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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 MBC <PD수첩>은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라는 주제로 두 편의 방송을 내보냈다. 방송이 일으킨 반향으로 2달 넘게 촛불집회가 열렸고 이명박 대통령 취임 초기에도 국정수행 지지율은 한 자릿수까지 곤두박질쳤다. 결국 이명박 정권은 재협상을 통해 30개월령 미만의 쇠고기만 수입하기로 했다.

그 때문이었을까? 이후 이명박 정권은 YTN을 시작으로 방송 장악해 나갔고 2010년 마침내 MBC에 이명박 대통령 대선 캠프 출신인 김재철 당시 청주 MBC 사장을 MBC 본사 사장으로 내려보냈다. 정권의 방송 장악이 2년 만에 완성되었다.

그러자 MBC노조는 2010년과 2012년 두 차례 총파업을 했다. 돌아온 건 해고, 정직 등 부당징계와 부당전보였다. 그렇게 5년이 더 시간이 흐르며 내부 구성원에겐 패배의식과 무기력감에 빠졌다. 그러나 한 드라마 PD의 페북 라이브는 MBC노조를 깨웠고 직종별 제작중단에 이어 노조 총파업을 앞두고 있다.

당시 광우병 보도를 했던 <PD수첩> 제작진은 이 상황을 어떻게 보는지 궁금해 지난 8월 29일 서울 상암 MBC 사옥에서 김보슬, 이춘근 PD를 만났다.

 이춘근(좌), 김보슬(우) MBC PD가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춘근(좌), 김보슬(우) MBC PD가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이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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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 노조가 총파업을 앞두고 있잖아요. 내부 구성원들의 분위기는 어떤가요?
김보슬 PD(아래 김) : "오늘(29일)까지 총파업 찬반 투표를 하고 파업 날짜도 정해졌어요. 사실 저희가 처음에 제작 거부 결정을 할 때만 하더라도 이것을 통해 저희가 무엇을 얻을 수 있을 건지 논의도 했어요. 근데 이젠 그걸 따질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젠 뭔가를 바꾸려는 시도를 적극적으로 해야 할 때란 생각이 들었어요. 이 흐름이 파도처럼 넘쳐 구성원들 사이에서 총파업으로 가자는 분위기가 조성된 것 같아요."

- 현재 직종별로 제작 중단을 하고 있잖아요. 그보단 차라리 총파업으로 가는 게 나을까요?
이춘근 PD(아래 이) : "<PD수첩> 제작진이 제작 중단을 한 지 벌써 한 달이 지났어요. 아마 처음부터 총파업 투표를 하자고 했으면 여기까지 못 왔을지도 모르죠.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소위 온도 차라는 게 있잖아요. 이 상황을 엄중하고 빨리 해결해야 한다는 분도 계시고 또 급하게 해서 되겠느냐고 생각하는 분도 있겠죠.

그런데 지난 한 달을 보내면서 사람들이 마지막 기회라는 걸 생각하게 됐던 것 같아요. 거기에 동의하는 과정에 '카메라 기자들 블랙리스트'도 있었고요. 콘텐츠 제작국에서도 그동안 말도 안 되는 방송에 대해 공정성이나 중립성을 해치는 지시가 있었던 것을 발표했고 아나운서들의 얘기도 있었잖아요. 이런 게 하나하나씩 쌓여 오면서 전체 구성원이 이제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며 총파업으로 모두 가는 데 시간이 필요했던 게 아닌가 생각해요. 그래서 같이 의견을 모아간 과정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 아무래도 김민식 PD의 페북 라이브가 큰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김 : "민식 선배가 그렇게 했다는 건 영화를 통해 알았어요, 물론 민식 선배가 한 다음 조합원이 다 모여서 점심때 '김장겸은 물러나라'라는 퍼포먼스에 동참은 했지만 이게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지는 영화를 통해 처음 알았거든요. 그 대목에서 너무 많이 울었어요. 민식 선배가 왜 그랬을까부터 시작해서 무슨 이유로 저걸 시작했을지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고 우리는 왜 민식 선배처럼 못했는가 생각했죠. 저희는 사장이 물러나야 한다는 생각을 수십 번도 더 했는데 그걸 혼자서 행동으로 옮기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되게 고마웠죠. 부담스러웠을 것 같아요. 혼자 남겨진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굉장했던 것 같거든요."

이 : "지금까지 MBC의 파업이 여러 차례 있었지만 조합 집행부나 여론 주도층에서 조금 형성해서 '탑다운(하향식)' 방식이었다고 한다면 이번엔 거꾸로 밑에서부터 '바텀 업(상향식)' 방식이 아닌가 싶어요. 조합 집행부는 총파업에 들어가는 것도 2012년 파업 트라우마 때문에 모두 조심스러웠는데 김민식 선배가 그렇게 외치면서 각자 마음속에 있었던 것들이 터진 것 같아요.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고 5년간 왜 참았는가에 대한 울분이 퍼지다 보니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 이제는 참을 수 없고 마지막 기회란 생각을 한 게 아닌가 싶어요."

- 2012년 170일 파업 이후 정확히 5년만입니다. 그동안 구성원들 사이에서 '해도 안 된다'는 패배의식 또는 무력감이 컸을 것 같은데.
김 : "아무래도 그렇죠. 저희가 안 싸워본 건 아니거든요. 근데 영화가 말해 주듯이 <PD수첩>이 두들겨 맞기 시작했죠. 저희가 잡혀가는 것들이 언론인들에게 굉장한 위축 효과를 준 것도 사실이고 그 이후 회사 사장을 친정권 인사로 내려보내면서 정권 차원에서 언론을 장악하게 됐잖아요.

인사가 만사라고 하더니 인사권을 쥐고 있는 사람에게 조직원들은 당할 수 없더라고요. 엄연히 사규가 있고 그 회사에서 월급 받고 사는 사람들이 인사권과 징계권을 휘두르니까 그런 것 때문에 무기력해졌던 것 같아요. '내가 아무리 개기고 반항해 봤자 이게 조직 안에서 이런 식으로 구는 것에 대해 스스로 사표 내지 않는 한 반항을 못 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해고되고 쫓겨나는 선배를 눈앞에서 목격하면서 스스로 자기 검열이 심해진 것 같아요."

"광주항쟁 때 광주MBC 건물 불타... 지금도 깨어있는 시민의 도움 필요하다"

 이춘근 MBC PD
 이춘근 MBC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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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당전보와 부당 징계를 받아왔잖아요. 모욕감을 느꼈을 것 같은데.
김 : "저희가 잡혀가고 재판받는 모욕감보다 그 이후 구성원들이 겪은 모욕감이 더 컸던 것 같아요. 아이스링크장에서 눈 쓸고 일산에서 용인까지 매일매일 출퇴근하는 걸 견딜 수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거든요. 제가 어떤 아나운서에게 내레이션 업무를 시키고 싶다고 했는데, 그 친구에게 가기도 전에 안 된대요. 파업했다는 이유로 아나운서들이 방송에 나올 수 없고, 기자가 기사를 못 쓰고, PD가 프로그램을 못 만드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던 거죠. 그분들은 그 긴 시간 동안 모욕감을 견디고 살아온 거죠."

이 : "저는 PD로 입사했는데 3년간 쫓아내서 영업이나 하라고 했을 때 '나는 정년까지 20년 이상 남았으니 이것도 좋은 경험이다. 너희가 나를 단련시키는구나'란 생각으로 했어요. 그리고 전 경인지사에서 영업으로 봤을 때 거의 영업왕이었어요. 15억짜리 경쟁 PT 프로젝트도 수주했고 올해 4월까지 대법원 부당전보 승소 판결받고 돌아올 때까지도 2017년에만 1억 원 가까이 협찬 계약을 땄어요. 그런데도 제가 16년 차 사원입니다. 6년째 승진에 물먹고 있어요. 프로그램 잘 만들어 상 받았고 경인지사 쫓겨나서 영업왕도 했는데 승진이 안 되고 있어요. 사원에서 차장 대우는 자동 승진되거든요. 근데 그걸 못하고 있네요. 전 MBC에서 수석 사원입니다."

- 10년 전만 하더라도 MBC는 언론인을 꿈꾸는 사람에겐 꿈의 직장이었죠. 하지만 지금은 외면받는 방송사가 되었는데.
김 : "MBC는 꿈의 직장이었죠. 가장 자유롭고 위아래 소통에 대해 거침이 없었고 아래서 하는 말이 위로 잘 전달되니 조직이 살아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저희가 이 회사를 돌려놓고 싶어하는 거예요. 이 회사가 얼마나 대한민국에서 사랑받는 회사였는지 알기 때문이죠. 사랑도 받아본 놈이 사랑받으려고 하는 게 아닌가 해요.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가장 모났던 돌이잖아요. 그게 언론사로서 가장 중요한 요소였고, 돌아갈 거예요."

이 : "2000년대 MBC가 최고의 방송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사장을 뽑는 방문진 이사들이 멀쩡했고 그 이사들을 뽑는 정치 권력이 멀쩡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예요. 그게 어그러지는 순간 수틀리게 돌아간 거예요, 그럼 MBC가 처음부터 멀쩡했냐면 아니잖아요. 광주MBC 5.18 때 불탔어요. 결국, 1987년 민주항쟁 이후에 시민이 관심 가지고 정치에 대해서 이대로 둬선 안 된다고 지켜보시고 있었기 때문에 MBC 안에서도 의식 있는 기자 PD들이 멀쩡한 회사로 가도록 노력했었던 것 같아요.

지금도 사실 촛불에서 시작하신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 제대로 된 공정방송 공영방송에 대한 열망 같은 것들이 저희가 다시 싸울 힘을 주셨다고 생각해요. 이게 결국 계속 지켜보시고 관심을 주셔야만 저희도 싸울 힘이 있지 그렇지 않으면 저희 개별로서는 어떻게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에요. 왜냐면 공영방송은 시스템이라서 한 명이 나서서 해결할 수 없잖아요."

- 포기하거나 사표 내고 싶을 때도 있지 않았나요?
김 : "회사를 그만두고 싶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왜냐면 이 회사를 원래대로 돌려놓고 나가면 나갔지 이대로 못 나간단 거죠. 그건 억울해서가 아니라 앞으로 그런 언론사가 다시 되어야 하기 때문에 회사를 그만둔다거나 '난 다른 거 할래, 내 청춘 이렇게 보내고 싶지 않아'란 생각을 안 한 것 같아요. 물론 부르는 데도 없었고 갈 데도 없었지만 이게 포기할 수 없는 의무 같았어요.

반드시 MBC를 원래대로 돌려놓고 나야 다른 일을 해도 그게 맞다는 생각을 했고 아마 MBC 구성원 대부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싶어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오욕의 시대를 견디며 지금까지 버텨 왔는지 몰라요. 이게 웬만한 직장에서는 이런 탄압을 받고 살아 있기조차 쉽지 않다고 벌써 초토화되고 말았을 것이란 말씀도 하시더라고요."

이 : "저도 도망간다는 생각을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는 것 같아요. 왜냐면 정영하 선배도 말씀하셨지만 제가 나간다고 해서 공영방송이 망가지고 끝나는 게 아니잖아요. 어차피 있을 수밖에 없어요. 그럼 좋은 방송이 되어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될 것인지 아니면 '흉기 방송'이 되어 우리 사회를 해칠 것이냐인데 '흉기 방송'이 되게 둘 순 없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제가 MBC PD로 입사하면서 부여받은 책임으로 공정방송 하라는 것까지 부여받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제가 중간에 못하겠다고 뛰쳐나가는 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 9년 정권의 방송 장악 가운데 가장 심한 탄압을 받은 방송사는 MBC인 것 같은데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김 : "그건 MBC가 가장 바른말을 해서죠.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하잖아요. 그리고 내부 구성원을 다스리는 게 누구보다 쉽진 않았을 거예요. 한순간에 제압되지 않고 다시 살아나잖아요."

이 : "전 2008년부터 이 얘기를 해왔는데 MBC가 가장 먼저 돌 맞아서 다행이고 <PD수첩>이 가장 먼저 공격받아 다행이고 제가 가장 먼저 체포되어 다행이라는 말을 하고 다녀요. 왜냐면 저런 겁박에 최소한 MBC라서 넘어가지 않고 <PD수첩>이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저라서 웃으며 '바보 같은 놈들'이라고 웃어넘기며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결국,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내가 왜 더럽고 치사한 놈들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해?'란 저항 의식이 MBC에 가장 많아 먼저 돌을 맞았던 것 같고요. 지금도 가장 들고 일어나는 것도 그런 의식의 흐름이 선배들로부터 계속 내려왔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 가장 힘들었을 땐 언제인가요?
김 : "돌이켜 보면 <PD수첩>이 두들겨 맞을 때가 제일 괴로웠어요. 그땐 '내가 어떻게 해야 이 억울함이 풀어질까'나 '내가 어떻게 하면 이 프로그램이 덜 망가질까' 생각했어요. <PD수첩>의 긴 역사에서 제가 왜곡된 방송을 했다고 명예 훼손당하는 꼴을 보고 있는 게 가장 괴로웠거든요."

이 :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인 2012년 12월 19일이 제일 힘들었고요. 저 긍정적이고 밝은 사람이라 안 그러려고 했는데도 생각해보면 지난 8~9년 동안 가족에게 저도 모르게 화를 냈어요. 아내와 아이에게 화를 안 내야 하는 데 화를 옮긴 거죠. 회사 그리고 쫓겨난 저 때문에 화가 났는데 그 화를 가족에게 냈을 때가 슬펐어요."

김 : "MBC 구성원들이 <공범자들>을 보며 많이 울고, 피케팅 나와 한 명씩 돌아가며 얘기할 때 다들 울컥울컥해요. 다들 '집단 우울증에 걸린 것 같다'고 해요. 이게 다들 쌓이고 쌓이고 쌓인 울분이 모두에게 있어요. 실제 정신과 다니며 치료를 받은 사람도 있고 정말 괴로움에 웃음을 잃은 사람도 많고 건드리기만 하면 눈물이 글썽여요. 저도 누가 와서 이야기하면 자꾸 눈물이 고여요. 저뿐만 아니라 대부분 사람이 겪고 있는 심리적인 트라우마가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

이 : "그나마 MBC는 다행인 게 관심 가져 주시는 분도 많고 언론에서 다뤄주셔서 쌍용차처럼 불행한 일을 겪은 사람은 없잖아요. 그만큼 격려해준 힘 때문에 버틴 것 같아요."

"MBC 정상화 위한 '마지막 기회', 다시는 권력에 좌우되면 안 된다"

 김보슬 MBC PD
ⓒ 이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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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이 MBC를 정상화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보는 사람이 많은데.
김 : "마지막 기회죠. '땡전 뉴스' 이후 이렇게 망가진 적이 있었나 싶어요. 이게 한순간에 무너질 수는 있는데 이걸 회복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걸릴 거고요. 저희는 잃어버린 10년 동안 엄청난 미디어 환경 변화에 제대로 대처할 준비가 안 돼 있었어요.

하루하루 시간을 그냥 보낸 것과 마찬가지예요. 만약 이 싸움에서 이기고 나면 많은 사람이 많은 시간에 걸쳐서 다시 옛날의 MBC로 되돌려 놓을 때까지 노력하겠죠. 하지만 이번에 제대로 된 MBC로 돌아오지 않으면 더 이상 저희에게 기회가 올 것 같지 않아요. 그리고 그걸 제도적으로 '언터쳐블'하게 만들어 놓아야 되는 게 저희 숙명인 것 같아요. 다시는 권력에 의해 회사가 좌지우지되고 춤추면 안 되는 상황이죠."

- 김장겸 사장이 나간다고 정상화가 바로 될 것으로 보이진 않아요. 2014년 폐지된 시사 교양국의 부활이 시사 PD들에겐 중요할 것 같은데.
이 : "먼저 <PD수첩>과 '다큐멘터리'를 정상화해야죠. 예전에 시사 교양국이란 곳에서 만들어 시청자들에게 사랑받았던 프로그램들이 <불만제로>나 해외 이야기를 다룬 < W> 등 여러 프로그램이 있었거든요. 김재철 전 사장 이후 강제로 없어졌던 프로그램들이잖아요. 결국, 과거 시청자들에게 사랑받았던 프로그램들을 다시 해서 MBC를 국민의 품으로 돌려 드리는 게 저희가 향후 해야 할 역할이 아닌가 싶어요.

- 마지막으로 MBC의 정상화를 바라는 시민에게 한 말씀 부탁드려요.
김 : "제가 영화를 보고 최승호 선배에게 무지 감사했거든요. 왜냐면 저희도 잊고 있던 시간에 대해서 기록을 해준 게 저희가 싸울 수 있는 커다란 힘을 주신 것 같아요. 시민에게 제일 듣기 괴로운 말이 '지금까지 뭐하다가 이제 정권 바뀌었다고 바꿔 달라고 하냐'는 것이었거든요. 영화를 보시면 열심히 싸워왔다는 말씀을 많이 하신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부분에 있어서 고맙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영화 많이 봐주시고 그동안 저희가 어떻게 싸워왔는지에 대해 봐주시면 지금 저희가 왜 이렇게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싸우는지에 대해 더욱더 이해하고 저희에게 힘을 많이 주실 것 같아요. 여러분의 힘 없이는 쉽지 않은 일이거든요. 저희가 지금까지 어떤 탄압을 받았는지 그때마다 보도해 주는 데가 없었어요. 언론사임에도 불구하고 그 아픔을 잘 알거든요. 시민의 관심과 응원이 얼마나 저희에게 절실했는지를 느끼게 했죠."

이 : "영화 많이 봐주시고 보신 분들이 저희를 이해해 주시는 것 같아 감사드려요. MBC가 정상화 되어 좋은 게 뭐냐면 여러분이 힘들게 영화표 예매하고 극장에 찾아와서 영화 안 보셔도 되어요. 매일 밤 <뉴스데스크>를 통해 집에서 편하게 볼 수 있고 매주 화요일 밤 11시 <PD수첩> 통해 편하게 보실 수 있죠.

그리고 제가 마지막으로 하다 폐지된 게 <불만제로>예요. 지금 제가 그걸 하면 살충제 계란 하루에 2.6개 먹어도 안전한지 생리대나 기저귀는 안전한지 미리미리 저희가 방송으로 보여드릴 수 있을 텐데... MBC가 정상화되면 시청자들에게도 편하고 득이 많이 될 것 같아요."

 MBC '불만제로'
 MBC '불만제로'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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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의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풀어주는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너뷰'를 연재히고 있는 이영광 시민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