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에는 엄마와 함께 <택시운전사>라는 영화를 보았단다. 어느 정도 내용을 알고 있었지만, 보고 나서는 참 마음이 무거워졌어.

1980년에 광주에서 많은 사람이 다치고 죽었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가슴이 먹먹해지고 왠지 모를 죄책감, 부채감 같은 느낌을 주는 영화였단다. 그 일이 일어났을 때 나는 아직 미취학 학생이었기 때문에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나이는 아니었지만, 그 시대에 국민학교(당시에는 초등학교가 국민학교라고 불렸단다.) 시절 주변에서 일어났던 몇 가지 장면들이 영화를 보고 나니 선명하게 다시 떠올랐단다.

4월의 광주 세월을 잊지 않은 것 같은 2017년 4월의 광주가 그들의 아픔을 이야기 해주는 것 같다.

▲ 4월의 광주 세월을 잊지 않은 것 같은 2017년 4월의 광주가 그들의 아픔을 이야기 해주는 것 같다. ⓒ 허영진


"누가 너희에게 그런 말을 했니?"

강원도에서 서울로 올라와 자리를 잡으셨던 나의 부모님은, 정치적인 것들보다는 자식들을 건사하는 데도 늘 바쁘셨기 때문에 집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지는 않으셨지. 하지만, 어린 시절 아빠가 나고 자란 성북구의 안암동이라는 동네는 그 시대에 벌어졌던 많은 일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기에 충분한 곳이었단다.

어느 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슈퍼 앞에서 친구들과 정치 포스터 같은 것을 보다가 무심코 그런 말을 했어. "김대중은 빨갱이라던데…" 처음에 누가 그 말을 했었는지, 그 친구들 이름도 기억나지 않지만, 국민학생이었던 우리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말을 했었지. 그때,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한 대학생 누나가 조용히 와서 아주 차분한 말투로 우리에게 물었어 "누가 너희에게 그런 말을 해주었니?" 우리는 모두 침묵했고, 알 수 없는 부끄러움에 얼굴이 붉어졌어.

누가 우리에게 그런 말을 해주었을까? 기억이 나지 않지만, 많은 곳으로부터 그 말을 들었지. 심지어 '전라도는 빨갱이래'라는 말까지도 심심찮게 들었던 기억이 난다. 왜 그랬던 걸까? 라는 의문을 던지게 된 건 아주 먼 훗날의 일이었지. 왜 당시의 사회는 우리에게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들었던 걸까?

87년 6.29 민주화 선언이 있기 전까지 아빠는 고려대가 바로 근처에 있고, 성균관대와 대학로가 멀지 않은 곳에서 학교를 다녀 자주 최루탄 연기에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남아 있단다. 친구네 집 옥상에서 최루탄이 날아다니고 사람들이 전경들과 대치하는 장면도, 일본 무사처럼 기를 내뿜는 청바지에 목검 한 자루를 들고 서 있던 사복 경찰 아저씨가 마치 무사가 사람을 베어 넘기듯 대학생들을 단번에 제압하는 것도 본 적이 있지.

그때, 어머니의 말이 떠올랐어. '데모는 하면 안 된다'는. 경찰한테 끌려가서 맞고, 소리소문없이 사라진 사람들의 이야기도 너무 많았어. 그들이 왜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시위를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 그 문제를 이해하기까지는 다시 십수 년의 시간이 필요했지. 마음속에는 국가가 사용하는 폭력에 대한 두려움이 자리를 잡았던 것 같아. 저 다치고 끌려간 사람들의 시간이나 육체적인 손실들은 누가 보상해줄까? 과연 저들은 신념에 따른 행동으로 얻어낸 것에 대해서 만족할까? 뒤늦게 그런 생각들을 해보기는 했지. 그렇게 유년의 기억을 뒤로하고, 그 기억을 꺼내어 볼 일은 별로 없었어.

이름조차 없는 민초의 자식들은

<택시운전사>라는 영화는 오랜만에 그 유년의 기억을 다시 꺼내게 만들었단다. 왠지 모를 폭압적인 분위기가 내려앉아 있었던 그 시절, 그보다 더 심한 시절을 살아오신 부모님에 비할 바는 아니었겠지만, 모두가 그 강압 속에서 침묵하는 동안 죽어간 사람들이 있었다는 게 마음이 무겁게 다가오더라. 만약 그때 죽어가는 사람이 나나, 내 주변의 사람들이었다고 해도 당시 분위기상 모두가 침묵했겠지. 내가 아니니까 말이야.

금남로 공원 지금은 평화로운 공원이 된 자리, 그 날의 광주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 금남로 공원 지금은 평화로운 공원이 된 자리, 그 날의 광주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 허영진


약한 자라고 해도 무조건 침묵하는 것이 올바른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단다. 그렇지만 실제로 행동에 옮기는 것에는 용기가 필요하지. 그리고 그 용기에는 대가가 따르기도 할 거야. 영화에서 택시운전사는 집에 두고 온 딸 때문에 광주에 두고 온 외국인 기자를 다시 데리러 가는 위험을 감수할 것인지를 놓고 고민을 하다가 딸에게 전화를 한단다. 그와 외국인 기자의 탈출을 위해 영화에서는 광주 택시 기사들이 말 그대로 목숨을 바쳐서 군인들을 저지하는 장면도 나온단다.

택시 운전사 주인공 김사복(송강호)이 만약 죽었다면 혼자 남겨진 딸은 어떻게 됐을까? 광주 운전사(유해진)에게는 아들과 아내가 있는 것으로 나오는데, 만약 그가 죽었다면 그 남겨진 가족은 어떻게 됐을까? 과연 그의 용기에 대해서 사회는 제대로 대가를 지불했을까? 결과적으로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그 희생이 더 두렵고 슬프게 느껴졌단다.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의 자손 3대가 가난하게 산다는 말이 현실로 나타난 세상에서, 이름조차 없는 민초의 자식들은 그 결과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도 세상은 진보하고 있단다. 아빠의 아빠가 살았던 전쟁과 가난의 시대보다는 아빠가 살았던 독재와 성장의 시대가 더 나아졌고, 또 그 시대보다는 네가 자라고 있는 지금이 더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해. 그 나아짐은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한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더 많이 자각하고, 더 많이 참여해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 게 아니겠니? 네가 살아갈 세상은 더 나은 세상이기를 바란다. 그렇지만, 소시민 아빠로서 시대를 바꾸는 싸움에 가장 앞에 선다면 말리는 소심한 아빠가 될 거야. 아빠는 그저 불의한 일들에 분노하고, 그 분노를 여론에 반영하고, 세상을 바꾸는 데 시민으로서 힘을 보태기를 바랄 뿐이지.

<택시운전사>는 모두가 침묵하던 시대에 침묵하지 않았던 한 외국인 기자의 용기를 바라보고, 이유 없이 죽어간 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위해 종교가 없어도 기도하게 만드는 그런 좋은 영화였어. 언젠가 너와 함께 다시 보고 싶구나. 그 때까지는 좀 더 나은 세상이기를 바라며 아빠도 기여하는 사람이 되어 볼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허영진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electricjin.blog.me)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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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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