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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의 통일외교안보전략비서관을 지냈고 이번 대선에서 문재인 캠프의 안보상황단 부단장을 맡았던 인사가 한반도 전술핵 재반입을 주장했다. 언론 보도된 바에 따르면 그는 "북한이 핵전쟁 수행이 가능한 절대 무력을 구비한 조건에서 우리도 방어가 아닌 공격에서 핵으로 대응할 수 있는 요소를 갖춰야 한다"며 전술핵 재반입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사드를 비롯한 통일외교안보 문제에서 여러 차례 실망감을 준 문재인 정부이지만 이처럼 황당하고(?) 위험한 발언이 새 정부의 인적 네트워크에서 나왔다는 사실은 대단히 우려스러운 일이다.

사실 한반도 전술핵 재반입 문제는 그동안 자유한국당이나 바른정당 등 일부 야당과 보수 성향의 전문가들이 주장해온 방안이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이 촛불혁명으로 들어선 문재인 정부의 주변으로부터 나왔다는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논란이 커지자 청와대는 박선원씨의 주장에 대해 "개인 의견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편집자 주).

이명박,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의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국익을 고려하는 최소한의 합리성과 절차를 존중하는 민주성일 것이다.

그런데 이번 주장은 이를 송두리째 부정했을 뿐 아니라 문재인 정부의 통일외교안보 정책의 진정성에 대한 의구심마저 갖게 만들었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바라는 사람 중 미국의 핵무기가 한반도에 전개되는 것을 바라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또한 한반도 평화위기가 전술핵 재반입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지는 않을 것이다. 한반도의 전쟁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 내에 전술핵을 재반입하자는 논리는 이미 실패한 미소 간의 상호확증파괴전략과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여전히 우리 사회의 외교안보 틀로 작동되어온 한미동맹에 의지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우리에게 (북핵문제를) 해결할 힘이 있지 않고 우리에게 합의를 이끌어낼 힘도 없다"는 문 대통령의 발언은 한미동맹이라는 넘어설 수 없는 현실을 우회적으로 드러내는 자조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적폐청산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부여받은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기원한다. 만일 문재인 정부가 노무현 정부의 실패를 되풀이 한다면 우리사회의 미래는 지금보다 더 긴 왜곡과 억압의 터널을 지나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 내 전술핵 재반입의 주장은 한미동맹이라는 한계를 인정하더라도 우리가 묵과하거나 용납할 수 있는 경계를 넘어선 낡고 위험한 주장임에 틀림없다.

광복 72주년인 15일 오후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서 8.15대회 추진위(민주노총, 한국노총, 전농, 여성연대, 진보연대 등) 주최로 열린 ’사드철회, 한미연합군사훈련중단, 위안부야합 파기 - 주권회복과 한반도 평화실현 8.15범국민대회’ 참가자들이 미대사관앞을 지나고 있다.
▲ 미대사관앞에 울려퍼진 "전쟁반대" 함성 광복 72주년인 15일 오후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서 8.15대회 추진위(민주노총, 한국노총, 전농, 여성연대, 진보연대 등) 주최로 열린 ’사드철회, 한미연합군사훈련중단, 위안부야합 파기 - 주권회복과 한반도 평화실현 8.15범국민대회’ 참가자들이 미대사관앞을 지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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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술핵 재반입이 오답인 이유를 살펴보자.

첫째, 전술핵 재반입에는 엄청난 비용이 들어간다. 전술핵을 지키고 관리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미국은 현재 자동예산삭감 제도인 시퀘스터(Sequester)를 운용하고 있다. 만일 이를 감안하고도 전술핵 재반입을 주장한다면 이는 우리 정부가 그 경호·관리비용을 감당하겠다는 주장과 하등 다를 것이 없는 것이다.

둘째, 막대한 비용지출에도 안보를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강변한다면 비용대비 효율성을 따지지 않을 수 없다. 현재 미군은 한반도 외에도 아시아 전초기지를 오키나와에 그리고 전략기지를 괌에 두고 있다.

오키나와에서 발진하는 미 전투기가 한반도에 도달하는 시간은 10분 내외, 그리고 괌에서 전략폭격기가 도달하는 시간은 대략 12시간 이면 충분하다. 이러한 조건에서 굳이 한반도 내에 전술핵이 배치되어야 북핵 억지력이 갖춰진다는 주장은 아무런 설득력이 없는 안보 포률리즘에 불과하다. 

셋째, 미국은 중국의 태평양 진출을 억제하고 자신들의 패권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아시아(태평양)재균형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이를 위해 한미, 한일동맹을 한미일 3국동맹으로 재편하고 주둔미군의 성격을 신속기동군으로 전환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 내 전술핵 재반입은 주한미군의 경직성을 더하는 결정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한국 내 전술핵 재반입은 미국의 세계전략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결정이라 할 수 있다.

넷째, 전술핵 재반입은 한반도 비핵화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정책으로 한반도 주변국의 반발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91년 남북 사이의 비핵화 합의야 북이 핵을 보유함으로써 이미 파기된 합의라고 한다면 뭐라 할 말이라도 있다. 하지만 동북아 평화·안정을 내걸고 북의 비핵화를 압박하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의 입장은 완전 다르다. 중·러에게 한국 내 전술핵 재반입은 미국과의 힘의 불균형을 의미하며 새로운 냉전구도의 시작이자 군비증강의 신호탄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국 내 전술핵 재반입은 가능하지도, 현실적이지도 않다. 그럼에도 이를 대안인 냥 주장하는 것은 국민과 문재인 정부를 이간질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말이 폭력이 될 수 있듯이 잘못된 처방은 독약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태그:#전술핵 재반입, #전술핵 재배치, #박선원, #장금석, #상화확증파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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