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의 강호' 이란은 한국 축구사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숙적이다. 흔히 아시아 축구에서 한국의 대표적인 라이벌이라고 하면 일본을 먼저 떠올리기 쉽지만, 역대 전적이나 상성을 고려할 때 가장 어렵고 힘든 상대는 역시 이란이었다.

아시아 무대에서 한국이 상대 전적에서 열세를 기록중인 팀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이란에게는 29전 9승 7무 13패로 뒤진다. 특히 이란 축구의 성지이자 원정팀의 악몽으로 불리는 테헤란(아자디 스타디움)에서는 2무 5패로 역사상 아직까지 한 번도 이겨보지 못했다.

특히 한국축구와 이란의 악연은 '케이로스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할만큼 카를로스 케이로스 이란 대표팀 감독의 존재는 양국의 축구 대결사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2011년 케이로스 감독이 이란의 지휘봉을 잡기 전까지만해도, 한국은 이란과 일진일퇴를 주고받는 대등한 라이벌이었고 일방적으로 밀릴 정도는 아니었다.

한국축구는 케이로스의 이란을 상대로는 아직까지 한번도 이기지 못했다. 한국은 이 기간 이란과 4번을 격돌하여 모두 패했고 공교롭게도 스코어 역시 0-1로 똑같았다. 이중 3경기가 어려운 테헤란 원정이었지만 2013년 울산에서 열린 브라질월드컵 최종예선 홈경기에서도 한국은 일방적인 파상공세에도 불구하고 이란의 역습 한방에 무너지며 고개를 숙였다. 전임 슈틸리케 감독은 2014년 11월 평가전에 이어 2016년 러시아월드컵 최종예선 4차전에서 두 번 모두 패했다. 이쯤되면 한국이 이란에 약한 것보다, 케이로스가 한국에 유난히 강하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듯 하다.

케이로스 감독은 경기외적으로도 한국축구에 여러 번 수모를 안겼다. 브라질 월드컵 최종예선이 종반에 접어들며 한국과 이란의 라이벌 의식이 절정으로 치달았고 케이로스 감독과 당시 한국 최강희 감독이 험악한 '말폭탄'을 주고받으며 치열한 신경전을 펼치는 지경에 이르렀다. 최강희 감독이 "최종전에서는 이란에 아픔을 주고 싶다"고 한 발언을 케이로스 감독이 문제삼으며 "이란 국민에게 사과하라"고 요구하는가 하면, 최 감독의 얼굴에 우즈백 유니폼을 합성한 티셔츠를 입고 사진을 찍어 조롱하기까지 했다.

케이로스 감독은 한국 원정에서 승리한 직후에는 한국팀 벤치에 다가와 최 감독에 '주먹 감자'를 날리며 도발하는 초유의 사태를 일으켰다.  이란 선수들도 자국 국기를 들고 한국 선수단과 관중을 끝까지 자극하는 비매너 행태로 일관했다. 애초에 홈에서 비기기만 해도 되는 경기에서 경솔하게 상대의 도발에 낚인 최강희 감독과 한국 선수들의 잘못도 있지만, 그래도 일상적인 기싸움 수준을 한참 넘어선 이란의 막장 행태는 엄연히 한국 축구에 대한 심각한 명예훼손이었다.

케이로스 감독은 약 1년뒤 한국과의 평가전을 앞두고 "당시에는 분위기가 모두 과열되어 있었다.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우회적이지만 사과의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케이로스 감독은 이후 한동안 한국축구를 도발하는 언행은 삼가는듯 했지만 악연은 계속됐다. 지난해 10월 이란전은 한국축구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역대 최악의 테헤란 원정경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는데, 이전에는 한국축구가 그래도 우세한 내용으로 밀어붙이다가 이란의 역습과 침대축구 한방에 아쉽게 무너지는 패턴이었다면, 이날은 이란의 탄탄한 조직력과 스피드에 농락당하며 유효슈팅 하나 기록하지 못하고 완패를 당했다.

당시 슈틸리케 감독은 경기후 면피성 인터뷰로 빈축을 샀는데 "카타르의 소리아같은 공격수가 없어서 졌다"는 희대의 망언도 여기에서 나왔다. 슈틸리케의 이름을 빗댄 '슈팅영개'라는 굴욕적인 별명도 여기서 탄생했다. 사실상 슈틸리케호의 몰락과 한국축구의 위기를 에고한 결정적인 경기이기도 하다.

최근 케이로스 감독은 한국과의 원정 경기를 앞두고 또다시 '언플'을 시작하며 국내 팬들의 심기를 긁고 있다. 대한축구협회에서 제공한 훈련장의 잔디 상태에 불만을 드러내며 개인 SNS 계정에 사진을 올리는가 하면, 국내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는 표정을 바꿔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뜬금없이 한국축구에 대한 영혼없는 칭찬을 늘어놓는 등 종잡을 수 없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내부적으로 이란 여론을 자극하여 팀을 결속시키고, 본선진출이 다급한 한국의 분위기를 역이용하려는 특유의 심리전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를 눈치챈 신태용 감독도 "우리가 이란 원정에서 받은 텃세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감사한줄 알고 잘 있다가 돌아가면 된다"고 가시돋힌 일침을 놓기도 했다.

케이로스 감독은 이처럼 한국에서는 경망스러운 언행으로 비호감 이미지가 강하지만 어쨌든 경력 면에서는 유럽 명문 맨유의 수석코치와 레알 마드리드-포르투갈 국가대표팀 사령탑 등을 두루 거친 유능한 감독이다. 케이로스 감독은 이란을 사상 최초로 2회 연속 본선무대로 이끌었으며 누구도 기록하지 못한 한국전 4연승 행진으로 자신의 지도력을 충분히 증명했다. 케이로스가 이끄는 6년동안 이란은 피파랭킹에서 이미 한국을 능가하는 팀이 되었고 맞대결에서도 '정상적인' 경기를 펼치고도 내용 면에서 압도할 수 있는 강호로 성장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번 대결은 어쩌면 한국축구가 케이로스 감독 체제의 이란과 격돌하는 마지막 승부가 될지도 모른다. 케이로스 감독은 이미 이란을 두 번이나 월드컵 본선으로 이끌며 최상의 업적을 이룬 만큼 최소한 내년 월드컵 본선을 마치면 이란을 떠날 가능성도 유력하다. 케이로스 감독에 대한 감정이 좋을 수 없는 국내 팬들은 "이란을 시원하게 이기고 신태용 감독이 '주먹감자 세리머니'를 케이로스에게 그대로 돌려줬으면"하고 바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물론 이란과 똑같은 수준으로 대응할 필요까지는 없다. 가장 확실한 설욕이자 팬들의 마음을 치유할 선물은 역시 승리면 충분하다. 한국은 아직 확정짓지 못한 월드컵 본선행은 물론이고 케이로스 감독에 대한 복수의 의미에서라도, 홈에서 다시 만나는 이번만큼은 반드시 지긋지긋한 무득점 징크스를 깨고 이란을 이겨야 한다는 목표가 확실하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축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