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익숙한 대중 문화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자 합니다. [편집자말]
 2017 섬머소닉 도쿄. 그렇게 가고 싶었던 페스티벌을 드디어 볼 수 있게 됐다.

2017 섬머소닉 도쿄. 그렇게 가고 싶었던 페스티벌을 드디어 볼 수 있게 됐다. ⓒ 섬머소닉


지난 19일, 필자는 도쿄에서 열린 섬머소닉 페스티벌에 다녀왔다. 오래전부터 나의 버킷 리스트의 첫 줄에는 '해외 뮤직 페스티벌 가기'가 적혀 있었다. 군대에 있을 때부터 막연히 꿨던 꿈이다. 짧은 머리 군인에게 유튜브로 접한 '글래스톤베리', '후지록', '섬머소닉'은 이국의 낙원이었다. 전역도 한 마당에, 언제까지 가고 싶다고 꿈만 꿀 것인가.

우리나라의 페스티벌은 즐길 만큼 즐겼겠다. 돈이나 시간 핑계 댈 이유도 없겠다. 급하게 계획을 짜고 도쿄로 날아갔다. 페스티벌이 열리는 곳과 연결된 가이힌 마쿠하리 역으로 가는 전철, 록 밴드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보였다. 일상생활에서 입고 다니기 벅찬 독특한 패션들도 눈에 띄었다. 길을 잘못 들면 어쩌나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아, 맞게 가고 있구나!'

'좋은 음악 페스티벌'이 완성되는 데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물론 좋은 뮤지션이 첫 번째로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그만큼 중요한 것이 사운드라고 생각한다. 뮤지션의 구상을 온전히 구현할 수 있는 음향 기술 말이다. 섬머소닉은 그런 점에 있어서 최고의 페스티벌이라고 할 수 있었다. 마린 스테이지부터 '정글 가든' 등 작은 스테이지까지. 모든 장소에서 탄탄한 사운드를 맛볼 수 있었다. 큰 무대들이 같은 건물 안에 다닥다닥 붙어 있으나, 사운드가 겹치는 현상이 벌어지지 않아서 안심이었다.

아이부터 어르신까지, 아이돌부터 앰비언트까지!

 섬머소닉 도쿄에서 열정적인 공연을 하고 있는 카사비안(Kasabian).

섬머소닉 도쿄에서 열정적인 공연을 하고 있는 카사비안(Kasabian). ⓒ 섬머소닉


섬머소닉에는 '남녀노소'가 공존한다. 어린이들이 부모님 등에 업혀서 일렉트로닉 공연을 즐기는 모습쯤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육안으로 보았을 때 50~60대 정도 되어 보이는 관객들도 있었다. 우리나라와 달리, 이들은 새로운 음악을 낯설어하지 않았다. 흰머리 수북한 아저씨가 카사비안의 노래를 따라 부르고, 두아 리파에게 박수를 보내는 모습! 낭만적이지 않은가.

많은 사람은 말한다. 일본은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문화를 소비하는 인구도 더 많은 것이라고. 이 말은 언뜻 맞는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필자가 본 풍경은 그런 게으른 사고만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일본에는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교내 클럽 활동을 통해 음악을 가까이 즐길 수 있는 문화가 갖추어져 있다. 그리고 아이돌 음악부터 앰비언트 뮤직까지, 다양한 장르가 사랑받는 음악 시장이 형성되어 있기도 하다.' 세 살 버릇은 여든까지 간다.'고 했다. 즉, '어떤 환경에서 자라났느냐'가 그들이 문화를 대하는 태도를 결정하는 것이다.

 섬머소닉 도쿄에서 발견한 '키즈 클럽'.

섬머소닉 도쿄에서 발견한 '키즈 클럽'. ⓒ 이현파


섬머소닉 페스티벌 행사장을 돌아다니면서 발견한 흥미로운 장면 중 하나가 '키즈 클럽'이었다. 어떤 프로그램이 열리고 있나 궁금해서 들여다봤더니, 디제이가 음악을 틀고 아이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그야말로 사랑스러운 디스코 파티였다. 이렇게 참여하는 경험들은 아이들이 커서 음악을 소비하는 데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다. 그 꼬마들 중에서 미래의 뮤지션이 탄생한다면, 이런 경험들이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아이들을 '학교-학원-집' 코스에 고정하는 것만이 교육의 몫을 다 한 것인가? 직접 발로 뛰고, 다양한 방법으로 놀아보는 것 역시 소중한 공부다.

토요일 최고의 퍼포먼스로는 카사비안(Kasabian)을 뽑고 싶다. 카사비안은 이미 글래스턴베리, 레딩 등 수많은 페스티벌에서 헤드라이너로서 서는 등, 라이브 잘 하는 밴드로 정평이 나 있다. 3년 전에도 그들의 공연을 본 적이 있었지만, 이번 공연은 그 어느 때보다 가장 신나게 뛰어놀았던 시간 아니었을까. 신곡 'Come Back Kid', You're In Love With a Psycho'부터 '떼창'에 최적화된 'L.S.F', 'Fire'까지. 카사비안은 한순간도 쉴 틈을 주지 않았다. 이번 공연에는 2014 글래스턴베리 때처럼 브라스 섹션이 추가되었는데, 카사비안 특유의 웅장함을 강조하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한국 팬에 비해 비교적 조용한 일본 팬들 역시 격렬하게 춤추고 노래했다.

  저스티스(Justice)의 공연을 장식한 조명, 음악과 완벽히 조응했다.

저스티스(Justice)의 공연을 장식한 조명, 음악과 완벽히 조응했다. ⓒ 섬머소닉


 섬머소닉 도쿄에서 공연하고 있는 두아 리파(Dua Lipa).

섬머소닉 도쿄에서 공연하고 있는 두아 리파(Dua Lipa). ⓒ 섬머소닉


카사비안과 시간이 겹치는 바람에 조금밖에 보지 못 했지만 저스티스(Justice)의 공연 역시 훌륭했다. 출국하기 전, 주위의 음악 마니아들이 앞다투어 추천한 이유가 있었다. 'D.A.N.C.E'와 'Safe And Sound'의 믹싱은 절묘했고, 수억 원이 들어갔다는 조명 역시 아름다웠다. 나인 인치 네일스 이후 필자가 본 최고의 조명이었다. 단순히 물량으로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음악과 정확히 조응하는 조명이었다.

차세대 팝의 디바로 주목받는 두아 리파(Dua Lipa), 우리나라에 고정 팬이 많은 밴드 레이니(Lany)는 깔끔한 라이브를 보여 주었다. (이 공연에 다녀온 후, 두아 리파와 레이니 보컬 폴 클라인의 열애 소식을 알게 되었다. 역시 미모 커플이다) 데브 하인스의 프로젝트인 블러드 오렌지(Blood Orange)는 'Augustine', 'Time To Tell'' 등을 부르며, 특유의 몽환적인 그루브를 선사했다. 레인보우 스테이지에서 만난 한국 밴드 혁오도 반가웠다.

음악은 언어를 뛰어 넘는다

 섬머소닉에서 공연하고 있는 엘리펀트 카시마시(エレファントカシマシ).

섬머소닉에서 공연하고 있는 엘리펀트 카시마시(エレファントカシマシ). ⓒ 섬머소닉


일본 땅에 왔으니 일본 밴드를 봐야 하지 않겠는가? 올해로 데뷔 30주년을 맞은 엘리펀트 카시마시(エレファントカシマシ)는 '파이팅'이 넘쳤다. 엘리펀트 카시마시는 일본인의 삶을 노래해 온 얼터너티브 록 밴드다. 쉰 살을 넘긴 보컬 미야모토 히로지는 공연 내내 무대 위를 종횡무진으로 움직이고, 엉덩이를 흔드는 등 익살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감정을 잡고 노래할 때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우리들의 내일(俺たちの明日)'의 멜로디는 일본어를 모르는 외국인인 나에게도 왠지 모를 감동을 안겨 주었다. 음악은 언어를 뛰어넘는다는 간단한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다음 차례는 요즘 일본 젊은이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밴드 서치모스(Suchmos)다. 가나가와현에서 결성된 이 밴드는 아주 영리한 뮤지션 집단이다. 애시드 재즈, 록, 펑크, 소울 등 다양한 장르들을 버무려 특유의 도회적인 무드를 만들어낸다. 필자가 느낀 이들의 음악은 '청춘의 밤'이다. 이날 그들의 라이브는 기대했던 것보다 조금 심심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대표곡 'STAY TUNE'만큼은, '내가 지금 도쿄에 있구나' 하는 실감이 들게 해 주었다.

엘리펀트 카시마시가 공연할 때는 다양한 연령대의 관객으로 공연장이 가득 찼다면, 서치모스가 공연할 때는 확실히 젊은 관객들이 눈에 띄었다. 일본은 자국 밴드가 깊은 사랑을 받는 나라다. 'Rock In Japan'처럼 일본 뮤지션으로만 이루어진 페스티벌이 영미권 뮤지션의 공연 이상으로 사랑받고 있다. 다양한 장르 음악에 귀를 기울이고, 소비하는 대중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섬머소닉이나 후지록이 롱런하는 것 역시 이러한 토양이 있기 때문이다.

 CL과 함께 무대에 오른 블랙 아이드 피스(Black Eyed Peas).

CL과 함께 무대에 오른 블랙 아이드 피스(Black Eyed Peas). ⓒ 섬머소닉


해가 질 무렵, 블랙 아이드 피스(Black Eyed Peas)를 보기 위해 '조조 마린 스타디움'으로 달려갔다. 우리나라의 잠실 종합 주 경기장보다 조금 더 큰 듯한 공연장이었다. 블랙 아이드 피스의 공연은 퍼기 없이 세 남자(윌아이엠, 타부, 애플딥)로 구성되었다. 애플딥이나 타부가 이전보다 길게 랩을 선보였고, 막판에는 CL이 피처링 보컬로 등장해 'Where Is The Love?'을 불렀다. 윌아이엠은 이 노래를 부르면서 '세상의 모든 혐오에 맞서 싸우자'는 짧은 메시지를 보냈다.

세계가 테러리즘과 '혐오' 정서에 시달리고 있는 요즘, 그의 멘트는 어느 때보다 진정성 있게 다가왔다. 팬들이 윌아이엠의 요청에 따라 휴대폰을 꺼내 들었고, 수만 개의 플래시 라이트가 마린 스타디움을 오롯이 채웠다. 최근 크고 작은 공연에 익숙한 사람들이라면, 플래시 라이트 이벤트가 얼마나 뻔한 장면인지 잘 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순간의 아름다움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퍼기의 공백이 크게 느껴진 공연이기도 했다. CL도 좋은 가수지만, 퍼기의 성량, 카리스마를 대신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다행히 따라 부를만한 히트곡이 워낙 많았고, 밴드 셋 편곡도 나쁘지 않았다…. 이름도 모르는 일본인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I Gotta Feeling'을 함께 따라 부르는 재미! 운동화는 빗물에 젖어 무거워졌지만, 마음은 가벼웠다.

토요일 본 공연이 끝나고도, 마쿠하리 멧세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같은 장소에서 새벽 공연인 '호스티스 클럽 올나이터'가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라이드, 세인트 빈센트, 모과이, 호러스 등 '섬머소닉' 본 이벤트에 출연하는 뮤지션들과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을 만큼 훌륭한 음악가들이 가득했다. 아무래도 인디 성향, 마니아 적인 음악가들이 많이 배치된 편이다. 새벽에 공연이 펼쳐지는 만큼, 바닥에 누워서 공연을 관람(?)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호스티스 클럽 올 나이터의 정가는 9500엔이지만, 섬머소닉 구매자는 현장에서 5000엔에 구입할 수 있었다!)

꿈같은 시간, '문화의 힘'

이 페스티벌에서 가장 감동적인 공연은 새벽에 펼쳐진 라이드의 공연이었다. (라이드는 오아시스의 베이시스트로도 유명한 앤디 벨이 소속된 영국 밴드다.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과 함께 슈게이징 음악을 상징하는 밴드) 정말 듣고 싶었던 'Vapour Trail', 'Leave Them All Behind' 등, 타국에서 듣는 슈게이징은 황홀했다. 심연의 깊은 곳까지 어루만지는 듯한 기타 사운드였다.

라이드의 공연이 끝나자마자 달려가서 본 세인트 빈센트 역시 대단했다. '힙스터들의 여왕'으로 불리는 그녀는 기타 한 대만을 들고 무대를 꽉 채웠다. 감각적인 색감의 영상과 미래적인 음악이 멋진 조화를 이루었다. 그녀처럼 자기 세계가 뚜렷한 예술가에겐 빛이 난다. 비행기를 타고 집에 돌아가는 길, 세인트 빈센트의 'New York', 라이드의 'Vapour Trail'을 반복 재생했다. 낯선 땅에서 이방인이 되어 들었던 음악들이기에, 더욱 아름다웠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폐회식 당시, 일본의 도쿄 올림픽 홍보 영상은 전 세계에 충격을 안겨 주었다. 일본이 지난 수십 년간 축적해 온 대중문화의 힘을 여실히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필자에게는 '섬머소닉'이 비슷한 충격을 주었다. 섬머소닉은 '먹고, 마시고, 놀고, 자고'의 4박자가 완벽히 갖추어진 곳이었다. 그뿐 아니라, 대중문화의 세례를 풍부하게 받은 소비자들이 있었다. 결국, 섬머소닉을 완성한 것은 이들이었다고 생각한다.

새벽 4시쯤, 모과이(Mogwai)의 노이즈 사운드를 들으며 공연장을 빠져나왔다. 장장 15시간의 공연 마라톤을 마치고 기진맥진한 가운데, '문화를 바라보는 시선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하고 고민했다. 열심히 공연을 소비하는 사람 중 한 명으로서, 섬머소닉은 많은 숙제를 안겨 주었다. 필자는 내년 이맘때쯤에도 도쿄를 찾을 것이다. 솔직히 올해는 처음 보는 세계에 놀라느라 바빴다. 다음에는 더욱 여유롭게 이 축제를 즐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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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음악과 공연,영화, 책을 좋아하는 사람, 스물 아홉.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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