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재 감독이 이끄는 남자농구대표팀이 8강 진출을 놓고 일본과 맞붙게 됐다. 운명의 장난처럼 하필 광복절에 국가대항전 한일전이 성사됐다.

한국은 조별리그 C조에서 2승 1패를 기록하며 1라운드를 통과했다. 레바논, 뉴질랜드와 동률을 이뤘지만 골득실에서 밀려 8강직행 티켓을 놓치고 3위가 되어 D조 2위를 차지한 일본과 결전을 펼치게 됐다.

한국과 일본은 아시아를 대표하는 전통의 스포츠 라이벌이다. 그래도 농구에 있어서만큼은 2000년대까지만 해도 남녀 모두 일본보다 확실히 한 수 위를 자부해왔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일본 농구의 급격한 성장과 한국농구의 하락세가 맞물리며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이미 여자농구는 일본에 추월을 허용한지 오래다. 지난달 인도에서 열린 국제농구연맹(FIBA) 여자 아시아컵(56-70), 19세 이하 세계선수권대회 16강(47-86)에서 모두 패배했고. 대학선발이 나간 이상백배에서도 3전 전패로 무너지는 등 각급 대표팀을 막론하고 일방적인 열세에 몰렸다. 일본 여자농구 대표팀은 2013년부터 올해까지 아시아컵 3회 연속 정상에 오르며 아시아 농구의 새로운 절대강자로 자리매김했다.

남자농구는 여자보다는 그래도 상황이 낫지만 일본에 고전하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허재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올해에만 일본 대표팀과 두 차례 격돌하여 지난 6월 동아시아선수권 결승에서는 72-78으로 패했고, 7월 대만에서 열린 윌리엄 존스컵에서는 101-81로 완승한 바 있다.

하지만 2경기 모두 큰 의미를 두기는 어렵다. 동아시아선수권은 한국이 젊은 선수들로 구성되어 최정예멤버를 내보내지 않았고, 존스컵은 반대로 일본이 유니버시아드 대표팀으로 구성되어 양팀 모두 1진간의 정면승부가 아니었다. 이번 경기야말로 한국과 일본의 진정한 진검승부인 셈이다.

이번 한일전은 단순히 아시아컵 8강진출 여부만이 아니라 한국농구의 자존심이 걸려있는 승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일 이 경기마저 패한다면 한국농구는 올 한해 일본과의 대결을 총체적 완패로 마치게 된다. 존스컵을 제외하면 남녀 모두 성인-청소년, 클럽-대표팀을 아울러 올해 일본을 상대로 이긴 경기가 한번도 없다.

존스컵에서 한국 A팀에게 고배를 마셨던 일본 대표팀은 지난 12일 아시아퍼시픽 대학농구 챌린지에서 같은 레벨의 한국 유니버시아드 대표팀을 상대로는 81-77로 승리한 바 있다. 점수차만 차이가 크게 나지 않았을 뿐 내용 면에서는 일본의 우위가 뚜렷했다는 평가다. 심지어 지난 5월 열린 이상백배 한일대학농구대회서는 남자팀 역시 일본 대학선발에 3연패를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지난 2017 동아시아챔피언스컵에서도 KBL 우승팀 안양 KGC 인삼공사가 일본 대표 시부야 선로커스에게 패한 것을 포함하여 3전 전패를 당했다.

이미 미래의 한국 성인농구를 이끌어갈 '다음 세대'는 탄탄한 조직력과 기본기에서 남녀 모두 일본이 앞서나가고 있는 추세가 뚜렷하다. 남자 A팀은 아직 한국의 우위라고 하지만 이대로라면 2~3년 이내에 격차가 거의 없는 수준이 될 거란 평가다. 한국농구가 위기의식을 느껴야 할 순간이다.

이번 FIBA 아시아컵에서 4강을 목표로 하고 있는 한국  남자농구는 지난 2009년 7위를 기록한 것이 가장 저조한 성적이었다. 적어도 8강에 들지 못한 경우는 지금까지 없었다. 일본전을 놓치게 되면 또 한 번 역대 최악의 성적을 경신하는 수모까지 더하게 된다.

한국은 지난 2015년 창사 대회에서 6위에 그쳤고 일본은 4위로 한국보다 높은 순위를 기록했다. 2회 연속 일본보다 낮은 순위로 대회를 마친다면 이제는 남자농구도 일본보다 한 수아래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하필 '광복절에 일본에 패하는 것'은 농구팬들에게는 상상도 하기 싫은 흑역사일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대표팀의 현재 분위기는 나쁘지 않다. 첫 경기에서 개최국 레바논에 접전 끝에 아쉽게 덜미를 잡혔지만 이후 카자흐스탄을 대파하고 최종전에서 FIBA 랭킹 20위의 강호 뉴질랜드를 1점차로 제압하는 이변을 연출하며 상승세를 탔다.

눈에 띄는 것은 오히려 강점으로 꼽혔던 외곽슛보다 빅맨들의 선전이다. 한국은 이정현·임동섭·허웅 등 슈터들의 활약이 들쭉날쭉한 가운데도 이종현·오세근·김종규·이승현 등 빅맨들이 공수에서 분투하며 대등한 대결을 펼칠 수 있었다. 이번 대회에서는 가드로 기용되고 있지만 2미터의 장신에 파워포워드까지 소화할 수 있는 최준용의 존재도 수비에서 큰 도움이 되고 있다.

한국은 조별리그에서 장신의 뉴질랜드-레바논과의 리바운드 및 골밑싸움에서 우려했던 것보다 크게 밀리지 않는 모습이다. 일본의 높이가 그렇게 뛰어나지 않다는 것을 감안하면 충분히 좋은 경기를 기대해볼 만하다. 여기에 예선 3경기 모두 20개 이상의 어시스트를 기록하는 등 활발한 패싱 게임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도 긍정적이다.

단점은 부족한 외곽슛과 자유투 성공률이다. 외곽의 주포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했던 이정현은 카자흐스탄전을 제외하면 대체로 부진했고 다른 슈터들 역시 안정감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뉴질랜드전에서는 자유투를 얻어내고도 잇달아 놓치며 경기를 어렵게 풀어가는 원인이 됐다. 한국의 강점이 역시 슈팅에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일본전에서는 슈터들의 감각을 회복하는 것이 더 높은 고지로 올라서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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