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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년 만의 개기일식 쇼

오후 1시가 조금 지난 시각, 미국 일리노이주에 있는 서든 일리노이 대학교 운동장에 모인 1만4천 명의 사람들이 하늘을 보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No Clouds!(구름 안돼)"
"Move that Could(구름아, 저리 비켜)."
"Oh God, go away(제발 가라)."

특수안경을 낀 관람객들이 개기일식을 바라보고 있다
 특수안경을 낀 관람객들이 개기일식을 바라보고 있다
ⓒ 최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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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을 향해 소리치는 이들은 미국 대륙을 관통하는 개기 일식을 보기 위해 며칠 전부터 비행기로 자동차로 이곳 카본데일시 스타디움에 모인 사람들이다. 99년 만인 이번 개기 일식 쇼를 가장 오래, 가장 가까이 볼 수 있는 곳이라며 미 항공우주국 나사(NASA)가 공식 지정한 도시답게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들은 2분 40초 만에 매진된 스타디움 입장 티켓을 손에 쥐고 전국에서 달려온 사람들이었다.

오후 1시 20분, 걷힌 구름 사이로 드러낸 태양은 2시 방향에서부터 달 그림자로 잠식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다 불타는 태양의 가장자리인 '코로나'만 남기고 달 뒤로 숨어 버렸다.

자동으로 가로등이 켜지고 선선한 느낌이 감돌 정도의 어둠이 마치 새벽녘처럼 스타디움에 펼쳐졌다. 약 2분이 지난 시각, 서서히 본 모습을 드러내는 태양으로 경기장은 다시 8월의 뜨거운 한낮의 모습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1만4천 명 관람자들 눈앞에 평생 못 잊을 우주 쇼가 펼쳐진, 역사적인 개기일식의 순간이었다.

"The Great American Solar Eclipse"

개기일식은 현지 시간으로 2017년 8월 21일 월요일, 오전 10시 17분 미국 서부 오리건 주 살렘시에서 시작됐다. 이후 와이오밍, 네브라스카, 내슈빌을 거쳐 역시 현지 시간 오후 2시 46분에 동남부인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톤을 끝으로 미 대륙을 횡단해 끝이 났다. 14개 주, 네 개의 시간대를 지나는 1시간 30분의 장대한 여정이었다.

미 항공 우주국(NASA)은 지역 주민 122만 명, 타 주와 외국에서 온 이들까지 모두 2백만 명이 이날 일식을 지켜봤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나사 행성 과학자인 로우 마요 말대로 이날은 "역사상 가장 많은 이들이 지켜본 개기 일식의 날"이었다.

2017 개기일식 지도 (자료 출처: NASA 홈페이지)
 2017 개기일식 지도 (자료 출처: NASA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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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식을 볼 수 있는 특수 안경은 이미 몇 주 전에 동이 났고, 지역 뉴스 사이트에서 안경 구매 가능한 상점 지도를 제공할 정도였다. '개기 일식 통과선(Path of totality)'으로 불리는 지역, 일식이 지나는 도시들마다 늦은 여름 휴가를 가는 이들로 인해 고속도로는 주차장을 방불케 했다. 미 중부의 조용한 도시인 네브라스카의 경우, 평소보다 10배가 오른 600달러에도 하루 묵을 숙소를 구하지 못할 정도였다. 캠핑장 구석에는 전국에서 몰려온 관광객이 텐트를 설치하기도 했다.

솔라 페스티벌이 열리는 오리건주 시골엔 100만 명의 관람객이 다녀갔고 NASA 공식 지정 관찰지인 아이다호 박물관은 50만 명이 방문했다. 휴교령에 간이 화장실이 설치됐고, 경찰은 12시간 교대로 운영돼야 했다. 개기일식에 방학을 하는 학교가 있는 반면, 어떤 학교에서는 선생님과 함께하는 단체 관람에 부모의 허락을 득해오라는 공문이 오가기도 했다. 1968년 아폴로 우주선의 달 착륙과 견주어서도 모자람이 없는 전국적인 우주 이벤트였다.

과학자들에게도 중요한 하루였다. 달이 태양을 완전히 가리면 평소엔 밝은 태양 때문에 관측이 불가능했던 대기층을 선명하게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개기일식은 우주 연구자들에게 다시 없는 기회다. 지상에서 태양의 대기층을 연구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에 미국 천문학회(American Astronomical society)와 미 항공우주국(NASA) 등은 11개의 인공위성, 50개 이상의 풍선과 1000개 이상의 천체 망원경을 동원해 일식 기간 동안 펼쳐질 태양의 비밀을 알아내는 작업을 1년 전부터 준비해 왔다.

미 국립 기상학회와 미 교통부 등도 이 날을 위해 만반의 연구와 실험을 준비했다고 밝혔다. 우리 한국천문연구원도 와이오밍주에 관측단을 파견, 지구에 영향을 주는 태양 우주 환경 연구를 실시했다. 그 밖에도 동물 행동 연구 등 과학계 전반에 걸쳐 8월 21일은 일생 두 번 다시 못 볼 수 있는 기회의 날이었다.

"위대한 미국의 일식(The Great American Solar Eclipse)"이라고 명명된 이번 개기 일식은 지난 1918년 6월 이후 99년 만에 미 대륙을 관통하는 천체 이벤트였다. 다행히 전국적으로 좋은 날씨와 야외 활동이 활발한 8월 한낮에 펼쳐진 탓에 더 많은 미국인들의 관심과 참여를 얻는 행사가 될 수 있었다.

각 지역마다 우주 이벤트 펼쳐져

한국천문연구원이 한국시각으로 지난 22일 미국 전역에서 일어난 개기일식에 원정 관측단을 파견해 촬영한 '코로나'(태양의 대기층)가 밝게 빛나는 모습. 달이 태양을 완전히 가리는 개기일식은 지상에서 코로나를 연구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다. 2017.8.22. [한국천문연구원 제공=연합뉴스]
 한국천문연구원이 한국시각으로 지난 22일 미국 전역에서 일어난 개기일식에 원정 관측단을 파견해 촬영한 '코로나'(태양의 대기층)가 밝게 빛나는 모습. 달이 태양을 완전히 가리는 개기일식은 지상에서 코로나를 연구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다. 2017.8.22. [한국천문연구원 제공=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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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지역의 우편번호를 넣으면 몇 %의 개기일식을 볼 수 있는지 알려주는 사이트도 선보였다. 내가 사는 지역의 동네 번호를 넣으니 75%라고 뜬다. 몇 달 전부터 광고하던 동네 과학관에서 하는 이벤트 신청을 했다.

오전 10시부터 시작하는 행사였지만 9시 조금 지난 시간임에도 줄은 과학관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월요일이었지만 아이들 손을 잡고 온 가족이 많이 눈에 띄었다. 개기일식 휴가와 개기 일식 방학 관련 뉴스가 실감 났다.

미국 각 지역에서 진행된 2017 개기일식 이벤트(Liberty Science Center, Jersey City)
 미국 각 지역에서 진행된 2017 개기일식 이벤트(Liberty Science Center, Jersey C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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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그 어느 때보다 관심 있게 달과 태양, 지구의 관계를 듣고 이해하는 모양새다. 평소 별 관심 없던 부모들도 같이 고개를 끄덕인다. 지구의 1/6인 달에서의 중력을 체험해보고 태양의 뜨거움을 가늠해보면서 우주의 신비에 몰입해가는 모습이다.

무엇보다 행사장에는 각자 만들어온 다양한 망원경들이 선보였다. 시리얼 박스를 오려서 구멍을 뚫고 거울을 넣고 테이프로 붙여 얼기설기 만들었지만 자신이 만든 망원경을 돌려 보며 자랑스러워 한다. 과학관에서 나눠준 나사 공인 망원경보다 자신의 박스 망원경을 자랑하기에 여념이 없다.

개기일식을 기다리며 직접 태양계 모형을 만들고 있는 어린이들
 개기일식을 기다리며 직접 태양계 모형을 만들고 있는 어린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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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니 테일러의 옛 노래 'Total eclipse of heart'가 최고의 다운로드를 기록하고 개기일식을 빗댄 광고가 만들어지고 관련한 풍자, 만화, 토크쇼 등으로 '개기일식'은 이번 주 미국인들에게 가장 많이 오르내린 단어가 됐다.

유명한 과학 저술가 데이비드 바론은 이번 개기일식을 두고 "자연에 대한 최고의 존경심을 유발하는 이벤트"라고 표현했다. 우주의 쇼를 지켜보았던 200만 명의 미국인들에게 우주는 전과 달리 더 신비롭고 친근하게 다가올 듯하다. 특히 자신이 만든 망원경으로 그 태양을 보았던 어린이들에게 2024년, 2044년의 개기일식은 어떻게 다가올지 궁금해진다. 

참고로, 한국에서는 2035년 9월 2일 오전 9시 40분경 북한 평양 지역, 강원도 일부 지역에서 개기일식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어린이들이 씨리얼 상자로 직접 만든 망원경으로 개기일식을 보고 있다.
 어린이들이 씨리얼 상자로 직접 만든 망원경으로 개기일식을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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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개기일식, #THE GREAT AMERICAN SOLA, #NASA, #AMERICAN ASTRONOMICAL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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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부터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뉴욕 거주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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