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부르는 소리: Calling you

 야스민과 브랜다의 첫 만남. 브랜다는 눈물을 흐리고 있었고, 야스민은 땀을 흘리고 있었다.

야스민과 브랜다의 첫 만남. 브랜다는 눈물을 흐리고 있었고, 야스민은 땀을 흘리고 있었다. ⓒ (주)팝엔터테인먼트


인생에서 가장 황량한 때에 단비와 같은 인연을 만난다는 것은 대단한 행운이다. 그것이 사람이든 어떤 기회이든 자신을 회복할 수 있는 만남이라면 말이다. 더구나 누군가의 헌신적인 사랑이 밑받침된 것이라면 그건 말할 것도 없다.

영화 <바그다드 카페>의 등장인물들은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거나 피폐한 삶에 실마리 같은 희망도 없이 그저 맥없이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한 처지를 반영한 듯, 영화의 주 무대는 먼지 풀풀 날리는 사막에 있는 바그다드 카페다. 이 침체한 작은 공간에서 일어나는 삶의 작은 몸짓들, 관심을 두는 것으로부터 그에 대한 거부감으로 다양한 감정들이 오고 가는 가운데 결국 그들은 아름다운 색채를 만들어낸다. 점점 내면으로 향하는 콕스(잭 펠런스)의 그림처럼 그들은 서로에게 힘이 되고 중요한 의미가 되어간다. 그것은 결국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아름다운 결과였다.

등장인물들은 모텔방과 캠핑카, 텐트 그리고 카페 안 브렌다의 공간에 살고 있으나 해가 뜨면 바그다드 카페에 모인다. 이 작은 공간에서 서로를 느끼게 되는데, 그 시작은 타인에 대한 작은 배려였다. 브렌다의 사무실에 먼지가 쌓이고 온통 잡동사니가 널려 있는 것을 본 야스민은 그녀가 처한 상황이 어떠한지 읽을 수 있었다. 처음 만날 날 그녀의 눈물을 보았던 야스민은 브랜다에게 깊은 연민을 느낀다. 남편은 없는 것 같은데 자식들은 각자 따로고, 거기 다 젖먹이 어린 손자라니! 맘씨 좋은 야스민은 한없이 안쓰러웠던 브랜다에게 뭔가 도움이 되고 싶었을 뿐이었다. 물론 '내 코가 석 자'인 자신의 망막한 처지도 처지였지만 그랬기에 더 브랜다의 아픔을 알 수 있었다.

누군가가 나를 불러 주었다

 바그다드 카페에 모인 등장인물들. 그곳에서 서로를 알아간다.

바그다드 카페에 모인 등장인물들. 그곳에서 서로를 알아간다. ⓒ (주)팝엔터테인먼트


하지만 브랜다는 야스민의 호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받아본 적 없는 도움, 고립되어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낯선 풍경이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화를 내며 거부했으나, 결국 진심은 어린아이에게도 통하는 법이다. 야스민의 동병상련은 브랜다의 아들 '살'의 피아노를 진지하게 감상함으로써, 또 그 광경을 감탄스럽게 보던 '콕스'에게 진하게 전해진다. 이렇게 삭막하기만 했던 사막에 사랑의 따스한 비가 내리고 조금씩 생기를 찾아간다.

낯선 곳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과 조용히 스며들어 가는 야스민 역시 아픈 상처를 갖고 있었다. 오프닝 시퀀스에서보여지는 그녀와 남편의 관계는 그녀의 상황을 잘 표현하고 있다. 왜 혼자 사막에 오게 되었는지, 사막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우스꽝스러운 복장을 하고 나타났는지를 보여준다. 뒤틀린 남편과의 관계는 비틀어진 앵글로 두 사람을 담아낸다. 웬만해선 격한 감정을 드러낼 것 같지 않은 야스민은 참다 못해 남편의 따귀를 때리고 차에서 내려버린다. 그녀는 멀리 독일에서 여행 온 여행객이었다. 낯선 여행지에서 일행과 분리되어 혼자 있을 때 그 불안감은 엄청났을 것이다. 더구나 그곳이 사막 한가운데다. 이처럼 망막한 상황에서 만난 바그다드 카페는 야스민에게 고마운 존재가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폭력적이고 거친 남편과 살았던 야스민도 브렌다와 차이는 있겠지만, 두 사람 모두 힘든 부분이 있는 여성이었다. 야스민은 남편과의 관계도 뒤틀려 있지만, 그녀를 더욱 외롭게 한 것은 아이가 없다는 것이었다. 혼자 살아가야 할 여성으로서 망막했을 두 사람은 누구보다도 서로를 잘 이해하는 관계가 되어간다. 결국, 야스민의 진심 어린 행동은 단단하게 굳었던 브랜다의 마음을 녹여낸다. 이렇게 서로를 받아들인 두 여성들의 힘은 곧 문을 닫아야 할 것 같은 카페에 생기를 불어넣었고, 그 힘은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하였다.

애절한 음악과 빛의 명암이 어우러진 미장센

 다시 만나 브랜다와 야스민.

다시 만나 브랜다와 야스민. ⓒ (주)팝엔터테인먼트


영화는 아무래도 영상미와 감정 연기를 통한 언어가 가장 중요한 화법일 것이다. 많은 대사 없이도, 단 한 장면만으로도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이 영화의 특별한 점이다.

낯선 사람들이 서로에게 의미가 되는 과정을 그린 영화 <바그다드 카페>는 몇 가지 독특한 점이 있다. 이 모든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영화가 더욱 따뜻하게 다가왔던 것은 인물 설정이 한몫을 하였다. 늘 영화나 드라마의 현실적이지 않은 주인공의 비주얼은 선망의 대상이 될지언정 공감하기엔 거리감이 있다. <바그다드 카페>의 평범한 인물 설정은 현실적인 인물이었고 그런 만큼 오히려 신선했다.

두 번째로 다른 특별함은 카페 공간 내부와 그 주변이라는 극히 협소한 곳에서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그런 경우 자칫 지루하거나 늘어질 수 있는데 영화는 끝까지 흥미진진 했다. 그렇다고 배우들의 대사가 많고 빠르게 진행된 것도 아니었다. (<헤이트풀8>은 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사건이지만 등장인물들이 수다스럽게 맞물리며 치는 대사들이 일품이었다. 그런데 <바그다드 카페>는 오히려 대사가 절제되었다) 그런 영화의 틈을 미장센과 음악으로 채웠다. 매직아워(해 뜰 때와 해 질 때)를 이용한 주변의 아름다운 장면은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었고, 영화가 진행될수록 그 빛과 색깔의 명암은 감정의 흐름을 더욱 증폭시킨다.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 주 테마인 영화에서 중요한 요소는 당연히 인물들의 감정묘사다. 두 주인공 여성들이 표현하는 감정선은 영화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힘든 내면의 처지를 표현한 두 사람의 연기가 훌륭했고 그것은 미장센과 음악이 어울려 조화로운 작품이 되었다.

 '매직아워'의 바그다드 카페 주변 정경.

'매직아워'의 바그다드 카페 주변 정경. ⓒ (주)팝엔터테인먼트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음악이다. 영화 OST인 'Calling You'는 영화를 보지 않았어도 한 번쯤 들었을 멜로디다. 누군가를 애절하게 찾는 내용의 노래는 지쳐 쓰러질 것 같은 상황에서 따뜻한 손길을 찾는 간절한 목소리다. 전혀 다른 환경에 살던 사람들이 삭막한 사막 한가운데서 누군가를 불렀고 또 그 소리에 응답하는 영화에 잘 어울리는 노래였다.

영화가 끝나고도 깊은 여운이 남는 장면은 아무래도 시퀀스와 시퀀스 사이 아름다운 카페 주변 쇼트일 것이다. 애절한 음악과 빛의 명암과 색이 일궈내는 미장센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욱 아름답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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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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