 지도를 발견했다. 무계획이었던 우리의 여행에 약간의 동선이 잡히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아직은 따뜻하던 협재에서의 물놀이를 실컷 즐기고 밤이 되었을 때 협재 근처에다 숙소를 정하고 예전부터 가고싶었던 협재 '아로하 서재'로 밤마실을 나왔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 알로하 서재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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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만 들었던 아로하 서재는 책과 커피, 술이 함께하는 낭만적이며 독립적인 곳이었다. 등대불이 비양도를 확인시켜주는 '아 이곳이 협재구나' 싶은 이 작은 서재는 기본적으로 '책'을 읽는 공간으로 가급적 혼자오기를 권한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었으므로 루프탑을 이용하기로 했다.

멀지 않은 곳에 비양도를 두고, 파도 소리를 희미하게 들었다. 루프탑이어도 가급적 대화는 나누지 않았다. 대신 각자의 책 속으로, 커피 속으로 맥주 속으로 빠져들었다. 특히 이 밤 잔이 다 비도록 소곤되던 카푸치노의 우유 거품 소리가 너무 좋았다. 이후에도 따뜻한 카푸치노를 시키면 그날의 협재 밤바다와 알로하 서재가 자연스레 생각난다.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 이듬해 봄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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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은 비양도와 마라도를 다녀오기로 했다. 협재를 더 협재답게 하는 비양도는 필자가 좋아하고 아끼는 코스. 비양도에서 나와 독립서점 지도를 따라 향했던 목적지는 모슬포에 위치한 '이듬해 봄'이었다. 제주살이 6년차에 폐가를 얻어 손수 하나하나 고쳐 제주 옛집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다는 이듬해 봄. 도착하기도 전부터 괜히 봄처럼 마음이 살랑살랑했다.

그런데 기대가 너무 컸던 걸까. 이듬해 봄은 서점지기님의 개인사정으로 문을 일찍 닫았다. 이름대로 이듬해 봄에 오면 더 낭만적일 것 같아 아쉬움은 아주 잠깐만 느끼기로 했다. 셋째날 서귀포에서 찾은 서점은 착한서점 '북타임'이었다.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중앙로
▲ 착한서점 북타임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중앙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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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시청 제1청사 바로 옆에 위치한 북타임은 '착한서점'이라는 슬로건으로 여러 독서모임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넓은 모임 장소와 테이블이 마련되어있고, 곳곳에 편하게 앉아 책을 볼 수 있게 의자가 놓여 있어 서점과 북카페의 경계즈음에 있는 듯 했다. 시민들이 기증한 책들이 많아 부담없이 앉아 독서하기에 좋은 환경이었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 소심한 책방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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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 소심한 책방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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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제주여행에서 비오던 날 들렀던 '소심한 책방'은 이미 유명한 곳이다. 조그마한 촌집이 비오는 날에도 불구하고 손님들로 북적였다. 그럼에도 불편함보다는 흥미를 끄는 책들이 많았고, 역시나 귀여운 소품들이 많아 오래 머물지 않았음에도 지갑이 가벼워지는 마법같은 곳이었다.

이번 여행에서 마지막으로 방문했던 곳은 성산에 위치한 '커피박물관'이었다. 독립서점은 아니지만 꽤 많은 책이 비치되어 있어 1층에서 커피에 대해 천천히 구경한 후 2층으로 올라와 커피 한 잔과 함께 책 한 권 읽기 좋았다.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 커피박물관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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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공간에 테이블 간 간격이 충분히 확보되어 서로 방해받지 않으면서 창으로는 초록의 나무들이 바람에 따라 햇살에 따라 책의 배경이 되어주던 곳. 이곳에서 나는 제주에 관련된 책을 읽었다. 여행의 마무리로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가을을 맞아 서점지도 챙겨들고 가을 제주도의 곳곳을 자유롭게 떠나보기를 추천한다. 가보지 못한 서점들을 찾아 다음에 또 나는 제주도로 떠날 것이다. 제주도야 그때까지 안녕.


태그:#제주도, #서귀포, #독립서점, #제주여행,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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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서 하는 일에 신이나서 부지런해지는 게으름쟁이 '미스태리'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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