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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1월 31일 <경향신문> 8면. 지면에 큼지막한 광고 하나가 실렸다. 신문의 하단 절반을 채운 이 광고는 바로 서울약품의 '원기소'였다. 당시 8면은 신문의 맨 뒷면인 표지로, TV 편성표와 함께 가장 광고효과가 뛰어났다. 광고료도 웬만한 중형 승용차 가격 이상이었다.

파격적인 광고면을 차지한 만큼, 광고모델의 등장인물은 더 파격적이었다. 광고에는 당시 서울약품의 영업본부장을 맡고 있었던 선종훈씨 가족이 등장했다. 광고 문구는 이렇게 시작된다.

"제 결혼이 늦은 때문인지 애들에게 쏟는 정이 유난스럽다고들 하더군요. 둘째 놈 원석이는 날 때부터 체중이 적고 몸이 약해 늘 걱정이 많았었죠. 자, 어떻습니까? 이제 6개월짜리 원석이 놈의 체중이나 신장이 돌잡이와 맞먹을 정도로 건강해졌답니다. 이것이 모두 과립 '베이비 원기소' 덕분이라고들 합니다만, 저는 늘 애 엄마의 육아 솜씨를 칭찬한답니다."

1973년 1월 31일 <경향신문> 8면에 등장한 원기소 광고. 실제로 이 광고에는 당시 서울약품의 영업본부장을 맡고 있었던 선종훈씨 가족이 등장해 원기소를 소개한다.
 1973년 1월 31일 <경향신문> 8면에 등장한 원기소 광고. 실제로 이 광고에는 당시 서울약품의 영업본부장을 맡고 있었던 선종훈씨 가족이 등장해 원기소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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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을 직접 파는 책임자가 제 아들에게 먹여서 멋지게 키우고 있다는 이 광고. 지금이야 유치찬란하기 짝이 없지만, 당시로써는 또래 아이를 키우는 서민들에게 먹혀들어 가고도 남았다. 유·소아 전용인 과립형의 '베이비 원기소'가 380원(60g 기준), 다섯 가지 과일 향을 자랑하는 '후르츠 어린이 원기소'는 500원(100정 기준), 일반형 원기소는 480원(1000정 기준)이란다. 각 제품 아래에 깨알과 같은 글씨로 신비로운 효능까지 적혀있다.

'식욕부진, 성장촉진, 발육부전, 소화불량, 임산부 영양부족, 산전 산후 쇠약, 모유 부족, 결핵성 질환의 영양촉진, 변비...'

입맛을 돋우는 효소와 효모를 함유해 식욕부진을 없애주고 비타민, 미네랄, 아미노산 등 60여 종의 천연성분을 종합적으로 보충해주는 필요 불가결한 종합영양제란다. 효과 여부를 떠나, 적힌 대로만 보면 그야말로 만병통치약이 따로 없다. 당시에도 서울약품은 정찰가 판매를 고수했으나. 480원으로 적힌 1천 정을 종로 보령약국이나 구일약국에서는 350원이면 살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돈은 서민들에게도 아주 많은 돈이었다.

<검정고무신> 기영이가 제일 좋아하는 약

그랬다. 원기소는 과거 어려웠던 1960~1970년대 시절 국민 영양제의 효시로 꼽히는 종합영양제의 대명사였다. 지금이야 특권층에서는 비싼 성장호르몬 주사가 있다지만, 196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판된 원기소는 부잣집 아이들만 누릴 수 있는 특권 중의 단연 '갑'으로 통했다.

원기소는 보리 등의 곡류에서 추출한 효소 분말을 발효시켜 소화를 촉진하고, 곡류에 다량 함유된 식이섬유가 변비에 효과가 있는 단순한 건강보조식품 수준이었다. 일단 소화가 잘되고 배변이 잘 되니 결국 식욕이 늘어나고 성장이 빨라지는 게 기본적인 이치 아닌가. 결핍된 영양을 보충해주기보다는 밥 잘 먹게 하는 데는 이만한 게 또 없었다.

지금이야 영양부족이 아니라 영양 과잉이 문제가 되는 세상이지만 당시만 해도 밥만 잘 먹을 수 있다면 뭐든지 사주고 싶어 하는 부모들의 욕구에 적중했다. 이를 노린 듯 경제가 피폐했던 시절 탄생한 원기소의 첫 광고 문구는 '위대한 민족의 체력을 향상시키자'였다.

당시 제조기술로 효능을 기대하기란 무리였지만 왠지 먹으면 힘이 솟을 것 같고 먹지 않으면 무슨 병이라도 걸릴 것 같은 믿음과 신뢰는 대단했다. 오죽하면 밤에 오줌 싸지 말라고 먹이는 약이 바로 이 원기소였다. 이런 '피그말리온' 효과가 없었다면 과연 오랫동안 국민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을까?

1992년부터 공중파를 통해 방영된 애니메이션 <검정고무신>의 주인공 기영이가 제일 좋아하는 약은 바로 '원기소'였다.
 1992년부터 공중파를 통해 방영된 애니메이션 <검정고무신>의 주인공 기영이가 제일 좋아하는 약은 바로 '원기소'였다.
ⓒ <검정고무신>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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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부터 공중파를 통해 방영된 애니메이션 <검정 고무신>은 1960년대 서울 마포구의 한 대가족을 배경으로 한다. 여기에 등장하는 주인공 기영이가 제일 좋아하는 약이 바로 원기소였다. 엄마가 외출한 사이 막둥이 오덕이를 달래주다 무심코 발견한 원기소. 오덕이에게 한 알 주고 기영이도 한 알 먹고, 그러다 달곰하고 고소한 맛에 취한 기영이는 결국 한 통을 몽땅 다 먹어버리고 만다.

지금까지 엄마가 아기 영양제라고 못 먹게 한 이유는 바로 이 환상적인 맛에 있었다. 엄마에게 기영이가 혼나는 소리보다 더 잊히지 않는 건, 원기소를 너무나도 맛있게 흡입하던 장면이다. '쭙쭙' 소리까지 내며 얼마나 맛있게 먹었는지, 원기소를 모르는 세대까지 침샘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첫맛은 달콤, 끝맛은 고소... 자꾸만 손이 가는 영양제

당시 원기소는 기영이의 경우처럼 허약한 동생 차지가 될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 장남이나 외동아들 몫이 될 때가 더 많았다. 어머니가 숨겨놓고는 장차 집안의 기둥 역할을 할 아들에게 준 것이다.

어린 시절, 큰아버지 댁에 놀러 가 책장 서랍을 무심코 열었는데 바로 그 장안의 화제인 원기소가 들어 있었다. 큰어머님이 집안의 아들에게 먹이려고 몰래 사둔 것이었다. 누가 볼세라 잽싸게 한 움큼을 주머니에 몰래 담았다. 딸이 둘이나 있던 그 집에서 아들 먹이려고 숨겨놓은 로망의 영양제를 내가 중간에서 슬쩍 담은 것이었다. 사실 1천~2천 개나 되는 수량이 들어있으니 몇십 개쯤 빼낸다 해도 거의 들킬 일은 없었다.

1975년 초등학교 1학년 시절, 엄마를 겨우 졸라 원기소와 처음으로 조우했다. 그 시절 시골에 사는 다른 집 아이들이 못 누리는 호사를 누리게 된 것이다. 원래는 비실비실한 막냇동생을 위한 것이었지만, 동생이 먹은 것보다 엄마 몰래 내가 훔쳐 먹은 게 더 많았다. 어쩌다 엄마가 주시는 개수는 간에 기별도 안 갔다. 사탕 한 알 받아먹는 느낌이랄까.

엄마가 외출하며 1개만 먹으라고 했지만, 내 손에 들린 것 빼고도 주머니에 들어 있는 것만 10개가 넘었다. 그리고는 동생들 몰래 주머니에서 한 움큼씩 입에 털어 넣었다. 영양제가 아니라 그야말로 아주 '특별한' 간식이었다.

그렇다면 의약품에 불과한 이 원기소가 아이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끈 비결은 무엇일까? 일단 그 비결은 특유의 맛과 향에 있었다. 일단 다른 영양제에 비해 특유의 약 냄새가 덜했다. 약이라기보다는 달콤한 과자에 더 가까웠다. 효소 분말제품이라 고소하지만 조금 텁텁한 특유한 맛이 있었지만, 그 느낌은 잠깐이었다.

처음 입안에 넣으면 목이 좀 먹먹해지긴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고소함이 입안을 감도는 그 맛은 말로 다 표현하기가 힘들다. 지금으로 따지면 시중에 파는 효소제품이나 청국장 가루의 향과 조금 비슷했다. 굳이 요즘 사람들도 알만한 맛으로 가져다 붙인다면 요즘 생협 등에서 판매하는 어린이용 비타민이나 정제형태의 효소 분말, 맥주효모 등과 거의 흡사하다. 그래서 당시 경쟁제품이었지만 약 냄새가 나는 '에비오제'는 원기소를 결코 당해낼 수가 없었다.

실은 원기소를 먹지 못하는 아이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특유의 냄새 때문에 역겨워하고, 입에 넣는 순간 침을 흡수해 이내 입안이 텁텁해지는 감각 때문에 싫어하는 아이들도 있긴 했다.

어느 약이나 그렇듯 원기소도 한 번에 먹는 양이 연령별로 용법과 용량이 정해져 있었다. 하지만 원기소에 한번 심취하면 용량 따위는 안중에도 없게 된다. 중독이 되지 않더라도 한 움큼씩 먹는 날이 더 많았다. 아니, 처음엔 한두 개씩을 지켰다가 어느새 거의 과자처럼 먹는 수준이 되는 것이다. 원기소를 한주먹 쥐고 동네에 나가면 친구들은 한 알이라도 얻기 위해 손을 벌리며 읍소했다. 원기소를 쥐고 있던 나는 물론 받는 녀석들은 손이라도 제대로 씻었을까?

80년대 이후 생산 중단, 식약처도 최종 시판 금지

1972년 3월22일자 <동아일보> 8면 지면 광고
 1972년 3월22일자 <동아일보> 8면 지면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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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영양제 격인 원기소를 떠올리자니 그 시절 우리 곁을 항상 지켰던 '아까징끼'라 불리던 빨간 응급처방 약(포비돈 요오드)과 '안티푸라민'도 결코 빼놓을 수 없다. '배 아플 땐 배에 빨간 약 바르면 낫는다'는 민간요법이 있을 만큼 제2의 만병통치약으로 통하던 국민 소독약, 그리고 원래 용도는 진통·소염이지만 핸드크림 대용은 물론 온갖 아픈 곳에 다 쓰인 초록색 철제 케이스와 간호사 그림은 원기소의 추억만큼이나 새록새록 하다.

약 뚜껑을 열기 위해 병을 잡으면 병 속에서 알약들과 벽이 서로 부딪히며 내는 '달그락' 소리는 지금도 귀에 선하다. 병만 들어보고도 느껴오는 무게감으로 몇 알이나 남았는지 알아맞히던 그 기억들이 이제는 새롭다. 그때 그렇게 먹었던 원기소가 지금의 나에게 정말 도움은 됐던 것일까?

약 20년간 어린이 만병통치약으로 통하던 원기소도 회사가 1980년대 중반쯤에 부도가 나면서 생산이 중단됐고 이후 아류작들이 등장했다. 하지만 다른 회사를 몇 번 거치며 예전의 그 맛을 유지하지 못했고 비슷한 이름으로 명맥만 겨우 유지해왔다. 그러다가 지난 8월 16일, 식약처는 결국 원기소의 시판을 최종적으로 금지했다.

효능이 인정되지 않았다기보다는, 식약처가 유용성 재평가를 위해 요구하는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사는 1980년대 도산 이후 지금까지 원기소를 생산한 실적이 없었다. 또 회사가 없어져 약효 재평가를 위한 공문회신에 응하지 않아 자료를 제출하지 않은 것이다. 결국, 식약처 의약품 리스트 속 원기소라는 품목은 역사 속으로 영원히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

요즘 아이들 입맛에 맞을 만한 맛은 아니지만, 당시에는 최고의 영양제라 믿었던 원기소. 원래 추억과 기억은 맛과 냄새로 각인된다고 한다. 원기소의 맛과 향을 떠올리자니 이제는 특별함보다는 아쉬움이 더 크다.

원기소를 삼 형제들에게 한 알씩 배급하셨던 울 엄마가 요즘 하시는 말씀이 떠오른다.

"애들이 어째 감기도 잘 걸리고 자꾸 토하고 비실비실하냐? 너네 키울 때는 내가 매일 원기소 먹였다. 애들도 뭘 좀 먹여야 하는 거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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