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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데리고 일본 오사카를 방문했다. 도쿄보다도 오사카는 한국 관광객이 많이 방문하는 곳이고 또 오래 전부터 한인촌이 크게 형성된 곳이기에 어쩐지 친근함도 느껴졌기 때문이다. 간사히 공항에 도착했을 때부터 역시 친절한 일본을 느낄 수 있었다. 공항 리무진이나 공항택시를 이용하지 않아도 될 만큼 교통수단이 잘 되어 있었고 곳곳에 한국어로도 적혀 있어 힘들지 않게 목적지까지 이동할 수 있었다. 한국어를 하는 안내원까지 있어 역시 일본이라는 감탄사가 나올 정도였으니까.

자판기의 천국 일본답게 공항철도도 자판기를 이용해 표를 끊을 수 있었다. 물론 직원을 통해 표를 끊을 수도 있었지만, 한국어 안내원의 친절한 설명으로 자판기를 이용한 매표 또한 어렵지 않게 이용했다. 특히 오사카가 혐한시위가 심하다는 뉴스나 이야기를 접했기에 출국 전 했던 걱정과는 달리 오사카의 첫인상은 매우 친절했고 역시 일본! 이라는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난카이선을 타고 난바역으로 향했다. 우리의 숙소가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숙소였다. 오사카 도착 전 공항에서 숙소까지 오는 길을 상세히 적어주어 무리 없이 갈 수 있었다.

난카이 난바역에 도착했을 때 일본 오사카가 한국의 여느 거리보다 조용하고 정갈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국의 기차역이나 지하철역에서의 혼잡함이나 시끄러움 등이 오사카에서는 느껴지지 않았다. 거리도 깨끗했고 휴지 하나 떨어진 것을 보지 못했다. 일본은 한국과는 달리 좌측통행을 하였고 1990년 동안의 좌측통행을 버리고 몇 해 전부터 우측통행으로 바뀐 한국에서의 습관으로 우측통행을 할 때마다 비켜주는 일본인을 발견하고는 그 후로 의식적으로 좌측통행을 하려고 애를 쓴 기억이 있다. 일본은 자동차도 좌측통행이다.

숙소에 짐을 풀고 관리인의 설명을 들었다. 일본은 목조 건축물이 많기 때문에 소음에 취약해서 방음이 어렵고 우리가 묵은 숙소는 일본 현지인들이 모여 사는 주택가이기도 하기에 늦은 밤이나 이른 아침 들어오거나 나갈 때 조용히 이동해달라는 부탁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오사카에 도착하자마자 느낀 것은 일본인들은 상당히 조용하나 한국어 혹은 중국어를 쓰는 관광객들의 목소리만 들린다는 점이었다.

숙소 맞은 편에 일본 전통식을 비교적 저렴하게 경험할 수 있는 식당이 있어 점심을 먹으러 들어갔다. 입구에 음식의 모형들이 있어 일본어를 알지 못해도 모형을 보고 식사 종류를 고를 수 있었다. 문을 열자마자 자판기가 설치되어 있어서 조금 전 모형으로 본 음식 모양을 자판기에서 고르고 결제 후 영수증을 직원에게 건네주면 테이블로 음식을 가져다주는 방식이다. 역시 자판기를 사랑하는 일본답다는 생각을 했다. 음식을 먹고 계산을 하려고 분주히 움직이는 한국의 여느 식당과는 다른 분위기였다.

일본 전통음식 체인점 입구 식당 입구 앞에 음식 모형이 있어 일본어를 모르더라도 모양을 보고 음식을 고를 수 있다.
▲ 일본 전통음식 체인점 입구 식당 입구 앞에 음식 모형이 있어 일본어를 모르더라도 모양을 보고 음식을 고를 수 있다.
ⓒ 이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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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통식당 메뉴 선택 자판기 테이블에 앉고 주문을 하는 한국식당과 달리 식당에 들어서면 오른편에 메뉴선택 자판기가 있다. 자판기에서 입구에서 본 음식모형의 사진과 같은 메뉴를 선택하고 결제 후 종업원에게 영수증을 주면 주문완료.
▲ 일본 전통식당 메뉴 선택 자판기 테이블에 앉고 주문을 하는 한국식당과 달리 식당에 들어서면 오른편에 메뉴선택 자판기가 있다. 자판기에서 입구에서 본 음식모형의 사진과 같은 메뉴를 선택하고 결제 후 종업원에게 영수증을 주면 주문완료.
ⓒ 이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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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물마저도 돈을 받는다는 인터넷의 어느 글이 생각났지만, 이곳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테이블에는 무료로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츠케모노(일본 채소 절임류)가 채 쳐진 상태로 양념되어 통에 담겨 있었고 보온병에 담긴 시원한 얼음물도 마음껏 마실 수 있었다. 검은색 앞치마를 두른 할아버지가 허리를 숙여 음식을 가져다주셨고 일본어로 설명하시는 듯, 날달걀을 가리키시며 주문한 음식을 찍어 먹으라는 것 같았다. 연신 웃어주셨고 일본인의 특징처럼 끝없이 고개를 끄덕이셨다.

일본 채소 절임 '츠케모노' 테이블 당 하나씩 통에 담겨져 있으며 마음껏 먹을 수 있다. 다 먹은 후 더 달라고 하면 다시 갖다 준다.
▲ 일본 채소 절임 '츠케모노' 테이블 당 하나씩 통에 담겨져 있으며 마음껏 먹을 수 있다. 다 먹은 후 더 달라고 하면 다시 갖다 준다.
ⓒ 이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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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은 한식만을 좋아하던 나에게도 거부감은 없었다. 전에 대만을 방문했을 당시 도저히 견딜 수 없었던 향신료가 악몽 같았지만, 오사카에서의 첫 식사는 구수한 된장국의 향으로 시작할 수 있었다. 물이든 밥이든 반찬이든 무엇이든 추가는 돈이라던 어느 관광객의 인터넷 글과는 달리 밥은 얼마든지 더 먹을 수 있도록 한 쪽에 밥통을 마련해 두었고 된장국도 더 먹을 수 있도록 해 두었다. 짭짤한 츠케모노(채소절임)가 입맛을 돌게 하였는지 수북한 밥을 다 먹고 밥통에서 밥을 덜어 더 먹었다. 음식에 정성을 다하는 일본인의 모습이 그려졌다.

일본 전통식당 약식 상차림 일본 전통 상차림이지만 약식이라고 했다.
▲ 일본 전통식당 약식 상차림 일본 전통 상차림이지만 약식이라고 했다.
ⓒ 이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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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튀김류를 먹고는 한국의 튀김에 실망했다는 어느 인터넷 글이 과장은 아닌 것 같다. 적당히 익힌 튀김, 너무 두껍지 않은 튀김 옷, 바삭바삭한 겉과는 달리 튀김의 속은 베어 물자 마자 육즙이 흘러나오면서 입안에서 살살 녹는 느낌이랄까. '빨리빨리'를 외치면서 속전속결로 배달과 요리가 이루어지는 한국의 일부 식당의 모습이 겹치는 순간이었다. 한국의 식당과는 달리 주문하고 요리가 나오는 시간이 상당히 길었기 때문이다. 젓가락 하나를 건네더라도 예쁜 종이에 싸서 상냥한 미소와 함께 건네주는 일본 식당가의 종업원들.

한국어를 하면 음식에 테러했다는 뉴스를 접한 적이 있다. 일명 '와사비 테러'. 일본인 전체는 아니고 일부 몰지각한 일본인의 행태였을 것이다. 오사카 번화가 도톤보리에서는 한국 관광객을 상대로 폭행을 한 일본인도 있었다는 뉴스를 접하고 그 거리를 지날 때마다 상당히 긴장했으나 한국의 명동이나 홍대거리를 지날 때처럼 걱정하는 나와는 달리 주위 사람들은 그저 즐겁고 신나게 이동할 뿐이었다.

도톤보리 거리에서의 '리버 크루즈'는 화려한 도시 속 조용한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신나고 유쾌한 안내원의 설명도 리버 크루즈의 즐거움에 한몫했다. 한국어, 일본어, 중국어 등을 모두 구사했기에 더욱더 즐거웠을 수도. 도톤보리 거리 곳곳을 돌아오는 리버 크루즈의 시간은 30분 정도인데 도톤보리의 상징들을 설명해주는 시간이다. 900엔으로 결코 싼 가격은 아니지만, 오사카 도톤보리를 방문한다면 한 번쯤 승선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도톤보리 '리버 크루즈' 도톤버리 거리를 배를 타고 이동하며 안내원이 설명해준다. 가격은 1인당 900엔.
▲ 도톤보리 '리버 크루즈' 도톤버리 거리를 배를 타고 이동하며 안내원이 설명해준다. 가격은 1인당 900엔.
ⓒ 이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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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아이들은 어느 곳을 가든 기념품 가게나 게임 가게를 지나치지 않는다. 도톤보리에도 기념품 가게가 넘쳐났고 그중에서도 인형뽑기 가게는 상당히 많았는데 작은 인형은 100엔, 조금 큰 인형은 200엔이었다. 한국의 100원과 매우 유사해서 환율을 잊고 100원으로 착각하여 많은 양의 인형 뽑기를 하고 말았다.

100엔 동전 하나가 한국 화폐로 1000원임을 인지했을 때 아이들의 손에는 많은 양의 인형뽑기 흔적이 남았다. 어느 대학생이 여자친구와 오사카를 방문하여 재래시장인 쿠로몬 시장에서 와규 한 접시에 1만 엔을 내고 몇 접시를 먹고는 아차! 1만 엔이 1만 원이 아니었지!를 인지한 순간 이미 때는 늦었더라는 글이 생각나 웃음이 났던 기억이 난다. 일본을 방문한다면 환율 차이를 잊지 말자.

도톤보리 거리 인형 뽑기 가게 오사카 번화가 도톤버리에는 각종 먹거리 및 유흥가, 인형 뽑기 가게, 기념품 가게가 즐비하다.
▲ 도톤보리 거리 인형 뽑기 가게 오사카 번화가 도톤버리에는 각종 먹거리 및 유흥가, 인형 뽑기 가게, 기념품 가게가 즐비하다.
ⓒ 이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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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톤보리 밤거리에서 한국인 관광객이 폭행 테러를 당했다는 뉴스로 상당히 긴장했던 첫날과는 달리 둘째 날부터는 비교적 늦은 시간까지 도톤보리에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냈다. 지하로 내려가는 가게에서 오코노미야키를 먹기도 하고(직원이 한국인 인기 음식으로 오코노미야키를 추천했다). 길거리에서 줄 서서 타코야키를 사 먹기도 하고. 예쁜 카페에서 지나가는 리버 크루즈를 보며 시원한 아이스티를 마시기도 하고. 상당히 많은 가게에서 일어를 하지 않고 영어를 하지 않아도 한국어가 익숙한 직원이 많아 주문은 어렵지 않았다.

도톤보리 거리 '야키' 가게 도톤보리에서 지하로 내려가는 야키가게에서 먹은 '오코노미야키'다. 한국관광객이 많이 오는지 한국인이냐 묻더니오코노미야키를 추천했다.
▲ 도톤보리 거리 '야키' 가게 도톤보리에서 지하로 내려가는 야키가게에서 먹은 '오코노미야키'다. 한국관광객이 많이 오는지 한국인이냐 묻더니오코노미야키를 추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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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톤보리 '야키' 가게에서 먹은 타코야키 한국에서도 많이 먹어봤지만 일본 타코야키 맛은 어떨까 먹어봤다. 한국보다 덜 짜고 크기는 더 컸지만 속은 더 부드럽다. 안에 든 문어도 한국은 잘게 썰어진 반면 일본 타코야키는 큼짐큼직하게 잘려 반죽에 섞여 있다.
▲ 도톤보리 '야키' 가게에서 먹은 타코야키 한국에서도 많이 먹어봤지만 일본 타코야키 맛은 어떨까 먹어봤다. 한국보다 덜 짜고 크기는 더 컸지만 속은 더 부드럽다. 안에 든 문어도 한국은 잘게 썰어진 반면 일본 타코야키는 큼짐큼직하게 잘려 반죽에 섞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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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째 날이 밝았다. 오사카의 관광명소라는 오사카성을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고 한다. 한국을 침략하고 한국인에게 아픔을 준 도요토미 히데요시(풍신수길)를 기리는 오사카성과 천수각이라 마음 한편에는 어두운 면이 있었지만, 이순신 장군의 업적을 생생히 설명해 주기 위해 오사카성으로 향했다. 도요토미의 동상이 보였다. 조선 시대 때 이 동상의 인물이 우리나라를 침략했고 그것이 임진왜란이라는 설명을 아이들에게 들려줬다. 일본강점기 뿐 아니라 그 전에도 침략한 적이 있었냐며 둘째 아이는 다소 놀란 표정이었고 큰 아이는 다시는 외세의 침략은 없어야겠다며 굳은 표정을 지었다. 우리를 침략한 자를 기리는 곳이라 하여 꼭 방문을 피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아이들에게 애국심을 불태우는 자극이 된 듯.

오상카성 도요토미 히데요시(풍신수길) 동상 오사카성 도요토미 히데요시 동상 앞. 반대편으로 천수각이 보이는데 사진에는 안나왔다.
▲ 오상카성 도요토미 히데요시(풍신수길) 동상 오사카성 도요토미 히데요시 동상 앞. 반대편으로 천수각이 보이는데 사진에는 안나왔다.
ⓒ 이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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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상카성 천수각
 오상카성 천수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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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덴타운, 유니버설 재팬 등 아이들을 위한 장소를 둘러보는 것으로 하루를 보내고 마지막 날 밤이 되었다. 숙소 근처 도톤보리에서 저녁을 먹고 또다시 인형 뽑기에 열중하는 아이들. 아이들이 어릴 적 아이들과 함께한 애니메이션 만화 영화 주인공들이 토이 크레인에 가득 담겨 있으니 마냥 신기한 모양이었다. 도라에몽 앞에서 둘째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신이 났었으니까. 근처 꼬치구이 가게에서 야식까지 먹고 다시 인형 뽑기를 했다. 그래, 뭐. 여행 왔으니까. 마지막 날 밤이니까 원하는 대로 실컷 하렴. 이런 마음으로.

출국 전 오사카 혐한시위로 긴장했던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여행 내내 즐겁고 신났던 기분으로 마지막 밤을 보내고 있었다. 얼마나 도톤보리 거리를 누비고 다녔던 걸까. 같은 인형뽑기 가게를 여러차례 들락날락하고 같은 거리를 몇 번이나 왔다갔다 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다 한 인형뽑기 가게에서 아이들이 신나게 인형을 뽑고 나는 가게 입구에서 아이들의 사진을 찍고 있을 때였다. 나를 쳐다보는 이상한 느낌에 옆을 봤고 한 무리의 일본 청년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담배를 물고는 자신들끼리 턱으로 나를 가리키며 일본어로 무언가 말하는 것이 보였다. 순간 등골이 오싹해지며 언론에서 떠들던 한국인 테러가 생각났다는 사실. 큰아이는 오사카 혐한시위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9살 둘째는 전혀 모르는 데다 크게 한국어로 떠들며 내 주위를 왔다 갔다 하며 뽑아 든 인형을 주기도 했기에…. 빠르게 이 가게를, 이 거리를 빠져나가야겠다는 생각 외에는 들지 않았다. 마지막 밤은 도톤보리에서 늦게까지 놀겠다며 약속하지 않았느냐는 둘째 손목을 잡고 정신없이 숙소를 향해 걸었다. 마침내 숙소에 도착했고 몸에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즐겁고 신났던 시간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갓 20살 넘었을 듯 보이는 청년들. 그릇된 애국심에서 비롯된 우국충정이 관광객을 향한 테러로 이어졌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일본인을 테러했다는 뉴스는 지금껏 없었지만, 세계 어느 곳이나 그릇된 생각으로 잘못된 행동을 하는 이들이 있다. 일본인 전체는 아니라고 되뇌며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만, 일본 청년의 너무도 차가웠던 그 눈빛이 잊히지 않았다.

마지막 밤을 보내고 귀국하는 날을 맞았다. 어젯밤 있었던 잊고 싶던 기억들을 뒤로하고 오사카에서의 좋았던 기억만을 안고 가리라 마음먹으며 한국관광객들에게 인기 많았던 회전 초밥 100엔 스시집을 들렀다. 달걀 초밥이 100엔이었고 500엔까지 있었다. 바지락을 넣은 된장국과 함께 맛있게 식사를 했다. 초밥집 아주머니는 무척 친절했다. 일본인이라고 한국인을 모두 혐오하는 건 아닐 것이다.

도톤보리 거리 100엔 스시 가게 회전초밥 100엔 스시 가게의 모습이다. 100엔에서 500엔까지 다양하게 있다.
▲ 도톤보리 거리 100엔 스시 가게 회전초밥 100엔 스시 가게의 모습이다. 100엔에서 500엔까지 다양하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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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카이 난바역에서 간사히 공항으로 출발하는 전차를 탔다. 우리가 끊은 표는 간사히 공항행 급행열차였는데 확인하지 않고 무작정 도착한 전차를 탔더니 모든 역을 거치는 보통열차였다. 시간 맞춰 출발한 것인데 그렇게 난감한 순간은 처음일 정도로. 말도 통하지 않으니 옆자리 아가씨에게 물어도 모르겠다는 표정뿐이다.

'간사이 에어포트'만 외쳐댔더니 허리가 구부정한 일본 할머니가 자신을 따라오라는 듯 일어서시더니 어느 역에서 내리면서까지 가르쳐 주셨다. 한 전차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어서 타라는 듯 손짓을 하셨고 오사카 도착 후 처음으로 허리 숙여 외쳤다.

"아리가또 고자이마스!(감사합니다)"

도착한 전차를 향해 얼른 타라는 듯 손짓을 하셨고 아이들과 급행 전차로 옮겨 탄 후 창밖 일본 할머니를 봤더니 우리가 타는 모습을 여전히 보고 계셨다. 그리고는 전차가 움직이자 그제야 보통열차로 옮겨타셨다(일본 보통열차는 급행이 도착하고 출발할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난카이 난바역 일본은 철도와 지하철이 굉장히 다양하다. 민자노선은 9가지가 있을 정도다. 우리는 난카이선을 이용 숙소에서 공항으로 이동했다. 이곳에서 탑승하면 간사히 공항까지 직접 연결된다.
▲ 난카이 난바역 일본은 철도와 지하철이 굉장히 다양하다. 민자노선은 9가지가 있을 정도다. 우리는 난카이선을 이용 숙소에서 공항으로 이동했다. 이곳에서 탑승하면 간사히 공항까지 직접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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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밤 도톤보리 거리에서의 섬뜩했던 기억을 일본 할머니가 잊게 해준 듯하다. 어디든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 공존할 것이다. 한국도 마찬가지. '아리가또 고자이마스'를 외치는 내게 도리어 허리를 숙이며 어서 타라고 손짓하던 일본 할머니의 모습이 내 마음 깊숙이 남았다.

할머니, 정말 고마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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