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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60년을 종합하는 전시회가 열리다

조선일보미술관 소원문은희 개인전 포스터
 조선일보미술관 소원문은희 개인전 포스터
ⓒ 문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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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8월 29일부터 9월 4일까지 조선일보미술관에서 소원문은희전이 열렸다. 이 전시회는 문은희의 인생 60년을 정리하는 의미가 있었다. 그래서 1956년 미술대학 2학년 때 청전화실에서 그린 산수화로부터 1991년에 그린 누드 군상까지 100여 점 작품이 전시되었다. 일본에서 호평 받은 두 점의 4폭 병풍과 34m, 40m 짜리 누드 프리즈도 포함되었다.

이때 도자기도 10점 정도 전시되었다. 그때까지 제작된 백자 진사(辰砂)와 철사(鐵砂)에 목련이나 추상이 들어간 작품이 있고, 새롭게 제작된 백자 진사와 철사 나부도(裸婦圖)가 있다. 이처럼 누드가 들어간 도자기는 80년대 후반 새롭게 시도된 것으로 의미와 가치가 있다. 그런데 도자기 누드는 수묵 누드처럼 칼날 같이 그릴 수 없어 그림의 예술성은 떨어지는 편이다. 그것은 도자기에 먹이 잘 스며들지 않기 때문이다.

누드 도자기
 누드 도자기
ⓒ 문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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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도자기는 가운데 배가 부른 형태기 때문에 누드를 그려넣기가 더욱 어려웠다. 그나마 접시에 그린 누드는 평면이어서 상대적으로 눈에 더 잘 들어오는 편이다. 도자기는 화병, 주병, 항아리, 접시 등 다양한 용도로 만들어졌다. 주병에는 손잡이가 달린 것이 많다. 그런데 이들 누드 도자기 역시 판매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집의 거실에 전시하기가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조선일보미술관 전시회도 찾는 사람은 많았지만, 돈을 벌지는 못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전시회는 늘 적자를 면치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가가 관객을 만나지 않으면 존재 의미가 없기 때문에 또 다시 전시회를 여는 것이다. 문은희의 그림 인생에서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은 때가 없었다. 그런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어려움이 어느 순간 해결되었다는 사실이다. 해결의 주체는 늘 어머니였다. 그 때문에 문은희는 도움을 준 어머니를 잊지 못한다.

전시장을 찾은 운보 김기창 선생
 전시장을 찾은 운보 김기창 선생
ⓒ 문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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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미술관 전시회를 찾은 사람으로는 운보 김기창 선생이 있다. 개막 첫날부터 찾아 그림에 대해 조언해 주었다. 단국대학교 석주선 민속박물관이 찾아 격려해 주었다. 석주선 선생도 문은희의 전시를 늘 찾아주는 사람이다. 이가원 선생도 전시회를 찾아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눴다. 샘터사 사장과 국회의장을 역임한 김재순 의원도 전시장을 방문했다. 홍익대 서양화과 교수를 지낸 이종무 선생도 왔고, 코주부 만화로 유명한 김성환 화백도 왔다. 

붓과 생명의 합일

인간 내면이 잘 표현된 누드 군상
 인간 내면이 잘 표현된 누드 군상
ⓒ 문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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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미술관 전시회 평론은 영문학자이자 불교학자인 김구산이 썼다. 김구산은 1977년 문은희의 광주 순회전을 찾아와 인연을 맺은 후 항상 문은희의 그림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 왔다. 그는 문은희가 일본 전시에서 크게 성공한 것을 높게 평가했다. 그리고 조선일보 전시회에 나온 문은희의 누드화에서 "붓과 생명의 합일"을 찾아내고 있다. 여기서 붓은 표현의 도구를 말하고, 생명은 표현된 대상을 말한다.

김구산은 문은희의 누드화에서 생명의 본질을 찾아내고 있다. 문은희는 누드의 율동과 표정을 통해 인간 내면의 숨결과 리듬을 드러낸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누드화를 통해 인간 내면의 심오한 본성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녀의 누드화를 조형으로서의 예술인 동시에 메시지와 절규로서의 퍼포먼스로 보고 있다.  

1990년의 수묵 누드 작업
 1990년의 수묵 누드 작업
ⓒ 문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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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우선 소재로서 여체의 누드를 선택했다. 누드에는 자연의 정교한 아름다움과 더불어 생명의 율동과 표정이 있다. 그것은 단순한 형태가 아니라 살아서 움직이며, 인간의 내면을 시시각각 밖으로 드러내는 주체로서의 소재다. […] 작가가 붓으로 선의 농담, 강약, 완급을 통하여 표현한 누드 크로키에는 눈에 보이는 형체 그 너머에 깃들어있는 내면의 숨결과 생명의 리듬이 느껴진다."

그는 문은희 수묵 누드의 특징을 동양화적인 관점에서 설명한다. 일회성과 반복성이다. 일회성은 동양화가 가지는 선묘(線描)의 특징으로, 일필휘지로 그려내는 기교를 말한다. 칼로 대상을 베어내는 것처럼 한 획으로 결단을 내는 것이다. 이러한 일회성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수백 번의 반복과 시행착오를 겪어야 한다. 이것이 반복성이다. 백 장을 그려 한 장을 선택한다고 하지 않는가!

그림 40년, 누드 10년 이상의 결실이 문은희의 수묵 누드다. 그러므로 그녀의 누드화에서는 형태가 제공하는 조형미 이상으로 생명의 숨결이 느껴진다. 그 숨결 속에 삶의 고통과 한이 들어있고, 관객들에게는 고뇌하는 인간의 몸짓으로 다가가는 것이다. 김구산은 소원의 수묵 누드화가 한국미술의 수준을 향상시켰다고 말한다. 그리고 소원의 개인전이 한국 화단에 자극과 활력소가 되길 기대한다.

80년대 말부터 누드화 배경에 색이 들어가다

배경색이 검은 누드 군상(1987)
 배경색이 검은 누드 군상(1987)
ⓒ 문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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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은희의 누드 붓질은 40대인 1985년 시작되어 80년대 말 일본 전시를 통해 완성도가 높아졌다. 그리고 1980년대 말은 수묵 누드의 기량이 지속적으로 발전하던 때이다. 이 때 문은희는 배경에 색을 넣는 또 다른 시도를 한다. 새로운 시도 그것은 문은희의 숙명이었다. 그는 1990년대 누드 콜라주로 넘어가고, 2000년대 들어서는 수묵 누드 파지를 이용한 지공예를 시도한다.

문은희의 수묵 누드는 크로키로 화선지 위에 검은 선으로 순식간에 형태를 표현하는 선묘다. 그러므로 흰 바탕에 검은 선으로 칼날 같이 표현된다. 그런데 1987년부터 이런 경향을 벗어난 수묵 누드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누드화 배경이나 육체에 색이 들어간 것이다. 1987년 누드 군상이 그렇다. 비슷한 시기 누드화로 몸을 검게 그린 그림도 있다. 어떤 연유에서 또 어떤 계기로 이런 그림을 시도하게 되었는지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평면성과 역동성이 강조된 누드
 평면성과 역동성이 강조된 누드
ⓒ 문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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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새로움을 추구하는 문은희의 성향 때문으로 보인다. 그런데 시각적인 면에서는 이러한 그림들이 관객의 시선을 더 오래 머무르게 한다. 그것은 선묘보다는 입체감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배경색이 있는 누드화에 서양적인 기법도 나타난다. 선묘에 점묘가 도입되기 때문이다. 1990년 작품에는 채색도 일부 들어간다. 문은희의 누드는 늘 이렇게 새롭게 변화 발전해 간다.

1990년 누드화 중 평면성이 강조된 것이 있는가 하면, 1991년 누드화 중에는 입체성이 강조된 것도 있다. 이것을 어떤 사람은 개성이라 표현하고, 어떤 사람은 원숙미라 표현한다. 문은희 누드의 개성과 원숙함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1991년이 수묵 누드의 절정기다. 그것은 그 후 더 이상 새로운 시도의 수묵 누드를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1994년 이후 문은희는 누드 콜라주로 넘어간다. 

언론에 표출된 전시회 이야기

조선일보미술관 문은희 개인전 기사
 조선일보미술관 문은희 개인전 기사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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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미술관의 문은희 전시회는 <스포츠 조선>과 <주간조선>에서 비중 있게 다뤄졌다. 그것은 이들 두 매체가 조선일보 계열사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수묵 누드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문은희가 화단에 끼진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스포츠 조선> 기사가 전시회를 알리는 성격이라면, <주간조선> 기사는 전시회를 결산하는 성격이다.

<스포츠 조선> 기사는 전시가 시작되는 8월 29일자 '금주의 작가'란에 실렸다. 제목은 "육순의 집념…'수묵누드' 개척했다"이다. 이곳에서 문은희는 수묵누드라는 독창적 영역을 개척한 집념의 화가로 소개되고 있다. 30년 한국화 경력에 10년 수묵누드 작업을 더해 여체의 에로티시즘을 예술로 승화시켰다고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1992년 4월 파리 한국문화원에서 작품전이 예정되어 있음을 알리고 있다. 

1991년작 누드 군상
 1991년작 누드 군상
ⓒ 문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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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비해 <주간조선> 기사는 내용적인 면에서 좀 더 심층적이다. 여기서는 "나부 그리면서 구원 얻었다"는 사실을 강조해, 문은희 화가의 예술혼에 중점을 맞춰 기사가 쓰여졌다. 나이 마흔 아홉에 큰 시련이 있었고, 그 고통을 벗어나기 위한 구도의 노력이 누드 크로키였다는 것이다.

"모든 예술분야가 그렇듯이 그림 그리는 일도 언제나 새로운 스타일을 창조해내지 않으면 인정받기 어려운 겁니다. 수묵누드는 이제까지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덕분에 눈길을 끌었다고 봅니다. 이 작업은 필력과 인내와 경제적 뒷받침이 따르지 않으면 어렵기 때문에, 그 동안 아무도 도전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일본 미술평론가들이 찬사를 아끼지 않았는데, 한국인으로서 뿌듯한 긍지를 느꼈습니다."

'화제의 인물'이라는 타이틀을 단 이 기사는 전체적으로 도쿄 수묵누드 전시회에서의 호평과 누드화집 발간 외에도 문은희의 그림 인생, 수묵 누드의 어려움 등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인생 60을 맞이한 문은희가 수묵누드화에 온힘을 기울여 매진하겠다고 다짐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태그:#조선일보미술관, #소원문은희전, #김구산, #새로운 누드화, #화제의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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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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