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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새벽 일출을 보기 위해 노고단으로 올라가는 사람들
▲ 노고단 7 새벽 일출을 보기 위해 노고단으로 올라가는 사람들
ⓒ 이동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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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 마음이니
행여 견딜만 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 이원규,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가운데

지리산을 좋아하는 이들 사이에 알려진 이원규의 시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의 마지막 구절입니다. 살면서 못 견디게 힘들 때 오면 품어 주겠다는 따뜻함이 느껴져 저도 참 좋아 합니다.

최근 일터에서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직제가 바뀌면서 내가 속한 부서의 이름이 바뀌고 새로운 업무가 주어졌습니다. 저희 사무실에서도 새로운 사람과 함께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기존 상급자를 떠나보내는 아쉬움은 컸습니다. 사람을 수단으로 대하지 않고 내 재능을 존중하고 가족의 지병까지 공유하며 이해해 주던 사람이었으니까요. 아쉬움과 새로 함께 할 사람과 잘 지낼 수 있을지 걱정하는 마음이 뒤섞이며 여름 내내 머리 속이 복잡했습니다.

복잡한 마음에 지난 금요일 새벽 지리산으로 가는 버스를 탔습니다. 밤을 도와 도착한 성삼재에선 서늘한 새벽바람 사이로 촘촘히 박힌 별빛들이 반짝였습니다. 지리산 남쪽의 들머리인 성삼재에서 한시간 남짓 오르면 노고단에서 일출을 볼수 있습니다. 일출을 보면 복잡한 마음이 좀 평화로워 질까요. 노고단 일출시간을 맞추느라 그 아래 대피소에서 기다리며 일행과 소주를 한잔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형님은 10월에 수십 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다 했습니다. 예전에 정년이 아직인데 회사에서는 정년을 맞춰 주는 대신 월급을 깎겠다고 하여 차라리 자신이 먼저 때려 칠 것이라 호기롭게 이야기 하던 게 생각났습니다. 학교 급식 노동자로 일하는 형수와 함께 몸이 불편한 딸을 챙기면 살아가는 형님에게 퇴직 후엔 무엇을 할 건지 묻지 못했습니다.

지리산 천왕봉 뒤로 해가 뜨고 있다. 왼쪽이 반야봉이다.
▲ 노고단 일출 지리산 천왕봉 뒤로 해가 뜨고 있다. 왼쪽이 반야봉이다.
ⓒ 이동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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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고단에서 바라본 섬진강
▲ 노고단5 노고단에서 바라본 섬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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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고단에 오르는 등산객
▲ 노고단 4 노고단에 오르는 등산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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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좋은 노고단 길
▲ 노고단 3 걷기 좋은 노고단 길
ⓒ 이동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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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고단 올라 가는길
▲ 노고단 1 노고단 올라 가는길
ⓒ 이동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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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노랗게 산자락을 물들이는 일출, 바라보는 게 그저 좋았다

해가 뜰 기세에 서둘러 노고단에 올랐습니다. 이름 모를 꽃들이 무더기져 핀 노고단길은 천왕봉부터 점차 밝아오는 해를 받아 붉그래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언제인가부터 일출에 희망을 담아 소원을 비는 일이 줄었습니다. 불덩이로 솟아 올라 샛노랗게 산자락을 물들이는 그 시간을 입을 벌리고 쳐다 보는 것이 그냥 좋았습니다.

지리산 임걸령 샘물. 지리산은 능선 곳곳에 물이 풍부하다.
▲ 임걸령 샘물 지리산 임걸령 샘물. 지리산은 능선 곳곳에 물이 풍부하다.
ⓒ 최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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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봉 오르는 길.
▲ 반야봉 반야봉 오르는 길.
ⓒ 이동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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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천왕봉에 걸린 구름
▲ 천왕봉에 걸린 구름 지리산 천왕봉에 걸린 구름
ⓒ 이동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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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뜨고 걷기 시작한 화개재까지 능선길엔 산오이풀 향이 가득더군요. 풀잎을 비비면 오이향이 난다 하여 산오이풀이라 이름 붙였답니다. 내 코에는 라벤더향같기도 하고 라일락내 같았습니다.

따가운 햇살에 지칠 무렵 시원한 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지리산 능선길엔 곳곳에 샘물이 산행객을 반깁니다. 우리 일행도 임걸령에서 지리산에서 가장 맛있다는 샘물을 들이켰습니다. 반야봉 가는길에 보이는 저 멀리 천왕봉에 걸린 구름은 솜사탕 같았습니다.

지리산에 핀 쑥부쟁이
▲ 쑥부쟁이 지리산에 핀 쑥부쟁이
ⓒ 이동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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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별하지 못하는 너하고
이 들길 여태 걸어 왔다니

나여, 나는 지금부터 너하고 절교(絶交)다!"

- 안도현, '무식한 놈'

반야봉 오르는 길에 새하얗게 핀 구절초와 연보랏빛 쑥부쟁이가 서로 닮아 보였습니다. 어느 것이 구절초고 어느것이 쑥부쟁이인지 헷갈렸습니다. 일행들 사이에 논쟁이 붙었으나 지나가는 사람이 그 차이를 설명하며 해결되었습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내가 무식하니 혹여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은 물푸레 나무와 신갈나무의 차이를 잘 알거나 구절초와 쑥부쟁이의 차이를 아는 사람이면 좋겠다고 말입니다. 거기에 욕심을 좀 내면 작은 삶의 지혜를 좀 아는 사람이면 더 좋겠습니다. 예를 들면 페트병에 들어가 있는 맥주를 따서 다 먹지 못했을 때 탄산을 빼지 않고 다음날까지 보관하는 방법 같은 소소한 삶의 지혜를 말입니다.

밤을 달려 왔던 탓인지, 아니면 가는 길 내내 따사로운 가을빛과 서늘한 바람 때문인지 절로 눈이 감깁니다. 머릿속 복잡한 회사 생각이 정리되진 않았지만 하나는 알고 갑니다. 가을! 찰나 같이 내 머리 쓰다듬고 사라져 버리는 계절이 또 돌아 왔습니다.


산행코스
지리산 성삼재~노고단~반야봉~뱀사골(21km)

해발 1,102m의 성삼재는 지리산 남부지역의 주요 산행들머리로 구례터미널에서 버스나 승용차로 오를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부터 노고단 대피소까지 도보로 30분이 걸립니다. 노고단 대피소에서는 취사가 가능합니다. 노고단 대피소에서 노고단 정상까지는 데크로 잘 정비된 등산로를 따라 40분 가량 걸립니다. 정상에서는 만복대와 정령치등 지리산 서북능선을 조망할 수 습니다. 구례방향으로 섬진강과 남원방향으로 서북능선에 구름바다가 펼쳐지는 운해가 아름답습니다.

노고단 고개에서 지리산 주능선을 따라 반야봉(1,732m)까지는 약 5.5km의 거리 입니다. 3시간을 걸어야 합니다. 지리산 제 2봉인 반야봉은 기암으로 이뤄진 웅장한 봉우리 입니다. 경남과 전북, 전남의 경계지점에 있는데 반야봉 밑에 실제 삼도의 경계인 삼도봉이라는 명칭의 봉우리가 있습니다. 반야봉의 일몰은 지리산 8경중 하나로 꼽힙니다.

하산길은 반야봉 아래 화개재에서 남원 반선마을까지 9km의 뱀사골 계곡을 따라 하산합니다. 하산길은 넉넉하게 3시간정도가 걸립니다. 비취색 맑은 물이 정말 투명합니다. 봄철에는 수달래, 가을에는 단풍이 아름다운 곳입니다.

당일 산행으로는 조금 무리가 있는 만큼 새벽 일찍 성삼재에서 산행을 시작하거나 노고단 대피소에서 하루를 묵고 여유 있게 산행하는 것을 권합니다. 노고단대피소는 국립공원관리공단 홈페이지에서 예약할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글은 필자의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지리산, #노고단, #반야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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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밤이 서서히 물러갈 때, 이 봄날의 꽃이 자신들을 위해 화사하게 피었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얼마나 자신을 지키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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