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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 골목에 자리잡은 이병환(60·서울 명륜동)씨의 식료품 소매점 앞에 계란 열댓 판이 수북이 쌓여 있다. 하루 평균 30판을 판매했으나, 이날엔 '살충제 계란' 파동의 여파로 매출을 거의 올리지 못했다.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 골목에 자리잡은 이병환(60·서울 명륜동)씨의 식료품 소매점 앞에 계란 열댓 판이 수북이 쌓여 있다. 하루 평균 30판을 판매했으나, 이날엔 '살충제 계란' 파동의 여파로 매출을 거의 올리지 못했다.
ⓒ 박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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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 식료품 소매상을 운영하는 이병환(60, 서울 명륜동)씨의 낯빛이 상기됐다.

"오늘은 토스트집 할머니 빼고 다들 한 판도 안 사가네. 지나가는 사람들이 '살충제 계란 때문에 어떡하냐'며 한 마디씩 던지니까 상인으로서 더 불안한 거야."

이씨가 운영하는 상점 유리문 앞엔 계란 열댓 판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하루 평균 30판을 파는데, 이날 장사는 완전히 공쳤단다. 이씨는 "종로 일대 식당에서는 미리 주문했던 물량을 도로 뺐다"며 "지난겨울 AI(조류인플루엔자) 파동 때도 그렇고 계속 전통시장 상인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고 푸념을 늘어놨다.

그의 하소연은 사소한 문제가 아니었다. 정부에서 안전관리대책을 내놓은 이날 아침에도 이씨 상회에서 계란을 네 판이나 산 장희숙(75, 서울 연지동)씨는 "평소 때와 비교하면 하루 매출이 1/3 가까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장씨는 시장 동문 인근에서 토스트를 파는 노점상이다.

할머니가 조리하는 음식엔 계란 부침개가 들어간다. 줄곧 이 메뉴로만 장사한 판국에 다른 토스트를 내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궁여지책으로 안내판을 세웠다. 골판지에다 매직펜으로 몇 글자 끄적거렸다.

"여기 토스트 사용 중인 계란은 살충제 검사결과 미검출 계란으로서 안심하고 드셔도 됩니다 샘플 검사결과 미검출로 판명되었습니다. / 사용 중인 계란 08 ○○"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 동문 인근 토스트 노점상에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한 안내판이 놓여 있다. '여기 토스트 사용 중인 계란은 살충제 검사 결과 미검출 계란으로서 안심하고 드셔도 됩니다'는 문구가 눈길을 끈다.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 동문 인근 토스트 노점상에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한 안내판이 놓여 있다. '여기 토스트 사용 중인 계란은 살충제 검사 결과 미검출 계란으로서 안심하고 드셔도 됩니다'는 문구가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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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 취소 사태까지... "AI 파동 이어 계속 피해 입어"

마포구 공덕동 전집골목 가게들도 상황은 비슷했다. 어느 식당은 일찌감치 '식용란 살충제 검사결과 증명서'를 복사해 기둥에 걸었다. 경기도 김포시에 자리 잡은 농가에서 기른 계란이 먹기에 적합하다는 요지였다. 가게에 계란을 공급하는 도매상에서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으로부터 받은 서류란다.

살충제 성분이 검출된 '경기도(08)'에서 나온 계란을 피하자는 글이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중심으로 불붙듯 번지는 사태를 다분히 의식한 게다. 실제로 인근 공덕시장에서 장을 보고 집으로 향하던 주부 민유리(44, 서울 신공덕동)씨는 기자와 만나 "학부모들 사이에 '08'로 시작되는 계란만 사지 않으면 안전하다는 이야기들이 돌고 있다"고 말했다.

일곱 살과 아홉 살 자매를 둔 민유리씨의 집엔 불과 며칠 전 동네 마트에서 구입한 계란 한 판이 쌓였다. 그는 "자녀의 영양 보충을 고려해서 온 가족이 날마다 계란을 두 개씩 먹고 있다"며 "아이들이 계란을 좋아해 계란 부침이나 스크램블 에그 요리를 만드는데, 음식을 주면서도 '이거 줘도 되나' 하는 생각이 스친다"고 불안감을 토로했다.

광장시장 먹자골목, 공덕동 전집골목에 늘어선 상인들은 "아직까지 매출이 줄어드는 등 영향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살충제 계란' 사태가 하루빨리 진화되길 바라고 있었다.

광장시장 전집 상인 한상필(65, 서울 시흥2동)씨는 "텔레비전에 나와서 대책을 발표했다고 댓바람에 안심이 되겠느냐"며 "정부는 조치를 서둘러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공덕동 전집 종업원 김까치(61, 서울 화곡1동)씨도 "2~3일 내에 빨리 해결해야 한다. 사태를 질질 끌지 말라"고 정부에 주문했다.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 먹자골목에서 각종 부침개를 파는 노점 좌판에 계란 반죽이 든 스테인리스 대야가 올라 있다.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 먹자골목에서 각종 부침개를 파는 노점 좌판에 계란 반죽이 든 스테인리스 대야가 올라 있다.
ⓒ 박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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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서 문제 안 됐으면 어쨌겠나" 불신의 시각도

당국은 17일까지 모든 산란계 사육 농장을 대상으로 비펜트린·피프로닐 등 살충제 성분을 둘러싼 검사에 돌입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16일 고위 당·정·청 회의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늦어도 모레면 문제있는 것은 전부 폐기하고 나머지는 시중에 전량 유통될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러나 정부의 대응을 둘러싼 불신이 적잖게 들렸다.

한상필씨는 "계란을 생산하는 농가에서 무더기로 살충제 성분이 검출되면, 그땐 이미 유통된 계란들을 어떻게 회수할 거냐"고 의문을 드러냈다. 이를 두고 식품의약품안전처 관계자는 기자와 한 통화에서 "현재 생산 단계에서 각 농장을 조사하고, 문제가 되는 계란의 생산이력정보를 적극 공개하고 있다"며 "이를 소비자가 확인해서 문제되는 계란을 폐기하는 게 좋을 것"이라 설명했다.

한씨와 인터뷰한 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살충제 성분이 검출된 농가의 수는 급증했다. 17일 새벽 5시 기준으로 검사 완료된 876개 농가 가운데 64곳에 달한다.

지난 4월 한국소비자연맹 주최 토론회에서 박용호 서울대 교수(수의학)는 "2016년 산란계 사육농가 탐문조사에서 농가의 61%가 닭 진드기 감염과 관련해 농약 등 살충제를 쓴 적이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밝힌 바 있다.

소매상 이병환씨는 "밀집사육을 하는 농가에선 상당히 오래 전부터 사용해 왔다는데, 유럽에서 먼저 문제가 터지지 않았더라면 우리나라는 전수검사하겠다는 생각조차 못했을 것 아니냐"고 분통을 터트렸다.

16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전집골목의 한 식당 기둥에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이 발급한 ‘식용란 살충제 검사결과 증명서’가 걸려 있다. 경기도 김포시에 자리잡은 농가에서 기른 계란이 먹기에 적합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16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전집골목의 한 식당 기둥에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이 발급한 ‘식용란 살충제 검사결과 증명서’가 걸려 있다. 경기도 김포시에 자리잡은 농가에서 기른 계란이 먹기에 적합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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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가 오염된 계란이 생산·출하되는 과정을 확인할 길이 없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광장시장에서 부침개를 파는 식당업주 전영애(63, 서울 미아동)씨는 "(공급받는 계란 가운데) 간혹 고린내가 나고 노른자가 퍼지는 계란이 한두 개쯤 섞여 있다"며 "유통업체에선 '싱싱한 국산 계란'이라며 다른 알로 바꿔주는 데 그친다"고 말했다.

한편 당국의 행보를 일단 차분히 지켜보자는 의견도 있었다. 공덕동 식당에서 모둠전을 먹던 손님 박요셉(75, 서울 대치동)씨는 "어쩌면 정말 잘못된 계란은 극도로 미미한 비중일 수 있다"며 "되레 언론이 지나치게 국민들을 겁주고 불안을 조성하는 것 아니냐"고 따졌다.

노을 지는 공덕동 골목엔 퇴근길 직장인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광장시장 전집마다 놓인 간이 식탁은 가족 단위 관광객, 장년·노년층으로 북적였다.

별안간 전화가 걸려왔다. 소매상 이씨였다. 살충제 성분이 검출된 농가가 있는 경기도 광주에서 난 계란이었던 터라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던 차였다. 수화기 너머 목소리엔 웃음기가 감돌았다.

"기자님, 방금 도매상이 받은 검사 결과서를 확인했는데요. 저희 집에서 쓰는 계란, 안전하답니다!"


태그:#살충제계란, #광장시장, #공덕동전집골목, #피프로닐, #정부당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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