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중3 아이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대안학교로 진학하게 될 것 같다. 남들은 조만간 확정될 수능 개편안을 두고 갑론을박하며 주판알 퉁기기에 바쁜데, 먼 산 불 구경하듯 나 몰라라 하고 있다. 참고로, 이번 수능 개편안은 2021학년도 대학입시부터 적용되므로, 내년에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현재 중3이 첫 번째 대상이니만큼, 아이에겐 남의 일일 수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이가 대안학교를 선호해서가 아니라 일반계고에 대한 불신이 워낙 큰 탓이다. 지금 다니고 있는 학교는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나란히 붙어있어 서로의 일과를 손바닥 보듯 잘 알고 있다. 운동장도 함께 사용하고, 시간이 조금 엇갈리기는 하지만 급식소에서도 마주치기 때문에 중1 입장에서는 바로 위 중2부터 5년차 선배의 일상까지 경험하고 있다.

아이가 대안학교를 선택한 이유

아이는 올 초부터 '내년'을 걱정하곤 했다. 매일 최소 30분은 더 일찍 등교하고, 야간자율학습까지 할라치면 밤 10시까지 교실에 꼼짝없이 갇혀 지내야 하는 고등학교 생활에 일찌감치 주눅이 든 것이다. 요즘엔 야간자율학습은 물론, 방과 후 수업까지도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고 이야기해도, 고등학교 교사인 아빠의 말을 도통 믿으려들지 않는다.

지난 3년 동안 제 눈으로 익히 보아왔는데, 거짓말하지 말라고 되레 면박을 주기 일쑤다. 사실 고등학교 생활에 대한 아이의 바람은 소박하다. 마음껏 축구를 할 수 있도록 매일 한 시간씩이라도 체육활동 시간이 주어졌으면 좋겠다는 것과, 밑도 끝도 없는 숙제 대신, 도서관에서 읽고 싶은 책 마음껏 읽을 수 있도록 여유를 보장해달라는 게 전부다.

"너희들, '중딩'인 지금이 좋을 때라는 걸 알아야 돼. 일단 고등학교에 오면 체육을 일주일에 한 시간만 해도 감지덕지 할 거야. 그나마 시험기간 한두 주 앞두고는 어김없이 자습이고, 체육수업이 든 날에 비라도 내려 봐. 하늘이 원망스러울 걸!"

그가 운동장에서 고등학생 형들에게 숱하게 들었던 이야기란다. 점심시간에 고등학생 형들이 뒤늦게 나와 공을 차면 운동장을 빼앗겨 말 못할 짜증이 나곤 했는데, 그 말을 듣고 나서부터는 이해가 되더라고 했다. 아이에게 고등학교 생활이란 오로지 대학입시를 향해 주야장천 교실에 틀어박혀 주위 친구들과 경쟁하며 책과 씨름해야만 하는 삭막한 3년의 기간을 의미한다.

지난 8월 초, 그가 선뜻 한 대안학교에서 운영하는 여름캠프에 참가하겠다고 나선 까닭이다. 엿새 동안의 짧은 경험일 뿐이지만, 적어도 대안학교를 다니고 있거나 졸업한 선배들로부터는 '지금이 좋을 때'라는 식의 푸념은 들을 수 없었다고 했다. 피곤에 찌든 얼굴이기는커녕 중학교 때보다 이곳에서의 3년이 훨씬 더 자유로웠다는 한 선배의 말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단다.

그가 지켜본 고등학생들은 매일 아침 퀭한 눈으로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책상에 엎드려 쪽잠을 자며, 공을 차기 위해 점심 먹는 시간까지 아껴가며 운동장에 뛰어나오는 '지질한' 군상들이었다. 대학입시를 위해 3년을 몽땅 저당 잡힌 그들의 모습이 코앞에 닥친 자신의 미래라 생각하니 끔찍하다고 했다. 애초 아무리 허접한 대안학교라도 마음을 빼앗길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아빠로서 아이의 선택을 늘 믿고 응원하는 편이지만, 대안학교로 가겠다는 이번 결정도 존중하기로 했다. 솔직히 아빠이기에 앞서 일반계 고등학교에 근무하는 현직 교사로서, 아이의 대안학교행이 내키지 않을뿐더러 부끄러운 면도 없지 않다. 내심 "아빠가 일하는 학교라면 믿을 수 있으니, 갈 수만 있다면 아빠 학교에 가고 싶어"라고 말해주길 바랐는데, 꼴이 조금 우습게 돼버렸다.

노작교육이 교육과정 안에 포함된 학교

 앞으로 3년간 떨어져 지내야 한다는 게 못내 서운하긴 해도, 아이의 대안학교행을 아빠로서가 아니라 현직 교사로서 바라는 이유가 있다. 물론 모든 대안학교가 다 그렇진 않겠지만, 노작교육이 교육과정 안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3년간 떨어져 지내야 한다는 게 못내 서운하긴 해도, 아이의 대안학교행을 아빠로서가 아니라 현직 교사로서 바라는 이유가 있다. 물론 모든 대안학교가 다 그렇진 않겠지만, 노작교육이 교육과정 안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 pixabay

관련사진보기


앞으로 3년간 떨어져 지내야 한다는 게 못내 서운하긴 해도, 아이의 대안학교행을 아빠로서가 아니라 현직 교사로서 바라는 이유가 있다. 물론 모든 대안학교가 다 그렇진 않겠지만, 노작교육이 교육과정 안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밭에 나가 농작물을 심고 길러 수확하는 일련의 과정을 직접 몸으로 경험하게 하는 건 모든 교육의 기본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일반계 고등학교의 경우, 노작교육은커녕 주당 한두 시간의 체육수업을 제외하면 하루 종일 건물 밖으로 나갈 일이 거의 없다. 점심시간 급식소엘 가고, 쉬는 시간 화장실에 다녀오는 것 말고는 몸을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거친 비유일 테지만, 아이들의 일과를 보면 달걀을 많이 낳고 살을 찌우기 위해 비좁은 축사에 갇혀 옴짝달싹 못하는 닭과 소가 연상될 정도다.

아이들의 극심한 편식이 어릴 적부터 자극적인 패스트푸드에 길들여진 탓이라면, 급식소마다 골칫거리인 잔반을 남기는 문제는 바로 초중고 과정에 노작교육이 없기 때문이라고 본다. 식판 위에 놓인 밥과 반찬이 대체 어디서 어떻게 재배되는지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아이들이 농부의 땀과 음식의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는 건 당연지사다. 그저 음식은 돈 주고 사는 수많은 '물건' 중 하나로 여길 뿐이다.

나물은 젓가락 한 번 닿지 않은 채 그대로 버려지고, 생선구이는 몸통 한 번 후벼진 후 고스란히 잔반통으로 들어간다. 심지어 좋아하는 돈가스나 스테이크조차 어떤 날은 맛이 없다며 한두 번 베어 물고는 버려지기 일쑤다. 매주 한 번씩 '잔반 없는 날'을 지정, 운영해도 넘쳐나는 잔반통을 감당하기 쉽지 않다. 잔반통을 치울라치면 아예 식탁 위나 바닥에 쏟아버리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손수 정성들여 키운 농작물이 식판에 오른다 해도 그렇게 행동할까. 요리 솜씨가 변변치 않아 아무리 맛이 없다고 해도 차마 버리진 못할 것이다. 투정하며 버리기는커녕 자신들이 기른 것이라 서로 으스대며 식판에 묻은 양념 하나 남기지 않고 깨끗이 먹게 될 것이라 확신한다. 이른바 '밥상머리 교육'을 따로 시킬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모내기', '김매기'조차 암기해야 하는 현실

노작교육의 필요성은 급식소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게 아니다. 내실 있는 교과 수업을 위해서도 절실하다. 한국사 수업 중 벌어진 '웃픈' 실화다. 진도를 나가다 말고, 인터넷을 연결해 사진가 영상을 띄워가며 아이들에게 단어의 뜻을 일일이 설명해주느라 애를 먹었다. 명색이 고등학생들인데, '모'와 '벼'를 구분하지 못하고, '김매기'가 무엇인지, '이랑'과 '고랑'의 차이가 뭔지, 마치 외국어처럼 낯설어했다.

한번은 '무릉도원'을 설명하며 복숭아나무에 꽃이 만발한 광경을 상상해보라고 했더니, 대뜸 복숭아가 나무에서 열리는 게 맞느냐는 황당한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과일 중에 특히 복숭아를 좋아한다는 그는, 정작 태어나 복숭아나무를 한 번도 본 적 없다며 머리를 긁적였다. 하긴 참외와 딸기가 나무에서 열리는 줄 알았다는 아이들이 태반인 현실에서, 그다지 놀랄 만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기본적인 단어의 뜻조차 모르는 마당에 교과서를 읽고 진도를 나가는 건 무의미할 수밖에 없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아이들이 한국사를 두고 죄다 암기해야 하는 골치 아픈 과목이라 여기는 게 이해가 간다. 마치 낯선 영어 단어나 수학 공식 암기하듯 우리말을 맹목적으로 외우고 있으니 말이다. 인명과 관직, 사건과 연표 등은 그렇다 쳐도, '모내기'와 '김매기'조차 암기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수업 도중 교실 뒤 게시판을 보니 복잡한 수학 공식과 문제 풀이 과정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배각공식, 반각공식 등 이름만 들어서는 당최 알 수 없는 내용들로 가득하다. 대입을 준비하는 고등학생이라면 몰라서는 안 되는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했다. 지금껏 복숭아나무를 단 한 번도 본 적 없다는 그 아이도 수학 문제 푸는 건 잘 해낼 자신 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대학입시가 인생의 많은 부분을 좌우하는 강퍅한 현실이라지만, 영어와 수학만으로 세상을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아무리 허황된 이상이라고 손가락질해도, 무인도에 홀로 남겨져도 살아남을 수 있고, 이웃과 더불어 공동체를 꾸리며 살아갈 수 있는 역량과 심성을 갖추도록 하는 게 교육의 본령이라고 믿는다. 노작교육이 국영수보다 백배는 더 중요하다고 믿는 까닭이다.

부디 내 아이가 흙 내음 맡으며 땀 흘릴 줄 아는 어른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대안학교를 택한 이유는 달라도, 아이 역시 아빠의 이런 생각에 공감하리라 믿는다. 조금 더 욕심을 부린다면, 일반계고에서도 노작교육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면 좋겠다. 더 이상 아이들의 머릿속에 지식만 욱여넣는 수업 말고, 땀의 소중함을 깨닫는 교육이 병행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