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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자 쉬레딩거의 사고 실험
▲ 쉬레딩거의 고양이 물리학자 쉬레딩거의 사고 실험
ⓒ aminoapps.com/page/com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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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죽어 있거나 혹은 살아 있거나 하는 게 아니다. 죽어 있으면서 살아 있고 살아 있으면서 죽어 있다. 말하자면 생존과 죽음이 중첩된 혹은 공존하는 상태이다. 동일한 존재가 살아 있기도 하고 죽어 있기도 하는, 혹은 입자이기도 하고 파동이기도 하는, 도저히 말도 안되는 양자 역학의 역설(paradox)을 드러내기 위하여 고안해 낸 사고 실험을 '슈뢰딩거의 고양이'라고 일컫는다.

창안자의 동기나 취지와는 상관없이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비유와 은유, 우화와 지적 유희거리로 변환되고 소비되고 있다. 누군가가 슈뢰딩거의 기일에 "아, 오늘은 슈뢰딩거가 죽었으면서 살아 있고 살아 있으면서 죽은 날이군"라고 농담을 한다면 웃음을 자아낼 수 있다.

그러나 이 글은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아는 체 하려는 글이 아니다. 결코 아니다. 고 박정희 대통령을 비판하거나 비하하려는 뜻도 없다.

그러면 무엇인가? 교학사의 <새국사 사전>을 소개하려 함이다. 이 사전은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역사 서술에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놀랍다.
 
아래 표제어를 들여다 보자.  
교학사 국사사전
▲ 박정희 교학사 국사사전
ⓒ 교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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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혁명가'라는 단어에 시선에 가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1917-1979'에 주목해 보자. 생몰 연도 아닌가. 이게 무슨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는가, 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면 본문을 읽어 보자. 박정희가 세종대왕에 못지않은 찬양을 받고 있다고 해서 놀라지 말자. 정작 놀랄 일은 다른 데 있기 때문이다.

"1960년 3.15 부정선거 당시 부산 군사기지 사령관으로서 자유당 정권의 부정선거 지령에 항거, 투표용지를 파기했다...중략...그 뒤 부패 무능한 약체 정권을 제거하기 위하여 청년 장교들을 규합, 1961년 5월 16일 육군 소장으로 혁명군을 지휘하여 서울을 장악함으로써 무혈 군사 혁명에 성공했다...중략...

...오는 80년에는 100억불 수출, 1000불 소득의 목표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그 동안 대화가 막혔던 남북 관계를 남북 조절 위원에서 7.4 공동 선언까지 합의를 보았으며, 수차에 걸쳐 자유 우방을 순방했으며, 6.23 특별 외교 선언으로 적극적인 외교 정책으로 동구권에도 문호를 개방, 우리나라 국제적인 위치를 높혔다."(끝)

교학사 본문
▲ 박정희 교학사 본문
ⓒ 교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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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어에는 1979년에 사망한 것으로 되어있으나 본문에서는 살아 있는 현직 대통령이다. 그래서 다가오는 80년 구상까지 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이 사전은 2013년에 증보된 것이다. 아마 그후로도 간행되고 있을 터이다. 그러니까 박정희가 이 사전에서 살아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살아 있다. 죽어 있으나 살아 있고 살아 있으나 죽어 있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연상시킨다.

이는 아마도 세계 최초의 슈뢰딩거 필법(춘추 필법이 아니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게 좀 심오한 요소가 하나 더 있는 것 같다. 양자 역학에서는 관찰 대상의 본질을 규정할 수 없다고 한다. 관찰자의 생각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관찰자가 어떤 생각에 의해, 어떤 관찰 프레임으로 관찰하느냐에 따라 대상의 본질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이를테면 전자(electron)는 관찰자의 마음 먹기에 따라 즉 관찰 방법에 따라  입자로도 나타나고 파동으로도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전자는 입자이면서 파동이고 파동이면서 입자라는 것이다. 실로 얼통당토 않은 소리가 아닐 수 없다. 뜨거운 아이스크림처럼 말이다.

하지만 양자 물리학의 세계가 그렇다고 한다. 교학사의 박정희는 어떠한가. 관찰자가 어떤 마음으로 바라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 있지 않는가? 만일 박정희를 신으로 보고 있다면 이미 그가 사망했다는 사실은 보이지 않을 것이다. 죽어 있으면서도 살아 있게 된다. 교학사 혹은 뉴 라이트들의 심오함은 이처럼 헤아릴 길이 없다. 박정희 항목만 이렇게 심오한 건 아니다.

이 사전은 각 왕조에 대한 개설을 길게 싣고 있는데 "조선 시대"란에는 하필이면 '이씨 조선'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조선 총독부가 강요했던 용어 아닌가.
교학사 국사사전 표기
▲ 이씨 조선 교학사 국사사전 표기
ⓒ 교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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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또한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연상시킨다. 지금이 일제시대이면서 일제 시대가 아니다. 일제시대가 아니면서 일제 시대이다.

우리가 이 사전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그 출판사가 바로 지난 정부에서 그토록 보급하려고 집착했던 국사 교과서의 산실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어리석은 백성들에게' 그토록 심어주고자 했던 심오한 역사관이 바로 이 사전에 담겨 있는 것이다.

이 사전에 '위안부' 항목은 없다. 없는 건 그 뿐이 아니다. 박정희와 한 살 차이라는 광복군 출신 장준하는 물론이고 1933년 한중연합군의 총참모장으로 대전자령(大甸子嶺)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독립군 사령관 이청천(1888-1957)도 등재되어 있지 않다. 광복군 출신은 언급할 가치가 없다는 것일까? 이게 단순한 실수일까? 이 사전은 반민 특위에 대해서는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1949년 1월 12일...구성을 완료하고 사업에 착수하였으나 여론의 비등과 정부의 비협조로 지지부진하였다.....동년 8월 22일 특별조사기관과 이에 딸렸던 부속 기관의 폐지안이 국회에서 통과함에 따라 정식으로 폐지되었다. (끝) 
교학사 <새 국사 사전> 481쪽

한영우( 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교수,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의 <다시 찾는 우리 역사>를 보자

1948년 9월 국회의 양심적인 소장의원들은 '반민족행위자 처벌법(반민법)'을 국회에 상정하고 '반민족행위 특별조사위원회'(약칭 반민특위)와 특별재판부를 구성하여 반민족 행위자를 체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들의 활동은 처음부터 거센 저항을 받았다. 이승만의 비호 하에 경찰이 반민특위를 공격하는 등 갖가지 방해로 친일파 처단은 유야무야로 끝나고, 1950년 6월 20일로 규정된 반민법의 시효 기간을 1949년 8월 31일로 단축한 법안이 통과됨으로써 반민특위는 해체되고 말았다. 이승만의 친일파 포용은 민족문화의 정상적 발전을 저해하고,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남게 되었다.-579쪽-

교학사 사전에서는 친일 세력을 동원하여 반민특위를 습격한 이승만의 죄과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찾아 볼 수 없다. 이승만의 이름도 나오지 않는다.

이 사전은 평범한 사전이 아니다. 우리나라에 유통되고 있는 유일한 종이 국사 사전이고 지난 정부가 그토록 집착했던 역사관이 담겨 있는 사전이다. 그 뿐이 아니다. 서울시 문화상, 한국 출판문화상에 빛나는 사전이다. 참으로 우리를 부끄럽게 하기에 족하다.

서울시 문화상, 한국 출판 문화상 수상
▲ 교학사 국사 사전 서울시 문화상, 한국 출판 문화상 수상
ⓒ 교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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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누가 이 사전을 심사한 것일까? 심사위원들과 관계 공직자들은 모두 까막눈이었을까? 왜 지금도 이런 사전이 수정되지 않은 채 건재할 수 있는 것일까?

이들은 왜 박정희 신화와 이승만 우상화에 이토록 공을 들이는 것일까. 왜 광복군 출신의 자랑스런 인물은 싣지 않는 것일까? 해방된 지 72년이 된 지금에도 말이다.

이 사전은 우리에 이런 의문을 던진다. 우리가 지금 해방이 되기는 된 건가?  해방이 되었으나 안 되어 있고, 해방이 안 되어 있으나 되어 있는 우리 시대의 오묘하고도 부끄러운 자화상을 이 사전은 여실히 보여 준다. 이 사전은 수정없이 보존해 둘 가치가 있다. 한 시대의 어둠을 증언하는 사료로 말이다.

역사를 국정화하려 했던 시대의 어둠은 사라졌다. 그러나 아침이 왔다고 말할 수 있을까?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언제든지 살아날 수 있다. 아니, 지금 살아 있는지도 모른다.


태그:#박정희, #교학사, #뉴 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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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만남이길 바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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