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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수박밭이 침수된 모습.
 지난 7월 수박밭이 침수된 모습.
ⓒ <무한정보> 이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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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온난화로 이상기온의 정도가 심해지며 농작물에 큰 피해를 주고 있어 농민들의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농민들이 천재지변으로 인한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는 방법은 농작물재해보험에 가입하는 것이 유일하다. 국가가 보험료의 80% 정도를 지원하고 농협(NH보험)이 운영하는 농작물재해보험은 민간보험이지만 사실상 정부가 농업재해를 보상하는 성격을 띠고 있다.

하지만 전국의 보험가입률이 18%대로 낮아 제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많은 농민들이 홍수, 태풍, 우박, 폭설 등 자연재해를 입으면 꼼짝없이 피해를 감수하고 심지어 파산지경에 이른다.

충남 예산군의 2017년도 농업재해보험 가입현황을 보면 보험가입률이 극히 저조함을 알 수 있다. 최근 게릴라성 집중호우와 돌풍이 빈번하게 발생해 많은 피해를 입고 있는 시설원예작물의 보험가입률은 전체 1782농가 중 93농가로 5.2%에 불과하다. 수도작(벼)은 795농가로, 전체 9205농가의 8.6% 수준이다. 과수쪽은 비교적 가입률이 높으나 아직도 많은 농민들이 보험을 외면하고 있다. 군내 배 농가의 가입률은 44%(501농가 중 221농가), 사과는 59.8%(978농가 중 585농가)다.

농민들이 농작물재해보험을 외면하는 이유는 보험혜택에 대한 낮은 만족도와 비싼 보험료 때문이다. 지난 7월 초 예산지역에 쏟아진 게릴라성 집중호우로 시설원예작물이 물폭탄을 맞았다. 오가 신원리와 신암 탄중리 일대 대규모 비닐하우스 단지 안에 있는 수박, 토마토, 멜론, 열무, 시금치 등 피땀 흘려 키운 작물들이 하루아침에 절딴이 나버렸다.

읍면사무소에서 피해조사를 한다고 부산을 떨었지만 이렇다 할 복구대책은 없고 피해는 모두 농민에게 떨어졌다.

일부 농작물재해보험에 가입한 농민들은 기댈 곳이 생겨 한시름을 놓았다. 하지만 보험사에서 조사의뢰한 손해사정인들의 피해조사가 시작되고 보험금을 지급받기까지 한 달여 기간 동안 적잖은 속앓이를 했다.

보험금 지급 하세월

지난 14일 충남 예산군 오가면 신원2리 민병도 이장과 이성호씨 그리고 예산읍 발연리 김기현씨 등 농작물재해보험에 가입한 농민 여러 명을 만나 보험에 대한 평가를 들어보았다.

우선 신속한 보험금 지급이 안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농민 입장에서는 발빠른 복구와 재파종을 준비하려면 당장 돈이 필요한데 보험금 지급이 한 달 이상 걸려 너무 늦다는 얘기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예상보험금의 50%라도 우선지급(가지급)을 요구했다.

피해작물조사 방식에도 문제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작물별 특성이 다른데 이를 일률적으로 적용해 생육기간에 따른 보험금 지급액의 정도차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 보험회사가 객관적 기준이 아닌 주관적 잣대를 대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멜론의 경우 어려운 일을 다 끝내고 수확할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데, 약간의 생육정도 차이에 따라 하우스 1동당 많게는 40만 원까지 피해보상금의 차이가 발생했다고 한다.

또한 작물에 따라 침수영향력도 천차만별인데 이를 작물별로 적용하지 않고 있다. 수박밭의 경우 일부만 물이 차도 전체가 피해를 입어 완파로 봐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 눈에 보이지 않아도 땅 속 뿌리에 까지 물이 차면 수박이 모두 터져 버리기 때문이다.

"이것만은 꼭 개선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는 문제 중 하나는 '빈밭 보상(매몰 비용)'이다. 농민이 농작물재해보험에 가입한 뒤 작물을 심기 위해 밭을 꾸미고, 모종을 사고, 모든 준비를 마쳤는데 밭이 침수되는 바람에 파종을 못해 손해가 발생했다면 당연히 보상해야 한다는 게 농민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김기현(예산읍 발연리)씨는 보험에 가입하고도 밭에 작물이 없다는 이유로 보험 보상금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

그는 "멜론을 심으려고 밭을 꾸미고 모종을 구입하고 모든 준비를 끝내 내일 정식만 하면 되는데 물난리가 났다. 준비하는데만 수백만원이 들어갔는데 밭에 작물이 없으니 보험금도 없다고 한다"며 허탈해 했다.

얘기를 듣던 한 농민은 "다른 보험의 경우 사고로 인한 휴업보상금도 주는데…. 이거야말로 농민들을 깔보고 보험회사만 유리하게 만든 거"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자연재해에 할증이라니

'할증제도'에 대해서도 농민들은 할 말이 많았다. 현행 농작물재해보험은 개인별 최대 30%까지 할증이 적용되고 지역별로도 재해가 많은 지역은 할증을 적용해 보험료율을 높게 책정하고 있다. 즉, 재해로 보험혜택을 많이 받은 개인과 그 지역은 보험료율을 높게 산정하는 것이다.

농민들은 "천재지변이 개인 노력으로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마치 개인에게 과실이 있는 것처럼 할증을 적용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럴려면 무재해시 보험료의 일부를 환급해 줘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한 농민은 "자동차보험 등 다른 보험과 비교해 좋은 것은 적용하지 않고 나쁜 것만 갖다 붙였다. 참말로 고약하다"고 비판했다.

농작물재해보험은 1년 단위 소멸성이다. 한때 벼에 대해 무사고 환급특약제도를 실시했으나, 이마저도 논의없이 없앴다.

과수에 대한 보험혜택은 불만이 더 높다. 그러면서도 과수농민들은 한 번 재해를 입으면 재산손실이 너무 크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없이 농작물재해보험에 가입하고 있다.

지난 5월 신암 예림리 정연순씨 과수원에서 우박을 맞아 흠집이 난 사과.
 지난 5월 신암 예림리 정연순씨 과수원에서 우박을 맞아 흠집이 난 사과.
ⓒ <무한정보>이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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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예산군 내 고덕과 신암 등 사과단지에 우박이 쏟아져 어린 과일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사과, 배 등 과수는 우박 등으로 흠집이 생기면 성장 중간에 썩어 낙과하거나, 과실이 다 성숙해도 파과·병과가 돼 정품으로 판매할 수 없다.

보험에 가입한 농민들은 일단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보험금을 지급받는 과정이 원예작물보다 더 까다로워 가슴을 수십 번 쳐야 했다.

일단 우박피해를 입은 과실은 따내면 안 된다. 수확기까지 그대로 키워, 그 때 가서 피해량을 산정해야 보험금을 지급받을 수 있다. 성장 중간에 썩어 떨어지는 것은 보험금 지급대상이 아니다.

신암에서 엔비사과를 재배하고 있는 성기원씨는 농작물재해보험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수확 열흘 전에 표본이 되는 나무에서 피해 과일수를 헤아린 뒤 최종 피해율을 산정한다. 더구나 가공용 등으로 팔 수 있는 건파과는 그 값만큼 제외하는 등(타박과는 손상정도에 따라 보험금 20~50% 감액) 까다롭기가 이를데 없다. 게다가 피해율 중 20%는 자기부담이기 때문에 전체 50% 미만 피해는 보험혜택이 별거 아니다. 즉, 50% 이상 피해를 봐야만 보험농사가 가능한 것이다. 평균착과율도 농업진흥청 표준치를 사용하기 때문에 착과율이 높은 엔비같은 품종은 상대적으로 손해다. 이에 대한 특약을 확대해야 한다."

수확 직전까지 기다려야

특히 태풍 피해의 경우 낙과된 것만 보험이 적용된다. 바람에 흔들려 상처를 입는 등 상품성이 떨어진 과일은 완전한 보상을 받을 수 없다.

과수나무 도복(쓰러짐) 피해도 적용기준이 까다롭고 피해가 큰 것에 비해 그에 상응한 보상이 이뤄지지 않아 보험만족도가 떨어진다고 과수농민들은 주장하고 있다.

비싼 보험료도 농민들의 보험가입률을 떨어뜨리고 있다. 보험료의 80%를 정부와 지자체가 보조한다고 해도 시설원예 및 과수 등 웬만큼 농사를 지으면 농민자부담 보험료가 수백만원까지 들어가기 때문이다. 소멸성 보험으로 해마다 지출해야 하는 농민들 입장에서는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보험가입 경험이 있는 농민들은 "방법이 없다. 보험은 가입해야 한다. 다만 자연재해인 만큼 정부가 지원금을 늘려 농민자부담을 줄이고 농민에게 불리한 보험약관도 개선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편 농협보험 홍보팀 담당직원은 이같은 농민들의 불만사항에 대해 보험운용상 수지타산을 맞추는 것이 어렵다고 설명한 뒤 "신속한 보험료 지급 및 피해조사방식의 문제점 등은 개선방안을 강구할 수 있도록 건의하겠고, 보험료의 우선지급(가지급) 등은 적극 확대하고 있다"면서 "농작물재해보험을 시행한 지가 오래되지 않아 보완할 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며, 지속적인 노력을 펼치겠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충남 예산에서 발행되는 지역신문 <무한정보>와 인터넷신문 <예스무한>에도 실렸습니다.



태그:#농작물재해보험, #농민외면, #집중호우, #농작물피해, #예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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