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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수제 도예품을 들이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물론이고 마음이 넉넉해지는 느낌이 든다. 특히 가족을 위해 요리를 하고 그 음식을 특별한 그릇에 올려놓을 때의 기분은 참으로 만족스럽다.

공장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도예가가 만든 개성 있는 예쁜 그릇에 음식을 담고 싶을 때, 주위 소중한 사람에게 선물을 하려고 할 때, 또는 특별하게 집을 꾸밀 디자인 오브제를 찾을 때, 우리는 도예공방을 찾는다.

파주시 문발동에는 6년 전 소리 소문 없이 골목에 자리 잡은 '도예공방 작'(파주시 문발동 613-2)이 있다. 간판을 내걸지도 않아서, 밖에서 보았을 때 그냥 지나치기 쉽다. 그러나 안에 들어가 보면,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도예의 매력에 눈을 뜬다면, 우리네 삶이 조금 더 풍족해질 수 있다. 도예공방 작의 박준범 도예가를 찾아가서 도예의 매력은 무엇이고 주로 어떤 도예품을 만들고 있는지 등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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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예공방 작 .
ⓒ 서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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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만의 매력은 예측 가능함과 예측 불가능함의 조화

먼저, 그에게 도예 작업의 매력이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박 도예가는 이렇게 답했다.

"일단, 내가 원하는 대로 형태를 만들 수 있다는 게 맘에 듭니다. 그런 점이 재미있죠. 그리고 더욱 재미있는 건, 유약을 바르고 불을 땔 때 일어납니다. 유약이 불 속에서 예측하지 못한 변화들이 생기거든요. 그게 굉장히 맘에 들어요. 세상의 많은 일들이 결과를 예측하고서 할 수 있지만, 도예는 불 속에서 예측 불가능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 재미있죠. 그것이 흥미로워서, 지금까지 하게 되네요."

도예를 직접 접해 보지 않은 사람은 흰색 유약을 발라 1000도가 넘는 불가마에 넣으면 흰색 도자기가 나오고, 검정 유약을 바르면 검정 도자기가 나올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도예는 인간이 제어할 수 있는 것만을 만드는 공장 제품과는 다르다. 도예의 유약은 쉽사리 인간의 통제를 허락하지 않는다.

같은 유약을 써도 가마에서 나올 때마다 차이가 있다. 같은 가마에서 나온 것들조차, 세심하게 살펴보면 각기 차이가 난다. 불 속에서 유약의 색 변화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들어보자.

"똑같은 유약을 써도 불을 때는 도중에 갑자기 비가 온다거나 바람이 분다거나 습해진다거나 하면 유약의 색에 변화가 생기거든요. 그 변화가 굉장히 재미있어요. 만드는 것은 열심히 하지만, 유약을 바르고 불을 때면 그 뒤는 그냥 맡기는 수밖에 없습니다. 유약의 색 변화가 어떻게 생길지 그 결과는 맡기는 수밖에 없죠. 그 변화는 내 손을 떠나 버리고, 그건 인간이 어찌할 수 없습니다. 때로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예상 이상의 결과가 나오기도 합니다. 그런 것들이 매우 재미있어요."

근사한 추상화가 도예품에 입혀진다.
▲ 예측 불가능한 유약의 변화 근사한 추상화가 도예품에 입혀진다.
ⓒ 서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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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을 때는 동안 일어나는 주위의 변화가 도예품에 담기게 된다니 상당히 흥미롭다. 이렇게 설명을 듣고 보니, 도예는 '예측 가능함과 예측 불가능함의 조화'가 매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렇게 말하니, 박 도예가는 바로 그게 매력이라고 맞장구친다.

어지럽게 널린 쇠 조각 파편은 느낌 좋은 그림

도예에도 종류가 여러 가지 있을 텐데, 주로 어떤 도예품을 만들고자 하는지 물어보았다.

"특정 품목만을 정해서 만든다거나 하지는 않아요. 한 가지 주제나 패턴을 정해서 그것으로 식기니 소품이니 나누지 않고 다 만듭니다. 예를 들어, 어떤 패턴을 만들었다면 그 패턴으로 컵도 만들고 그릇도 만들고 화병도 만들고 합니다. 그리고 유약을 개발했다면, 그 유약을 활용해서 여러 가지를 함께 만듭니다. 그러니까 어떤 품목이 아니고, 패턴이나 유약을 주제로 작업합니다."

그럼에도 만드는 것 중에 더 애정이 가는 작업이 있는지도 물어보았다. 화병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는데, 이 얘기를 하는 동안에는 그의 얼굴이 살짝 상기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예전부터 화병 작업을 많이 했어요. 저는 특히 '벽걸이 화병'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작업을 많이 하지는 못하는 게 현실입니다. 예전에는 참 많이 만들었는데, 일반 화병에 비해 벽걸이 화병은 판매가 부진하다 보니…. 

그렇지만 벽걸이 화병이 굉장히 예쁘거든요! 특히 차를 마시는 분들이 아주 좋아하는 화병입니다. 벽걸이 화병에 나무 질감의 패턴을 넣으면 굉장히 잘 어울려요! 좋아하지만 많이 할 수 없어 안타까운 점이 있죠. 아무래도 판매를 해서 생활을 해야 하다 보니, 제가 좋아하는 것만 할 수 없죠."

벽걸이 화병이 있는 듯 없는 듯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있다.
▲ 도예품들 벽걸이 화병이 있는 듯 없는 듯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있다.
ⓒ 서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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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서 그는 있는 듯 없는 듯 걸려 있던 벽걸이 화분으로 다가가서 얘기했다. 나무 기둥과 자연스럽게 어울려 있어서 미처 눈길조차 주지 못했던 벽걸이 화분이었다.

"이렇게 어딘가 벽에 걸려 있으면, 지겹지가 않아요. 흙이라는 것이 자연물과 어우러지면 훨씬 더 돋보여요. 그림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직은 벽걸이 화병을 잘 알아봐 주지는 않아서 안타깝습니다. 주목받지 못하는 애인데, 혹시 이것을 물어보는 분이 계시면 열심히 설명합니다. 사든 안 사든. 왜 이 작업을 했고, 왜 이런 패턴을 넣었고, 어떤 용도로 쓰면 좋다는 것까지."

내친 김에 나는 화병 작업 중에서 더 소개해 주기를 요청했다. 그러자 그는 나란히 놓인 세 개의 화병으로 다가갔다. 거친 느낌이 독특한 느낌을 주는 화병이었다.

"이게 거친 느낌의 패턴을 사용한 건데요. 집에서 쓸 수 있는 용도를 고려해서 기능도 살리면서, 제 색깔을 넣고자 했어요. 언젠가 우연히 한쪽 구석에 쇠 조각들이 방치되어서 쌓여 있는 것을 보았어요. 녹슨 부분도 있고, 삭은 부분도 있고, 말려 있고, 구겨 있고…. 그런 것들이 어지럽게 쌓여 있는데, 그것이 느낌이 참 좋았어요. 잘 살펴보면 예쁘거든요. 그래서 그 느낌을 담고 싶었습니다. 여러 가지를 시도하다가 이렇게 나왔죠. 생활에서 쓸 수 있는 상품에 응용해 본 겁니다."

쇠 조각 파편이 어지럽게 널려 있는 거친 느낌을 담았다.
▲ 화병 쇠 조각 파편이 어지럽게 널려 있는 거친 느낌을 담았다.
ⓒ 서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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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얘기를 듣고 보니, 공방에 놓인 도예품들이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을 수 없었다.

도예 배우고자 하는 이들에게 자신만의 주제와 스타일 찾도록 도와

도예품이 예뻐 보이기 시작하면, 때로 배우고자 하는 마음도 들기 마련이다. 이 공방에도 도예를 배우며 자신의 삶을 가꾸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주로 어떤 분들이 배우러 오는지, 그리고 그들을 어떻게 이끄는지 물어보았다.

"현재 십여 분이 각기 다른 요일에 배우고 있는데요. 아무래도 주로 여성분들이 많고요. 저희 공방에 배우러 오신 분들은 결과물을 원한다기보다는 과정을 중시하는 분들이 많으세요. 저도 수업을 하면서 그렇게 얘기하고요. 그러다 보니, 오래 되신 분들이 많아요. 최근에 오신 분들 빼고, 거의 대부분이 오래 하시는 분들이에요. 

일단, 처음 3개월은 기본기를 배웁니다. 그리고 나서 자신이 하고 싶은 작업을 간략한 그림으로 그려서 보여 주면, 그것으로 얘기를 나누면서 작업 방식과 기법 등을 정하는 것으로 돕습니다. 식기를 하시는 분들도 있고, 조형 작업을 하는 분도 있고요. 장식 오브제를 하는 분들도 있어요. 그런 과정에서 제가 알고 있는 것을 알려 줍니다. 도자기를 시작하는 분들은 시행착오를 꼭 겪게 되는데, 제가 겪은 시행착오는 바로 얘기합니다. 시간을 줄일 수 있게요. 

기본기 3개월 익힌 다음부터는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자신의 색깔이나 자신의 스타일을 찾아나갈 수 있게 돕습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배운다기보다는 같이 작업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실제로 이곳에서 오래 배운 이들은 자신만의 주제나 스타일이 각기 다르다고 한다. 그렇다면 전시회도 할 법하다.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는지도 물어보았다.

"전시도 준비하고 있어요. 운정신도시 호수공원 안에 있는 에코토리움에서 하고요, 9월 21부터 27일까지입니다. 배우는 사람들의 전시라기보다, 자기 작업을 소개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만나서 얘기 나누는 김에 이왕이면 좋은 도예품을 고르는 팁이 있다면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이렇게 답했다.

"'좋은 도예품'이란 게 과연 있는 걸까요? 좋은 도예품은 딱히 없는 것 같습니다. 내 눈에 들어오는 게 좋은 도예품이라고 봅니다.

그래도 말해 본다면, 화려하지 않은 것이 좋습니다. 화려함은 처음에 시선을 끌지만, 오래 가지 못합니다. 단순한 형태, 단순한 유약이 심심하지만 끝까지 갑니다. 있는 듯 없는 듯 지겹지 않게 갑니다. 그런 것을 추천하고 싶네요."

마지막으로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었다. 그는 어느 도예공방을 방문하든, 도예품 안에 담긴 이야기를 들어보라고 권했다.

"공방 도자기는 공장의 대량 생산 상품이 아니잖아요. 도예품마다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들어볼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이것을 왜 만들었을까', '어떤 생각으로 만들었을까', '왜 그런 형상을 넣었고, 왜 이런 유약을 사용했을까' 등에 대해 알아보면, 새로워 보일 겁니다. 작품에 대해 물어보고 도예가의 얘기를 들어보면, 그래서 얘는 이런 거구나 하고 다가오게 될 거예요."

판에 박힌 공장 제품과는 다른 도예품은 우리의 일상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 것들 가운데 하나다. 그 매력을 알아간다면, 새로운 기쁨을 하나 더 얻게 될 것이다. 꼭 물건을 사지 않더라도 예쁜 도예품을 구경하고 작품에 대해 얘기를 들어보러, 내가 사는 곳 가까이에 있는 도예공방을 찾아서 나들이를 나가 봐도 좋을 테다.

꽃병과 컵에 나무 줄기 패턴을 새겼다.
▲ 꽃병과 컵 꽃병과 컵에 나무 줄기 패턴을 새겼다.
ⓒ 서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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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 이 글은 동네 주민들이 함께 만드는 마을 잡지 <디어 교하>에도 실립니다.



태그:#도예, #도예가, #유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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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월, 이달의 뉴스게릴라 선정 2002년, 오마이뉴스 2.22상 수상 2003~2004년, 클럽기자 활동 2008~2016년 3월, 출판 편집자. 2017년 5월, 이달의 뉴스게릴라 선정. 자유기고가. tmfprlansgh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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