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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전화기는 개인의 통신, 구매, 금융, 위치, 생체 정보 등을 통합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 사진은 삼성이 2015년에 도입한 '삼성페이' 교통카드.
 이제 전화기는 개인의 통신, 구매, 금융, 위치, 생체 정보 등을 통합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 사진은 삼성이 2015년에 도입한 '삼성페이' 교통카드.
ⓒ 삼성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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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서울 지하철역에서 역무원을 구경하기가 어려워졌다. 역사의 '표 사는 곳'에 줄을 서서 지하철 표를 사던 경험은 기억 저 편으로 사라진 지 오래다. 반달 모양으로 뚫린 유리창 앞에서 목적지와 매수를 말한 뒤 지폐를 내밀면, 직원은 놀라운 속도로 암산을 해서 그만큼 놀라운 속도로 표와 잔돈을 밀어주곤 했다.

반들반들하게 닳은 시멘트 매대 위로 미끄러져 나오던 동전 소리는 '아날로그 시대'의 낡은 추억이 되었다. 매표소 창구는 디지털 '터치스크린'이 달린 무인판매기로 대체되었다. 자모 버튼을 눌러 목적지를 입력하게 되어 있는 최신식 판매기가 생소한 모습을 드러낸 지도 꽤 시간이 흘렀다.

이제 대다수의 승객들은 이런 자판기조차 거들떠 보지 않는다. 지갑 속 교통카드나 아예 이 기능이 내장된 신용카드를 쓰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우리 대부분은 매표 창구 앞에 줄을 서던 시절로 되돌아갈 생각이 없을 것이다.

판매원 앞에 줄을 서지 않아도 되는 것은 승객 입장에서 분명히 '편한' 일이다. 하지만 표를 자판기에서 사거나, 아예 사지 않게 될 때 가장 편해지는 것은 기업과 국가다. 기업체는 고용을 대폭 줄일 수 있게 되고, 소비자 주머니에서 돈을 빼내기는 더 쉬워지며, 공권력은 시민의 사생활을 손바닥처럼 들여다볼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교통카드는 사용자의 움직임을 속속들이 기록한다. 과거에는 카드가 교통수단이나 지역별로 분리되어 있었지만, 이제는 하나로 통합되어 더욱 '편리'해졌다. 이제는 사용자가 어느 지점에서 버스를 타고 어느 시점에서 내려 지하철이나 택시로 갈아탔는지 초 단위로 정확히 기록된다.

만일 교통카드 칩이 든 신용카드나 체크카드를 쓰고 있다면, 이동 기록에 구매 기록까지 추가된다. 이 두 정보가 결합되면 한 사람에 대해 아주 많이 알 수 있게 된다. 당신이 어디에서 어디로 움직여 어느 식당에서 뭘 먹고, 어느 가게에서 무엇을 얼마에 샀으며, 몇 시에 어떤 교통편으로 집에 돌아가서 어떤 상품을 온라인으로 주문했는지 모두 기록으로 남기 때문이다. 이제 개인의 움직임만이 아니라 내밀한 생활양식까지도 노출되는 것이다.  

'편리함'의 재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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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4차산업혁명' 시대이니, 더욱 큰 편리함이 기다리고 있다. 교통카드와 신용카드가 전화기 속으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이제 언제 어디서 무슨 교통수단을 이용했는지 정도가 아니라, 어느 골목길을 몇 보째 걷고 있는지, 어떤 도로에서 얼마의 속도로 운전하고 있는지 실시간으로 추적할 수 있다.

게다가 전화기에는 한 사람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단서인 '관계 정보'가 담겨 있다. 전화기에 어떤 사람의 연락처가 저장되어 있고, 누구와 통화를 하고 어떤 메시지를 주고 받는지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전화기가 연결된 기지국 위치나 위성 위치 확인 시스템(GPS) 정보를 이용하면 누구와 대화하고 있는가 뿐 아니라, 누구와 같은 공간에 있는지까지 파악할 수 있다.

스마트폰은 개인의 외부 활동만이 아니라 내면 세계까지 들여다 보게 해 준다. 당신이 언제 어디서 어떤 웹사이트를 방문했고, 어떤 내용을 검색했는지 낱낱이 기록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정보추구 행동을 거의 무의식중에 하기 때문에, 이것이 자신에 대해 어떤 것을 말해주는지 깨닫지 못한다. 이제 나 자신보다 기업과 국가기관이 나를 더 잘 안다.

디지털 시대의 '프라이버시 침해' 이야기는 너무나 흔해서 많은 이들이 무감각해진 상태다. 일부는 이런 경고를, 암울한 미래를 다룬 공상과학 이야기 정도로 간주하기도 한다. 그래서 구체적인 '상품' 몇 가지를 소개하려고 한다. 감시가 정보기관만의 이야기나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가운데 흔히 벌어지는 일상이고 현재라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다.

2015년, 한국 국가정보원(국정원)이 이탈리아의 해커 단체로부터 감시 소프트웨어를 구입한 사실이 폭로되었다. 국정원이 이 불법단체에 지불한 대금은 68만 유로(약 9억 원)에 이른다. 여기서 희극적인 부분은, 국정원이 거래한 해커 단체가 다른 해커에게 해킹을 당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로 인해 고객 정보가 외부로 유출되었고, 이 과정에서 국정원의 행태가 밝혀진 것이다.

이처럼 보안 전문가들 사이에도 해킹이 다반사로 일어나는 판이니, 보안에 민감하지 않은 일반인들을 해킹하기가 얼마나 쉬운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혹시 '엠스파이'나 '헬로스파이'라는 앱 이야기를 들어보셨는가? 불법 해커단체가 음지에서 거래하는 프로그램이 아니다. 어엿한 개발사들이 웹사이트에서 공식 판매하고 있는 제품으로, 구매자에게 '24시간 소비자상담' 까지 해 준다.

상대방의 전화기에 이 프로그램을 설치하면, 사용자 전화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것을 알아낼 수 있다. 상대가 전화를 할 때 엿듣거나 녹음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주고 받는 문자메시지를 읽을 수 있고, 저장된 사진이나 통화기록, 검색 기록도 볼 수 있으며, 사용자가 페이스북이나 채팅 앱에서 보내는 메시지나 이메일을 남김없이 손에 넣을 수 있게 된다. 위치정보를 통해 상대방이 어디 있는지 확인하는 것은 기본이다.

더욱 끔찍한 것은, 상대방 전화기를 원격 조종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상대방 전화기에 설치된 소프트웨어를 원격 삭제할 수 있고, 전화기에 내장된 마이크를 작동시켜 전화기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엿들을 수도 있다. 가격도 '억대'가 아닌 몇 만원 대 수준이다.

심각해지는 '합법적 정보 유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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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누가 그런 짓을 하겠느냐고? '헬로스파이' 제품 하나만도 '85만 고객'을 자랑하는 것만 보아도, 그런 짓을 하고 있거나 계획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는 이야기다.

당연히 감시나 도청을 권장하기 위해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정보 유출이 일상화된 상황에서 자신을 지켜야 한다고 말하려는 것이다. 감시와 도청이 밥 먹듯 일어나는 현실에서 이 문제에 대해 아무런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거나,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듯 행동하는 것만큼 위험한 일은 없기 때문이다.

혹시 '감시 앱'을 남의 전화기에 설치하려는 독자가 있다면, 이것은 명백한 불법행위이며 법에 의해 처벌 받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설사 외국 업체의 소프트웨어를 별 문제 없이 구매했다 해도, 이것을 이용해 타인의 정보를 훔쳐내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일이다. 불법으로 얻어낸 정보는 아무런 법적 효력이 없고, 감시 소프트웨어나 대행 서비스를 파는 업체나 개인들 가운데도 사기꾼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불법뿐 아니라 '합법' 정보유출 문제도 심각하다는 사실이다. 특히 '4차산업혁명'이라는 추상적이고 낙관적 구호는 '클라우드컴퓨팅'이나 '빅데이터'로 대표되는 소비자 정보 유출 행위를 합리화하고 부추기기까지 한다. '4차산업혁명' 예찬론자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이들이 기술적 문제에 놀랄만큼 무지하다는 사실을 깨닫곤 한다.

어려운 질문을 던질 필요도 없다. (4차산업혁명의 핵심요소라는) '클라우드컴퓨팅'과 '빅데이터'가 무엇인지 묻는 것으로 충분하다. 흥미롭게도, 엉뚱하고 모호한 답변을 내놓는 사람일 수록 기술적 변화에 대한 환상이 큰 경우를 자주 본다.

거칠게 말해, '클라우드컴퓨팅'은 남의 컴퓨터에 내 정보를 저장하는 것이다. 남이 소유한 저장 장치에 나의 개인 정보를 입력한 뒤, 남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이 정보를 처리하고 활용하도록 허락하는 것이다. '클라우드(구름)'이라는 부드러운 명칭과 달리, 내 정보는 서버 컴퓨터 속의 '딱딱한' 하드 드라이브나 플래시 메모리칩에 저장된다.

'클라우드컴퓨팅'의 어두운 그림자

'클라우드컴퓨팅' 시대에 사용자의 컴퓨터나 통신기기는 기업체의 컴퓨터에 접속하기 위한 단순 '단말기' 기능으로 축소되고 있다. 이는 정보에 대한 사용자의 권한과 통제력이 사라지는 과정을 의미한다. 이는 이메일, 소셜미디어, 스트리밍 서비스 뿐 아니라, 전자책 같은 단말기도 마찬가지이다. 아마존은 사용자 단말기에서 책을 임의로 삭제해 문제가 되기도 했다.
 '클라우드컴퓨팅' 시대에 사용자의 컴퓨터나 통신기기는 기업체의 컴퓨터에 접속하기 위한 단순 '단말기' 기능으로 축소되고 있다. 이는 정보에 대한 사용자의 권한과 통제력이 사라지는 과정을 의미한다. 이는 이메일, 소셜미디어, 스트리밍 서비스 뿐 아니라, 전자책 같은 단말기도 마찬가지이다. 아마존은 사용자 단말기에서 책을 임의로 삭제해 문제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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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포털이나 검색 업체가 준 이메일 계정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인터넷 기반 이메일은 흔한 형태의 '클라우드컴퓨팅' 가운데 하나로, 인터넷과 연결된 컴퓨터나 전화기가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이메일을 주고 받을 수 있어 매우 편리하다. 게다가 무료 계정에 대용량의 저장공간까지 제공해 준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영리하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인터넷 업체들이 왜 이메일 계정과 저장 공간을 공짜로 줄까? 간단하다. 사용자 정보가 곧 돈이고 권력이기 때문이다.

'클라우드컴퓨팅' 환경에서 사용자의 컴퓨터나 전화기는 남의 기계에 등록된 정보에 일시적으로 접속하는 단말기로 전락한다. 비록 사용자 소유의 정보라 하더라도, 이에 일차적으로 접근할 힘을 가진 이는 사용자가 아니라 업체다. 그것이 이메일이든, 전자책이든, 음악이든, 영화든, 소프트웨어든 상관 없다.  

2009년, 아마존의 전자책 킨들 사용자 일부가 기괴한 경험을 했다. 자신들이 구입한 도서가 증발해 버린 것이다. 저작권 문제를 이유로 회사가 사용자 단말기에서 책을 일방적으로 지워버렸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문제의 책은 조지 오웰의 <1984>였다. '빅브라더'가 가져올 암울한 미래가 현실이 되었음을 알리는 상징적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비록 전자책 기기를 내 돈을 주고 사고, 전자도서를 구입한다 해도, 사용자가 온전히 주인일 수 없다. 아마존은 당신이 어떤 책을 몇 페이지까지 읽었는지뿐 아니라, 몇 페이지를 대충 넘겼고, 어느 부분에서 오래 시간을 끌었으며, 어느 부분에 줄을 긋고 메모를 했는지 알고 있다.

구글은 지메일 사용자가 주고 받는 모든 이메일을 스캔해서 광고에 활용한다(이 사실이 논란이 되자, 구글은 '읽지는 않고 스캔만 한다'고 해명했다). 예를 들어 이메일에 '대학에 가고 싶다'는 내용이 있다면 온라인대학 광고를 보여주고, '돈이 필요하다'는 내용이 있다면 대출광고를 띄우는 식이다. 물론 구글이 사용하는 알고리즘은 이보다 훨씬 치밀하고 정교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결국 '클라우드컴퓨팅'은 기업이 사용자 정보에 대한 통제력을 빼앗아가는 과정이다. '4차산업혁명론'의 가장 큰 문제는 시민들이 아니라 기업의 편향된 시각에서 기술을 바라본다는 점이다. '4차산업혁명론'을 외치는 한국의 신문이나 잡지 칼럼들을 읽어보라. 거의 모든 결론이 '규제 철폐'로 귀결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기업이 '편리'를 구실로 사용자에게 요구하는 정보는 이제 생체정보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아이폰은 지문정보를 등록하고, 삼성 갤럭시는 사용자의 홍채정보를 저장하며, 애플 워치 등의 '착용 컴퓨터'는 사용자 맥박을 추적한다. 이 장치들은 사용자의 칼로리 소비량, 몸무게 변화, 수면 패턴까지도 기록한다.

이런데도, '4차산업혁명론자'들은 규제를 완화하거나 철폐하라고 주장한다. 자동차 배기량이 커지고 속도는 점점 빨라지는데 브레이크 장착 의무는 완화하거나 없애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다. 그런 면에서 '4차산업혁명론'은 신기술에 대한 논의가 아니다. 그저 얄팍한 기술의 외피를 쓴 친기업-탈규제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나는 '친기업'에 반대하지 않는다. 문제는 기업의 이윤을 위해 시민사회에 해가 되는 주장까지 서슴지 않는다는 데 있다.  기업이나 이들과 이해관계를 나누는 이들이 '4차산업혁명론'에 흥분한다 해도, 시민들은 자신의 이익을 대변할 새로운 관점을 찾아야 한다.


태그:#4차산업혁명 , #클라우드컴퓨팅, #탈규제, #감시 , #정보유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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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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