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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살충제 달걀' 기사를 보고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가축들이 농장에서 어떻게 사육되는지 뉴스와 책을 통해 안 것이 딱 15년 전이다. 소, 돼지, 닭을 열악한 우리에 가둬놓고, 그들에게 항생제와 성장촉진제를 주사 놓거나 GM(유전자재조합) 사료에 섞어 먹인다는 걸 알고 충격을 받았다. 건강치 못한 가축을 먹은 인간 역시 온전치 않을 거란 책 속의 경고는 무시무시한 예언처럼 들렸다.

나는 곧장 생협에 가입했다. 생협에선 일정 요건을 갖춘 물품만을 취급한다. 성장촉진제는 사용할 수 없고, 항생제는 가축이 질병에 걸린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사용한다. 15년 동안 달걀이나 우유, 돼지고기 같은 축산물과 쌀은 반드시 생협 것을 이용해왔다.

물론 완벽하게 피할 순 없었다. 가끔 외식을 했고 슈퍼마켓에서 파는 과자나 제과점 빵도 곧잘 사먹었다. 그래도 적어도 내 집에서 나와 내 가족은 그나마 '덜 나쁜 육식'을 한다는 생각에 안도했다. 그것이 인간에게도, 사육되는 동물에게도 더 나은 방식이라 확신했다.

'나만 잘 먹고 잘 살겠다는 건가' 하는 생각을 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조금 더 나은 환경에서 자란 육류를 선택하는 이들이 늘어난다면 축산업 전반의 환경도 바뀌리라 믿었다. 하지만 내 기대가 얼마나 당찮은 일이었는지 여실히 깨달았다. 심지어 생협에서 판매하던 계란에서도 DDT 성분이 검출되었으니 무슨 할 말이 더 있을까. 오염물질로 가득 찬 세상에서 오염물질 하나 없는 뭔가를 기른다는 게 어쩌면 애초에 불가능한 꿈이었는지 모른다.

<잡식동물의 딜레마> 마이클 폴란 지음, 다른세상 펴냄
 <잡식동물의 딜레마> 마이클 폴란 지음, 다른세상 펴냄
ⓒ 심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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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농도 대책이 될 수 없다면 어떤 방법이 있을지 고민하던 차에, 책 <잡식동물의 딜레마>(마이클 폴란 지음, 다른세상 펴냄)가 떠올랐다.

미국 저널리스트인 마이클 폴란이 옥수수농장과 축산농장 현장을 두루 돌아다니며 직접 체험한 것들을 기록한 책이다. 출간 당시 옥수수-가축-인간의 파괴적인 공생 관계를 밝혀내 크게 주목받았다.

나는 저자가 미국 버지니아주 외곽의 어느 농장을 찾아간 부분부터 읽기 시작했다. 저자는 조엘 셀러틴이라는 농부가 운영하는 '폴리페이스' 농장에서 일주일 동안 일하며 농장의 운영방식을 보고 배운다.

폴리페이스 농장은 '100에이커(12만여 평)의 목초지가 450에이커(55만여 평)의 숲과 어우러진 땅'이다, 이곳에서 닭, 소, 돼지 등 가축을 키우고 토마토, 딸기류 등 열매를 재배한다. 농장주 조엘은 스스로를 '풀을 기르는 사람'이라 지칭한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조엘은 풀을 기르고 소떼가 그 풀을 뜯어 먹는다. 소가 풀을 뜯고 지나간 자리엔 닭을 풀어놓는다. 닭의 똥이 풀밭의 거름이 되고 풀이 자라면 다시 소가 풀을 먹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는 말처럼 간단치 않다. 우선 풀이 '적당히' 자랐을 때 소를 풀밭에 풀어놓아야 한다. 적당한 때란 '풀들이 꽃을 피우고 씨를 맺을 준비를 하는'(242쪽), 즉 풀이 억세고 질겨 소들에게 맛이 없어지는 때이다.

미식가인 소들은 질긴 아랫부분은 그대로 두고 최근에 새로 난 윗부분만 뜯어 먹는다. 이것이 '첫 번째 방목의 법칙'이다. 그리고 반드시 지켜야 할 두 번째 법칙이 있다. '풀이 완전히 회복되기 전까지 (소가 먹고 간 풀밭의) 풀을 뜯게 해서는 안 된다'(243쪽)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풀밭이 사막처럼 황폐해지는 것은 순간이다. 소가 지나간 자리엔 닭을 풀어 놓는다. 닭이 하는 일이란 이런 것이다.

'닭들은 소똥 속에 있는 맛있는 유충과 벌레들을 잡아먹고, 그 과정에서 거름을 뿌리고 기생충을 제거한다. (중략) 닭들은 농장의 '청소부'였다. 그 덕분에 소들을 위해 화학 살충제를 뿌릴 필요가 없어졌다. 그리고 이때 닭들은 소떼가 뜯어먹고 난, 가장 좋아하는 짧은 풀들을 갉아먹으면서 수천 파운드의 질소를 방목지에 뿌려놓는다.' (165쪽)

닭은 소가 풀을 뜯은 뒤 3~4일 후 방목하는데, 소똥 속 파리 유충의 주기가 4일이기 때문이다. 부화하기 전, 포동포동한 파리 유충을 닭들이 아주 좋아한단다. 닭들은 뭉치고 굳은 소똥을 잘게 부수어 땅속으로 흡수되기 쉽게 만드는 동시에 자신들의 배설물도 곳곳에 흘리고 간다.

그 배설물은 소의 먹이가 되는 풀에게 질소와 같은 좋은 영양분을 공급한다. 풀밭 넓이에 맞는 소를 키워야 하고, 소의 배설물을 적절히 소화할 수 있을 만큼의 닭이 필요하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풀이 주도권을 쥔다. 풀이 흡수할 수 있는 질소의 양은 정해져 있다. 풀의 면적이 닭과 소의 마릿수를 결정하는 것이다. 결국, 지속가능한 삶이란 있는 그대로, 자연스러운 것 안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폴리페이스 농장은 너무나 이상적이다. 그래서 비현실적으로 들린다. 이렇게 많은 인구가 사는 좁은 땅에서 그 너른 풀밭을 어떻게 만들 것이며, 그 안에서 나오는 고기의 양이란 1년에 소 50마리, 돼지 250마리, 닭 1만 마리밖에 안 되는데 그걸 '누구 코에 붙이나?' 하는 의문이 생긴다. 한우 안심구이는 그렇다 쳐도, 계란프라이 한 번, 치킨 한 마리 맘 놓고 시켜먹을 수 있겠느냔 말이다.

저자는 이 질문에 답을 내놓지 않는다. 그저 우리 밥상 위에 올라오는 음식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질문을 던지자는 것이다. <잡식동물의 딜레마>는 저자가 위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답을 찾는 과정을 담은 책이다.

식탁을 점령한 옥수수를 조목조목 파헤치는 첫 대목부터 강하게 몰입해 읽게 된다. 쉽고, 재밌고, 새롭다. 그래서 술술 읽힌다. 500쪽이라는 방대한 분량인 것, 그리고 그동안 모르고 있던 것이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에 배신감 때문에 중간 중간 숨 쉴 시간이 필요해서 그렇지, 시간이 많고 배가 고프지 않다면 단숨에 읽어내려 갈 수 있다.

살충제 달걀 사태는 '지금 당장!' 해결할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일단 급한 불은 꺼야겠지만 그것을 해결책으로 여기고 끝맺어선 안 된다. 근본적인 것부터 차근차근 되짚어보면 안 될까? 적어도 방향성은 새로 수정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지금 같은 삶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걸 우리는 이미 다 알고 있고, 먹을 수 있는 달걀의 양이 우리의 삶의 질과 비례하는 건 아닐 테니 말이다. 곳곳에서 유해물질 관련 사고가 터져 혼란스러운 이 때 <잡식동물의 딜레마>는 방향키를 잡는 데 도움을 줄 안내서가 될 것이다.

책은 이렇게 끝난다.

'예컨대 우리가 먹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이 어디서 나왔는지, 그것이 어떻게 우리가 먹는 음식이 되었는지, 그리고 정말로 얼마만한 비용이 들었는지 잘 안다고 상상해보자. 그러면 우리는 식탁에서 다른 이야기들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어떤 음식을 고르든 그것이 산업이 아니라 자연에 의해 주어진 은총이라는 것을 더 이상 애써 떠올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먹는 음식은 다름 아니라 세상의 몸이다.' (518쪽)


잡식동물의 딜레마

마이클 폴란 지음, 조윤정 옮김, 다른세상(2008)


태그:#잡식동물의 딜레마, #마이클 폴란, #살충제 계란, #달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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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고, 글쓰기 강의를 합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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