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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기고 독하고 당당하게!!"

2012년 MBC 노조(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가 170일 파업할 때 외친 구호였다. 조합 집행부는 집회 때마다 이 구호를 외쳤다. 말이 씨가 되었을까? MBC노조는 170일 파업 이후 말로 형언할 수 없는 탄압을 받았다. 부당 전보와 징계는 일상사가 되었다. 유능한 시사 PD에게 스케이트장 관리를 맡기는가 하면 회사 풍자 웹툰을 그렸다고 해고하기도 했다. 때문에 MBC 노조는 파업 구호처럼 질기고 독하게 투쟁해야만 했다.

최근 MBC 노조는 5년 만에 다시 파업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170일 파업을 지휘한 정영하 전 MBC 노조 위원장은 지금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싶어 지난 23일 서울 상암 MBC내의 노조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정영하 전 MBC 노조 위원장
 정영하 전 MBC 노조 위원장
ⓒ 이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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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정 전 위원장과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 MBC 노조의 총파업이 임박한 것 같아요. 2012년 파업 이후 5년 7개월 만이잖아요. 170일 파업을 최전선에서 이끌었던 전임 노조 위원장으로서 어떻게 보고 계세요?
"2012년 그때도 몇 년간 쌓이고 곪아 터져서 파업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서 170일이나 했는데 해결을 못 하고 그게 다시 5년이 넘어 터지는 거거든요. 파업으로 보면 몇 년 만이다라고 말하지만, 저항으로 본다면 MB정권 출범부터 지금까지 9년 넘게 지속돼온 진행형입니다. 상처는 더 깊고 넓게 퍼지고. 긴 시간 계속 다치기만 하면서 저항해온 구성원들을 보면 안타까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망가진 MBC를 보자면 이제라도 회생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도 온 거 같아 다행이라 생각해요."

- 말씀하는 걸 보니 구성원들에게 미안함이 있나 봐요.
"미안함 당연히 깔려 있죠. 2012년 파업 때 '국민의 품으로 돌아가는 종결 투쟁'이라고 선언하고 170일을 무노무임으로 싸우게 한 건데, 종결은커녕 더 악화된 거고. 그 후 지난 5년의 탄압은 평조합원들이 감당하기엔 정말 힘든 시간이었죠. 종결시키지 못해서 겪어야 했던 것이라 미안함은 늘 가슴 한구석에 있어요. 그럼에도 치러야 할 비용이란 생각엔 변함이 없고요. 저항을 안 하고 넘어갈 수 있는 상황도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어요. 그때 투쟁과 이후 저항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거니까요."

- 외부에서 싸늘한 시선도 있어요. 5년 전 투쟁했다는 이유로 지금까지 월급 받으며 지내다가 국민들의 분노가 언론 적폐청산으로 모아지니 숟가락 들고나오는 거 아니냐는 거죠.
"제가 지난 5년 동안 토론, 인터뷰 등에서 제일 많이 한 얘기가 있어요. MBC를 국민의 품에서 못 지킨 죄를 물으시면 '죄송합니다'라는 말밖엔 달리 드릴 말이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품으로 꼭 돌아갈 겁니다'라는 거예요. 버려서 망하는 회사가 아니고 버린다고 역할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공영방송이란 게 사회적 공기라 제대로 운영되게 하는 것만이 정답이거든요. 정권의 방송을 한 MBC, KBS가 언론 적폐 대상이 되었으니 국민의 비난은 달게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래서 더 국민의 품으로 돌리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거고요.

한 가지 꼭 말하고 싶은 부분은 지난 5년간 편하게 월급 받아먹으며 지낸 게 아니라 정권의 방송을 막지 못했을 뿐 저항은 '진행형'이었다는 거죠. 최근 개봉한 최승호 감독의 <공범자들>을 관람하시고 많은 분이 '저 정도인 줄은 몰랐네' 하시거든요."

- 2012년 MBC 출신인 신경민 민주당 의원은 "MB가 MBC DNA를 바꾸려 한다"고 했어요. 최근 대선에 태극기 부대의 전진기지로 역할 했고 지금은 최후의 보루가 돼 있는걸 보면 결과론적으론 성공한 것 아닌가요?
"DNA를 바꾼 게 아니고, 상명하복과 이권에 반응하는 DNA를 가진 사람들만 골라내서 요직에 앉히고 쓴 거죠. 저들이 두려워하는 저항의 DNA를 가진 구성원들은 DNA 발현이 안 되는 업무나 부서로 전보 조치당해 유효한 저항이 힘들었던 거고. 저는 잠겨있었다고 봐요. 잃어버리거나 바뀐 게 아닙니다. 꺼내지 않았을 뿐 가슴 한구석에 잘 가지고 있었어요. 그래서 지금 다시 이렇게 일어날 수 있는 겁니다."

- 여기까지 오는 데는 아마도 김민식 PD의 페북 라이브가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김 PD는 2012년 170일 파업 당시 노조 편제 부위원장이었죠. 그래서 페북 라이브를 보는 심정이 남달랐을 것 같아요.
"처음 시작할 때 톡방에 올라온 메시지를 보고 알게 됐는데, 어떻게 했을지 안 봐도 비디오로 떠 올랐어요. 페북 라이브 할 때 보니 상상한 그대로였고요. 김민식 PD만 할 수 있는 '액션형 버라이어티 급(?) 생방송 1인 구호 투쟁'이에요. 재능은 없어도 할 수 있는데 진정성은 없으면 못 하는 투쟁이죠. 그런데 김민식 PD는 둘 다 가졌거든요. 김장겸 사장 임자 잘못 만난 겁니다. 자업자득이라고 김 사장이 잘못 건드렸어요(웃음).

김민식 PD의 나 홀로 선봉 투쟁이 눌려 잠겨있던 선후배 동료들의 DNA를 깨운 겁니다. 그리고 밖으로 나오게 했죠. 김민식 PD한테는 늘 고맙고 미안하고 든든하고 그래요. 드라마 PD로 승승장구할 수 있었는데 파업 지도부로 조합에 내려와 동고동락 했고, 구속영장 두 번이나 함께 받으며 유치장 신세도 지고, 지난 5년 유배 생활에 심신이 말이 아닐 텐데 또 앞장서서 고생하는 걸 보면 눈물 납니다."

- 지난주 징계가 나왔는데 출근 정지 20일이잖아요. 이에 대해 김민식 PD는 '잡범' 취급했다며 반발하던데.
"정상적인 경영에선 출근 정지가 정직의 일종이라 큰 건데 MBC는 김재철 이후 제왕적 경영으로 마구잡이 중징계를 남발해 왔기 때문에 '하던 대로 해고하지, 이제 와서 왜 꼬리 내리는 거냐' 일침을 놓은 거예요. 권성민 PD는 유배지 신세 웹툰으로 만들었다가 해고당했잖아요. 대법까지 종결된 징계 무효 판결이 한 두 개도 아니고 1, 2심 통해 대법에 계류 중인 부당징계 승소 건까지 합하면 대상자만 77명이고 이 중에 94%가 부당징계 피해자로 판결받은 건데 김민식 PD가 외치는 '김장겸은 물러가라~'는 당연한 요구 아닌가요. 부당전보에 부당교육 등 불법경영으로 피해를 본 300여 조합원들의 억울한 심경을 외치는 거예요."

"자신들이 저지른 불법적 경영행위, 스스로 인정하는 꼴"

 정영하 전 MBC 노조 위원장
 정영하 전 MBC 노조 위원장
ⓒ 이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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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래도 김 사장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단 방증 아닌가요?
"늘 해왔듯이 중징계 내렸다간 자리보전은 물론 법적으로 되치기 당하는 험한 꼴까지 보겠구나  생각한 거죠. 그런데 이제 와서 그런다고 지금까지 남발한 부당징계가 없어지나요. 자신들이 얼마나 불법적인 경영행위를 남발했는지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 된 겁니다."

- 170일 파업 이후 100여 명의 조합원들이 이른바 신천교육대로 불렸던 MBC 아카데미에서 재교육을 받았고 그것으로도 부족해 5년 내내 본연의 업무와 무관한 유배성 일을 받아 외곽부서를 전전해야 했어요. 그 과정에서 일부 기자나 PD, 아나운서가 MBC를 떠났잖아요. 이것은 어떻게 보셨어요?
"아나운서가 마이크를 못 잡고, 기자가 취재를 못 하고, PD가 제작을 못 하는 상황은 정신적인 해고를 당하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어찌 보면 물리적인 해고보다 더 잔인한 상황에 놓이는 거죠. 특히 방송인은 전문직 개념이 강해서 뽑을 때부터 특화해서 채용하고 그 일을 계속할 수 있게 인사를 하잖아요.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으면 해고나 다른 바 없는 상태에 놓이는 거죠. 그래서 제대로 일할 수 있는 곳을 찾아간 거라 마음 무척 아팠죠. MBC를 버리고 떠났다고 뭐라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고 봐요. 꿋꿋이 지켜준 구성원들에게 고마운 거지, 나간 분들이 여기서 못한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으면 그걸로 설명은 되는 거 아닌가 생각되네요."

- MBC 경영진에서 직원들의 블랙리스트를 작성한 사실이 폭로되었어요, 물론 짐작은 하셨겠지만, 사실로 드러났을 때 어떠셨나요?
"저런 게 있을 거라 100%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드디어 나왔구나' 했어요. 작년에 조합집행부 빈자리 메꾸면서 2012년 파업 이후 각종 탄압 데이터를 정리했거든요. 부당징계, 부당교육, 부당전보 등을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개인별 데이터로 조사하고 정리했죠.

인사자료를 회사로부터 받을 수 없어서 시간이 많이 걸렸는데 하나하나 채워서 종합하니 징계, 교육, 전보 등이 라인업처럼 연결되며 정리되더라고요. 말로만 떠도는 블랙리스트를 보진 못했지만, 집행을 종합해서 정리하다 보니 리스트가 있다면 이런 거겠네 했죠. 이번에 나온 건 지극히 일부일 뿐이고 2012년 파업 참가자, 파업 일수, 소송 등을 개인별로 정리한 파일을 만들어 국장급들에게 고과, 승진, 연수, 상벌, 포상 등을 정할 때 반영토록 했다는 얘기를 여러 번 들었어요. 더 큰 게 터질 겁니다."

- 지난주 2월 방문진의 사장 선임 과정 녹취록도 폭로됐는데.
"유유상종 이사들(구여권 추천 이사 6명)만 참석한 신임 사장을 선정하는 자리에서 솔직 담백한 속내들을 마음껏 드러내셨더라고요. 이건 블랙리스트가 작성된 배경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자백'이었어요. 지금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며 100만을 향해 달려가는 영화 '공범자들'에 나오는 고영주 이사장의 황당한 주장(탄핵 반대가 다수이고 MBC가 공정한 방송을 하고 있다)까지를 종합하면 MBC를 태극기 부대의 전지 기지로 만들어 보수 재집권을 위한 불쏘시개로 쓰겠다는 거에 다름 아니잖아요. 그 자리에 참석한 이사장과 이사들은 MBC를 망가뜨린 주범으로 딱 걸린 겁니다."

- 채용 공고를 철회하긴 했습니다만, 기자, PD가 제작 거부에 들어가자 MBC는 채용 공고를 내서 국민의 비판을 받았는데.
"2012년 파업 이후 경영진이 늘 하던 대로 한 건 데 이번엔 된서리 맞으며 데인 거죠. 그동안 얼마나 몰상식한 경영을 해왔는지를 방증하는 겁니다. 파업 중에도 보란 듯이 뽑아서 대체인력을 투입한 사람들이라, 지난 정권에선 벌은커녕 잘 하고 있다고 칭찬받았을 테지만 이 정권은 그게 아니라는 걸 이제야 깨달은 거죠. 처벌이 두려워서 바로 접었을 겁니다. 정당한 파업에 대체인력 투입은 명백한 불법행위거든요. 이권과 이익에 민감한 사람들이라 본인이 당하는 불이익은 못 견디는 겁니다."

- 지난 17일 9년 정권의 언론 장악을 다룬 다큐 영화 <공범자들>이 개봉됐는데.
"불려 다니다 보니 벌써 세 번이나 봤네요. 처음엔 웃다 울다 했지만 볼수록 웃음도 눈물도 사라지고 분노만 커지는 게. 보고 나면 참 힘든데 그래서 더 봐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어설프게 담금질하면 안 하니 못하고 부러지기 마련이니까 더 보려고요."

- 영화 마지막 부분에 이용마 기자는 패배했지만, 기록하는 데 의미가 있다고 하는데.
"저항엔 담보가 없으니까요. 바꾸려고 싸우는 거지만 싸운다고 꼭 바뀌는 건 아니거든요. 못 바꿀 거 같다고 안 나서면 바뀔 가능성은 아예 없는 거고. 중요한 건, 바꾸고자 싸움에 나서는 거예요. 파업은 자기 몸 던져서 하는 가장 극한 마지막 저항인데, 그 자체로 기록이고 의미라는 걸 얘기하는 겁니다. 침묵하면 곧 굴종으로 이어지는 거니까요. "

- <공범자들> 언론 시사회에서 김민식 PD가 "영화 보면서 나는 저항자일까 공범일까 생각해봤는데 공범자더라"면서 2012년 파업 끝날 때 이용마 기자와 얘기를 하며 오열했잖아요. 어떻게 보셨어요?
"둘은 96년에 입사한 동기면서 파업 때 집행부를 함께 한 동지인데 참 많이 달랐죠. 문제를 풀고 해결하는 방법이 그랬는데, 정말 정확하게 일치하는 게 있었어요. 문제를 바라보고 인식하는 눈이 그랬죠. 그래서 대응을 얘기하면선 격론이 오가기도 했지만, 투쟁의 케미는 환상적인 궁합을 자랑하는 동기애, 동지애 그 자체였죠. 두 사람이 어떤 마음과 자세로 MBC 투쟁을 대하고 이끌어 왔는지 잘 보여주는 거라 오열하는 김민식 PD의 사진만 봐도 울컥합니다."

"투쟁은 나눠질 수 있어도 투병은 그렇게 못하니 안타깝다"

- 영화에서 이용마 기자의 현재 모습을 보여주고 5년 전 모습을 보여주는 게 가슴 아팠는데. 
"저하고 지웅이 형이 용마 투병 도우미를 하고 있어서 정기적으로 만나다 보니 살이 마르고 있는 건 알고 있었는데도 영화 속에서 대비 되는걸. 보니 가슴이 미어지더라고요. 키도 훤칠하고 풍채도 인물도 참 좋았는데, 투쟁은 나눠질 수 있어도 투병은 그렇게 못하니 그게 참 원망스럽고 안타깝고 그럽니다."

- 2008년 낙하산 사장에 맞서 싸우다 해직된 노종면, 조승호, 현덕수 YTN 기자가 28일 자로 복직하잖아요. 동료 해직자로서 남다를 것 같은데.
"제가 복직 판결을 받은 거처럼 심하게 동화돼서 울컥하더라고요. 눈물도 죽 흐르고 대법 졌을 때 울먹이며 얘길 못하는 노종면 위원장 얼굴도 지나가고. 대법원 복직 판결 나오면 이런 기분이겠구나 생각되더라고요. 사실, 노종면 위원장 대법원 판결 패소했을 때도 심하게 동화돼서 울먹였거든요. 많이 얘기한 거지만, 정의로운 싸움을 하다 잘린 사람의 복직은 대법 판결보다 더 중요한 게 구성원들 염원이에요. 그게 반영된 거라 정말 기쁘고 감격스럽고 그러네요."

- 해고 무효소송이 대법원에 계류돼 있잖아요. 지금 어떤 상태인가요?
"업무방해 형사 재판과 손해배상, 해고무효 민사 재판 모두 2심까지 승소하고 대법원에 넘어간 지 2년이 넘었어요. 법리로만 보면 1, 2심 거치면서 다 다뤄서 이렇게 시간 걸릴 게 없어 보이는데, 곧 나오겠죠."

-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려요.
"8기 이근행 위원장 때 본격적으로 점화된 'MBC 국민의 품으로' 투쟁이 9기 저를 지나 10기 이성주, 11기 조능희, 12기 현 김연국 위원장 집행부까지 5대, 9년에 걸친 대장정의 막바지에 와 있습니다.

우리 조합원들 '질기고 독하고 당당하게' 잘 싸웠고 잘 버텼다 생각합니다. 다음 주 찬반투표가 끝나고 9월 1일부터 종결을 고할 마지막 투쟁이 시작됩니다. 김연국 위원장 집행부가 대미를 '짧고 굵고 화끈하게' 승리로 끝낼 거라 확신하며 'MBC 국민의 품으로' 파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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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의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풀어주는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너뷰'를 연재히고 있는 이영광 시민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