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동포한마음회, 귀한중국동포권익증진위원회 등 국내 중국동포 단체 회원들이 28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대림역 앞에서 영화 '청년경찰'에서 중국동포와 거주지역인 대림동을 비하하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며 상영중단과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중국동포한마음회, 귀한중국동포권익증진위원회 등 국내 중국동포 단체 회원들이 8월 28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대림역 앞에서 영화 '청년경찰'에서 중국동포와 거주지역인 대림동을 비하하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며 상영중단과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학생들, 여기 조선족들만 사는데 여권 없는 중국인도 많아서 밤에 칼부림이 자주 나요. 경찰도 잘 안 들어와요. 웬만하면 골목 다니지 마세요."

극 중 주인공을 태운 택시기사의 대사다. 영화는 서울 '대림동'을 무대로 이야기를 이어가는데, 폐가를 '난자 공장'으로 만든 조직을 소재로 다뤘다. 영업 중인 양고기 꼬치 가게는 조직원들의 거처로 묘사되고, 문을 닫은 목욕탕은 장기 적출을 위한 장소로 나온다. 모두 조선족 조직이 아무렇지도 않게 활개 치는 공간으로 스크린에 오르고, 납치한 소녀를 이동시키기 위해 건물 여기저기 오가는 동안 범죄자들은 큰 제지를 받지 않는다.

지난 8월 28일,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지하철 2호선 대림역 출구 앞에서 재한동포연합회 등 중국 동포 단체 회원 60여 명이 영화 <청년경찰>의 내용에 항의하는 집회를 열었다. 극 중 조선족 폭력조직이 가출 소녀를 납치, 난자를 강제로 적출해 매매하는 내용이 나오기 때문이다.

기자회견에서 박옥선 귀한중국동포 권익증진 특별위원장은 "문화관광형 마을로 변화·발전하는 대림동을 조선족 조직폭력배가 활개 치는 곳으로 묘사해 '위험한 곳', '가지 말아야 할 곳'으로 인식하게 만든 것에 분노한다"고 말했다. 이어 "아무리 창작예술이라도 사회적 소수자를 범죄집단으로, 특정 지역을 범죄도시로 매도하는 것은 지나치며, 상영을 저지시켜야 할 중대한 문제"라고 주장했다.

'조선족을 범죄집단으로 묘사했다'는 지적과 '대림동을 범죄 소굴처럼 매도했으니 상영을 중단하라'는 주장은 영화 <청년경찰>을 두고 최근 거론된 논란의 일부분이다. 개봉 초기에는 주인공이 클럽에서 여성을 꼬시거나 밤길에 마음에 드는 여성을 뒤쫓는 장면, 여성이 범죄의 대상으로 나오는 설정을 두고 '남자의 성장기를 위해 여성을 희생한다'며 SNS를 중심으로 '여성 혐오' 논란이 제기된 바 있다.

'남성'이 주인공인 <청년경찰>, '타자화'의 늪에 빠졌다

<청년경찰>은 경찰대학에 어렵사리 입학한 두 명의 청년을 중심으로 줄거리를 풀어나간다. 궁핍한 가정형편 탓에 학비가 무료인 경찰대학에 입학한 기준(박서준 분)과 과학고에 다니던 똑똑한 학생이었지만 특별한 길을 걷고자 경찰대학에 온 희열(강하늘 분). 둘은 입학 전 훈련 과정에서 친해진다.

 영화 <청년경찰>의 한 장면.

영화 <청년경찰>의 한 장면. 납치된 소녀가 떨어트린 봉투에서 '포장 떡볶이'를 발견한 두 사람은 이를 증거물로 여기며 '어설픈 수사'를 진행한다. 이런 장면은 관객의 웃음을 자아낸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크리스마스를 같이 보낼 '여자친구를 만들고자' 학교 측으로부터 외출을 허락받은 두 사람은 우연히 길거리에서 한 소녀의 납치 사건을 목격한다. 둘은 사건을 경찰서에 신고하지만, 모든 수사 인력이 서장의 지시로 다른 사건에 투입되자 직접 사건을 해결하기로 결심한다. 어설픈 수사를 진행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웃음을 자아내고, 점점 범행 세력이 밝혀지면서 긴장감도 더한다. 적절한 액션도 볼거리다.

문제는 <청년경찰>이  '타자화'의 늪에 빠진 부분이다. 영화에서 주인공을 제외한 주요 등장인물은 조선족과 한국인 가출 소녀다. 이들은 각각 대림동 일대를 장악하고 난자·장기 적출로 불법적인 돈벌이를 자행하거나, 조선족에 납치돼 감금당한 상태로 범죄의 대상이 된다. 요약하면 '조선족'으로 형상화된 외부인, 장기적출과 난자 적출의 피해를 겪는 가출 소녀는 여성들인데, 이들은 모두 '한국 남성'의 테두리 바깥에 있는 대상들이다. 

물론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설정의 '뼈대'는 남성 중심의 정의구현 판타지를 드러낸다. 어눌한 한국말을 쓰는 '외부인' 조선족은 서울의 어느 골목을 점령하고 폐건물을 범죄의 소굴로 삼는다. 연약한 소녀는 이들에게 납치되어 장기적출을 당할 위기에 빠진다. 납치 상황을 목격하고 이를 두고 볼 수만은 없는 열혈 청년 두 명은 현실적 어려움을 뛰어넘어 악당을 처치하고 소녀를 구하려고 애쓴다.

 영화 <청년경찰>의 한 장면.

영화 <청년경찰>의 한 장면. 공교롭게도 이 과정에서 '악당에게 구타당하는 소녀'의 모습에 이어 스크린에 오르는 건, 악당에 맞서려고 수련에 매진하는 주인공의 '땀에 젖은 복근'이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공교롭게도 이 과정에서 '악당에게 구타당하는 소녀'의 모습에 이어 스크린에 오르는 건, 악당에 맞서려고 수련에 매진하는 주인공의 '땀에 젖은 복근'이다. 공권력의 무능함에 분노한 남성 경찰대학생의 훈련 장면과 구조를 기다리는 가녀린 여성의 모습은 제작 의도와 별개일지라도 '극과 극'의 이미지로 비친다.

'불편함' 찾는 시선은 늘어갈 텐데... 영화 속 관점은 '제자리걸음'

정리하면 <청년경찰>에서 문제로 지적된 부분은 '지역 편견', '여성 혐오', '조선족 비하' 등이다. 공통점을 찾자면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주요하게 다루고자 하는 대상 '청년경찰' 이외의 존재를 '조선족', '가출소녀' 등 국적과 성별 등의 특징만 남기고 뭉뚱그려 그려냈다는 점이다. 이런 방식으로 인해 당사자들을 영화의 도구로 삼고 비하하는 것처럼 묘사됐다.

 영화 잡지 <스크린>에 실렸던 영화평론가 유지나씨의 글. '1986년 프랑스 낭트 3대륙 영화제' 당시 한국 영화에서 여성을 향한 폭력에 관해 해외 기자들이 질문한 내용을 썼다.

영화 잡지 <스크린>에 실렸던 영화평론가 유지나씨의 글. '1986년 프랑스 낭트 3대륙 영화제' 당시 한국 영화에서 여성을 향한 폭력에 관해 해외 기자들이 질문한 내용을 썼다. ⓒ 스크린


<청년경찰>을 둘러싼 논란에 관해, 왜 그동안 다른 영화를 두고는 조용하다가 이제서야 난리인지 어리둥절하다는 사람도 포털 영화 리뷰란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입장을 바꿔놓고 비판 주장의 근거를 보면 '왜 여태껏 한국 영화에선 여성을 때리고 죽이는 대상으로 쉽게 설정하는지' 궁금하다는 사람도 있다. 이와 같은 내용으로, 한국 영화계를 향한 물음은 이미 30년 전에도 있었다.

'여성 혐오' 문제에 있어서 영화평론가 유지나씨가 잡지 <스크린>에 기고했던 글을 돌아보면 어떨까 싶다. 유씨는 지난 1986년 프랑스 낭트 영화제에서 한국 영화를 접한 해외기자들의 질문을 바탕으로 '왜 여자를 때리는가'라는 기사를 쓴 바 있다. "한국 영화는 매우 이상하게도 여성을 폭력과 강간의 희생으로 다룬다"면서 "그런 식으로 계속하면 오히려 관객이 줄어들 것"이라고 외신 기자들이 지적했다는 내용도 보인다. '한국영화의 뼈아픈 상처'를 거론한 글에서 "그런 영화들을 여성도 보러 가는가?"라는 질문은 핵심을 찌른다.

'여성을 단순한 희생양으로 다룬다'는 문제 제기가 기사화된 지 30년이 넘게 지난 오늘날, 한국 영화를 두고 같은 질문에 떳떳하게 '이제는 그렇지 않다'고 답할 수 있을까? 적어도 <청년경찰>에 관해서는 힘들 것 같다. 물론 극 중에서 당당하고 유능한 여성 경찰 주희(박하선 분)도 등장하지만, 그의 존재만으로 다른 여성 캐릭터들의 수동적 설정을 '중화'하기엔 무리일 것 같다.

오히려 30년이 지난 지금 한국영화의 현실은 어떤지 돌아볼 일이다. 아니, 왜 30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여성은 남성에게 맞고 생존 여부마저 휘둘리는 존재로 그려지는지 묻게 된다. 여기에 <청년경찰>이 최근 불러온 논란을 포개어보면 문제는 더욱 선명해진다.

"대림동은 누군가의 삶의 터전, 범죄 소굴 아니다"라는 주민들의 지적이나 '동포 인권 보장'을 외친 사람들의 주장은 어떤가. 이들의 항의는 성격이 수동적으로 그려진 여성 캐릭터와 마찬가지로, 실존하는 이들을 영화에서 대상화할 때 현실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더 섬세하게 고려했어야 한다는 지적인 셈이다.

최근 사회의 많은 분야에서 다양한 편견과 혐오를 지적하는 일들이 빈번해지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은 '반짝'하고 일시적으로 끝나는 사건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진행되는 현상에 가깝다. 현상의 진원지로 꼽히는 건 영화계도 마찬가지고, 영화의 특정한 장면이나 설정에 불편함을 호소하는 관객도 많아졌다. 지난 한 달만 돌아봐도 <토일렛><브이아이피>와 <청년경찰> 등 설정의 문제로 인한 논란이 기사화된 영화가 세 편이다.

페미니즘과 인권 의식은 한 번 깨달으면 이전으로 돌아가기 힘든 요소다. 누군가를 괴롭게 만들 요소가 있다고 느낀다면 불편하게 생각하기 마련이고, 이를 인지하는 순간 무시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때문에 <청년경찰> 등의 영화를 보고 불편함을 호소하는 관객은 앞으로 제작될 다른 영화에서도 같은 문제가 보인다면 다시 비판할 가능성이 높다.

만약 페미니즘과 인권 의식을 기본으로 요구하는 관객이 늘어난다면, 영화 제작자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 아마 선택할 여지는 많지 않을 것이다. 영화에서 불필요하게 자극적인 묘사를 덜어내고, 캐릭터나 설정이 보편적인 상식에 어긋나지는 않는지 다시 돌아보는 일이다. 아니면 관객의 외면이나 영화를 향한 비판을 고스란히 감당할 각오를 하거나.

청년경찰 여성 대림동 조선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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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23년차 직원. 시민기자들과 일 벌이는 걸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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