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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로 나간 인간은 인간이라는 무리가 얼마나 하찮고 작은지 깨달았어야 했다. 그때 겸손하게 인류 역사를 바꾸었다면 좋았겠지만 다 알다시피 인간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오히려 반대의 길을 선택했다.

인간은 크기와 규모 대신 유일함을 과시했다. 우주에서 유일한 지성체임을 자랑했다. 그것은 인간 지성이 미성숙이 가져온 한계가 분명한데도 오히려 우주 위에서 군림하려 들고 우주를 지배할 것처럼 덤벼들었다. 인간 존재의 미미함을 생각해본다면 가당치 않은 일이다. 다행히 우주는 그런 행동에 미동도 하지 않는다. 제아무리 거구라 한들 인간의 땀이 바닷물을 얼마나 출렁이게 할 수 있겠는가.

플라스틱 없이 살기는 곧 생활과 습관의 극복이다.
▲ 우리는 플라스틱 없이 살기고 했다 플라스틱 없이 살기는 곧 생활과 습관의 극복이다.
ⓒ 양철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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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기어이 인간은 우주를 대상으로 못다 푼 과욕을 지구를 쏘다니며 채우려 했다. 우주 앞에 선 인간이나 지구 위에 선 인간이나 하찮기는 매한가지인데 지배자 과대망상에 빠져 있다 보니 지구쯤은 우습게 여긴 탓이다. 그것이 제 목을 조르는 일인지도 모르고 말이다.

그 결과는 끔찍했다. 빙하가 녹고 숲이 사라지고 강물은 더러워서 마실 수 없게 되고 바다와 대기가 나날이 뜨거워졌다. 결국 몇몇 종은 멸절하기에 이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인간은 버텨내고 있다. 하지만 당장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문제도 있다. 인간이 쓰레기 더미 속에서 살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크게는 핵발전소 작게는 일회용 플라스틱 컵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것이 과학의 성과이고 편리이며 효율이며 기술의 축적이라고 포장되지만 재생불가능하며 존재자체로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쓰레기임에는 변함이 없다.

보통은 핵발전소와 방사능이 더 크고 심각한 쓰레기라고들 하는데 내 생각은 좀 다르다. 핵발전소는 지금 우리 사회 논쟁의 한복판에 있다. 그만큼 해악을 지적하고 거부하는 쪽도 꽤나 저변이 넓고 의지도 강하다. 핵발전소를 단번에 대한민국 지도에서 지워 버리기는 어렵겠지만 결국 없애는 건 시간 문제다.

반면 플라스틱은 해악을 지적할지언정 싹 없애자고 나서는 축이 드물다. 플라스틱 봉지를 찜찜해 하는 주부도 장바구니 들고 다니기 불편하다는 이유로 마트 계산대 앞에서 비닐봉지를 집어 들게 된다. 1회용 봉지 한 장 덜 쓰자고 간 길인데 장보기를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기실 플라스틱을 우리 생활에서 완전히 몰아내는 일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플라스틱 없이 살기로 했다>도 제목과 달리 플라스틱 없이 살기가 불가능함을 상세히 알려주는 실패기에 가깝다.

어쩌면 바느질이 우리의 삶을 구원할지도 모르겠다. 느리게 내 손으로 사는 생활을 꿈꾼다.
▲ 티셔츠로 만든 장바구니 어쩌면 바느질이 우리의 삶을 구원할지도 모르겠다. 느리게 내 손으로 사는 생활을 꿈꾼다.
ⓒ 강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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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지 않더라도 그런 생활이 가능할 리가 없음은 쉽게 짐작이 간다. 컴퓨터, 냉장고, 자동차 없이 도시생활을 할 수 있나? 없다. 대체불가다. 이건 논문 주제에 맞춘 실험이 아니라 생활을 꾸려가는 문제다. 때문에 플라스틱에 대한 대안이 있는 물건들도 비용이나 편의성을 고려하면 쉽게 대체를 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봉지에 담긴 콩나물은? 과장봉지는? 화장실 휴지는 어떻게 하지? 생리대는? 철저히 100년 전 생활로 복귀하자면 가능하기도 하겠으나 그런 강제 타임슬립을 원한다면 <나는 자연인이다>나 <세상에 이런 일이> 에서나 찾아야 할 것이다.

플라스틱 없이 살기에서 가장 쉽게 마주치는 견고한 벽은 1회용품과 포장재다. 1회용품이 안 좋다는 건 누구나 안다. 하지만 누구나 쓴다. 왜? 늘 손 닿는 곳에 있고 싸고 편하니까. 늘 커피숍 계산대 앞에 서서야 내 텀블러를 집에 두고 왔음을 알게 된다. 과자를 주문제작해서 먹는다면 포장재질을 무엇으로 할지는 선택이겠지만 동네 슈퍼 주인장에게 그런 요구는 할 수 없다. 따로 용기를 들고 가봐야 대형마트에서 담아서 사 올 게 별로 없다. 콩나물과 두부조차도 미리 포장이 되어 있다. 미리미리 저울에 무게를 재 비닐봉지로 포장해야 정확할뿐더러 유기농, 친환경이라면 제품인증표시도 해야 하니 기업체 입장에서도 비닐봉지 포장이 좋다.

책에서는 그 대안을 찾아 품을 팔면 플라스틱을 쓰지 않는 물건과 업체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래 그럼 우리도 큰맘 먹고 열심히 검색해 보고 하나씩 대체를 해 보자. 하면 할 수 있다. 하지만 거기에는 시간과 비용이 든다. 별난 사람이라고 눈총도 받아야 한다. 플라스틱 장난감을 끼고 사는 아이를 설득해야 한다. 생각만 해도 지친다.

이 대목에서 이 책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다. 이 무모한 가족은 생활 실험을 하기 전에 원칙을 세웠다. 지나친 비용추가가 없어야 하며 가족 구성원 모두 즐거워야 한다는 원칙이다. 쉽게 말해 무리하지 않고 할 만큼만 해 보자는 거다. 만약 우리가 플라스틱 없는 세상에 동참을 한다고 해도 그 이상은 어렵다. 억지로 끌고 간다고 혹은 힘을 쥐어짜 강하게 주장한다고 해결이 나는 난관이 아니다.

우리 생활 깊숙이 치밀하고 촘촘하게 파고든 만큼 플라스틱은 박멸이 아닌 공생을 해야 할 대상이다. 그러려면 플라스틱을 줄이는 문제에서는 얼마나 속도를 내기보다는 얼마나 천천히 내 생활을 되돌아볼 수 있는가가 성공의 열쇠가 된다. 허겁지겁 남 따라 살지 않고 미리미리 준비하고 계획해야 1회용 컵 대신 텀블러를 활용할 수 있고 1회용 비닐봉지 대신 미리 챙겨둔 에코백을 쓸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무엇보다 플라스틱을 악으로 규정하고 모든 죄를 뒤집어씌우려 하지 말아야 한다. 따지고 보면 플라스틱이 무슨 죄가 있나. 지구 입장에서는 그것을 만들어내는 인간 존재 자체가 가장 큰 해악이다. 그렇다고 인간 자멸이 플라스틱을 없애고 지구를 지키는 방법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속 가능한 공존의 삶. 그것을 위한 생활과 습관의 변화. 그것이 우주 속 미미한 존재인 인간이 지구를 위해 해야 할 단 하나의 미션이다.

덧붙이는 글 | 아날로그캠핑에도 게재했습니다.



우리는 플라스틱 없이 살기로 했다

산드라 크라우트바슐 지음, 류동수 옮김, 양철북(2016)


태그:#플라스틱, #에코백, #재생가능, #환경, #아날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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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기업하면서 세상 사람들과 소통하려고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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