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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노마지도(老馬知途)'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늙은 말이 갈 길을 안다는 뜻으로 연륜이 깊으면 그 만큼 세상사는 지혜가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 사회는 그다지 노인을 '노마지도' 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이가 들면 고집이 세어져 '꼰대'가 되고, 욕심이 많아져 '주책'이 된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노인층의 지지를 받는 정당의 한 의원조차 '틀딱들'(틀니를 딱딱거리는 노인들)이라는 노인비하 발언을 하여 사회적 공분을 일으키기도 했다. 어떤 사람들은 아침 출근 시간에 제발 노인들은 지하철을 타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짜증 섞인 이야기를 하고, 노인들이 옆에 오면 슬그머니 경계를 하고 옆으로 피하기도 한다.

하지만 마음의 '눈'을 열고  어르신들을 바라보면 어르신들이 자신들만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 지하철에 빈 자리가 나면 힘든 몸을 쉬게 하기 위해 얼른 달려가 앉으시지만 자리가 하나 더 나면 얼른 가 앉으라고 앞에선 사람들을 재촉한다. 임산부가 타면 벌떡 일어서 곧 내린다고 하시는 어르신들도 있다. 몸이 힘든 걸 누구보다도 잘 아시기 때문이다.

세상만사가 걱정이시라 처음 본 사람이 옆에 앉아도 이래야한다 저래야 한다 하시며 세상 이야기들을 꺼내 놓으신다. 하시는 말씀들을 잘 들어보면 모두 다같이 잘 살자고 하시는 말씀들이다. 뭐든지 걱정이 되는 '수퍼 오지랖퍼'라고나 할까. 간혹 믿을 수 없을 만큼 막무가내인 어르신들이 인터넷이나 공중파 뉴스에 등장하기도 하지만 알고 보면 사실, 이슈화되지 않은 막무가내 젊은이들이 더 많지 않을까?

나이듦의 아름다움은 '관조'에 있다. 오랜 세월 쌓아 온 경험으로 사물의 참모습을 볼 줄 알기에 조바심내지 않고 삶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시간의 줄기 속을. 면면히 흐르는 삶의 가치과 진리를 세상살이에 비추어 볼 줄 알게 된다. 그래서 칠곡 할머니들의 소박한 시(시가 뭐고?/ 강금연 저/ 삶창)에서 진하게 녹아있는 인생을 보고, 100세에 시집을 낸 일본 할머니의 글(약해지지마/ 시바타 도요/지식여행)에서 위로를 받는 것이다.

얼마 전 중랑구에서 진행하던 '시니어 문학 강좌'가 끝이 났다. 매주 그 자리에 참석하여 자리를 지켜주시던 어르신들은 '노마지도'하는 어르신들이었다. 책을 읽으며 삶을 이야기하고 서로의 삶에 공감하곤 했다. 글로써 자신을 다독이고 타인을 보듬었다. 마지막 써오신 글에서 나는 '나이듦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었다. 그 아름다움을 잘 펼칠 수 있도록 아이디어를 낸 서울 지하철을 칭찬하고 싶다. 함께 살아가는 지혜가 아름답다.

제목: 시각장애 도우미
글: 중랑구 시니어 문학강좌 이선표

여러분은 시각장애 도우미를 아시나요?

서울 시내 전철역마다 하루 4조로 나뉘어서 오전 8시부터 저녁 7시까지 노오란 조끼와 모자를 쓰신 노인분들이 도우미로 봉사하고 있답니다.

나는 지난해부터 이 사업에 참여하여 시각장애 도우미와 전철도우미를 선릉역에서 하고 있답니다. 가슴 속에 벅찬 보람을 느끼면서 열심히 하고 있지요. 대한 노인협회에서 노인 일자리 시책으로 하게 된 것이랍니다.

나는 이 사업에 참여하기 전에는 시각장애우분들이 '하얀 스틱'(흰지팡이)을 짚고 다니는 줄도 몰랐고 어느 장애우분들을 관심 있게 도와드린 적도 없었지요.

노오란 조끼를 입고 덥디 더운 7, 8월에 노오란 봉사자 띠도 두르고 하루 3시간 근무하지만 전철역에서 시각장애인분들을 기다리고 있다가 나타나시면 엘리베이터를 태워드리고 에스칼레이터를 타고 환승시켜드리고 장애우분들에게 제 팔 한 쪽을 내어주며 무사히 전철을 타고 내리실 수 있게끔 사명감으로 안내하며 남은 시간에는 전철 게이터 근무를 하며 가슴 뿌듯한 보람을 느낀답니다.

몇 번 출구가 어디있는지 묻는 사람! 전철을 잘못 내린 사람! 카드를 안 가져 온 어르신들!환승 노선을 묻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며 수없이 게이터 문을 열고 닫습니다.

강남 선릉역의 마지막 조인 저는 퇴근시간이라 역사에 눈이 어지러울 정도로 인파가 몰리는 것을 봅니다. 집에 오면 8시가 넘지요. 하지만 힘들다고 봉사자가 의자에 앉아 부채질 하며 영혼 없이 앉아있어서는 아니되는 일이지요. 이 나이에 누구의 눈이 되고 길 모르는 이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는 것에 자긍심을 가지고 정성을 다해 다가갑니다.

몸이 불편하셔서 휠체어를 타신 분이나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아기 엄마가 발견되면 달려가 게이터 문을 잡고 서서 안내하고, 주말에 예식장에 가셨다 한 잔 하신 어른들이 귀가길에 환승선을 계속 오르내리기만 하시면 승강장까지 모시고 가서 안전한 귀가길을 도와드리는 것이 저희 도우미들의 임무이기도 합니다.

갈 곳 없는 노인들에게 이런 사회 참여 기회를 주신 '대한 노인 협회'에 감사드립니다. 한 살이라도 더 늙기 전에 미약하나마 누구의 도움이 된다면 추우나 더우나 건강이 허락되는 날까지 열심히 일하는 사회의 봉사자가 되겠습니다.

날씨가 요즘엔 찜통 더위가 계속되어 힘들지만 다음주면 입추고 말복이니 이 더위 또한 서서히 물러가겠지요. 오늘도 가방에 물 한 병 넣고 팔 토시하고 웃는 얼굴로 전철역으로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 2017년 8월 8일

이미 한국사회도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늘어난 노인 인구를 '뒷방 늙은이'나 '퇴물' 취급하지 않고 역사를 만들고 사회를 지탱해 온 어르신들로 자각한다면 우리 사회는 또다른 재원을 확보하는 셈이 될 것이다.

어르신들의 '아름다운 나이듦'으로 각박하고 어두운 이 사회를 비춘다면 '상생'의 즐거움과 행복이 만들어지는 사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오늘 나는 또 작은 희망을 하나 본다.

덧붙이는 글 | '



태그:#지하철, #시각장애인도우미, #어르신, # 대한노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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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속 보물들을 찾아 헤매는 의미 탐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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