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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철수와영희 펴냄)이라는 책을 내놓았습니다. 이 책에서는 열두 살 어린이 눈높이에 맞추어 한국말이란 얼마나 사랑스럽고 아름다운가 하는 이야기를 다루려고 했습니다.

아이들은 여덟 살 언저리에 초등학교에 들어가며 여러 가지를 배우는데, 초등학교 교과서를 살피면 어려운 말이 대단히 많고, 아이들이 외워야 하는 지식도 참으로 많습니다. 그래도 예전에 대면 초등교육은 많이 나아졌다고 할 만한데, 어린이가 초등학교를 마치고 중학교로 접어들면 곧장 입시교육으로 바뀌어요. 삶을 다스리는 배움이나, 살림을 짓는 슬기를 스스로 찾는 배움하고는 멀어진다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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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회 흐름이나 교육 흐름에서 이 나라 어린이가 마음속에 맑은 말 한 마디를 품으면서, 이 맑은 말 한 마디로 스스로 꿈을 짓는 씨앗을 가꾸기를 바라는 뜻으로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예전에는 '동네'라고 하는 말은 거의 안 썼고, 시골이나 도시 모두 '마을'이라고 했어요. 도시가 커지면서 '洞(동)네'라는 말이 널리 쓰였어요. 한자로 '洞'은 '마을'을 가리켜요. '동네'라고 하면 '마을네'라는 소리이니, 그냥 '마을'을 한자말로 가리키는 이름이지요. (12쪽)

밤에 하늘을 올려다보면 '별잔치'를 누릴 수 있는데, 서울 같은 큰 도시는 건물도 많고 하늘도 뿌예서 좀처럼 별잔치를 못 누려요. 어느 날은 달조차 보기 어려울 수 있어요. 별잔치를 누려야 하늘에서 별빛이 냇물처럼 흐르는 미리내를 만나요. 미리내라고 하는 별무리는 수많은 별이 냇물처럼 이어지는 모습인데, 한밤에 반짝반짝 빛나면서 '빛잔치'를 이루지요. (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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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4년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숲말'을 다룬 이 책은 책이름처럼 우리가 쓰는 말은 숲에서 비롯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할 만합니다.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이라는 책은 '마을말'이라는 이름처럼, 숲에서 태어난 말을 마을에서 저마다 이쁘장하게 가꾸거나 살찌운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숲말>하고 <마을말>이라는 두 가지 책으로 이 나라 어린이한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간추려 본다면, 숲에서 태어난 말을 마을에서 가꾸는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우리 스스로'라는 대목입니다. 고장마다 다른 고장말처럼, 마을마다 다른 마을말이 있고, 집집마다 다른 집말까지 있어요. 누구나 스스로 삶과 살림과 사랑을 가꾸는 말을 지어서 즐겁게 쓸 수 있다는 이야기를 어린이한테 들려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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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치는 자리에 서서 배우는 사람을 바라보노라면, '가르치면서 배우는구나.' 하고 느끼기 마련이에요. 배우는 어린이 여러분도 어른한테서 무언가를 배우면서 새롭게 무언가를 가르친답니다. 이리하여 배우는 사람이나 가르치는 사람은 서로 '배움님'이 되면서 '가르침님'이라 할 만해요. 오늘 하루도 맑은 마음이 되어 밝은 생각을 배울 수 있는 길을 신나게 함께 걸어가요. (49쪽)

책은 말로 빚어요. 말은 삶으로 빚어요. 삶은 생각으로 빚지요. 우리가 저마다 생각하는 대로 하루를 살아요. 즐겁게 놀고 싶다는 생각을 품으면, 언제 어디에서나 즐겁게 놀면서 하루를 빚어요. 기쁘게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품으면, 학교에서뿐 아니라 마을이나 집에서도 기쁘게 배우면서 하루를 빚지요. 심부름을 한다든지 어버이 일을 거들겠다는 생각을 품으면, 또 이러한 생각대로 하루를 빚는답니다. (57쪽)

학교에 들어간 어린이는 맞춤법하고 띄어쓰기 때문에 대단히 힘겹습니다. 그런데 맞춤법하고 띄어쓰기는 어린이한테만 힘겹지 않아요. 어른한테도 벅차지요. 어린이는 학교에 들기 앞서 그렇게 말도 잘 하고 때때로 멋진 글을 쓰기도 하는데, 막상 학교에 들어가고 나면 좀처럼 '눈부신 말'이나 '빛나는 글'을 끌어내지 못하기 일쑤예요. 학교에 들기 앞서까지는 홀가분하게 말하거나 글쓰면서 생각을 지필 수 있었다면, 학교에 들고 나서는 맞춤법하고 띄어쓰기를 따박따박 지켜야 한다는 굴레에 갇히고 말아요.

가만히 생각해 보면, 고장마다 고장말이 다르기에, 고장마다 '맞춤법도 달랐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라말하고 경상말뿐 아니라, 충청말하고 강원말도 맞춤법이 다르지요. 같은 것을 놓고도 다른 말씨를 쓰니까 '우리가 고장마다 고장말로 이야기를 나눌 적에는 맞춤법을 따질 수 없다'고까지 할 만해요. 그리고 이러한 얼거리에서는 굳이 띄어쓰기를 안 따져도 될 만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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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테면 '신나다'를 들 수 있어요. 국립국어원은 무척 오랫동안 '신나다'를 사전에 안 올리면서 사람들이 이 낱말을 '신 나다'처럼 띄어서 적어야 한다고 밝혔어요. 이제 '신나다'는 사전에도 오르고 즐거이 붙여서 쓸 수 있지요. 그런데 예전 맞춤법에서는 '신 나다'처럼 띄어서 적어야 한다니, 얼마나 골이 아픈 노릇일까요? 왜냐하면 '재미나다·화나다·성나다' 같은 낱말은 붙여서 써요. 예전 맞춤법대로라면 "재미나고 신 나네"처럼 적어야 옳으니 머리가 아프지요.

그런데 국립국어원 맞춤법은 이제 '신나다'를 받아들이지만, 비슷한말인 '신명·신바람'을 놓고는 '신명 나다·신바람 나다'처럼 띄어서 적어야 합니다. '신·신명·신바람'은 같은 얼거리인데 왜 '신명나다·신바람나다'처럼 쓰면 안 되도록 가로막는 맞춤법이어야 할까요? 더 헤아리면 '짜증'을 놓고도 아직 '짜증 나다'처럼 띄어서 쓰라고 하는 국립국어원 맞춤법이에요. 앞뒤가 많이 어긋나요.

'한'은 숫자로 '1'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크다'나 '넓다'를 가리키기도 해요. '한길·한살림·한참·한턱·한바탕·한마당·한글'은 모두 '하나+크다+넓다'라 할 만해요. 파랗게 맑은 바람이 흐르는 하늘도 '한'에서 비롯하지요. '하느님' 같은 낱말은 '하늘+님'인데, '하늘'도 '한+울'이면서 '하나+크다+넓다'를 가리키는 자리랍니다. 여기에서 '울'은 '1,000,000,000,000(조)'라는 숫자를 가리키는 오래된 한국말이에요. 숫자로 보면 '1'인데, 이 '하나'가 너르고 크면서 아름다운 것이지요. 숫자 '100'은 '온'이면서 '모두'예요. (68∼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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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학자는 골치가 아플 테지만 사람들은 '혼술·혼밥·혼놀이' 같은 새말을 마음껏 지어내어 씁니다. 사람들이 언제나 모든 말을 슬기롭게 짓거나 엮어서 쓴다고는 할 수 없을지라도, 무척 재미나면서 슬기롭게 짓거나 엮는 말이 많습니다.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널널하다' 같은 말을 지어서 쓴 여느 사람들을 바라보는 국어학자는 손가락질을 해댔어요. 그러나 이제는 '널널하다'뿐 아니라 '밀당'처럼 재미나며 알뜰한 새말이 싱그럽게 톡톡 튀어나와요. 학교 교육 얼거리는 입시 틀거리에 갇히지만, 사람들이 새롭게 날갯짓을 하듯이 짓는 말이 하나둘 태어나요.

그래서 이런 싱그러운 생각을 이 나라 어린 이웃님이 마음껏 펼치기를 바라는 뜻으로 <마을말>을 썼어요. 누구보다 어린 이웃님이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를 배우기는 배우되, 너무 이 틀에만 얽매이지 말고서 홀가분하게 생각을 꽃피우는 결을 더 바라볼 수 있기를 바라는 뜻을 <마을말>에 담으려 했습니다. '부추·정구지·솔'처럼 고장마다 같은 것을 다른 이름으로 저마다 스스로 즐겁게 가리킨 말살림을 생각해 보자는 뜻을 담으려 했어요. 나라에서 학자님이 지어 주는 말을 쓰는 삶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작은 마을에서 작은 이웃으로서 즐겁게 말살림을 가꾸어 보자는 뜻을 담으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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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는 '근린공원'이라는 데가 조그맣게 있어요. 한자말 '근린(近隣)'은 '가까운'을 뜻해요. 그러니까 "가까운 공원"이라는 뜻으로 근린공원 같은 이름을 쓰는 셈이에요. 집에서 가까이 찾아갈 만한 공원이라 할 텐데, '이웃공원'이나 '손바닥공원'이나 '마을공원'처럼 이름을 붙이면 한결 나아요. (72쪽)

해마다 봄이면 꽃길을 걸으려는 사람이 부쩍 늘어요. 봄기운도 반갑고 꽃내음도 좋으니까요. 길을 나서는 사람은 '길손'이 되고, 길손이 머무는 '길손집(여행자 숙소·여관·게스트하우스)'이 있어요. 길손은 마음에 드는 자리를 골라서 길섶에 앉아 길밥을 먹기도 해요. 길밥을 함께 나누는 길동무라면 '길밥동무'나 '길밥이웃'이 되겠네요. (127쪽)

퍽 많은 어른들은 일본을 거쳐서 전문용어를 들여왔습니다. '근린공원' 같은 뜬금없는 이름도 이렇게 들여왔어요. 마을에 작게 짓는 공원이면 '마을공원'이든 '한뼘쉼터'이든 '작은쉼터'처럼 수수하고 작은 이름을 얼마든지 붙일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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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더러 마을공원 이름을 붙여 보라고 했다면 어린이는 틀림없이 매우 쉬우면서 알기 좋고 어여쁜 이름을 지었으리라 생각해요. 말 그대로 수수한 '마을공원'이라는 이름을 쓸 수도 있을 테고요.

'여관·여인숙'하고는 다르다는 생각으로 '게스트하우스' 같은 영어를 끌어들이는 어른들이 많아요. 그런데 이를 아예 새롭게 바라보며 한국말로 쉽고 재미나게 지으려고 마음을 기울이는 어른은 퍽 드뭅니다.

자, 그러면 생각해 봐요. 어린이한테 이름짓기를 맡기면 어떨까요? 여행을 다니는 길에, 또는 나들이를 다니는 길에, 하룻밤을 묵는 곳을 놓고 어떤 이름이 곱게 어울릴까 학고 어린이한테 물어봐요. 우리 스스로 생각을 빛내어 새롭게 이름을 지어 보면 좋겠어요.

책상맡에서만 배우는 사람은 '책상물림'이라고 해요. 우리는 학교에서 책상맡에 앉아서 사회를 배우기도 해야 하지만, 집에서 살림을 배우고 마을에서 사랑도 배워야 하는데, 집이나 마을에서 살림하고 사랑을 배우지 못해서 두 눈이 밝게 트이지 않을 적에 '책상물림'이에요. '학교물림'인 셈이에요. (1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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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곳은 어떤 마을이 될까요? 살림을 아끼거나 되쓰거나 북돋울 만한 마을이 될까요? 바깥에서 온갖 지하자원을 끌어들여야만 하는 마을이 될까요? 처네에 업혀서 자라는 어린이가 줄어듭니다. 포대기에 안겨 아기수레를 타면서 자라는 어린이가 늘어납니다. 처네에 업히지 않으니 처네를 알 길이 없습니다. 배냇저고리도 바지도 여느 옷도 손수 실하고 바늘을 놀려서 짓지 않을 적에는 이러한 옷가지를 찬찬히 알기 어렵습니다. 손수 짓지 못하는 집살림일 적에는 손수 일구는 마을살림이 되지 못합니다. 집살림이나 마을살림을 손수 빚지 못한다면 나라살림도 우리 스스로 여미지 못하기 마련입니다. (162∼163쪽)

책 한 권으로 말살림을 모두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숲말>이나 <마을말> 같은 책이 어린이한테뿐 아니라 어린이를 사랑하는 어른한테도 상냥한 길동무책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어린이책이니 어린이만 읽는 책이 아닌, 어린이와 어른이 서로 어깨동무를 하면서 읽는 길동무책이 될 수 있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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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말 이야기를 어린이 눈높이에 맞추어서 쓰는 까닭은 우리 어른도 어린이 눈높이로 말살림을 바라보고 가꾸면서 새롭게 생각을 북돋우면 좋겠다고 하는 마음입니다. 전문용어나 학술용어는 좀 내려놓기를 바라요. 어려운 말은 참말로 내려놓으면 좋겠어요. 어린이하고 어깨동무할 수 있는 숲말을 살피고 마을말을 헤아리면 좋겠어요.

시골이랑 서울이 어깨동무를 하고, 아이랑 어른이 어깨동무를 하듯이, 우리가 서로 착하고 참되며 고운 말을 마음에 담아서 생각을 가꾸는 씨앗으로 삼는 말벗이 된다면 아름다운 나라, 곧 '아름나라'가 되리라 하고 꿈꿉니다. 아름다운 나라인 '아름나라'도 되고, 아름다운 마을인 '아름마을'도 되며, 아름다운 집인 '아름집'도 될 수 있기를, 이리하여 우리가 쓰는 말이 언제나 푼더분한 '아름말'이 될 수 있기를 꿈꿉니다.

덧붙이는 글 |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숲노래 기획 / 최종규 글 / 강우근 그림 / 철수와영희 펴냄 / 2017.7.12. / 13000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 동무들과 즐겁게 사귀면서 나누는 말 한마디

최종규 지음, 강우근 그림, 숲노래 기획, 철수와영희(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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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말사전을 새로 쓴다. <사전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우리말 꾸러미 사전》《우리말 글쓰기 사전》《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