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테이블> 관련 사진.

영화 <더 테이블>은 서로 다른 네 쌍의 인물들이 한 카페에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으로 채워졌다. ⓒ 엣나인필름


정유미, 정은채, 그리고 임수정. 그간 각 작품에서 따로 주연 및 주요 역할을 해온 배우들이 한 영화에 출연했다. 그것도 러닝타임 70분짜리 중편에 말이다. 게다가 영화의 규모와 의미를 고려해 출연료를 일단 받지 않고 참여했다.

이들의 마음을 움직인 영화 <더 테이블>이 개봉을 앞두고 18일 서울 동대문 메가박스에서 언론에 '선공개'됐다. 연출을 맡은 김종관 감독과 함께 8명의 출연 배우 중 한예리, 정은채, 정준원, 전성우가 시사 후 간담회에 참석했다.

이들은 왜 다시 만났나?

'더 테이블' 김종관 감독 향한 박수 배우 한예리와 정은채가 18일 오후 서울 메가박스동대문에서 열린 영화 <더 테이블> 시사회에서 김종관 감독을 향해 박수를 치고 있다. <더 테이블>은 하나의 카페, 하나의 테이블에서 하루동안 머물다 간 네 개의 인연을 통해 사랑과 관계의 다양한 모습을 비추는 작품이다. 24일 개봉.

▲ '더 테이블' 김종관 감독 향한 박수 배우 한예리와 정은채가 18일 오후 서울 메가박스동대문에서 열린 영화 <더 테이블> 시사회에서 김종관 감독을 향해 박수를 치고 있다. ⓒ 이정민


전작 <최악의 하루>로 하루 동안 도심 속 골목에서 벌어진 사랑의 단상을 그린 김종관 감독은 사소한 사연과 인물들을 잘 직조하는 장기가 있다. 이번 영화에서는 그간의 구조를 다소 바꿨다. 하루 동안에 벌어진 이야기라는 틀은 갖지만, 공간은 어느 카페 안 특정 테이블로 한정했다. 닫힌 그 공간에서 서로 다른 네 쌍의 인물이 시차를 두고 대화를 나눈다.

매우 간단한 구조와 캐릭터 구성으로 <더 테이블>은 김종관 감독의 표현대로 '소품'이라 불릴만하다. 네 쌍 중 세 쌍이 결혼적령기인 30대 청춘들이며, 다른 한 쌍은 한 명의 청년과 그의 결혼식에서 가짜 엄마 역을 할 중년 여성이다. 이 커플을 제외한 나머지 청춘 커플은 모두 서로를 사랑했거나 호감을 느꼈던 과거의 연인들이다.

한번 엇나간 인연이 왜 다시 만났을까. 그리고 무슨 대화를 할까. <더 테이블> 속 카메라는 클로즈업과 익스트림 클로즈업을 오가며 이들 대화를 그대로 전한다. 그러니까 이 영화의 전체 러닝타임은 짧아도 대사 밀도가 상당히 높을 수밖에 없다. 곧 영화 속 대사 하나하나가 관객들의 공감을 사는 게 중요했고, 각 인물을 연기한 배우들의 정서 역시 설득력 있게 전달되는 게 이 영화의 큰 과제 중 하나다.

 영화 <더 테이블> 관련 사진.

영화 <더 테이블>의 첫 번째 에피소드. ⓒ 엣나인필름


어느새 인기 배우가 된 유진(정유미)과 그의 과거 남자친구 창석(정준원)은 재회했음에도 서로의 마음을 속인다. 추억이라는 포장으로 과거 얘기에 서로의 모습을 회상하는 듯하지만 창석은 다른 목적이 있어 접근한 것이고 유진은 그걸 내심 알면서도 받아준다.  

각자의 사정으로 호감 단계에서 결별하게 된 민호(전성우)와 경진(정은채)는 여전히 서로에 대해 물음표다. 민호에게 받은 상처를 드러내며 자리를 피하려는 경진과 그런 여자를 어떻게든 잡으려 하는 민호의 모습이 제법 풋풋하다. 또 부유한 남성과 결혼을 앞둔 혜경(임수정)은 옛 연인 운철(연우진)에게 잠시라도 다시 사귀어 보자는 파격 제안을 했다가 거절당한다. 위장 결혼으로 몇 차례 사기 전력이 있는 은희(한예리)는 이번엔 진짜 결혼이라며 위장 엄마를 해줄 숙자(김혜옥)를 설득한다.

이렇게 서로 독립된 인물이 한 공간에서 각자의 이야기를 하는 구성이 제법 재밌다. 김종관 감독은 "영화 속 인물들이 솔직하지 않고 의존적이거나 약한 사람들이지만 그런 사람들을 그린 걸 좋아한다"며 "사람의 어리석음이 어디서 오는 건지 들여다보는 것도 영화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연출의 변을 밝혔다.

"애초에 상업적 기획이 아니었는데 좋은 배우들이 기꺼이 함께 해줬다. 요즘 한국영화가 뜨거움에 집중하는 시기인데 (이것처럼) 사소함에 집중하는 영화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전 그걸 해보겠다는 생각이 있다. 멜로와 드라마 장르에 투자가 안 되고, 잘 만들어지지 않고, 캐릭터도 한정적인데 이런 쪽에서 좋은 배우와 여성 캐릭터가 부각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이 작품은 투자받아서 한 게 아니라 제대로 배우들의 출연료를 못 드렸는데 다음엔 배우들 개런티를 다 드리면서 하고 싶다(웃음)." (김종관 감독) 

배우들의 말들

'더 테이블' 오늘 만난 네 개의 인연 18일 오후 서울 메가박스동대문에서 열린 영화 <더 테이블> 시사회에서 김종관 감독(가운데)과 배우 정은채, 한예리, 정준원, 전성우가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더 테이블>은 하나의 카페, 하나의 테이블에서 하루동안 머물다 간 네 개의 인연을 통해 사랑과 관계의 다양한 모습을 비추는 작품이다. 24일 개봉.

▲ '더 테이블' 오늘 만난 네 개의 인연 영화 <더 테이블> 시사회에서 김종관 감독(가운데)과 배우 정은채, 한예리, 정준원, 전성우가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 이정민


감독의 말처럼 중량감 있는 배우들이 선의를 보였다지만 그게 다는 아니었다. 정은채는 "평소 감독님의 작품을 좋아하기도 했고, (이번 캐릭터를 통해) 진실감 있고, 무게감 있게 대화하겠다는 생각으로 임했다"고 출연 이유를 말했다.

"감독님이 읽어보라 해서 봤는데 은희 이야기가 가장 마음에 들었고, 그래서 신기하게도 은희라는 이름으로 다시 연기(전작 <최악의 하루> 속 한예리 배역이 은희였다- 기자 주)하게 됐다"던 한예리는 "거짓을 꾸미고 있지만, 그 안에는 진심이 있다는 걸 표현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이에 김종관 감독은 "조심스럽게 시나리오 줬는데 예리씨가 하게 돼서 행운이었다"며 "은희라는 역할을 예리씨가 다시 하니 재밌었다"고 덧붙였다.

'더 테이블' 한예리, 독보적인 존재감 배우 한예리가 18일 오후 서울 메가박스동대문에서 열린 영화 <더 테이블> 시사회에서 미소를 짓고 있다. <더 테이블>은 하나의 카페, 하나의 테이블에서 하루동안 머물다 간 네 개의 인연을 통해 사랑과 관계의 다양한 모습을 비추는 작품이다. 24일 개봉.

▲ '더 테이블' 한예리, 독보적인 존재감 배우 한예리가 18일 오후 서울 메가박스동대문에서 열린 영화 <더 테이블> 시사회에서 미소를 짓고 있다. ⓒ 이정민


"은희 역을 다시 했는데 또 다른 의미가 있을까 생각하면서 했다. 캐릭터를 구축하기보단 제 앞에 앉아 있는 분과 어떤 시너지를 낼 것인가에 집중했다. 대사량이 있고, 한정된 공간에서 얘길 하니까 캐릭터보단 감정을 주고받는 디테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한예리)

"정은채, 전성우씨 이야기가 멜로 느낌이 있고, 정유미씨 에피소드는 첫사랑 얘기긴 하지만 멜로이기 보다는 추억과 대면하면서 서로 어그러지는 이야기다. 하루 안에 벌어질 수 있는 삶의 단면들을 제시했다. 우리가 그 안에서 볼 수 있는 건 대화의 일부지만 다른 걸 상상할 수 있는 얘기가 되길 바랐다." (김종관 감독)

여성 배우가 앞에서 이끌고 이를 받아주는 남성 배우의 면모도 신선하다. <박열>과 <동주> 등에서 캐릭터를 잘 소화해낸 정준원과 뮤지컬 <블랙메리 포핀스> 등으로 무대 공연계에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전성우가 나름 충실히 상대역을 해냈다.

소품의 탈을 썼고, 특정 사건도 없지만 그 자체로 요즘 한국영화에서 찾아볼 수 없는 패기가 느껴졌다. 이는 남녀 사이, 나아가 진실과 거짓을 말로 하는 뭇 사람들의 보편적 습성을 나름 자세히 관찰한 감독의 습관 덕이 아닐까 싶다. 다만 단순히 대화를 주고받고 끝남에 그치지 않고, 보다 상황과 인물 간 에너지를 활용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예산의 한계는 있었겠지만 피아노와 기타를 이용한 다소 관성적인 음악사용도 아쉬웠다.

한 줄 평 : 소품이라지만 결코 소품 같지 않은 이야기
평점 : ★★★(3.5/5)

영화 <더 테이블> 관련 정보
연출 및 각본: 김종관
출연: 정유미, 한예리, 정은채, 임수정 등
제작: 볼미디어
제공 및 배급: 엣나인필름
러닝타임: 70분
상영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개봉: 2017년 8월 24일


더 테이블 한예리 임수정 정은채 김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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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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