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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면 말다툼도 교양이 있어야

거친 말투는 싸우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이 민망하다.
17.08.14 23:28l

검토 완료

이 글은 생나무글(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농산물시장 전경 ⓒ 이경모

식식당업을 하면서 이틀에 한 번 가는 시장이 있다.
시장은 33m2(10평) 남짓한 가게들이 100여개가 있다.
부모님의 업을 이어 받겠다고 일을 배우는 젊은 친구들도 있지만 농산물유통으로 잔뼈가 굵어진 50대에서 60대가 대부분이다.
이들은 도매상으로 산지에서 들어온 물건들을 경매 받아 가게를 찾은 사람들에게 도소매를 한다. 하루 12시간 이상을 부부가 함께 있는 경우가 많다.
모르는 사람들은 부부가 오랜 시간 같이 있어 부러워하지만 당사자들은 그런 말에 손사래를 친다.

내가 거래하는 한 가게는 매일 60대 중반 부부가 전쟁을 치른다.
"매일 이렇게 싸우시면 저 거래처 바꿉니다."
내 말에 움찔하지만 다음날 똑 같다.
기분 좋게 갔다가 짜증이 날 때도 있다.
웃는 얼굴로 인사하면 함께 행복할 텐데 고쳐지지 않는다.

오늘 아침에는 충격을 받았다.
"아야 바쁜데 어디 갔다가 오느냐."
반말할 사람이 없는데 누구한테 할까.
그것도 짜증이 가득 찬 목소리다.
"내가 너 딸이냐 반말로 이래라저래라 해"
남편은 65세. 아내는 62세인 부부가 싸우는 말투다.
거칠고 볼썽사나운 모습이다.

부부가 살다보면 말다툼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싸울 때 했던 말이 상처를 주면 그것은 오래 남는다.
부부가 가장 잘 싸운 것은 그 다음날 싸울 때 했던 말이 기억에 남지 않아야 한다.
크게 싸웠는데, 뭐라고 큰 소리를 질렀는데 아무리 생각을 해도 생각나지 않은 싸움을 하는 것이다.

젊은 부부는 반말을 하며 싸워도 봐줄만하다.
그렇지만 나이가 지긋한 부부는 싸우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이 민망하다.
어떤 부부들은 싸울 때 오히려 존대어를 사용한다고 한다.
현명한 생각이다.

남편은 아내의 말투에 놀란 기색이지만
자칫 물건이 날아다닐 것 같은 험악한 분위기다.
내가 옆에서 말려 싸움은 멈췄지만 어떻게 하루 종일 같이 근무를 할 수 있을까 걱정스러웠다.
그런데 그때 마치 그 가게 단골손님이 자일리톨껌 한 통을 아주머니에게 건네주었다.
껌을 받은 아주머니는 두 개씩 손님들에게 나눠주고는 10여 미터 떨어져 있는 남편에게로
가서는 또 두 개를 준다.
나는 깜짝 놀랐다.
심하게 싸운 지 5분도 안됐는데 껌을 주는 아내나 껌을 받은 남편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좀 전에 싸우는 것을 보면 며칠 냉전일줄 알았는데 내 생각은 기우였다.

'부부 관계는 아무도 몰라.'라는 말이 실감났다.
이 부부들만이 살아가는 방식이 있는가 보다.

"한바탕 싸우고 나니까 껌이 맛있어요."
내 말에 두 사람이 빙그레 웃는다.
늙어가면서 서로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주며 살아가는 모습이 참 보기 좋을 텐데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월간잡지 첨단정보라인 9월호에 게재합니다.



태그:#이경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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