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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령산 계곡 바위에 앉아 붓장난 삼매경에 빠지다.
▲ 遊山如讀書 축령산 계곡 바위에 앉아 붓장난 삼매경에 빠지다.
ⓒ 이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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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릿잔에 벌개미취 꽃잎 하나를 살짝 띄웠다. 이렇게 하면 술을 급히 마시지 않고 천천히 음미할 수 있다. 어렵지 않게 실천할 수 있는 풍류이다. 돈도 들지 않으면서 제법 운치가 있다.
▲ 막걸릿잔에 띄운 벌개미취 꽃 한 송이 막걸릿잔에 벌개미취 꽃잎 하나를 살짝 띄웠다. 이렇게 하면 술을 급히 마시지 않고 천천히 음미할 수 있다. 어렵지 않게 실천할 수 있는 풍류이다. 돈도 들지 않으면서 제법 운치가 있다.
ⓒ 이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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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령산 전망대에서. 상대방의 말을 잘 들으면 그 마음을 얻는다.
▲ 以聽得心 축령산 전망대에서. 상대방의 말을 잘 들으면 그 마음을 얻는다.
ⓒ 이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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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 카네기가 전하는 명언이다. 세상에는 나보다 어렵고 힘든 사람이 숱하게 많다.
▲ 힘들다고 한탄하지 마라. 데일 카네기가 전하는 명언이다. 세상에는 나보다 어렵고 힘든 사람이 숱하게 많다.
ⓒ 이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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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을날, 축령산 전망대에 이르니 안개가 자욱했다. 시시각각 변하는 광경은 참으로 매혹적인 자연의 작품이었다.
▲ 안개 자욱한 날 어느 가을날, 축령산 전망대에 이르니 안개가 자욱했다. 시시각각 변하는 광경은 참으로 매혹적인 자연의 작품이었다.
ⓒ 이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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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가 부리는 조화를 보고 있노라니, 명말 청초의 작가 장초의 문장이 떠올랐다.
▲ 안개를 보면서 쓱쓱 붓장난 안개가 부리는 조화를 보고 있노라니, 명말 청초의 작가 장초의 문장이 떠올랐다.
ⓒ 이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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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동생이 남양주 수동면 축령산 자연휴양림 들머리에 '통나무산방'을 개업했다. 개업한 날이 주말이라서 그곳에서 잠을 자고 다음 날 새벽에 깨어났다. 밖으로 나가보니 먼동이 틀 무렵이었다.

아주 상쾌한 공기가 콧속을 파고들었다. 서울의 공기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느낌이 확 들었다. 운무가 자욱했다. 주변을 둘러볼 겸 천천히 축령산 자연휴양림 쪽으로 걸었다. 도로변에 흐드러지게 핀 개망초가 안개꽃처럼 보였다. 무척 몽환적인 풍경이었다. 직장 생활을 그만두면 어느 한적한 산자락에 깃들어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내 마음에 쏙 드는 마을이었다.

몇 미터 앞도 안 보이는 자욱한 운무 속을 자박자박 걸어 오르니 이정표가 나왔다. 축령산과 서리산으로 가는 갈림길에서 축령산 쪽 산길로 접어들었다. 초입에 아름드리 잣나무들이 쭉쭉 뻗어 하늘을 찌르고 있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무어라 형용하기 어려운 좋은 향기가 후각보다 가슴을 먼저 자극했다. "아, 좋다!"라는 말이 절로 터져 나왔다.

잣은 예로부터 '신선이 먹는 음식'이라 하여 귀하게 여겼다. 잣나무의 학명은 '파이너스 코라이엔시스(pinus koraienis)'이다. 세계인은 잣나무를 한국 소나무로 인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잣나무를 홍송(紅松)이라고도 하는데, 은은한 향기가 감미롭게 후각을 자극하여 기분을 고조시킨다. 숲에 가면 머리가 맑아지고 마음이 차분하게 안정이 되는 이유는 나무가 내뿜는 피톤치드 때문이라고 한다.

축령산은 멀리서 산의 관상을 보고 짐작했던 것처럼 골산(骨山)이었다. 처음부터 길이 가파르고 돌이 제법 많았다. 자욱한 운무는 여전했고, 새들도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는지 적막하기 그지없었다. 경사가 심한 오르막길을 한참 오르니 호흡이 가빠지고 이마에 땀이 흘렀다.

그만 올라가고 산에서 내려올까 하다가 조금만 더 오르기로 했다. 카랑카랑한 산속 공기가 달콤하기까지 했고, 이따금 얼굴을 스치는 바람이 상쾌했다. 이제는 그만 올라가야지 생각하면서도 자꾸만 더 오르다가 다른 산에서는 구경하기 어려운 약수를 보았다. 바위에서 한 방울씩 뚝뚝 떨어지는 암반 약수였다. 작은 표주박으로 약수를 떠서 벌컥 들이켜고 보니 운무가 서서히 걷히고 있었다.

그때까지 나는 산행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날은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이른 아침에 처음 가는 산의 정상까지 오르고 말았다. 정상에 오르니 시야가 확 트이고 사방이 내려다보였다. 산허리를 휘감은 운무가 참으로 장관이었다. 온몸에 쫙 전율이 흘렀다. 그 어디에서도 느끼지 못한 감동이 몸을 훑고 지나갔다. 내 눈으로 본 세상에서 가장 멋진 운무였다.

막걸리 홀짝이며 산에서 붓글씨

취한 듯이 광경을 보고 있노라니 가슴이 벅차오르면서 눈까지 촉촉해졌다. 아주 강렬한 감동의 체험이었다. 자연의 아름다운 풍광 앞에서 말문이 막히고 한없이 겸허해지는, 정말 정직한 나 자신을 보는 순간이었다. 살풀이춤 추는 듯 일렁거리는 운무를 내려다보면서 막걸리 한잔 생각이 간절했다. 막걸리 한잔 들이켜고 그 순간의 느낌을 글로 적는다면 아주 멋스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생각이 떠오르면 실행으로 옮길 때 결실이 있다. 그날 산 정상에서의 느낌이 간절했기에 다음에 축령산으로 가는 길에 문방구에 들러 붓 몇 자루와 먹물을 사서 등산 배낭에 넣었다. 산에서 '붓장난'하는 취미는 그렇게 해서 생겼다.

이른 아침에 산정에 홀로 자리를 펴고 앉아 막걸리를 홀짝이면서 붓글씨를 쓰는 느낌은 각별했다. 내가 마치 신선이라도 되는 듯한 착각에 빠질 때도 있고, 고매한 풍류를 제대로 즐기는 선비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자기만족이지만, 마음이 넉넉해지고 정신세계가 풍요로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옛사람들은 좋은 글씨를 쓰기 위해서 끊임없이 수련이 필요하다고 믿었다. 명필 한석봉의 일화는 유명하다. "어머니는 가래떡을 준비하고 아들은 벼루에 먹을 갈았다. 준비되자 어머니가 촛불을 꼈다. '너는 글씨를 써라. 나는 떡을 썰겠다.' 불을 밝히자 석봉의 글씨는 삐뚤삐뚤했으나 어머니가 썬 떡은 가지런했다." 수련이 부족함을 깨달은 한석봉은 더욱 피나는 노력 끝에 조선의 명필로 이름을 남겼다.

추사(秋史) 김정희도 칠십 평생 벼루 열 개를 구멍 냈고, 붓 천 자루를 몽당붓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길이 빛나는 훌륭한 작품은 예술가가 인고의 세월을 보내며 내공(內功)을 쌓아가며 부단히 노력할 때에만 가능한 것이다.

음악에 악보가 있듯이 서예에도 예로부터 내려오는 필법(筆法)이 있다. 이것을 중국 사람들은 서법(書法)이라 했고, 일본은 서도(書道), 우리는 서예(書藝)라고 부른다. 필법을 모르고 쓰는 글씨는 '붓장난'에 불과하다.

서예는 선과 점의 예술이다. 선의 움직임으로 기세와 율동미를 표현하고 붓이 움직이면서 만들어 내는 점과 선은 먹물의 진하고 엷음, 빠름과 느림, 멈춤 등을 통해 생동감으로 나타난다.

서예는 회화와 달리 소위 개칠(고치는 것)을 금기로 여기고 있다. 따라서 붓을 종이에 대고 순간적으로 날아가듯 일필휘지(一筆揮之)해야 기운생동(氣韻生動) 하는 예술적 가치가 살아난다. 빠르고 능숙한 운필(運筆)은 수많은 연습 끝에 손에 익는 것이다. 옛날 서당 훈장들은 한 글자를 수백에서 수천 번씩 되풀이해 쓰도록 가르쳤다.

서체는 크게 종류별로 볼 때 다섯 가지로 구분한다. 전서, 예서, 해서, 행서, 초서가 서예의 기본 5체(五體)인데, 옛 명필들의 글씨를 모범으로 삼아 수없이 모방하여 쓴다. 이러한 수련 과정을 임서(臨書)라 한다. 임서를 하면서 주의 깊게 글씨의 형태, 필획의 간격과 필선의 변화, 무게중심 등을 익히고, 수많은 서예 이론도 공부하게 된다.

그렇게 한 서체를 익히는 데도 대략 1만 장 정도의 연습이 필요하다고 한다. 기본 5체를 모두 익히려면 5만 장을 써야 한다는 산술적인 계산이 나온다. 수천수만 필의 연습 끝에 조건반사적 필력을 숙달한 것이다.

일본에서는 검도나 학문을 하는데 '수파리(守破離)' 방법을 따르는 사람이 많다. '수파리'는 선불교에서 나온 말인데, 서예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먼저 첫 번째 단계인 '수(守)'는 '가르침을 지킨다'는 뜻으로 모범이 되는 명필들의 글씨를 임서하는 단계다.

두 번째 '파(破)'는 기존의 틀을 깨고 독창적인 것을 수련하는 단계이고, 마지막 단계인 '리(離)'는 지금까지 배운 모든 것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서예가들은 무엇보다 반복된 연습을 중시한다. 연습량에 따라 행필, 능필, 달필, 명필의 글씨 등급이 가려진다. 연습은 수양의 과정이기도 했다. 기술만 갖고는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없는 것이 글씨다.

예로부터 서예는 쓴 사람의 정신과 사상, 인격과 인품이 다 드러나는 예술이라고 불렀다. "마음이 바르면 글씨도 바르다(心正則筆正).", "글씨를 보고 사람을 안다(觀書知人)."라며 사람 됨됨이를 강조한 것도 그 때문이다.

의재필선(意在筆先)이라는 말이 있다. 붓질보다 뜻이 먼저라는 의미다. 서성(書聖)으로 추앙받는 왕희지가 한 말이다. 서예가는 글씨를 쓰기 전에 반드시 곰곰이 헤아려 보고 어떻게 뜻을 세워서 작품을 할 것인가를 고려해야 한다. 고상한 뜻이 우러나려면 그 바탕에 깊은 학문이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추사 김정희는 '문자향(文字香) 서권기(書卷氣)'라 했다. 책을 많이 읽고 교양을 쌓아야 글씨에 문자의 향기가 나고 책의 기운이 풍긴다는 뜻이다.

나는 정식으로 서예를 배운 적이 없고, 서법을 연습하지도 않았다. 독창적인 점 하나, 선 하나를 얻기 위해서는 백련천마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기에 연습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하지만 훗날 시간적인 여유가 생긴다면 기초부터 시작할 생각이다.

서예가가 아니라서 지금은 내 마음 내키는 대로 쓴다. 붓장난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마음공부의 좋은 방편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글을 보거나 생각이 떠오르면 산에 가서 붓글씨로 쓰려고 수첩에 적는 습관이 생겼는데 그것이 바로 나를 위한 좋은 공부였다고 생각한다.

자주 쓰는 말에 심전경작(心田耕作)이란 구절이 있다. 마음의 밭을 간다는 뜻이다.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비록 배추장사를 할지라도 사람의 도리를 생각하고, 마음의 밭을 아름답고 윤택하게 갈아야 한다. 붓에다 먹물을 묻혀 삶의 지표가 될 수 있는 글귀나 생활의 멋을 노래한 시구(詩句)를 한 자 한 자 쓰다 보면 그 뜻이 가슴에 새겨진다. 그냥 눈으로 글씨를 읽는 것과 정신을 집중하여 종이에 쓰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산에서의 붓장난은 혼자서 유유자적 즐길 수 있어서 좋다. 작가에게 홀로라는 건 필수다. 홀로 몇 시간이라도 그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있는 인내와 끈기가 필요하다. 가만히 앉아 산 아래를 내려다보면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사라진다.

대자연의 품에 안겨 묵향을 맡으며 하얀 종이 위에 좋은 글귀를 쓰고 있노라면 마음이 저절로 즐겁고 흐뭇해진다. 숲을 지나는 바람은 세파에 거칠어진 내 마음과 생각을 성찰하고, 지저귀는 새소리는 세파에 무뎌지고 때 묻은 내 귀를 씻어주는 듯하다. 그런 생각과 느낌이 참 좋다.


태그:#인문학적 붓장난, #축성여석의 글방, #산에서 즐기는 색다른 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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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문학 21』 3,000만 원 고료 장편소설 공모에 『어둠 속으로 흐르는 강』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고, 한국희곡작가협회 신춘문예를 통해 희곡작가로도 데뷔하였다. 30년이 넘도록 출판사, 신문사, 잡지사의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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