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전역일이 언제냐?"
"2016년 1월 28일입니다."
"그 날이 올까?"

대한민국에서 병역의 의무를 이행한 남성들이라면 이런 식의 농담을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나 역시 이등병 때 때 이 짓궂은 저주(?)를 피해갈 수 없었다. 이 무력감을 잊게 해 주는 것은 TV와 라면이었다. 살면서 이때만큼 TV를 많이 보았던 적도 없고, 라면을 많이 먹었던 적도 없을 것이다. 남자들만 가득한 곳에서 병사들은 걸그룹이 나오는 방송에 열광하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걸그룹만큼이나 열광의 대상이 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바로 엠넷 <쇼미더머니>였다. 2014년 이후, 엠넷 <쇼미더머니>는 한국 힙합 신 자체를 움직이는 결정적인 변수가 되었다. (사실 문화가 방송 프로그램 하나로 좌지우지된다는 것은 씁쓸한 일이기도 하다)

아, 이 불편한 기시감!

 '깔깔이'가 수록된 자메즈의 < 1/4 > 앨범 재킷 이미지.

'깔깔이'가 수록된 자메즈의 < 1/4 > 앨범 재킷 이미지. ⓒ 그랜드라인엔터테인먼트


송민호, 앤덥과 함께 '거북선'을 부른 자메즈(본명: 김성희) 역시 이 프로그램의 수혜자 중 한 명이었다. 사실 자메즈는 화려한 플로우를 과시하는 래퍼는 아니다. 그러나 자메즈는 자신이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생생하게 그리는 데에 능한 이야기꾼이다. 'Pilots'에서는 어린 시절의 꿈과 현재의 꿈의 접점을 이야기했고, '복학생'에서는 신입생들 사이에서 느끼는 소외감을 재치있게 이야기했다. '최근에는 <쇼미더머니 6> 디스 배틀에서 힙합을 소비하는 대중의 자세를 저격했고, '한강이 바다라면'에서는 부에 대한 열망을 강력하게 드러내기도 했다.

대부분의 대한민국 남성들에게 군 생활은 최고의 안줏거리다. 자메즈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깔깔이(Two Years)'에서 자신의 2년을 랩으로 그려냈다. 이 노래를 처음 접한 곳은 흔히 '싸지방'이라고 불리는 사이버 지식 정보방이었다. 병사들이 부대에서 인터넷을 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다. (심지어 이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깔깔이를 입고 있었다)

이 노래를 듣고, 소름 돋는 기시감을 느꼈다. 지금은 사라진 306 보충대에 입소한 주인공(자메즈)이 부모님에게 편지를 쓰는 내레이션과 함께 노래는 시작된다. 이 후 보충대 입소를 그려낸 그의 묘사는 몹시 생생해서, 비슷한 경험을 가진 예비역들에게 묘한 불쾌함(?)을 안길 정도다. 밑에 적힌 구절을 들으면 선글라스로 눈물을 가리던 내 어머니의 모습, '잘 다녀오라'는 카카오톡 메시지들이 떠오른다. 그 날의 나와, 그 날의 김성희는 같았다.

많은 것이 제한되는 훈련소에서 병사들은 아이처럼 변한다. 어떤 종교 행사에서 맛있는 간식을 주느냐가 최고의 이슈가 된다. 그런 풍경을 래퍼 자메즈는 놓치지 않고 포착했다. '훈련병은 당뇨병, 개처럼 달려들고 종교도 바꿔'라는 가사를 듣자마자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구대장의 sunglass를 통해 반사되는 짧은 머리를
한 대한민국 청년의 꿈이 무너지는 모습
군악대의 연주가 애도해 nobody's gonna love you today

고된 훈련소 일정이 끝나고 의기양양하게 이등병 약장을 달았다. 물론 그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나름 성대모사에 재능이 있었기 때문에 선임들이 귀여워해 주는 듯 보였다. 그러나 막내 생활은 절대 쉽지 않은 것이었다. 훈련을 앞두고 필요한 것이 없는지 챙겨야 했고, 주말에도 배울 것이 많아서 마음 편히 쉴 수 없었다. 표정 때문에 욕을 먹는 일 역시 비일비재했다. '삽으로 맞고 싶냐'는 말을 들었을 때는 정말이지 울고 싶었다.

'나'를 잊지 않기 위한 투쟁


그러나 오래된 우스갯소리처럼, 거꾸로 매달아도 국방부의 시계는 돌아갔다. 계급이 올라가면서 그렇게 두렵던 군대는 익숙한 일상이 되었다. 40km가 넘는 유격 행군을 마치고 돌아오면, 부대 입구를 보고 '집에 왔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런데 병장이 되었을 때 즈음, '갈굼'보다 더 큰 심리적 압박이 찾아왔다. 몸은 그 어느 때보다 편해졌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그것은 바로 부대 울타리 안에 있는 동안, 사회에 있는 사람들에게 뒤처지고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 권태로웠고, 타성에 젖은 내 모습이 거울에 비쳤다. 세상을 보는 눈이 좁아지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노트와 연필을 꺼냈다. 나는 사회에 있을 때 음악과 영화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부지런히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밤을 새우기 시작했다. 그다음 날 평일 일과를 소화하기 힘들었지만 상관없었다. 싸지방을 이용할 때마다 빌보드 차트를 검색하고, 음악계의 트렌드를 챙기려고 애썼다.

관물대 안에 100장이 넘는 음반들을 쌓아 놨다가 질타를 받은 기억도 난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모든 것이 '나'를 잊지 않기 위한 작은 투쟁이었다. 한 달 월급은 15만 원이었다. 노동 착취나 다름없는 월급이었다. 하지만 전역을 하면 무엇을 해야 할까 계획을 세우다 보면 그 초라한 현실조차 잊을 수 있었다. 미래에 대한 실낱같은 희망이 나를 움직이는 원동력이었다. 자메즈 역시 나와 같았다. 집에서 보내 준 CDP로 힙합 음악을 듣고, 틈틈이 가사를 썼다. 촌스러운 활동복을 입고 가사를 썼겠지만, 머릿속에서 그는 이미 랩 스타였을 것이다.

심장이 뛰는 그 위치 옆에 달린 주머니 안엔
수첩과 볼펜 불침번 서며 내 열정을 깨워
내 열정의 온도를 파악해 LED 켜놓고 가사를 썼네
전역 후에 목표들을 나열하다 보니 머리 위에 벽돌이 쌓여
깔깔이 전투화가 편해진 만큼 늘어나는 생각들은 밤마다 그 담을 넘어 탈영했지

장갑을 끼지 않을 수 없었던 어느 겨울, 선임들이 말하던 '그 날'이 찾아왔다. 부대를 나서면서 친했던 간부들에게 인사 메시지를 보내고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모든 긴장이 스르르 풀렸고, 차창에 머리를 기댔다. 휴가를 나갈 때마다 보았던 익숙한 포천의 풍경들이 빠르게 눈앞을 스쳐 갔다. 주머니 속에서 꼬여 있던 이어폰을 꺼내 자메즈의 '깔깔이'를 들었다. 입꼬리는 실실 올라가 있었지만, 눈에서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지난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간다는 그 흔해빠진 표현은 몹시 정확한 것이었다. 지금도 스스로 나태해질 때 이 노래를 찾곤 한다. 그리고 '그 날의 나'를 만난다. 나가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열정, 지금 그런 열정이 내게 남아 있는가. '깔깔이'는 앞으로도 평생 잊기 힘들, 내 인생의 BGM이다.

덧붙이는 글 '내 인생의 BGM' 공모글입니다.
자메즈 군대 예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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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음악과 공연,영화, 책을 좋아하는 사람, 스물 아홉.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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