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그 날이, 2017년이라는 화폭 위로 쏟아진다. 8월이지만 5월의 서늘함이 가득하다. 시간 위로 시간이 포개지는 걸 보니 매체의 힘이 대단하긴 한 모양이다. 영화 <택시운전사>가 환기시킨 1980년 5월 광주의 기억이 온데 사방에 펼쳐진 기분이다.

광주의 기억을 담아낸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소설, 웹툰, 영화 등 그간 다양한 매체에서 이걸 다뤘다. 영화로 제법 알려진 <화려한 휴가>(2007)만 해도 그렇다. 당시 680만 관객을 모았다. 천만을 넘은 <택시운전사>에 비해 못 미치지만 초라한 성적은 아니다.

"계엄군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광주 시민 여러분, 우리를 잊지 말아 주십시오."

80년 광주 시민군 가두방송의 외침은 여러 매체와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 재현됐지만, 잊지 말아 달라는 당부가 더 없이 증폭된 것은 바로 요즘이 아닌가 싶다.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주요 내용을 차지하는 독일 외신 기자 이야기는 십여 년 전 방영한 다큐멘터리 <푸른 눈의 목격자>(KBS, 2003)에서 이미 다룬 바 있다. 동일한 소재, 유사한 줄거리, 여러 모로 흡사한 점이 많지만 기억이 증폭되어 재현되는 양상은 많이 다르다.

단순히 천만 관객 앞에서 기억을 재현한 까닭이 아니다. 영화의 흥행몰이 못지않게 파급을 주는 이야기들이 뉴스로 연일 보도된다. 흡사한 듯 다른 기억의 재현. 이를 둘러싼 또 다른 재현의 파편들. 과연 무엇이 다른지, 어떤 지점에서 다른 양상을 자아내는지 곰곰이 따져보며 한 번 살펴보자.    

1. 지상파 다큐멘터리는 영화보다 휘발성이 강하다.

2003년 지상파 채널인 KBS에서 일요스페셜로 <푸른 눈의 목격자>를 방영했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프로그램을 시청했을까? KBS가 공영방송 지상파인 점을 감안해도 다큐멘터리라는 장르 특성이 발목을 잡는다. 드라마 50% 시청률은 있어도, 다큐멘터리 50% 시청률은 없다. 그러니 전국구 방송이라도 실제 시청자는 적을 수밖에.

KBS 홈페이지에 가면 <일요스페셜> 다시보기 서비스가 있고, 최근 영화 흥행과 더불어 며칠 전 <특선 다큐>로도 재방영(8/19)을 했지만 이는 엄연히 영화의 매체 소비 시스템과 다르다. 매체 소비 욕구 자체가 다르다. 영화는 지상파 다큐보다 소비 성향이 짙다. 비용을 지불하고 소비를 작정하는 관객은 지상파 다큐를 시청할 때보다 강렬한 동인으로 엮인다. 결국 관객의 소비 욕구가 콘텐츠를 보다 시선 앞에 붙잡아 두는 셈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지상파 다큐는 상대적으로 동인이 약하다. 때문에 지상파 다큐는 영화보다 휘발성이 강할 수밖에 없다.

2. 그럼에도 실존 인물의 내러티브가 갖는 힘이 있다.

내러티브가 중요하다고 많이 말한다. 내러티브가 갖는 힘 때문이다. 제 아무리 팩트의 요새를 건설해도 무미건조한 팩트보다 내러티브가 대중에게 더 확실히 와 닿기 때문이다. <택시운전사>가 <화려한 휴가>보다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시민군 가두방송의 목소리 주인공이 여전히 생존해 있고 <화려한 휴가>를 통해 재현됐지만, 그 자체가 내러티브의 주축을 이룬 작품은 아니다. 반면에 <택시운전사>는 실존 인물인 택시기사 김사복씨와 외신 기자 힌츠페터가 주축이 된 내러티브를 갖고 있다.

그리고 다큐인 <푸른 눈의 목격자>에서는 가늠하기 힘든 목격자의 당시 감정이 <택시운전사>에서는 현재의 시점으로 재현된다. 모든 증언을 "~했다","~었다"와 같이 과거 투로 팩트를 나열하는 다큐와는 분명 다르다. 과거의 시점을 현재화 시키는 것도 내러티브가 갖는 특수한 힘이다.

3. 관객이 참여하는 과제, '김사복 찾기'

영화 속 주인공이자 실존 인물인 외신 기자 힌츠페터는 2016년 1월 세상을 떠난다. 영화는 실제 사연대로 힌츠페터가 김사복을 수소문 하지만 끝내 찾지 못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이 지점이 영화의 내러티브와 현실을 잇는다. 더 정확히 말해 김사복이라는 인물 자체가 영화와 현실을 잇는다.

이처럼 실존 인물을 중심으로 한 내러티브가 현실과 이어지는 작품들이 종종 있다. 대체로 이미 운명을 달리한 역사 속 인물이 아닌 현존하는 인물일 경우 그러하다. 예로써 비인기 스포츠 종목을 소재로 한 <국가대표>,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라든지, 노동 현실을 고발한 <카트>, <송곳>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예로 든 이 작품들은 실존 인물들과 관련한 과제를 관객들에게 직접적으로 던지지 않는다. 다만 간접적으로 간파한 관객들이 실존 인물들의 처지를 헤아릴 뿐이다. 그리고 간파했더라도 '비인기 스포츠 종목 지원 육성'이나 '노동계 현실 개혁'과 같은 부분들은 일반의 대중인 관객들에게는 부담일 수밖에 없는 영역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택시운전사>가 말미에 직접적으로 던지는 '김사복씨의 행방 추적'은 부담되지 않는 과제다. 영화가 끝난 후, 상영관 바깥으로 관객들이 쏟아져 나옴과 동시에 '영화 속 김사복의 행방'은 '현실의 김사복 찾기'로 자연스레 연결된다. 더욱이 프로파일링 하나는 세계에서 제일가는 네티즌이 관객이니 두말하면 잔소리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관계없다. 관객이 참여하는 과제, '김사복 찾기'는 영화가 재현하는 1980년 5월 광주의 기억을 확장한다. 다시 말해 관객의 참여 속에 기억의 재현은 증폭된다.  

4. 세월호․ 탄핵․ 새 정부, 역사와 정치에 대한 최근의 기억  

세월호. 탄핵 정국. 그리고 새 정부와 함께한 100일. 국민들은 같은 시간을 지나왔다. 저마다 다른 삶의 자리에서 개인적인 일상을 살기도 했겠지만, 국가라는 울타리 안에서 공동으로 경험한 바는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강렬한 것이었다. 타인의 삶이 죽음으로 바뀌는 결정적 순간에도 내 삶은 아무런 기여조차 하지 못했다는 절망감. 바다 한 가운데 여객선이라는 폐쇄된 영토 안에 갇혀 다른 국민으로 낙인찍히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 이 모든 게 너무도 깊게 새겨져 버렸다. 말로 새긴 다짐은 쉬이 사라지지만, 몸에 새긴 다짐은 행동으로 옮겨지게 마련이던가. 국민들은 몸에 새긴 기억과 다짐의 힘으로 촛불을 들었다. 그리고 새 정부가 들어섰다.

새 정부가 출범한지 여드레. 광주 민주화 운동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대통령은 당시 아버지를 잃은 유족을 품에 안았다. 또한 얼마 전 대통령은 힌츠페터의 부인과 <택시운전사>를 관람했다. 이전 정권에서는 블랙리스트를 두기까지 통제를 자임한 반면, 새 정부는 광주의 기억을 재현하는 일이 더 이상 눈치 보는 일이 될 수 없다는 무언의 상징을 보여주었다. 덕분에 '김사복 찾기' 못지않게 그 날의 광주 시민들을 폭도로 몰아간 주체들을 재론하는 이야기도 활발하다. 영화가 불러 낸 기억이 또 다른 기억의 파편들을 끄집어 낸 셈이다.

비록 영화는 과거를 다루고 있지만 현재와 맞닿아 있다. 그리고 현재를 살고 있는 대중의 몸에는 무늬가 새겨져 있다. 즉 폐쇄된 영토에 갇힌 목숨들이 스러지는 걸 함께 지켜 본 최근의 기억들은 지울 수 없는 무늬를 새겼다. 하지만 이 무늬는 그 자체로 스크린이 재현하는 광주의 기억들을 받아 낼만한 훌륭한 화폭이기도 하다. 그리고 또 다른 기억의 파편들과 이어주는 길이기도 하다.

그 동안 우리 안에 어떤 무늬도 길도 새길 수 없어서 충분히 재현하지 못했거나 증폭시키지 못했던 것에 반해, 지금은 다르다. 흩어진 기억을 소환할 무늬들도 짙고 파편들을 이을 길도 무성하다. 잊지 말아 달라는 외침이 그 짙고 무성한 숲에서 울린다. 할 수만 있다면 외침도 메아리도 잦아들지 않게 숲을 잘 가꾸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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