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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이나 도쿄 한복판으로 나들이를 가는 분들이 많습니다. 뉴욕이나 도쿄 한복판 나들이라면 여행보다 관광에 가까울 테고, 이곳에서는 주머니에 두둑히 챙긴 돈으로 무엇을 사거나 쓰기 마련입니다.

티벳이나 네팔로, 또는 부탄이나 쿠바로 나들이를 가는 분들도 많습니다. 티벳 네팔 부탄 쿠바로 찾아가는 나들이라면 관광보다 여행에 가까울 테며, 더 헤아리면 마실이라고 할 만하지 싶어요. 이곳에서는 돈을 써서 무엇을 사려는 마음이 아닌, 삶을 되돌아보는 기쁨을 찾아보려는 길이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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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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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이 돈을 쓰도록 이끄는 관광산업이 나라살림이나 마을살림에 도움이 될 수도 있어요. 그런데 돈을 쓰는 관광객 발길이 뚝 끊어진다면? 관광객이 돈을 안 쓴다면? 그리고 관광객이 오가면서 남기는 쓰레기는? 관광산업에서는 이러한 얼거리를 얼마나 생각할까요?

돈을 안 쓰는 여행객이라면 돈으로 나라살림이나 마을살림을 북돋아 주는 일은 매우 드물리라 생각해요. 그런데 돈을 안 쓰는 여행객이 조용히 다녀가든 안 다녀가든, 조용히 제살림을 짓는 나라에서는 대수로울 일이 없습니다. 곱게 가꾸는 나라나 마을일 적에는 늘 홀가분하게 제살림을 지어요. 무슨 대단한 시설이나 투자나 개발이 없어도 사람들이 즐겁고 홀가분하게 살아가지요.

오늘날 쿠바를 단적으로 설명하는 키워드는 무상 의료, 무상 교육, 최저생계비 보장 그리고 유기농업을 꼽고 있다. 비록 가난하지만 행복 지수는 높은 나라, 비록 고단하게 일해야 하지만 빈부 격차가 크지 않고 범죄율이 낮은 안정된 나라, 자유로운 영혼이 음악과 춤을 즐기는 정열의 나라, 쿠바. (20쪽)

사진을 찍는 이동준 님은 어느 날 '부에노 비스타 소설 클럽'이라는 영화를 보았다고 해요. 이 영화에 흐르는 마을살이, 마을사람, 마을노래를 비롯해서 바람과 물결과 집과 골목과 자동차 모두에 흠뻑 빠졌다고 합니다. 이 사랑스럽도록 조용하면서 기운차는 곳을 꼭 두 발로 디뎌 보고 싶다는 꿈을 품었다고 합니다.

저토록 낡아빠져 보이는 건물이 왜 낡아빠진 집이 아닌 따스한 보금자리로 보이는지 궁금했다고 해요. 겉으로 허름하거나 가난해 보이는 사람들이 왜 저토록 신나고 아름답게 노래하고 춤을 누릴 수 있는지 궁금했다고 해요. 살림살이를 정갈하게 매만지는 손길은 어디에서 비롯했는지 궁금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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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책 <아바나 La Habana, Cuba>(호미 펴냄)는 한국이라는 나라에서는 도무지 생각해 볼 수 없던 모습을 어디에서나 쉽게 마주하는 쿠바에서도 아바나라는 고장을 이야기합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곁에서 엄청난 무역제재를 했다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작으면서 조용한 제살림 짓기에 나서면서 어깨동무하는 나라를 이룬 터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어우러지는가를 이야기합니다.

빨강, 파랑, 노랑 같은 원색을 띤 이들 자동차들은 대개가 1950년대의 미국산 자동차들이다. 비록 오래되어 낡았지만 살뜰한 손질로 여전히 아름답게 빛나는 구식 자동차들이 거친 엔진 소리를 내며 거리를 질주한다. (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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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층이 넘는 높다란 건물이 줄줄이 선 곳이어야 놀랍지 않습니다. 빼곡하게 들어찬 높은 건물 사이로 수많은 사람이 물결처럼 쏟아지는 곳이어야 놀랍지 않습니다. 길거리에 자동차가 가득해야 놀랍지 않습니다. 가게마다 불빛이 번쩍거리면서 값비싼 물건이 넘쳐야 놀랍지 않습니다.

관광산업이란 제살림하고 아주 동떨어진 모습이지 싶습니다. 관광산업에 맞추어 일자리를 얻거나 돈을 버는 사람들은 제살림을 못하는 하루가 되지 싶습니다. 관광객한테 보여주려고 꾸미거나 세우는 시설은 마을사람한테는 그다지 도움이 안 될 만하지 싶습니다.

으리으리하게 짓는 별 몇 개짜리 호텔이나 식당은 마을사람이 여느 때에 가벼이 드나들 수 있는 곳이 될까요? 으리으리한 쇼핑몰이나 백화점은 참말로 마을사람이 여느 때에 손쉽게 드나들 수 있는 자리가 될까요? 더 넓은 찻길이나 더 빠른 고속도로는 참으로 마을사람 살림살이에 보탬이 될 만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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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책 <아바나>는 우리 한국 사회하고 사뭇 다른 쿠바가 왜 다른가를 넌지시 보여줍니다. 한국에 번쩍거리는 높은 건물이나 값비싼 새 자동차가 많더라도 정작 한국에 무엇이 없는가를 찬찬히 보여줍니다. 한국에 가수나 가수 지망생이 많더라도 막상 한국에 무엇이 없는가를 하나하나 보여줍니다.

동네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더니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사진을 찍었으니 노인에게 돈을 주라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노인은 앞이 보이지 않는 맹인이었다. 노인을 향해 반사적으로 사진기를 들이댄 것이 부끄럽고 민망해, 며칠 전에 사 둔 시가 하나를 노인의 낡은 셔츠 주머니에 넣어 드리고는 비록 앞을 보지 못하지만 꾸벅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건냈다. (102쪽)

사진책 <아바나>에 흐르는 아바나 사람들(쿠바 사람들)을 지켜보면서 삶과 산업을 생각해 봅니다. 나라에서는 관광산업에 돈을 들여서 관광객을 끌어들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라에서는 마을살림에 돈을 들여서 마을사람이 넉넉하고 즐겁게 살도록 북돋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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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산업을 일으키자면 돈을 들여야(투자를 해야) 하니, 관광객이 돈을 써야만 하는 얼거리로 흐르고, 마을사람은 '돈을 쓸 손님(소비자)'을 기다리는 하루가 됩니다.

이와 달리 마을살림을 가꾸는 데에는 그리 큰 돈을 들이지 않아도 될 뿐 아니라, 마을사람 스스로 제살림을 짓기 마련이기에, 관광객이나 여행객이 있든 없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스스로 마을을 살찌우고 북돋우면서 즐겁게 어우러져요.

<아바나>에 담긴 살림과 사람과 웃음과 노래를 마주하면서 담양군 '달빛무월마을'이라는 작은 시골이 떠오릅니다. 작은 고장 담양에서도 작은 시골인 무월마을이라는 곳은 마을사람 스스로 시골집과 시골길을 가다듬고 멧자락하고 숲정이를 돌봅니다. 다른 아무런 문화시설이나 관광시설이 없으나 이 작은 시골마을을 찾아오는 분들은 넉넉한 마음을 누릴 수 있다고 해요. 돈을 쓰지 않아도, 뭔가 사지 않아도 기쁜 마음이 된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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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산업이나 첨단산업으로 키우는 곳에서는 어떤 사진을 찍으며 어떤 이야기를 담을 수 있을까요? 제살림으로 스스로 즐거운 노래가 피어나는 곳에서는 어떤 사진을 찍으며 어떤 이야기를 길어올릴 수 있을까요?

스피커로 유행노래를 크게 틀어놓지 않아도 사람들 누구나 어디에서나 즐거이 노래를 부르면서 웃음짓는 마을이 한국에서도 하나둘 늘어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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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아바나 La Habana, Cuba>(이동준 글·사진 / 호미 펴냄 / 2017.3.31./ 3만 원)



아바나 La Habana, Cuba

이동준 지음, 호미(2017)


태그:#아바나, #이동준, #사진책, #쿠바, #사진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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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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