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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서 하루를 그립니다.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이불을 갭니다. 마당에 서서 하늘바라기를 하고 나무한테 눈짓을 합니다. 바람맛을 느끼고, 평상을 덮은 천을 걷으며, 오늘 새롭게 하거나 누릴 일을 헤아립니다. 물병을 햇볕이 드는 곳에 내놓고 아침을 차릴 생각을 합니다. 새벽에 미리 불린 쌀을 살피고, 밥상이나 개수대를 행주로 한 번 더 훔쳐 주고는, 빨랫거리를 이엠발효액하고 중성세제를 살짝 섞은 물에 담가 놓습니다.

아이들은 이렇게 움직이는 어버이를 물끄러미 지켜보기도 하고, 함께 일손을 거들기도 합니다. 때로는 손낯을 씻고 나서 아이들 나름대로 어제 하다 못한 놀이를 잇기도 합니다. 어제 그리다가 만 그림을 더 그린다든지, 공책을 펼쳐서 글씨를 쓰거나 이야기를 짓기도 해요.

겉그림
 겉그림
ⓒ 타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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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대부분의 직장인 아빠는 육아에 관심조차 갖기 어렵다. 그리고 아이와 함께 있어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는 경우가 많다 … (2015년 OECD 통계로) 한국인 아빠들이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고작 하루 6분에 불과하다. OECD 평균인 47분에 턱없이 못 미친다. 이를 한 달로 계산하면 3시간이고 1년이면 36시간에 불과하다.'(16쪽)

집안일을 도맡고 바깥일도 하는 몸이란 만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집안일이든 바깥일이든 누가 덜어 주면 좋겠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한 가지 일만 할 적에는 한쪽으로만 눈이며 마음이며 몸이 트이지 싶어요. 아주 잘 하거나 훌륭히 해내지 못하더라도, 한집을 이루는 사람들이 저마다 모든 일과 살림을 고루 맡거나 거들거나 나눌 때에 튼튼하면서 즐거이 하루를 누리지 싶습니다.

그리고 한국 사회에서 사내라는 자리에 서며 집안일을 도맡다 보니, 바깥일만 하며 살 적에는 도무지 못 느끼거나 못 배울 여러 가지를 즐겁게 배워요. 밥살림 옷살림 집살림을 어떻게 건사할 적에 즐겁거나 아름다운가를 배웁니다. 이러한 살림을 짓는 손길을 아이들한테 보여주고 가르치는 길을 배웁니다. 무엇이든 차근차근 느긋하게 건사할 적에 스스로 넉넉할 수 있다고 배웁니다.

더 많이 갖출 까닭이 없이 언제나 기쁜 마음으로 갖출 줄 알아야 한다는 대목을 배워요. 아이한테 이것저것 더 많이 가르칠 노릇이 아니라, 아이가 어느 한 가지이든 사랑으로 배워서 활짝 웃는 춤짓으로 받아들일 때에 따사로운 바람이 부는구나 하고 배웁니다.

육아를 위해 배워야 할 것이 참 많다. 배우면 배울수록 더 많이 배워야 함을 느낀다.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된다. (64쪽)

바깥일을 하는 아버지로 살아가되, 바깥일에만 온힘을 쏟지 말자는 생각으로 두 아이를 마주하려는 수수한 아버지 한 사람이 쓴 <저절로 아빠가 되는 것은 아니다>(타래 펴냄)를 읽습니다. 이 책을 쓴 아버지이자 사내이자 어른인 안성진 님은 수많은 '여느 한국 사내'처럼 아침저녁으로 회사를 오가면서 일을 합니다. 이렇게 아침저녁으로 회사를 오가면서 일하여 버는 돈으로 집살림을 꾸리고요.

아이를 돌보는 마음은 언제나 꽃일 수 있어야지 싶어요.
 아이를 돌보는 마음은 언제나 꽃일 수 있어야지 싶어요.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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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안성진 님은 이름뿐인 아버지 자리에 있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이름으로만 아버지가 아닌 '아이들이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부를 수 있을 만한 사람'으로 하루를 짓고 싶은 뜻이 있습니다. 회사원 몸이기에 비록 하루를 오롯이 아이들하고 지내기는 어렵습니다. 토요일이나 일요일이라 하더라도 하루를 온통 아이들하고 어울리기도 만만하지 않아요. 지난 닷새에 걸쳐 회사를 다니며 고단한 몸을 쉬고픈 마음이 가득하거든요.

'아이들 말이나 행동에 문제가 있을 때 아이를 탓하기 전에 부모가 점검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부모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다.'(73쪽)

'우리 아이들의 놀라운 잠재력을 오로지 공부하는 능력으로만 길들이고 있는 셈이다. 유럽과 미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만 6세 미만의 아이에게 문자 교육조차 시키지 않는다고 한다.'(83쪽)

수수한 회사원인 안성진 님은 어떻게 아이들을 마주하려 할까요? 수수한 회사원이자 아버지이자 사내인 안성진 님은 어떻게 <저절로 아빠가 되는 것은 아니다> 같은 책을 쓸 수 있을까요?

이 책을 읽어 보면 안성진 님은 아직 '훌륭한 아버지'는 아닙니다. 글쓴이 스스로 밝힙니다. 그러나 안성진 님은 '아직 훌륭한 아버지가 아닌' 터라 '앞으로 훌륭한 아버지 자리로 다가서려고 애쓴다'고 합니다.

스스로 무엇을 아이들하고 잘 하는가를 살피고, 스스로 무엇을 아이들하고 못 하는가를 헤아린다고 해요. 차분하게 이 두 가지를 살펴서, 누구보다 안성진 님 스스로 아버지이자 어버이요 어른인 사람으로서 거듭나려고 합니다. 아이를 낳아서 돌보는 어버이가 되려면 '학교를 따로 안 다니더'라도 '늘 새롭게 배울' 줄 알아야 한다고 느꼈다고 해요. 지식을 넘어서 삶을 가르쳐야 하고, 정보를 넘어서 살림을 물려줄 수 있어야 한다는 대목을 배워야 하는구나 하고 느낀답니다.

<저절로 아빠가 되는 것은 아니다>는 아이들한테 조금 더 상냥하면서 따스하고 넉넉하게 다가서는 아버지가 되려는 길에 무엇을 배우고 깨달았는가 하는 이야기를 적은 책이라고 할 만해요. 책 첫머리에 보면 경제협력개발기구 통계 한 가지를 옮기는데, 한국 사회에서 아버지가 아이하고 마주하는 시간은 고작 하루에 6분이요, 한 해로 치면 36시간, 그러니까 한 해에 기껏 하루가 조금 넘을 뿐이라고 합니다.

날마다 무럭무럭 크는 아이들이 마을 빨래터 물이끼를 걷어내는 일을 훌륭히 돕습니다.
 날마다 무럭무럭 크는 아이들이 마을 빨래터 물이끼를 걷어내는 일을 훌륭히 돕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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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서 변화를 경험하기 어려운 이유는 나 자신을 돌아보고 내가 어떤 부모인지를 점검해 보지 않기 때문이다. 육아에 있어서는 부모가 가진 양육 태도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인식이 중요하다. (181쪽)

한국 사회에서 아버지가 한 해에 고작 하루만 아이하고 마주한다는 통계가 무엇을 말할까요? 이는 통계이니까 조금 더 길게 아이랑 마주하는 아버지가 있을 테지만, 한 해에 하루조차도 아이하고 마주하지 못하는 아버지도 있다는 소리입니다. 한 달이 가더라도 아이하고 말 한 마디 섞지 못하거나 않는 아버지도 있을 테고요.

우리는 저절로 아버지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저절로 어머니가 될 수 없기도 합니다. 아기를 낳아 젖을 물리거나 우유를 먹이기에 어버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아이를 먹여살리는 일만 하기에 어른이 되지 않습니다.

배우기에 비로소 '아버지·어버이·어른'이 된다고 생각해요. 이제부터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배우려 하기에 비로소 아버지나 어버이나 어른이 될 만하다고 생각해요.

결국 육아는 아이에 대한 관심이며 사랑이다. 부모가 어떻게 대해야 그것을 잘 표현하는 것인지를 배우게 되면 사실 복잡하고 어려울 게 없다.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면 된다. (199쪽)

아이가 아이로 머무는 시간은 길지 않다. 이는 아빠로서 아이 곁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는 의미도 된다. (161쪽)

신나게 뛰놀고 나서 고단하게 잠이 든 아이도 사랑스럽지요.
 신나게 뛰놀고 나서 고단하게 잠이 든 아이도 사랑스럽지요.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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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좋아하는 대로 아이한테 밥을 차려서 먹일 수 없습니다. 어른이 입는 옷차림대로 아이한테 옷을 입힐 수 없습니다. 어른 걸음걸이를 아이가 따라갈 수 없습니다. 어른이 읽는 책을 아이한테 함부로 읽힐 수 없습니다. 영화에 등급제가 있듯이 책이나 신문이나 방송에서도 어버이나 어른 스스로 등급을 살펴서 알맞게 가릴 수 있어야 합니다. 길거리에 넘치는 광고판이나 가게를 놓고서도 아이한테 아무것이나 보여주지 않을 수 있어야 할 테고요.

아이를 학교에만 보낸대서 가르치기를 다 한다고 할 수 없어요. 아이들은 학교에서 교과서로만 배울 수 없어요. 아이들은 집이며 마을이며 학교이며 사회 어느 곳에서나 두루 배워요. 책으로도 영화로도 인터넷으로도 모두 배워요. 여느 살림살이를 지켜보면서도 배우고, 이웃하고 동무한테서도 배워요.

배울 줄 알면서 새롭게 가르치는 아버지가 늘어날 적에 나라도 마을도 집안도 평화로울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아이뿐 아니라 어버이로서 늘 모두 새롭게 배우려 하는 몸짓이 된다면, 참말로 기쁨하고 보람이 피어날 만하지 싶어요.

이름이나 허울이나 껍데기로 그치는 아버지나 어버이나 어른이 아닌, 사랑스러운 아버지에 슬기로운 어버이에 아름다운 어른으로 거듭나는 길을 함께 배우면 좋겠어요. 저절로 되는 아버지가 아니라, 배워서 되는 아버지입니다. 배울 적에 바야흐로 사람입니다.

덧붙이는 글 | <저절로 아빠가 되는 것은 아니다>(안성진 글 / 타래 펴냄 / 2017.8.20. / 14000원)



저절로 아빠가 되는 것은 아니다

안성진 지음, 타래(2017)


태그:#저절로 아빠가 되는 것은 아니다, #안성진, #배움책, #아이키우기, #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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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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