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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연 한국기록학회 회장
 이소연 한국기록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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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이다. 지난 7월 청와대가 공개한 '대통령 비서실 정보공개심의회' 외부 심의위원 네 명의 면면이 그러하다.

우선 전진한 알권리연구소 소장. 자타가 공인하는 정보·기록 전문가다. 지난 2002년 참여연대 정보공개사업단 시절부터 정보공개 운동을 선도했고,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설립과 운영의 주축이었다. 작년에는 아예 역대 대통령 기록 관리 실태를 정리한 <대통령 기록전쟁>이란 책을 내기도 했다.

민변 소속 조수진 변호사(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 실행위원). 일찍이 재벌들을 대상으로 '일수 벌금제' 도입을 주장했던 사람이다. "낮은 총액이 규정된 지금의 벌금제도로는 재벌들에게 별 효력이 없다"며 내친 김에 "공개된 재벌의 재산 정보 외에 벌금액 산정을 위해 필요한 경우 법원이 정보 공개를 요청할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했던 이다.

서울대 시흥 캠퍼스 건립을 두고 학교와 학생들이 갈등을 빚던 상황에 "영업상 비밀이든 아니면 다른 어떤 이유든, 총장의 업무추진비 집행 내역 공개를 거부하는 것은 법과 시행령 위반"이라고 지적한 이가 또한 경건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다. 국가기록원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의 중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하기도 한 인물이다.

청와대 내부자들, '쪽수'에서 밀린다

청와대 박수현 대변인이 지난 7월 14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과거 정부 민정수석실 자료를 캐비닛에서 발견했다고 밝히며 공개한 고(故) 김영한 민정수석의 자필 메모로 보이는 문건.
 청와대 박수현 대변인이 지난 7월 14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과거 정부 민정수석실 자료를 캐비닛에서 발견했다고 밝히며 공개한 고(故) 김영한 민정수석의 자필 메모로 보이는 문건.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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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소연 한국기록학회 회장(덕성여대 문헌정보학과 교수)이 있다. 역시 강성으로 분류할 수 있는 인물이다. 지난 번 '캐비닛 문건들'을 공개한 청와대 관계자들을 자유한국당이 검찰에 고발하자 "박 전 대통령 기록 '유출'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은폐를 목적으로 한 것이라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다"고 직격탄을 날린 게 단적인 예다. [관련기사] "파쇄기 수십대로 그리 썰어대고도..." 기록학회 회장 한국당에 분노한 이유

이 교수를 지난 16일, 그리고 앞서 두 차례 더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대통령 비서실 정보공개심의회 외부 심의위원 중 한 사람으로 참여하게 된 소감과 정보 공개와 관련한 변화 등에 대해 우선 들어봤다. 다음으로 국가기록원이 지난 9년 동안 한 역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집중적으로 물어봤다. 답을 듣는 과정에 '역시', 블랙리스트 이야기가 나왔고, 자연스레 대화는 '과거 적폐를 어떻게 끊어낼 수 있느냐'까지 이어졌다.

- 대통령 비서실 정보공개심의회가 부활했습니다. 그 의미는?
"일단 혁신적이고 선도적인 제스처를 청와대가 보여줬다고 생각해요. 제일 큰 게 정보공개심의위원이라고 하는 걸 기관별로 구성하게 돼 있는데..."

이어지는 설명을 들으면서 이 짧은 뉴스(질문)에 담긴 의미가 묵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이 교수는 "청와대가 외부 심의위원을 4명으로 구성했다"는 점을 높게 평가했다. 현재 청와대 정보공개심의회 '내부자'는 이정도 총무비서관, 김형연 법무비서관, 조용우 국정기록비서관 등 3명이다. 시쳇말로 '쪽수에서 밀린다'. 내부자들이 암만 손사래를 쳐도 외부자들이 공개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뜻이다.

"법으로 (공공기관) 정보공개심의회를 5인 이상 7인 이내로 구성하게 돼 있어요. 홀수 구성은 표결 때문이죠. 그 중 과반수 이상을 외부위원으로 하라는 것이 권고사항인데, 여태까지 대부분 내부위원을 절반 이상으로 했어요. 외부위원조차 해당 기관에서 정년 퇴직한 분들을 모셔오는 경우도 있고. 그 때문에 명백하게 공개해야 하는 사안인데도, 막상 표결에서는 1:4로 지는 사례가 너무 많았어요."

청와대가 밝힌 정보공개 원칙, 그 3가지 의미

이소연 한국기록학회 회장
 이소연 한국기록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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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청와대가 외부 심의위원을 4명으로 구성했다는 건, 정보공개에 대한 정책 방향을 청와대가 솔선수범해서 보여주겠다는 굉장히 과감한 시도"란 것이 이 교수의 평가다. 이런 평가에 힘이 실리는 것은 그가 여러 공공기관에서 정보공개심의회 외부위원으로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교수의 설명은 "현재 6∼7군데서 활동하고 있는데, 단 한 번도 대면 심의를 개최하지 않은 곳이 많았다"고 지적으로 이어졌다.

이 교수에 따르면 '얼굴 보고 회의하느냐, 마느냐'는 정보공개심의위 활동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시민의 정보 공개 청구를 해당 기관이 받아들이지 않았을 경우, 이에 대해 다시 들어온 이의 신청을 심의하는 것"이 심의위의 주요 역할 중 하나다. 이 교수는 "대면 심의란 것이 단순히 테이블에 올라온 안건을 결정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내부위원과 외부위원이 정보공개 취지와 의미에 대해 서로 소통한다는 것도 있다"며 "그런 차원에서 대면 심의를 안 하면 내부에서 이런 문제를 생각할 기회가 없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렇기에 이 교수는 "청와대가 대면 심의를 중심으로 가겠다"고 한 것에도 의미를 부여했다. 실제 청와대는 지난 7월 18일 이와 같은 원칙을 밝히면서, 앞서(14일) 내·외부위원 전원이 참석한 가운데 대면 회의를 개최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교수는 "서면 심의를 되도록 하지 않겠다는 취지"라면서 "중요한 사례를 남긴 것이라 본다"고 말했다. 끝으로 이 교수가 의미 부여한 대목은 하나 더 있다.

"첫 번째 회의에서 담당자가 물어보더라고요. '심의위원 명단을 공개하고자 한다, 그래도 되겠느냐'고요. 거기 가서 그걸 반대할 수는 없죠(웃음). 당연히 환영인데, 살짝 걱정도 됩니다."

- 현재 심의위원 명단을 공개하지 않는 곳이 많나요?
"안 하는 곳이 많아요. 개인정보보호를 명분으로. 그런데요, 어떤 분은 (정보공개 심의위원) 명함을 파서 다니기도 하거든요? 명함 파서, 주고 싶은 사람 주는 건 내 마음이고, 내 이름이 공개되는 건 반대한다? 이율배반이라고 생각해요. 전문가로서 내가 그런 말했다는 사실을 공개하는 게 꺼림칙하다고 생각하면, 그런 말 자체를 하면 안 되는 거 잖아요. 그런 점에서 청와대의 (심의위원) 명단 공개는 이런 관행을 없앨 수 있는 모범 사례라고 볼 수 있어요."

"순진하면 안 된다는 것, 지난 9년의 교훈"

지난 2013년 7월 22일 당시 새누리당 황진하·조명철 의원과 민주당 전해철·박남춘 의원이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을 방문해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원본 최종 검색을 마친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지난 2013년 7월 22일 당시 새누리당 황진하·조명철 의원과 민주당 전해철·박남춘 의원이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을 방문해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원본 최종 검색을 마친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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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권 시절 청와대와 극명하게 대비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가 밝힌 바에 따르면, "정보공개심의회에 관한 비공개가 가장 심한 곳"은 다름 아닌 대통령 비서실이었다. "대통령 비서실은 정보공개심의회 외부위원의 실명과 소속 기관의 비공개뿐만 아니라, 정보공개심의회 안건명도 비공개했다"고 한다. 이 교수는 말을 이었다.

"청와대가 모범 사례가 되길 바랍니다. 그럼 다른 기관들도 움직일 수 있게 될 거니까요. 첫 번째 회의에서 (청와대 측에서) 업무추진비 정보를 먼저 공개하겠다고 했어요. 대통령 의지가 굉장히 강한 것 같아요. 그 의지를 오히려 비서실에서 받아 안기 부담스러워하는 모양이에요(웃음). 그리고 또 하나 신경 써야 할 부분이 있어요. 정치적 공방 사이에서 어떤 제도 자체가, 또는 제도 취지 자체가 왜곡되는 걸 막아야 해요. 지난 9년간의 교훈이죠, 순진하면 안 됩니다."

* 이소연 교수의 두 번째 인터뷰 <"성실히 기록 남긴 노무현의 죽음, 국가기록원은 이명박의 도구였다"> 이어집니다.


태그:#이소연, #전진한, #정보공개, #조수진, #경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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