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도보여행, 자전거여행, 캠핑여행, 사진여행 등 여행의 모습은 참 다양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여행의 양상은 좁아져간다. 체력과 모험심, 호기심이 줄어들면서 안전하고 번거롭지 않은 패키지 혹은 단체여행을 하게 된다. 이 책 <마을버스 세계를 가다>는 나이라는 숫자를 넘은데다, 여행수단으로 동네 마을버스를 직접 운전하며 세계 일주를 한 특별한 여행기다. 책 표지에 나온 글이 그대로 공감가는 여행기다. '용기있는 도전이 즐거운 인생을 만든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나중에 해야지' 하며 미루어놓은 나만의 여행계획이 어쩌면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의 여행을 무모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공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마을버스 제조사는 차가 오래 달릴 수 있도록 부속품을 갈아주고 정비를 해주었고, 어느 레저 관련 회사는 마을버스 안에서 먹고 잘 수 있도록 캠핑장비와 의류를 여행이 끝날 때까지 무상 지원해 주었다.   

책 표지.
 책 표지.
ⓒ 메디치미디어

관련사진보기

은퇴한 50대 남자의 무모하고 기발한 여행 

쳇바퀴 돌 듯 정해진 코스를 맴도는 게 일상인 마을버스의 인생이 쉰 줄에 들어선 내 인생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두려워졌다. '나도 이대로 끝나는 게 아닐까?' - 본문 가운데 

은퇴 후 꿈이었던 여행가의 길을 위해 여행작가학교에 다니던 저자는 학우 2명과 함께 이 무모하고 기발한 여행을 저지르게 된다. 버스가 소속된 회사이름이 은수교통이라 '은수'라고 이름붙인 마을버스는 폐차를 6개월 남긴 낡은 버스다. 정해진 노선을 따라 좁은 동네 길을 뱅뱅 돌며 평생을 보냈을 은수의 모습에, 저자는 50대 나이가 될 때까지 가족을 부양하며 쳇바퀴 돌 듯 살아온 자신의 삶을 투영하고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낀다.

평생 시속 60킬로미터의 정규 속도로만 달려온 은수는 후일 남미의 칠레에서 시속 120킬로미터의 속도로 앞의 대형차를 추월한다. 이 책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으로 꼽을 만한 사건이다. 당시 저자는 이런 생각이 들었단다. '미리 나의 한계를 정해놓고 도전하지 않으면 죽을 때 후회한다.'

마을버스를 직접 운전하며 677일 동안 48개국을 여행하다보니 다른 여행기에선 볼 수 없는 이야기들이 속출한다. 여러 사람들 태울 수 있다 보니 지나가는 다양한 국적의 배낭 여행자들과 여정을 함께 하는 바람에 여행기가 더욱 풍성해지고 활력이 넘치게 됐다.

고급 캠핑카가 아닌 낡은 미니버스여서인지, 마을버스 은수는 어디를 가더라도 사람들을 불러 모으며 주민들의 관심과 도움을 받기도 한다. 현지 신문에 기사로 나와 유명인사가 되기도 한다. 특히 탈진해 멈춰서버린 은수를 기꺼이 혹은 돈도 받지 않고 고쳐주는 사람들과의 이야기는 감동적이었다.

여행의 묘미는 풍경보다 사람

마을버스 '은수'와 저자.
 마을버스 '은수'와 저자.
ⓒ 메디치미디어

관련사진보기


여행 내내 낯선 길과 마주했다. 길은 숙명처럼 피할 수 없었고 내 몸은 늘 긴장과 싸워야 했다.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온몸이 떨려왔다. 그때마다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워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 본문 가운데 

해외에서 유학중인 아들을 찾아가 은수를 타고 보름간 함께 여행한 것도 빼놓을 수 없겠다. 여행 마지막 날, 평소 말수가 적은 아들은 이번 여행에서 평소와 전혀 다른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 많은 걸 배웠다면서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되었다고 고백한다.

이번 여행은 저자에게 여행의 묘미는 풍경보다 사람이란 걸 깨닫게 되는 경험이었단다. 그래서일까 저자가 여러 나라에서 만났던 아픔을 겪는 사람들 사연은 더 아릿하게 다가온다. 멕시코에서 아이들 사진을 찍으면 긴급 체포되는 이유, 십 대의 나이에 아버지가 정해준 남자와 결혼해야 하는 어느 중동국가, 극심한 빈부격차로 악명 높은 좀도둑 도시가 된 로마와 나폴리...

마을버스 세계여행은 전례가 없다보니 예상 못한 힘든 사건들도 겪게 된다. 같은 석유지만 나라마다 기름의 질이 달라 사람으로 치면 체하고 병이 나 막막한 도로에서 멈춰서 수리를 받아야 했던 마을버스 은수, 가파르고 험해 인사 사고가 많이 나서 '죽음의 도로'라고 불리는 것도 모르고 식은땀을 흘리며 안데스 산맥의 어느 산길을 느릿느릿 하루 종일 넘어가던 일.

결국 좀도둑이 많기로 악명이 높은 로마에서 버스 앞문을 뜯기고 카메라, 외장하드가 든 가방들을 도둑맞는다. 게다가 수시로 탈이 나 달리다 멈추기를 수없이 반복하는 마을버스... 이렇게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겪으면서 갈등이 생겼고 저자는 일행이었던 두 명의 친구들과 중간에 그만 헤어지기도 한다.

여행 말미 러시아에 도착한 저자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한 달간이나 머물면서 배를 타고 북한에 입국, 판문점을 통해 귀국하려 했지만 아쉽게도 이루진 못했다. 개성공단이 폐쇄될 정도로 남북관계가 악화된 시기였던 것이 컸다. 책 곳곳에 들어있는 여행사진들도 흥미롭다. 남미 안데스 산맥을 넘고, 터키 카파도키아의 고원지대를 달리고, 마침내 뉴욕 타임스퀘어에 정차한 녹색의 마을버스 사진은 친숙하고 생경하면서도 절로 여행심을 추동한다.

덧붙이는 글 | 임택 (지은이) | 메디치미디어 | 2017-06-25



마을버스, 세계를 가다 - 종로12 마을버스와 함께 677일 48개국 세계여행

임택 지음, 메디치미디어(2017)


태그:#마을버스세계를가다, #임택, #세계일주여행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