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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광사 가는 길. 비에 계곡물이 불었습니다. 불어난 물이 법에 대한 갈망처럼 느껴지는 건 나만의 상념일까?
 송광사 가는 길. 비에 계곡물이 불었습니다. 불어난 물이 법에 대한 갈망처럼 느껴지는 건 나만의 상념일까?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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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사, 은사님 생신에 갑니다. 오셔서 점심공양 드세요."

장흥 보림사 일요법회에 가려던 중, 일선 스님의 출타에 맞춰 송광사로 방향을 틉니다. 그의 은사이신 법흥 스님의 87번째 생신이랍니다. 궁금증이 발동했습니다. 속세를 떠난 스님들은 생일상을 어떻게 차릴까? 송광사 대웅전에 도착하면 서로 연락하기로 합니다.

스스로 살아 온 삶을 정리할 시간을 주었던, '송광사'

"맴 맴 맴 맴 ~ 매 에 에 엠 ~"

승보종찰 순천 조계산 송광사 가는 길, 칠년 세월동안 환골탈퇴를 거듭했던 매미소리 가득합니다. 매미 노래에는 즐거움에서부터 아쉬움까지 다양한 마음이 깃들어 있습니다. 절기상 막바지에 다다른 여름에 대한 아쉬움은 이제 곧 생명을 마감해야 하는 운명에 대한 연민으로 느껴집니다. 비 뒤끝, 불어난 개울물이 시원하게 흐르며 이에 화답합니다. 생사고락, 삶이 그런 것을….

 송광사에 동행한 박광식 씨, 매미 소리를 쫓습니다. 아마 그 속에서 소울음 소리를 찾는 듯합니다.
 송광사에 동행한 박광식 씨, 매미 소리를 쫓습니다. 아마 그 속에서 소울음 소리를 찾는 듯합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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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광사 대웅보전 옆, 땅에 놓인 기와가 멋스럽습니다. 삶이 이처럼 멋스럽길...
 송광사 대웅보전 옆, 땅에 놓인 기와가 멋스럽습니다. 삶이 이처럼 멋스럽길...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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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계산 송광사 입구에서 지인은 수년 전 템플스테이로 찾았던 당시를 떠올렸습니다. 당시 삶을 정리할 시간이 되었다는...
 조계산 송광사 입구에서 지인은 수년 전 템플스테이로 찾았던 당시를 떠올렸습니다. 당시 삶을 정리할 시간이 되었다는...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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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칠년 전, 이곳 송광사에서 4박5일간 템플스테이하며 지낸 적이 있네. 다시 오니 새롭구만."

동행한 지인은 이미 과거 여행 중입니다. 지인이 30여년 공직생활을 마감하는 공로연수 중 보낸 송광사는 "스스로 살아 온 삶을 정리할 시간을 주었다"고 합니다. 참선 수행. 마음의 짐일랑 훌훌 털고 새 출발의 기운을 가득 받았겠지요. 그 여파일까. 그는 아직 60대 초반의 동안(童顔)을 자랑합니다.

대웅보전 앞. 목 백일홍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냅니다. 아니 뽐내지 않아도 스스로 빛이 납니다. 이 모습이 마치 법정 스님과 현묵 스님을 보는 듯합니다. 세상에 살면서도 세상과 담 싼 마냥 수행정진에 힘 쏟았던 그들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송광사 대웅보전 앞마당은 승보종찰답게 스님들의 향기로 가득합니다.

"주지실로 오세요."

주지실. 상이 차려졌습니다. 상 중앙에 노스님께서 앉아 있습니다. 떡, 과일, 꽃, 화분, 케이크 등 푸짐합니다. 전체 그림이 그려집니다. 법흥 스님 생일상입니다. 일선 스님, 옆에 서 있습니다. 눈이 마주칩니다. 방긋 웃습니다. 그가 절을 권합니다. 법흥 스님, "큰스님도 아닌데 괜찮다"면서 절을 하자 "한번만 하라"십니다. 송광사 스님 뿐 아니라 강원과 율원에서 공부 중인 스님들도 총출동해 삼배를 올립니다. 법흥 스님의 웃음 띤 얼굴에서 열반을 봅니다.

 스님들 노스님께 절을 하며 예를 갖춥니다. 법흥 스님 "송광사 좋은 곳이다. 오래 머물러라."시며 덕담을 건넵니다.
 스님들 노스님께 절을 하며 예를 갖춥니다. 법흥 스님 "송광사 좋은 곳이다. 오래 머물러라."시며 덕담을 건넵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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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7세 생일을 맞이하신 노스님과 기념사진도 찍습니다.
 87세 생일을 맞이하신 노스님과 기념사진도 찍습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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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흥 스님과 일선 스님, 그리고... 은사 스님과 상좌 스님은 속세로 치면 아비와 자식인 셈입니다.
 법흥 스님과 일선 스님, 그리고... 은사 스님과 상좌 스님은 속세로 치면 아비와 자식인 셈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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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 올 사람이 없는데 누가 왔다 해서 놀랐습니다"

"법진 스님 계십니까?"

송광사 율원을 찾았습니다. 지인의 작은 아들인 법진 스님. 그를 속가 아버지와 함께 몇 번이나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번번이 어긋났습니다. 시절인연이 이제야 닿았나 봅니다. 법진 스님은 해인사 출가 후, 명성이 자자한 송광사 율원으로 찾아 든 젊은 승려입니다. 마침 공부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 볼 좋은 기회였지요. 아담하고 통통한 스님 한 분이 의아한 얼굴로 걸어옵니다.

"뉘신지?"
"속가 아버지와 인연이 있는 사람입니다."

"저를 찾아 올 사람이 없는데 누가 왔다 해서 놀랐습니다."
"아버지와는 막역한 사이입니다."

그의 얼굴이 밝아집니다. 얼굴에 소박하고 정갈한 웃음이 피어납니다. 아!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모르는 사람마저 웃음 짓게 하는 힘이라니. 찻방에 마주 앉았습니다.

 송광사 율원에서 용맹정진 중인 법진 스님입니다. 웃는 얼굴 너머로 해탈을 봅니다. '웃음'이라 쓰고, '해탈'이라 읽는 게지요.
 송광사 율원에서 용맹정진 중인 법진 스님입니다. 웃는 얼굴 너머로 해탈을 봅니다. '웃음'이라 쓰고, '해탈'이라 읽는 게지요.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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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보종찰 조계산 송광사 대웅보전에 보물이 가득합니다. 나무 불!!!
 승보종찰 조계산 송광사 대웅보전에 보물이 가득합니다. 나무 불!!!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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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무슨 차를 마실까요?'라고 묻지 않으세요?"
"제가 차 다루는 걸 아직 제대로 못 배워 무슨 차를 드릴지 물을 처지가 아닙니다."

이 말 속에, 그가 온전히 들어 있었습니다.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었지요. 다만, 깊이가 생겨 더욱 깊어지길 바랄 뿐! 대신 법진 스님의 속가 아버지와 통화했습니다. 아버지의 당부 말씀.

"법체 부실해서 더위 많이 타는 스님 땀 흘리게 하지 마세요."

영감탱이 하고는. 아들은 "제가 뭘 부실해요!"라고 따지는데, 소용없습니다. 아버지의 마음 알지요. '하루 속히 정진해, 어서 빨리 깨달음에 이르길 바란다!'는 게지요. 차 맛 품평이라곤 허락지 않는, 단지 차를 마셨다는 사실에 만족해야 할 상황에서. 뒤늦게 아비의 속마음을 읽었을까. 스님의 한 마디에서 구도자의 열정을 봅니다.

"송광사에서 율원이 끝나면 통도사로 갈 예정입니다. 삼보사찰을 두루 섭렵해 봐야지요."

"물은 큰 바다에 도달하면 소리 없이 유유히 흐르는 법"

 물 위에 정좌한 조계산 송광사. 승보종찰임을 강조하는 듯합니다.
 물 위에 정좌한 조계산 송광사. 승보종찰임을 강조하는 듯합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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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뭣고와 현묵 스님.
 이뭣고와 현묵 스님.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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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광사 경내, 여기저기 핀 꽃에서 부처를 봅니다.
 송광사 경내, 여기저기 핀 꽃에서 부처를 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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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 곳에 행동이 따른다 했던가. 발이 저절로 움직입니다. 현묵 스님, 그가 있는 곳으로. 이제는 깊숙이 숨겨뒀던 그를 꺼내야 할 때. "스님 외 출입금지"임에도 불구, 문고리 좌측 위에 뚫린, 작고 동그란 공간 속으로 손을 넣어 문을 열려는 찰라, 안에서 소리가 들립니다.

"문 열렸습니다. 밀면 됩니다."

문을 쭉 밀었습니다. 흰옷을 입은 중생들 너머로 박박 민, 스님의 민머리가 드러납니다. 그 왼쪽으로 '이ㆍ뭣ㆍ고' 글귀가 붙어 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자 조용히 법문 소리가 들립니다. 마루에 서서 현묵 스님임을 확인합니다. 순간 탄성이 터져 나옵니다. 아!아!아! 그와 마주했던 십 오륙년 전을 떠올립니다. 당시 그는 날카롭고 냉정했습니다. 그랬는데 지금은 아주 온화합니다. 무엇이 그를 이토록 변화시켰을꼬? 드디어 손님들이 물러갑니다.

"스님, 차 한 잔 주십시오."
"요즘은 차를 내지 않습니다. 성철 스님께서 그랬지요. 차를 내는 것조차 수행에 방해된다고. 조금 있다 선방에 들어야 합니다."

십 오륙년 전, 현묵 스님께서 내신 차는 성품과 달리 따뜻하고 향기로웠습니다. 차가운 마음마저 녹이고 남을 정도였지요. 그가 내는 차, 한 번이면 될 것을 또 원했나 봅니다. 차 대신 현묵 스님과 툇마루에 앉아 정답게 한담 나눴습니다. 예전 같으면 꿈도 꾸지 못하고, 엄두내지 않았을 자리지요.

 안동 연미사 불자들과 한담 나누는 현묵 스님. 세월이 내려 앉은 그의 모습에서 자애로움을 발견합니다. 그는 말이 아닌 몸짓으로 세월이 곧 부처임을 알려주었습니다.
 안동 연미사 불자들과 한담 나누는 현묵 스님. 세월이 내려 앉은 그의 모습에서 자애로움을 발견합니다. 그는 말이 아닌 몸짓으로 세월이 곧 부처임을 알려주었습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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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공을 보는 그의 모습에서 열반을 봅니다. 열정과 청춘, 그리고 성숙과 세월...
 허공을 보는 그의 모습에서 열반을 봅니다. 열정과 청춘, 그리고 성숙과 세월...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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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자들을 떠나 보내는 현묵 스님. 그가 깊어진 이유는 '자비'였습니다.
 불자들을 떠나 보내는 현묵 스님. 그가 깊어진 이유는 '자비'였습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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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분들은 뉘십니까?
"안동 연미사에서 송광사로 템플스테이 오신 분들입니다. 저번에 요양 차 연미사에 한 달간 머물렀습니다. 그때 닿은 인연으로 여기까지 찾아오신 겁니다. 연미사에서 요양할 때 제가 도량석을 도맡아 했었는데 그게 많이 도움 되었습니다. 초심의 중요성을 알았지요."

- 금둔사 지허 스님께서도 똑같은 말씀을 하시던데. 도량석이 좋은 것임을 느낀다고. 법흥 스님 생일상을 봤습니다. 속세를 떠난 스님들 생일상을 보통 그렇게 차립니까?
"아닙니다. 저도 스님 생일상은 필요 없거나 조촐해야 한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주위 눈도 있고 해서 한번쯤은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외국에 나가는 것도 그렇습니다. 많은 스님들이 외국에 나가는데 저는 아직까지 한 번도 안 갔습니다."

잠시 침묵하는 사이, 현묵 스님께서 허공을 바라봅니다. 그의 옆모습에서 자애로움과 부드러움을 봅니다. 예전 그는 이런 분이 아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번뇌는 별빛"이라던 만해 한용운 스님의 시어를 빌리지 않더라도, 당시 그는 번뇌와 별빛 사이를 오가는 열정적인 스님이었지요. 지금은 도에 대한 열정에 숙성까지 더해지니 스스로 빛이 납니다.

- 스님, 대쪽 같은 성품은 그대로인 거 같은데, 날카롭던 얼굴은 많이 변했습니다.
"그렇습니까. 나무인 성품이 어디 가겠습니까. 아직 여전합니다."

- 스님 얼굴 뵈니 세월이 곧 부처인 듯합니다.
"부처님께서도 해탈하신 뒤 괄괄하신 성품이 부드럽게 바뀌었다죠. 세월이 어디 가겠습니까. 시냇물은 졸졸 소리 내어 흐르지만 큰 바다에 도달하면 소리 없이 유유히 흐르는 법입니다."

 계곡물들은 소리내어 흐르다 결국 바다에 도달한 후 소리 없이 유유히... 우리네 삶도 세월이 거듭됨에 따라 마지막에는 깨달음에 이를 것... 즉, 세월이 부처!
 계곡물들은 소리내어 흐르다 결국 바다에 도달한 후 소리 없이 유유히... 우리네 삶도 세월이 거듭됨에 따라 마지막에는 깨달음에 이를 것... 즉, 세월이 부처!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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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제 SNS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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