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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7주년 세계노동절 전국노동자대회가 지난 5월 1일 오후 서울 대학로에서 민주노총 주최로 열렸다(자료사진).
▲ 제127주년 세계노동절 전국노동자대회 제127주년 세계노동절 전국노동자대회가 지난 5월 1일 오후 서울 대학로에서 민주노총 주최로 열렸다(자료사진).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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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이 시작됐는데 아직 등교하지 않은 친구가 있었다. 지각이었다. 늦은 이유를 들어보니 포스코 광양제철소 부근에서 열린 집회로 통학버스가 움직이지 못했다는 것이다. 선생님께서는 그 이야기를 듣더니 이렇게 말씀했다.

"야, 그 사람들 뭐라고 하면 안 된다. 불쌍한 사람들이야."

난 고개를 들지 못했다. 선생님이 말씀한 그 '불쌍한 사람'들 중에는 우리 아빠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랬다. 가끔 선생님들도 언급하시는 집회 속 '노가다꾼'이 바로 내 아빠다.

아빠에 대한 많은 생각이 들면서 수업시간 내내 터져 나오려는 눈물을 참아야만 했다. 누구보다도 정직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우리 아빠. 나에게 그 무엇보다 큰 존재로 자리 잡고 있는 아빠는 어느새 선생님들의 말씀 한마디에 '불쌍한 노가다꾼'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제철소서 일하는 아빠가 직원이 아니라니...

아빠는 제철소의 일을 맡아서 하는 작은 건설업체 소속 전기 기술자다. 아빠는 이날 비정규직과 관련된 임금협상 등 노동자의 권리를 위한 집회에 참여했다. 아빠가 노동자로서 집회나 시위에 참여하시는 건 몇 번 본 적이 있다.

아빠는 이번 시위가 장기간 진행될 거라고 했다. 아빠에게 물었다.

"우리 반에 제철소 부근에 사는 친구가 있는데, 거기에서 하는 집회 때문에 맨날 학교에 늦게 와요. 지역 주민들도 불편할 텐데 꼭 시위를 할 이유가 있어요?"

"회사랑 임금협상이 안 되니까, 마지막 수단인 시위로 요구하는 거지."

"임금협상 내용이 뭔데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인건비를 올려달라고 하는데 회사 측이 협상을 안 하는 거야."

"아빠는 제철소에 다니는 직원이니까 해당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아빠는 제철소 직원이 아니라, 제철소를 운영하는 협력회사인 건설업체에서 일하는 거야. 쉽게 말하자면 비정규직이지."

건설노동자(자료사진)
 건설노동자(자료사진)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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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랐다. 제철소에 다니면 모두 제철소 직원인 줄 알았는데…. 그러면 그 건설업체는 왜 임금을 적게 주는 걸까. 비정규직 노동자여서일까.

아빠 설명에 따르면, 대기업인 제철소에서 공사를 다른 중소업체들에게 맡길 때 일단 경쟁을 시킨다고 한다. 경쟁하는 업체들은 서로 금액을 낮춰서 공사를 따내려 하고, 제철소 입장에선 훨씬 더 저렴한 가격에 일을 진행하게 되는 원리라는 것이다. 결국엔 노동자들이 받는 인건비가 확 줄어들게 된다.

"그럼 공사에 참여 안 하면 되지 않냐"고 물었더니 아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면 안 되지. 일자리가 없는데…. 노동자는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 하니까. 회사가 아무리 낮은 공사비용을 줘도 일을 할 수밖에 없지. 회사 측은 그걸 아니까 임금협상을 안 하는 거고…. 쉽게 이야기하면, 너 경매 알지? 가장 높은 금액을 부르는 사람에게 물건을 팔잖아. 공사는 경매랑 반대로 최저 낙찰자가 맡는 거야."

"아, 이제 이해가 돼요. 그런데 시위에 참여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나요? 교통이 불편할 정도면 꽤 큰 규모 같은데요?"

"음, 이번에 참여하는 노동자들은 도장, 전기, 용접, 대관, 건설, 청소 등 모두 합치면 2천 명은 될 거야. 저번에 서울로 올라갔을 때 버스만 30~40대였을 거야."

"제철소가 지방에 있는데 왜 서울까지 갔어요?"

"본사와 대표자가 서울에 있으니까 항의 차원에서 간 거지. 근데 왜 갑자기 이런 걸 궁금해하고 그러니?"

열심히 일할수록 '을'이 되는 사회

제철작업(자료사진)
 제철작업(자료사진)
ⓒ f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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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말을 듣고 이번 시위가 꽤 큰 규모라고 생각돼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제철소 부당대우', '제철소 시위' 등으로 검색해봤다. 이상하게도 관련 기사는 한 줄도 찾을 수 없었다.

아빠와 나의 대화는 그렇게 마무리됐다. '전문 기술자'라는 정식 명칭이 있는데도, '노가다꾼'이라고 불리는 노동자들의 현실. 아빠의 말을 듣고 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막막했다. 우리를 가르치는 선생님들마저 무의식적으로 '노가다꾼'이라며 비하한다. 그러니 세상의 수많은 '아빠'는 이 사회에서 얼마나 심한 차별을 받고 상처를 받을지 뻔한 일이었다.

'시위하려면 남한테 피해주지나 말지.'

항상 이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을 알고 나니 시위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의 아픈 마음에 조금이나마 공감이 갔다. 푹푹 찌는 찜통더위에 피땀 흘려 일하고 살갗이 찢어질 것 같은 엄동설한에는 추위에 떨며 일하는 '노가다꾼', 그리고 회사에서는 언제 잘릴지 모르는 비정규직. 그 힘든 일을 이겨내며 한 가장으로 우뚝 서 있는 사람이 바로 아빠였다.

열심히 땀 흘려 일한 사람들을 '을'로 취급하며 불쌍하다 여기는 사회. 이를 당연시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우리 대한민국은 불평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정말 '불쌍한 나라'가 돼버리진 않을까.


태그:#노가다꾼, #우리아빠, #데모, #광양제철,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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