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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양보에 물이 고여 작은 저수지가 됐다. 오른쪽 다리가 금강산전기철도가 다녔던 철교다.
 용양보에 물이 고여 작은 저수지가 됐다. 오른쪽 다리가 금강산전기철도가 다녔던 철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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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오후 2시, 'DMZ 생태평화공원 생태탐방로 걷기여행' 팀 32명은 제2코스인 용양보 탐방로를 향했다. 환경부와 국방부가 60여 년만에 개방한 생태평화공원인 철원 생창리 일대의 십자탑과 용양보 생태 탐방로를 연계한 '체류형 걷기여행'이다.

제2코스는 화강(옛 남대천) 상류 생태계 탐방이 주축을 이룬다. 용양보 수변과 습지탐방은 물론 번성했던 옛 김화군의 역사와 금강산전철에 얽힌 사연도 담겨있다. 용양보 탐방로는 약 10km이며, 3시간 반 정도 걸린다.

옛 금강산 철교가 용양보로 재탄생

금강산전기철도를 이용해 보를 막은 용양보 모습. 현존하는 최북단 보다.
 금강산전기철도를 이용해 보를 막은 용양보 모습. 현존하는 최북단 보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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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양보는 철책선 인근에 위치해 각종 희귀 동식물이 가득하다. 용양보로부터 화강 남쪽 탐방로 구간은 겨울철새인 두루미 월동지이다. 군검문소만 없으면 용양보 탐방로로 가는 길 주변의 농가 모습은 평화로운 농촌과 다를 바 없다. 병풍처럼 드리워진 주변산과 비옥한 논에서 익어가는 벼들이 한가로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1970년대 인근 부대 수색중대에 근무했지만 철책선 근무는 해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통문을 열고 군인들이 근무하는 남방한계선까지 들어가는 순간 약간 긴장감이 엄습해온다.

무장공비 침투를 막기 위해 철저하게 막은 철조망 사이로 북한 김화군에서 흘러온 물이 남쪽으로 시원하게 흐른다. 오락가락하는 빗줄기 때문인지 수량이 많았지만 수중보를 넘지 않은 깨끗한 물이 쌩쌩 흐른다.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물줄기를 바라보던 가이드가 입을 열었다.

DMZ생태탐방단 일행이 수중보 위에서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필자가 서있는 곳은 남방한계선이 있는 곳에서 5m도 떨어져 있지 않다. 북한 김화군에서 발원한 화강이 남쪽으로 흐르고 있다. 물이 많으면 북한의 목함지뢰가 떠내려 오기도 한다고 한다.
 DMZ생태탐방단 일행이 수중보 위에서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필자가 서있는 곳은 남방한계선이 있는 곳에서 5m도 떨어져 있지 않다. 북한 김화군에서 발원한 화강이 남쪽으로 흐르고 있다. 물이 많으면 북한의 목함지뢰가 떠내려 오기도 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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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양보내에 있는 갈대 숲 모습. 원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물 그림자를 드리운 갈대들이 예쁘다.
 용양보내에 있는 갈대 숲 모습. 원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물 그림자를 드리운 갈대들이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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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고기가 많은 이곳에서 낚시가 가능할까요? 군사 지역에서는 낚시를 금지합니다. 그런데 며칠 전 비가 많이 올 때 군인들이 이 수중보 위에서 뜰채를 가지고 서 있었어요. 왜 그런 줄 아세요? 북에서 떠내려오는 목함 지뢰를 건지기 위해서였어요."

100여 미터 아래로 내려갔다. 철교 같은 게 보이고 작은 저수지가 보였다. 이곳이 현존하는 최전방 농업용 보인 용양보다. 보 밑에 갈대와 수초가 무성하고 가마우지가 있는 걸 보면 고기가 많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용양보는 일제강점기시절에 건설된 금강산철교 교각을 이용해 지었다. 협궤인 금강산철로는 몇 년 전 돌아가신 장인도 서울에서 금강산으로 수학여행갈 때 이용한 적 있다.

금강산전기철도는 1919년 착공해 1924년에 철원~김화구간, 1931년에 철원~내금강 구간 116.6km를 개통했다. 태평양전쟁물자를 수송하고 서울에서 금강산을 찾는 관광객들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만든 철원역은 항상 붐볐다고 한다.

수복직후 DMZ경계근무를 섰던 병사들이 오가던 무너진 다리 위에서 몸을 말리고 있는 가마우지 모습들이 이채롭다. 용양보 내에 있다.
 수복직후 DMZ경계근무를 섰던 병사들이 오가던 무너진 다리 위에서 몸을 말리고 있는 가마우지 모습들이 이채롭다. 용양보 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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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양보 주변 들판에 벼가 익어가고 있는 모습이 평화로웠다.
 용양보 주변 들판에 벼가 익어가고 있는 모습이 평화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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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양보는 60년간 사람의 발길이 닿지않아 희귀한 생태습지환경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곳이다. 전망대에서 북쪽으로 15m쯤 떨어진 보의 중간에는 묘한 모습이 연출되고 있었다. 수복직후 DMZ 경계근무를 섰던 병사들이 오가던 출렁다리가 녹슬어 낡아 떨어지고 남아 있는 지지대 줄에 가마우지가 올라앉아 몸을 말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화강 상류에는 멧새류, 되새류, 뻐꾸기류, 백로, 두루미, 쇠기러기 등의 조류가 산다.  강에는 버들치, 피라미, 갈겨니, 모래무지, 어름치, 쉬리, 붕어, 누치, 잉어 등 49종에 이르는 어류가 서식한다.

"동무는 남아있으라요" 숨 막혔던 1시간

두루미 쉼터가 있는 화강을 건너는 일행들
 두루미 쉼터가 있는 화강을 건너는 일행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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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강의 두루미 쉼터 바로 아래 징검다리를 건너다 물이 너무 시원하고 맑아 발을 담그고 있는 일행들. 통일돼 남북한 주민들이 징검다리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할 날은 언제일까?
 화강의 두루미 쉼터 바로 아래 징검다리를 건너다 물이 너무 시원하고 맑아 발을 담그고 있는 일행들. 통일돼 남북한 주민들이 징검다리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할 날은 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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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가 "물이 많아서 신발을 벗어야 할 겁니다. 물에 젖어도 괜찮다면 그냥 신고 건너가도 돼요"라고 말하는 수중보는 발목 부분까지 물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그때였다.  수중보에 앉아 물장난을 치는 일행 한 분이 내 시선을 끌었다. 사진을 찍고 "무슨 생각을 하며 물장난을 치셨습니까?" 하고 묻자 "어릴적 시골에서 물장난하던 시절이 생각나서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북한 쪽에서 내려온 물로 장난치는 그녀를 본 순간 내 머릿속은  금강산에서 한 시간 동안 억류당했던 시절로 되돌아갔다. 금강산에서 피살당한 고 박왕자씨 사건이 일어나기 1년 전, 교사였던 필자는 중학교 2학년 학생들과 함께 금강산으로 수학여행을 갔다.

"우리 빨리 통일하자!"는 금강산 북측 안내원의 말에 기쁜 마음으로 화답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북측 군사분계선에서 입출국을 담당하는 군인이 나를 한쪽에 억류한 것이다.

북한에서 내려온 물로 물장난하는 아주머니를 보고 수학여행단을 이끌고 금강산관광을 마친 후북측출입국관리소에  한 시간정도 억류됐던 아픔이 떠올랐다. 아주머니는 20달러도 안내고 북한물을 사용한 셈이다.
 북한에서 내려온 물로 물장난하는 아주머니를 보고 수학여행단을 이끌고 금강산관광을 마친 후북측출입국관리소에 한 시간정도 억류됐던 아픔이 떠올랐다. 아주머니는 20달러도 안내고 북한물을 사용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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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 동무는 남아있으라요."

"아니! 왜요? 내가 뭘 잘못했는데요?"
"신성한 공화국 서류를 더럽혔잖아요. 보시라요. 입국증에 물이 묻어 있잖아요."
"아! 그래요? 어제 금강산물이 좋아 세수하면서 몇 방울 들어간 것 같은데. 뭘 그걸 가지고 그래요."
"잔말 말라요."


목에 걸었던 방문증에 물이 들어간 줄도 모르고 있었다. 경위를 생각해봤다. 한 동료교사가 내게 "금강산까지 왔으니 물에 손이나 담그고 갑시다"라고 제안했고, 그와 함께 징검다리에 앉아 세수하면서 물이 몇 방울 들어간 게 분명했다.

화가 났지만 어찌할 방법이 없어 기다리고 있는데 여학생 한 명이 사색된 표정으로 북한 군인에게 끌려와 내 옆에 섰다.

둘이 서로 얼굴만 쳐다보고 있을 때, 마침 가이드가 찾아와 북측 군인에게 사정하며 1인당 10달러씩 총 20달러를 건넸고, 우리는 풀려났다. 교사와 학생이 한 시간 정도 북한에 억류되자, 북측 출입국관리소에서 발이 묶인 수학여행단은 숨소리마저 죽이고 사태 추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무너져가는 암정교 모습. 화천과 김화, 평강, 금정을 오가는 인마의 길목이었고 김화 일대에서 가장 웅대하며 멋진 다리였다는 암정교가 무너져가고 있었다. 6.25전란 때에는 피아간 진격과 패퇴의 통로이자 자유를 찾아 월남하는 피난민들의 애환이 서린 다리이다. 금강산 전철이 통과하는 교통요충이기도 했다.
 무너져가는 암정교 모습. 화천과 김화, 평강, 금정을 오가는 인마의 길목이었고 김화 일대에서 가장 웅대하며 멋진 다리였다는 암정교가 무너져가고 있었다. 6.25전란 때에는 피아간 진격과 패퇴의 통로이자 자유를 찾아 월남하는 피난민들의 애환이 서린 다리이다. 금강산 전철이 통과하는 교통요충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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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공을 나는 헬기에게 군사분계선이 가까워졌음을 알리기 위해 세워진 표지판.
 상공을 나는 헬기에게 군사분계선이 가까워졌음을 알리기 위해 세워진 표지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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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로 돌아와 옆에 앉은 동료 교사에게 여학생이 잡혀온 이유를 물었다. "차 밖에 서있는 북한군인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웃었다"는 게 억류 원인이었다. 당시 보초를 서고 있던 북한 군인 역시 고등학생 같은 앳된 얼굴에 키도 작았다.

한 시간 동안 억류됐다가 풀려난 우리를 향해 북측 군관은 "선생 동무, 화내지 말고 잘 가라요"라고 말했다. 화가 난 상태라 대답이 나오질 않았다. 한편으로는 확연히 다른 국가 체제를 실감했다. 한국 군인 같으면 그 정도 가지고 억류할까?

북측 출입국관리소를 떠난 버스는 몇 분 지나지 않아 남측 출입국관리소에 도착했다. 국군이 환하게 웃으며 건넨 "어서 오세요!"라는 한 마디에 학생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나를 보호해줄 대한민국 국군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덧붙이는 글 | 여수넷통에도 송고합니다



태그:#DMZ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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