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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발표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7년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노동자의 1인당 평균 노동시간은 2069시간으로 35개 회원국 중 두 번째로 길다. OECD 평균 1764시간보다 무려 305시간이나 많은 시간이다. 연간 1.7개월을 더 일한 셈이다.

장시간 노동이 문제된 것은 하루 이틀이 아니다. IT근로자, 집배원, 마필관리사, 버스노동자 분들이 살인적 과로로 생명을 잃고 있다. 야근이나 연장노동은 특수한 경우에 행해지는 예외적 근무형태여야 하지만 이미 우리네 삶에서 공기처럼 일상화 되어버렸다.
 
그런데 이 와중에 더 뜻밖인 것은 실업률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지난 9일 통계청 보고에 의하면 7월 15~29세 실업률은 9.3%로 2014년(9.4%)과 1999년(11.5%) 이후 역대 세 번째로 높은 수치이다.

사실 가볍게 생각해보면 한 사람이 감당하는 긴 노동시간을 쪼개서 다른 노동자와 함께 일하면 그만큼의 일자리가 창출된다. 기존 노동자 입장에서도 여가생활이 확보되는 등 삶의 질이 높아진다. 일명 '워라밸'(work & life balance), 일과 삶의 균형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도 장시간 노동 강요와 과로사 등 산재 사고에 대한 사회적 지탄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노동자가 노동하면 노동생산성도 당연히 올라갈 것이다.

노동시간 단축은 기업에 비용 부담을 초래하는가

노동시간 단축과 일자리 나누기는 우리 시대의 가장 주요한 과제 중 하나이다. 높은 산재 사고율과 청년실업률, 낮은 노동생산성지수 등의 지표들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럼에도 기업이 노동시간 단축을 망설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비용 문제 때문이라고 한다. 한국경제연구원이 2년 전 발표한 '근로시간 단축의 비용추정'이란 보고서에 따르면, 주당 노동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일 경우 기업 부담금이 연간 12조 3000억 원에 이른다고 한다.

저 추정액 중 한국경제연구원이 예상한 신규인력 채용비, 교육훈련비 등의 간접노동비용은 2조 7천억 원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직접노동비용인 9조 4천억 원은 어떻게 된 걸까.

아마도 한국경제연구원은 "근로기준법 제53조 제1항의 '1주간에 12시간을 한도로 제50조의 근로시간을 연장할 수 있다'는 규정에서의 연장근로시간에는 휴일근로시간이 포함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근기 68207-2855, 2000.09.19)라는 고용노동부 행정해석에 근거해서, 노동시간이 52시간으로 제한될 경우 휴일근로수당과 연장근로수당을 중복 지급해야 하는 문제를 지적하고 있는 듯하다. 현행 행정해석대로라면 "1주"에 토요일과 일요일이 포함되지 않는다는 기이한 결론에 이른다. 이에 따르면 주52시간 외의 휴일근로에 대해서는 연장근로수당을 추가 지급하지 않아도 무방한 것이다.

물론 납득하기 어렵다. 대법원 판례도 "휴일근로와 시간외근로(연장근로)가 중복되는 경우에는 휴일근로에 대한 가산임금과 시간외근로(연장근로)에 대한 가산임금을 각각 가산하여 산정하여야 한다"(대판 1991.3.22, 90다6545)라고 설시한 바 있으며, 이런 판례 법리를 차치하고라도 1.5배나 2배의 중복 가산수당 지급을 피하기 위해서는 신규채용을 통해 노동자 1인에 대한 연장근로수당 지급 없이 신규 노동자에게 1배의 통상시급만 주는 것으로 인건비를 오히려 감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업입장에서 노동시간 단축보다 노동자 한 명에게 장시간 노동을 요구하는 이유가 결국은 '포괄임금제'에 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솔직할 것이다.

판례가 허용한 노동착취, 포괄임금제

이른바 포괄임금제는 기본임금에 연장, 야간, 휴일근로 등에 대한 각종 수당을 포함하여 지급하는 형태의 계약을 말한다. 연장, 야간, 휴일 노동을 해도 월급여액에 그에 대한 수당이 이미 다 포함되어 있다고 하니 노동자 입장에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정의당 이정미 의원의 말마따나 좀 과장하면 "포괄임금제는 사실상 사업주에게 근로시간을 백지위임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처럼 얼핏 봐도 불합리해 보이는 포괄임금제는 사실 근로기준법 등 노동관계법 제 조항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사업장 관행에 불과하다. 70년대부터 사업장에서 내려오던 임금산정방식을 "계산의 편의와 직원의 근무의욕을 고취"(대판 1997.4.25, 95다4056 등)한다는 명목으로 법원이 판례로 인정해준 것이 여기까지 온 것이다.

물론 최근 들어서 포괄임금제 요건을 엄격하게 해석하는 판례(2010.5.13, 2008다6052)들이 나오고 있지만, 사업장에서 이미 일반화된 임금계약 방식을 노동자 개인이 개별소송으로 각개격파 하기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이 때문에 연장근로와 야간근로를 매일같이 하지만 그에 대한 수당을 따로 받은 적이 없다고 말하는 노동자들이 부지기수다. 결국 한 명의 노동자에게 노동시간이 집중되는 이유는 포괄임금제 때문이다. 이는 다시 말하면 노동자 개인에게 지급되어야 할 가산임금이 온전히 지급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해법은 무엇일까. 실제로 일한 만큼의 가산임금을 정확하게 주는 것이다. 연장, 야간, 휴일 노동에 대한 급여는 통상임금의 100분의 50 이상을 줘야 한다(근로기준법 제56조). 기업 입장에서 포괄임금제를 고집하는 이유는 노동자에게 일한 만큼의 급여를 지급하지 않기 위함이다. 노동자 한 명에게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는 이유도 숙련노동의 장점과 채용비용 손실 등을 제외하면 결국 노동자에게 일한 만큼의 급여를 정직하게 지급하지 않기 위한 것이다.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이 20일 중대재해가 발생한 창원 STX조선해양을 찾아 현장을 둘러본 뒤, 고민철 금속노조 STX조선지회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이 20일 중대재해가 발생한 창원 STX조선해양을 찾아 현장을 둘러본 뒤, 고민철 금속노조 STX조선지회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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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스러운 일은 지난 14일 새로 취임한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이 포괄임금제와 장시간 노동 근절에 대한 강한 의지를 밝힌 것이다. 최근 판례처럼 "감시, 단속적 근로와 같이 근로시간 산정이 어려운 경우"(2010.5.13, 2008다6052)를 제외하고는 사업장에서 포괄임금제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서는 입법으로 분명하게 포괄임금제 금지를 명시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또 근로감독관의 확충과 근로감독 강화로 장시간 무임금노동 사업장을 적발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등의 엄한 조치를 위해야 한다. 전자기기 등의 발전으로 노동자별로 업무개시와 종료 시각을 기록하거나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 되었다. 사업장별로 노동자들에게 대한 업무 개시와 종료 시각을 기록해서 급여명세서에 반영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것도 방안 중의 하나일 게다.

장시간 노동 강요는 노동생산성 측면에서도 비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포괄임금제를 빙자한 기업의 가산임금 체불임을 기업과 정부가 모두 명확하게 인정해야 한다. 김영주 장관은 18일 부산고용노동지청을 방문해 "노동시장의 적폐,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는 것은 결국 법이 정한 최소한의 근로조건을 지키는 것에서 시작한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생활에서 겪는 가장 가까운 적폐는 장시간 '무료'연장노동이다. 노동현장에서도 장시간 노동과 포괄임금제 관행이 사라지길 기대해본다.


태그:#장시간_노동, #장시간_근로, #포괄임금제, #김영주_장관, #가산임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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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인노무사. 반려견 '라떼' 아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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