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국가대표팀 공격수 이동국의 모습

축구국가대표팀 공격수 이동국의 모습 ⓒ 대한축구협회


베테랑 공격수 이동국의 귀환은 신태용호 1기 출범에서도 가장 뜨거운 화제였다. 축구선수로서는 환갑을 넘긴 38세의 나이에 다시 태극마크를 달았다는 화제성과 이동국 본인의 파란만장한 대표팀 경력이 재조명받으며 더욱 이슈가 되었던 측면이 있다.

베테랑으로서 끊임없이 스스로의 한계를 극복해내고 있는 이동국의 노력과 자기관리는 모든 국가대표 선수들의 귀감이 될 만하고 충분히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다만 그것은 대표팀 발탁 이전까지의 이야기이고, 단지 대표팀에 뽑혔다는 자체로만 이동국 발탁의 의미가 끝나서는 곤란하다.

대표팀은 현재 월드컵 본선 진출의 운명이 걸린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이다. 신태용 감독은 지금 현재 한국축구에서 최고의 기량을 발휘할수 있다고 판단된 선수들을 끌어모은 것이다. 이동국 역시 단순히 과거의 명성이나 베테랑으로서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넘어선, 그라운드에서 '현재의 실력'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발탁됐다.

그런데 이번 대표선발은 평가전에서 발탁된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만에 하나 이번 대표팀이 성과가 좋지 못하고 최악의 경우 월드컵 본선진출이 좌절되기라도 한다면, 대표팀 구성원들 모두 한국축구의 흑역사에 일조했다는 멍에를 축구인생 내내 안게될 수도 있다. 선수들에게는 영광과 위험부담이 공존하는 순간이다. 특히 유난히 '태극마크'와 관련해 파란만장한 행보를 걸었던 이동국이 받게 될 타격은 다른 선수들보다 좀더 클 수도 있다.

최근 이동국의 대표팀 복귀라는 이슈를 두고 일각에서 선수의 '나이'나 '개인사'에 초점을 맞추는 현상은 선수 본인이나 한국축구를 위해서도 그리 좋은 일만은 아니다. 한국축구가 월드컵 본선진출에 성공하고 이동국이 그 과정에서 일정 부분 본인의 실력으로 기여했음을 증명해야만 의미가 있는 것이지, 그렇지 않다면 지금 이동국에게 쏟아지고있는 관심은 대표팀의 성적과 비례해 역풍으로 돌아올 가능성도 크다. 과연 이동국보다 더 나은 선수가 정말 없었는지도 아직 의구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팬들도 있다. 이동국을 아끼는 팬들이나 축구인들조차 굳이 지금 다시 대표팀에 복귀하는 게 과연 좋은 일인지 반응이 엇갈렸던 이유다.

많은 이들은 대표팀에서 이동국이 겪었던 '불운'의 역사를 흔히 떠올린다. 하지만 대표팀은 이동국 개인의 한풀이 무대도 아니고, 이동국 역시 동정이나 받아야할만큼 태극마크 경력이 초라한 선수도 아니다. A매치를 무려 103경기나 출전했고 월드컵 본선무대를 두 번이나 밟은 스타 선수를 언제까지 비운의 아이콘처럼 취급하는 것도 다소 우스운 일이다.

이동국은 사실 대표팀에서 운이 없는 선수라기보다는 '기회를 많이 얻고도 살리지 못한' 선수에 더 가깝다. 가장 많이 거론되는 월드컵 경력만 해도 부상으로 낙마한 2006년 독일월드컵을 빼면, 2002 한일월드컵은 실력으로 포지션 경쟁에서 밀려 탈락한 것이고, 2010 남아공월드컵에서는 본선무대는 밟았지만 팬들의 기억에 남은 것은 소위 우루과이전 '물회오리슛'으로 결정적인 기회를 날린 장면뿐이었다.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는 홍명보호 '의리축구'의 희생양으로 부각됐지만, 최강희 감독이 이끌던 최종예선까지는 부동의 주전 공격수로 기용되고도 아시아무대에서조차 확실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기에 세계적인 강호들이 모이는 월드컵 본선에서도 통할 것이라는 기대는 갖기 어려웠다. 물론 카타르전 손흥민의 결승골에 기여한 것처럼 나름 공헌한 장면도 없지는 않지만 최종예선 7경기 1골이라는 종합 성적표는 전폭적인 신뢰에 비하면 불합격에 가까웠다.

클럽무대에서 이동국의 전성기가 전북 이적 이후 30대에 만개한 것과 정반대로, 대표팀에서의 활약상은 독일월드컵을 전후로 하여 20대 초중반에 집중되어 있다. 당시 이동국은 '혹사'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각급 대표팀에 불려다니던 대체불가한 공격수였다. 하지만 최근 10여년간은 평가전이나 약팀과의 경기를 제외하면, 이동국이 비중이 큰 국제대회나 강팀과의 빅매치에서 득점을 기록해 팀을 위기에서 구해낸 장면이 언제였는지 가물가물하다.'소속팀에서의 활약에 비해 유독 대표팀에서는 그만큼의 실력이 나오지 않는 선수'라는 인상이 굳어진 계기다.

또한 이동국은 이번이 2014년 이후 무려 3년간의 대표팀 복귀다. 이동국처럼 한동안 대표팀에 차출되지 않던 노장 선수가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오랜만에 대표팀에 복귀하는 케이스는 과거에도 김남일(현 대표팀 코치)이나 안정환(예능인)을 꼽을 수 있다.

김남일은 2013년 브라질월드컵 최종예선에서 부상으로 선발되지 못한 기성용-구자철을 대신해 중앙 미드필더로 남아공월드컵 이후 3년 만에 전격 발탁되었지만 레바논전에서 국제대회 공백기를 드러내며 부진한 모습을 보였고 우즈베크-이란전에는 아예 부상으로 나서지도 못하며 실패한 카드가 되고 말았다. 안정환은 2010 남아공월드컵에서 예선에서 활약했던 이근호 등을 제치고 본선 최종엔트리에 깜짝 발탁되었으나 체력 문제 등으로 정작 본선에서는 한 경기도 뛰지못했다. 두 선수의 태극마크 경력도 각각 거기서 끝났다. 여전히 소속팀에서 꾸준한 활약을 했더라도 대표팀에서의 공백기는 또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 장면이다.

이동국은 현재 소속팀 전북에서도 부동의 주전이라기보다는 에두-김신욱과 로테이션으로 출장하고 있으며 후반 교체로 투입된 경우도 많다. 더 젊고 더 강했던 전성기에도 보여주지 못했던 '해결사 본능'을 마흔이 다 된 나이에 대표팀에서 다시 보여주는 게 가능할지를 두고 의문의 시선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이동국이 이번 최종예선 2연전에서 증명해야 할 대목이다.

어떤 면에서 이동국은 대표팀에서 개인의 아픔보다는 갚아야할 빚이 더 많은 선수이기도 하다. 이제는 너무 유명해진 월드컵 불운사에만 가려졌지만 이동국은 태극마크를 달던 시절, 2002년 병역비리 파문이나 2007 아시안컵 당시 음주사고 징계 등으로 굵직한 흑역사를 남긴 전적도 화려하다. 이동국이 이후 대표팀에서는 그간의 빚을 속죄할만큼의 활약을 보여준 적은 아직 없다. 이동국이 대표팀에서 부진할 때마다 욕을 더 많이 먹었던 또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번 최종예선은 이동국이 어쩌면 대표팀을 구한 영웅으로 부활할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신태용 감독이 이동국을 선택한 것이 과연 신의 한 수가 될지 아니면 무리한 도박으로 끝날지 지켜봐야할 대목이다. 더 이상 '불혹의 베테랑'이나 'K리그 레전드'라는 상징성은 잠시 접어두고 지금부터는 오직 현재의 '국가대표 공격수'로서만 이동국의 활약상을 냉정하게 평가해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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