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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잡대'

서연고, 서성한, 중경외시와 구분되는, 출신학교별 주홍글씨이다. 어찌보면 대학서열놀이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한 입시 전문교육기업이 발표한 '2016 수시대입전략'에 따르면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의 정원 모집인원은 전국 4년제 대학 정원 내 모집인원의 22.1%이다. 바꿔 말하면 약 78%의 학생들이(일부 사립대와 국립대 제외) '지잡대생'으로 불리는 게 한국 교육의 현실이다.

독일 대학에도 그런 편가르기가 존재할까?

독일의 대학교는 수준 차이가 없다

독일은 학생, 교수, 시설 면에서 대학교 간 질적 차이가 거의 없다. 그래서 한 지역, 한 대학으로의 쏠림현상이 발생하지 않는다. 2000년대 중반부터 국가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특성화 대학을 지정하여 정부 지원을 집중시키고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대학 수준에 별 차이가 없다는 게 정설이다.

독일에서 대학에 들어가는 가장 일반적인 루트는 초등학교에서 걸러진 선발 집단이 김나지움(인문계 중·고등학교)을 거쳐 해당 주에 있는 주립 대학에 입학하는 것이다. 대학 수준의 차이를 별반 느끼지 않기 때문에, 굳이 방값 따로 내면서 다른 지역으로 갈 이유가 없다. 인재의 쏠림현상이 덜하기 때문에 어느 대학 교수든 가르치고 연구하는 일에 보람과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대학을 졸업하면 보통 자기 고장에서 직장을 찾는다. 의대를 졸업하고 해당 주의 주립병원과 대학부속 병원에서 일자리를 찾고, 정치학을 공부한 뒤에 해당 주의 의회에서 정치인으로 일한다. 교수가 될 사람은 '하빌리'(박사학위 상위과정인 교수자격과정)를 거친 후 다시 모교에 자리를 잡는다.

지방인재가 이렇게 다시 그 지역으로 흡수되기 때문에 정치, 교육, 의료, 문화수준이 지역마다 고르게 발달하게 된다.

대학, 대학원까지 '공짜'

독일 대학에서 공부하는 7년 동안(대학 내 어학과정 포함) 수업료를 한 푼도 내지 않았다. 대학의 전 과정은 물론이고 박사학위 논문을 끝낼 때까지도 마찬가지이다. 이것은 독일에서 공부하는 외국인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독일이 경제적으로 잘 나가던 때는 물론이고 통일 후 90년대까지만 해도 치·의대에서 수업시간에 쓰는 재료비 일체를 국가가 무상으로 보조해 주었다.(이것은 지방마다 차이가 있다.) 이과계열의 한 유학생은 "한국에선 조교나 교수 외에는 만질 수 없었던 비싼 실험용 재료를 이곳에서 마음껏 써볼 수 있어 너무 놀랐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2000년대의 경제적 불황 앞에 그 원칙은 무너지고, 수업시간에 쓰는 재료 정도는 이제 학생 개인이 스스로 구매해야 한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이런 '공짜 교육'이 국가경쟁력 약화를 가져왔다는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투입과 산출 면에서 보면, 무상교육이 그런 흐름을 둔화시켜 국가 경쟁력 약화를 가져온 것임에 틀림없다. 아는 한 독일친구는 경제학과를 3년 다니다 제적당하고 교육학과로 전과했지만, 여전히 대학 졸업시험을 못 치르고 있다. 법학을 전공하던 또 다른 친구는 졸업시험 성적이 취업을 결정한다는 걱정에 그 시험을 계속 미루고 있다.

열심히 젊음과 세월을 아껴 공부해야 하는 시기에 수업료에 대한 압박과 부담이 없으니 대학교 안에서 헤매고 또 헤매는 청춘들이 많다. 독일 대학에는 젊은 청춘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10년 넘게 대학교를 다니는, 학생인지 교수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늙은(?) 학생들의 비율도 만만치 않다. 한번 늘어진 학업은 그렇게 졸업을 더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통독 후 어려워진 경제사정을 감안하고 느슨한 교육현실을 지양하고자 수업료(한 학기당 70만원 정도)를 잠시 징수한 주(州)도 있지만 말이다.

어쨌든 돈 때문에 교육권을 박탈당하는 일은 독일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심지어 등록금 외에 생활비에 대해서도 어려움을 겪을 땐 국가가 지원해준다. 본인이 생활비를 벌며 공부하는 경우, 대학졸업 시험을 앞두거나, 대학원 논문 학기에는 1년간 매 달 50만 원 정도를 무상으로 보조해 준다.(통상 대학과정에서 3개월, 대학원 과정에서 9개월 정도 지원한다.) 박사과정에 있는 학생도 80여만 원 정도를 3개월간 지원받을 수 있다. 이것은 유학생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거기다 정당 장학금, 기업 장학금, 재단 장학금 등의 장학금 제도도 많다. 무상교육에다 더해지는 이런 장학금은 학생들에게 경제적 걱정 없이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기에 충분하다.

독일 대학 졸업, 양파까기보다 더 어렵다!

독일 대학의 학과 선택은 대부분 고등학교 졸업시험 점수에 의해 좌우된다. 학교마다 자체적으로 실시하는 아비투어(졸업시험) 결과에 따라 본인이 원하는 대학 및 과에 입학원서를 넣는다. 물론 이곳에서도 의대, 법대, 사범대 등에 지망하려면 졸업성적 점수와 고등학교 2,3학년 내신점수가 좋아야 한다.

외국인들의 입학여부는 그 해의 외국인 지원자 수에 따라 결정된다. 어떤 학과든 학과 정원의 10% 정도의 외국인 할당비율이 있다. 만약 당해 년도 외국인 지원자 수가 적으면 입학이 바로 가능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몇 학기를 기다려야 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대학 졸업률은? 졸업률은 입학률보다 현저히 낮다. 이것은 어찌보면 무상교육의 힘(?)이다. 가뜩이나 자유로운 대학 생활에 금전적 부담이 없으니 대학에서 시간을 낭비하다 졸업도 못하는 사회 낙오자가 만들어 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국가는 대학생들에게 높은 수준의 학력을 요구한다. 이미 초등학교부터 걸러지고 선택된 그들에게 대학원 과정까지 무상교육을 시키는 점을 감안하면, 지당한 요구일 수 있다. 바꿔 말하면 국가와 사회에서 요구하는 수준에 도달해야 졸업이 가능해진다는 말이다. 그래서 과마다 낙제 제도가 존재하는데, 이 낙제율은 상대 비율이 아니라 절대 비율이다. 점수가 기준 이하에 못 미치면 가차 없이 낙제 처리가 된다.

점수관리도 녹록지 않다. 성적이 나쁘면 대학을 나와도 취직할 곳이 없다. 이런 시스템은 입학은 쉽지만 졸업이 어려운 구조를 만들고, 대학 입학률에 비해 졸업률이 떨어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더퍼스트미디어에 연재된 글의 일부를 기초로 하였습니다.



태그:#독일교육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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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키일대학(Christian-Albrechts-Universitat zu Kiel)에서 경제학 디플롬 학위(Diplom,석사) 취득 후 시골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2021년, 독일 교육과 생활의 경험을 담은, 독일 부모는 조급함이 없다(이비락,2021)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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