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제 MBC 해직기자가 16일 오전 서울 양재동에 위치한 자신의 사무실인 쿠르베오디오에서 최근 출간한 <권력과 언론>과 MBC의 최근 상황에 대해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이정민


"MBC 뉴스가 많이 망가졌잖아요. 바닥까지 추락했잖아요. 어떻게 '만나면 좋은 친구'로 MBC 뉴스와 시사 프로그램을 끌어올릴지 선후배들과 만나면 그 이야기밖에 안 해요. 약간 과장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우리가 해방 전 임시정부에 있는 사람들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조금 있으면 전쟁이 끝나고 나라를 되찾을 수 있다. 그런데 그 나라를 어떻게 재건할 것인가? 얼마나 행복하고 고민이 많겠어요."

박성제 기자는 눈을 반짝였다. 5년. 참 오래도 싸웠다. 해직 언론인으로서 질기게 버티고 곡진하게 싸운 그 끝의 끝이 이제야 겨우 보이는 듯하다. MBC 안팎의 언론인들은 2012년 170일 총파업 이후의 큰 패배를 추스르고 다시 총파업 투표를 앞두고 있다. 

5년. 긴 시간동안 그가 MBC와 싸우기만 한 것은 아니다. 많이 알려진 대로 그는 그동안 쿠르베오디오라는 수제 스피커 회사를 차렸고 책을 두 권이나 냈다. 한 권은 지난 7월 31일 출판된 <권력과 언론 - 기레기 저널리즘의 시대>(이하 <권력과 언론>)다. <권력과 언론>은 박성제 기자가 최승호 감독과 민주언론시민연합 김언경 사무처장, 민동기 미디어오늘 편집국장, 배정훈 SBS <그것이알고싶다> 피디 등을 만나 현재 한국 언론에 산적한 문제들을 묻고 이들의 답변을 담은 인터뷰집이다. '기레기 저널리즘'이 무엇인지 물으니 박성제 기자는 본인이 만들어낸 말이라며 웃는다.

"사람들이 보기에 경멸스럽고 화가 나고 혐오스러운 언론의 행태가 농축된 말이라고 생각했다. 보통 사람들은 언론이 권력과 기득권을 감시하고 사주나 광고주 이익에 관계없이 정도를 걷기를 기대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게 드러난 거다. 특히 세월호 보도를 거치면서 한국 기자들 문제 있구나 팩트를 왜곡하는구나 오보를 내는구나 사건의 진실을 취재하는데 관심이 없구나 사실을 호도하려 하는구나 클릭을 유도하기 위해 어뷰징을 하는구나 오보가 드러나도 사과하지 않는구나. 이 모든 행태가 '기레기'로 정리가 된다."

박성제 MBC 해직기자, 돌아가야지요! 박성제 MBC 해직기자가 16일 오전 서울 양재동에 위치한 자신의 사무실인 쿠르베오디오에서 최근 출간한 <권력과 언론>을 들어보이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박성제 기자는 "이제 언론이 변하지 않으면 독자들로부터 버림받게 되고 결국 생존하지 못한다"고 했다. 16일 서울 양재동 근처 쿠르베오디오에서 박성제 기자를 만났다. 그는 MBC에 복직해 <권력과 언론>을 통해 얻은 아이디어로 JTBC와 "선의의 경쟁"을 펼치겠다고 말했다. 'MBC가 다시 정상화되면 JTBC보다 좋은 보도가 나올까?'라는 질문에 박성제 기자는 "물론이다"라고 단언했다.

"MBC에는 훌륭한 앵커와 사장을 배출해낸 조직문화가 있다. 손석희와 최승호를 배출해낸 곳이다. 여기에 제2의 손석희와 최승호가 있다. 그런 언론인들이 많기 때문에 이명박과 박근혜가 (MBC를) 죽이려 한 것이다. 그런 분들이 현장으로 돌아오면 충분히 복구할 수 있다고 본다."

"언론인은 언론인의 싸움을 하면 된다"

- 언론이 독자들로부터 버림받으면 망할 거라고 본다고 했다. 지난 5년간 MBC는 꾸준히 독자들로부터 버림받았지만 망하진 않았다.
"망하진 않는다. 공영방송은 먹고 사는 구조가 다른 언론사랑 다르지 않나. 방송사는 예능과 드라마를 잘 만들면 살아남을 수 있다. 몇십 년 동안 축적해온 지적재산권도 많고. 부동산도 있고. 그래서 공영방송 개혁이 중요한 거다. 사람들이 KBS나 MBC에 대해 기대하는 바가 있고 지금껏 자의든 타의든 이를 저버렸기 때문에 공정방송을 되돌리려는 노력이 진행 중이라고 생각한다. 언론인 스스로의 힘으로 이겨내야 한다. 박근혜를 탄핵한 게 헌법재판소인가? 아니다 국민이다. 헌법재판소는 어쩔 수 없이 국민의 명령을 따른 것이지. 저 사람은 대통령의 자격이 없다는 걸 여러 차례 확인시켜주었지 않나. 마찬가지다. 공영방송사 이사장이나 사장을 해임시키는 건 마지막 요식 행위다. 이를 만들어가는 건 KBS와 MBC 언론인들의 싸움이다. 그 싸움이 현재 고비에 왔고 잘 되면 방송개혁은 한 단계를 넘어서게 될 것이다. 그 다음부터 제대로 된 방송을 하면 된다."

- <권력과 언론>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 박성제 기자가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인터뷰이가 있다면?
"책 프롤로그에 손석희 사장의 대담을 실었다. JTBC의 보도 철학은 '합리적인 시민사회의 철학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하더라. 그래서 JTBC는 탄핵을 지지하는 여론과 반대하는 여론을 반반으로 다루지 않았다고 했다. 여론조사 등에서 상당히 차이가 많이 났기 때문에. 손석희 사장이 정치인들 출연하면 여든 야든 무섭게 질문을 퍼붓지 않나. 그래서 손석희가 기계적인 중립성을 추구하는 사람인가 물으면 절대 그렇지 않다는 거다. '합리적인 시민사회의 철학을 대변한다'는 말은 금방 나온 말이 아니다. 기자들이 고민하고 토론해야 한다. 어떤 이슈를 다룰 때 무엇이 옳은 방향인지를. 찬반 반반씩 다루는 게 공정한 언론인가? 아니다. 사안에 따라서 국민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고민해봐야 한다."

 박성제 MBC 해직기자가 16일 오전 서울 양재동에 위치한 자신의 사무실인 쿠르베오디오에서 최근 출간한 <권력과 언론>과 MBC의 최근 상황에 대해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이정민


 박성제 MBC 해직기자가 16일 오전 서울 양재동에 위치한 자신의 사무실인 쿠르베오디오에서 최근 출간한 <권력과 언론>과 MBC의 최근 상황에 대해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이정민


- 해직하고 참 바쁘게 지냈다. 책도 2권내고 쿠르베스피커도 만들고.
"스피커를 만든 게 컸다. '어떻게 하다 보니'. <권력과 언론>보다 이전에 낸 책 제목도 <어쩌다 보니 그러다 보니>이지 않나. 처음에는 글도 쓰고 <뉴스타파> 일도 조금 도와주고 언론 인터뷰도 하고 그런 삶을 살다가 2016년에 <뉴스타파>에서 시사토크 '뉴스포차'를 진행해보자고 했을 때 그러자고 했다. 해직 언론인으로서 해야 할 일은 해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더라. 후회 없이 해직 생활을 보내고 있다. 물론 모든 게 다 내 뜻대로 되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열심히 살다 보면 다음 단계의 일이 생겨나는 것 같다. 다른 동료도 마찬가지고. (다른 해직 언론인인) 박성호 기자도 언론학 박사를 땄는데 그 논문이 학계에서 파장을 일으켰다. 두고두고 참고해도 좋을 만한 논문이라고 본다. 그리고 최승호 선배 같은 경우는 뭐 영화를 두 편이나 찍었으니까. (웃음) 같은 해직 언론인으로서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강의를 열심히 하다가 이용마씨가 암에 걸린 게 제일 안타깝다."

"홀가분하게 마지막 투쟁할 것"

- 지금 MBC 내부에 남아서 투쟁하는 분들을 보면 기분이 어떤가?
"작년까지만 해도 내가 밖에 나와 있으니 나 위로한다고 후배들이 연락을 해왔다. 그런데 만나면 내가 위로한다. 술 마시다가 '이런 일도 있어요' '누구는 이렇게 쫓겨났어요' '부장하고 싸우다가 어디로 발령 났어요' 이런 이야기를 한다. 나는 5년 전에 해고당해 책도 쓰고 오디오도 만들고 뉴스타파도 활동하는데 후배들은 매일이 지옥이다. 오늘은 누가 쫓겨나고 내일은 누가 배제당하고 이런 일을 계속 겪고 있다. 오히려 내가 후배들을 위로하고 그랬다. '참 니들 나 위로하려고 만난 거 아니냐? 니들이 울면 어떡하냐?' 하면서 술 따라주고 그런 일이 비일비재했다."

- YTN 노종면·현덕수·조승호 기자는 이미 복직을 한 상황이다. 노종면 기자가 MBC 해직 언론인들에게 많이 미안해하더라. 그 소식을 접했을 때 어떤 기분이 들었나?
"노종면 기자와 술도 마셨다. 미안해하지 말라고 그랬다. (웃음) 노종면 기자가 우리에게 미안해할 필요가 전혀 없다. 그런데 부럽다. 복직이 돼 부러운 게 아니라 기존 사장이 물러나고 새 사장을 뽑기 위한 과정이 진행되고 있지 않나. 물론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사장 선임 과정에서 복직 문제도 해결되고 이런 과정들이 나름대로 부드럽게 진행되는 것이 부럽다는 거다. 지금 YTN 내부의 언론인들은 해직된 기자들도 돌아오고 사장도 바뀌는 국면에서 긴장감 속에 있을 거다. 보도도 달라져야 하고 얼마나 부담감이 크겠나. 그러나 이마저도 행복한 고민이고 이런 것들이 부럽다. 우리도 올 가을 쯤에는 그런 고민을 하게 됐으면 한다."

- 복직을 가을쯤으로 예상하나?
"찬바람 불기 전에 고영주 이사장과 김장겸 사장은 몰아내야 한다. 그렇게 본다."

박성제 MBC 해직기자, 돌아가야지요! 박성제 MBC 해직기자가 16일 오전 서울 양재동에 위치한 자신의 사무실인 쿠르베오디오에서 최근 출간한 <권력과 언론>을 들어보이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박성제 MBC 해직기자가 16일 오전 서울 양재동에 위치한 자신의 사무실인 쿠르베오디오에서 최근 출간한 <권력과 언론>과 MBC의 최근 상황에 대해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이정민


- 김장겸 사장을 비롯해 소수 임원들이 아직 MBC 안에서 버티고 있는데?
"제정신이 아니다. 자기들이 무슨 말을 하는 줄 모르는 것 같다. 마치 해방을 앞두고 친일파들이 발광하는 수준이다. 범죄자들이 '우리 끝까지 버티겠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런 생각까지 든다. 죄를 짓고 궁지에 몰린 범죄자들이 자해공갈을 하는 게 아닌가. 자유한국당을 믿는 것 같은데 자유한국당이나 바른정당이 정말 제대로 된 보수 정당으로 국민들 앞에 다시 서려면 지금 MBC 경영진을 비호해선 안 된다고 본다. 차라리 모두 정리하고 다시 사장을 뽑자고 주장을 해야 한다. 그러면 반대할 이유가 없지. 한마디로 소가 웃을 일이다. 지금 MBC 경영진을 비호하는 건 오히려 국민들에게 외면을 받을 것이다. 국민들도 다 알지 않나."

- 그런 행동이 어떤 국민들에게는 '버티면 되는 거 아냐?'라는 신호를 주기도 하는데?
"우리가 딱 10개월 전에 어떤 생각을 했나. 박근혜 탄핵시킬 수 있을까? 버티면 방법이 있나? 헌법재판소 믿을 수 있나?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나. 얼마나 불안해했나. 하지만 싸워 이겼다. 국민들이. 언론인들도 싸우면 된다. 방송통신위원회 이효성 위원장이나 문재인 대통령을 믿고 가는 게 아니다. 언론인들이 싸워서 몰아내야 한다. 물론 마지막 절차는 정부에서 해야겠지. 법적 해임은 언론인들이 할 수 없지 않나. 탄핵에 도장을 찍을 때가 다가온다. 나는 요즘 후배들에게 이화여대생들을 본받자고 이야기를 한다. 이화여대생들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데 학교를 상대로 싸우지 않았나. 경찰에 끌려나오고. 그 투쟁이 나중에 탄핵 정국에서 얼마나 의미 있는 투쟁이었는지 알려졌다. 결국 총장을 감옥에 가게 만들고 총장 뽑는 시스템을 바꿔내고 자신들을 위해 싸워준 교수를 총장으로 뽑았다. 이 친구들처럼 싸우면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이런 이야기를 한다. 난 우리가 이길 거라고 1%도 의심하지 않는다."

- 이화여대만큼 MBC도 지난 5년동안 열심히 싸워오지 않았나.
"싸웠다. 싸웠는데 마지막으로 진짜 한 번 더 힘을 내야 한다."

 박성제 MBC 해직기자가 16일 오전 서울 양재동에 위치한 자신의 사무실인 쿠르베오디오에서 최근 출간한 <권력과 언론>과 MBC의 최근 상황에 대해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이정민


- 사실 박성제 기자를 비롯해 2012년 170일 MBC 총파업이 실패로 돌아갈 것이라 생각한 사람은 없었을 것 같다. 내부적으로 상처가 컸고 그럼에도 다시 큰 파업을 준비하고 이길 거라 믿는 사람의 마음이 어떤 건지 잘 상상이 가지 않는다.
"맞다. 2012년에도 질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올림픽 중계도 거부했다는 건 공영방송 종사자로서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라는 부담감도 있었다. 박근혜 후보조차 MBC 정상화시키겠다는 약속을 했기에 이길 거라 믿고 접었다. 근데 속았지. 처절하게 탄압 당했다. 그리고 당시 총파업 싸움을 이끌었던 중견 언론인들이 다 쫓겨났다. 해직당하고 업무에서 배제되고 프로그램은 망가지고. 국민들은 'MBC는 끝났구나' 생각했다. 가장 부담스러운 시선은 역시 '너네 5년 동안 뭐하다가 이제 와서 정권 바뀌니까 이러느냐' '청와대가 해줄 것 같아서 그러는 거지?'다."

- 실제 그렇게 보는 사람들이 꽤 있다.
"우리 5년 동안 내부에서 싸울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싸웠다. 최승호 감독이 만든 영화 <공범자들> 시사회에서 한 관객이 그러더라. 지금까지 뭐하다가 이제 와서 사장 몰아내겠다고 국민들에게 도와달라고 하는지 염치가 있느냐는 인터넷 댓글을 단 적이 있다고. 영화를 보고 댓글 단 걸 사과하고 싶다고 이야기하더라. 주어진 여건 내에서 싸워왔다는 걸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고 이제 그런 오해들이 많이 희석됐다고 본다. 홀가분하게 마지막 투쟁을 할 수 있지 않을까."

- 마지막 투쟁?
"만일 여기서 타협하면 국민의 버림을 받을 것이다. 사장도 뉴스도 바꾸라는 게 국민의 명령 아닌가. 그거 못해서 돌 맞고 시민들은 중계차에 침 뱉고 '기레기들' 물러나라고 그러는 건데. 공영방송의 주인이 곧 국민이기 때문에 제대로 하라는 거지."

 박성제 MBC 해직기자가 16일 오전 서울 양재동에 위치한 자신의 사무실인 쿠르베오디오에서 최근 출간한 <권력과 언론>과 MBC의 최근 상황에 대해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이정민


- 복직하면 쿠르베오디오를 어떻게 할지 사람들이 제일 궁금해 하는 것 같더라.
"그런 질문 많이 하신다. (웃음) 쿠르베오디오는 나 혼자 하는 게 아니라 내가 모셔온 사람이 있다. 그 분과 같이 일을 하고 있다. 지금은 편안하게 일하고 있지만 복직이 되는 순간 두 가지 일을 할 수 없을 것이다. MBC 재건에 전념해야 하고 그렇다고 쿠르베오디오를 죽일 수는 없다. 작은 회사이고 소위 소상공인이기 때문에 가치가 엄청난 건 아니지만 4년 동안 정말 힘들게 키워온 브랜드다. 아무런 조건 없이 같이 일하는 사람에게 맡길 계획이다. 브랜드와 디자인 특허는 내 이름으로 돼있기 때문에 (웃음) 은퇴하고 돌아와서 스피커를 만들면 되지 않을까 싶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다."


박성제 해직 언론인 권력과 언론 MBC 파업 공정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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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23년차 직원. 시민기자들과 일 벌이는 걸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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