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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삼삼한 매력의 정치인이 있다. 그는 석 자 세 치 작은 몸으로 좌·우·영 삼정승을 두루 지내며 세 명의 임금을 보필하였다. 오리 이원익. 사람들은 "키 작은 영웅"(혹은 재상)이라 부른다. 

이원익(李元翼, 1547~1634)은 호가 오리(梧里),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태종과 선빈 안씨의 소생인 익령군의 4대손으로 태어나, 임진왜란과 정권 교체의 혼란기에도 빼어난 인품과 능력으로 선조, 광해군, 인조 3대에 걸쳐 정승으로 맹활약했다.

충현박물관에서 김인숙 문화관광해설사가 <인조묘정배향교서>를 가리키며, 오리 선생의 작은 키에 대한 언급을 설명하고 있다. 해설사 뒤로 오리 선생을 그린 두 개의 영정이 보인다.
▲ 김인숙 문화관광해설사 충현박물관에서 김인숙 문화관광해설사가 <인조묘정배향교서>를 가리키며, 오리 선생의 작은 키에 대한 언급을 설명하고 있다. 해설사 뒤로 오리 선생을 그린 두 개의 영정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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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 선생은 석 자 세 치, 지금으로 치면 1m 정도의 작은 체구를 지녔다. 오죽하면 효종이 1651년에 인조의 묘종(종묘)에 이원익을 함께 제사를 지낸다고 내린 교서인, <인조묘정배향교서>에 "신고불승의(身苦不勝衣)"라 표현했다. 의복마저도 버거운 몸으로, 어릴 적에 병치레가 잦았다.

인재를 알아보는 안목이 뛰어났던 이준경(1499~1572)이 건강이 염려되어 명종에게 부탁하여 약을 먹였을 정도였다. 그 정성 덕인지 77세 고령에도 이괄의 난에 인조를 모시고 피난을 갈 정도로 체력과 강인한 정신을 지녔다. 그리고 골골 팔십이란 말도 무색하게 88세까지 장수했다. 84세 때 작성한 유서를 보면 흐트러짐이 전혀 없는 글씨체를 볼 수 있다.

왜소한 체격 탓인지 수줍은 성격으로 말수가 적었지만, 관직에서 직언은 서슴없이 하는 강직한 성품을 지녔다. 피난할 때에 숙박한 곳에서 준 음식을 직접 먹고 독약이 있는 지 알아본 후에야 임금에게 바쳤을 정도로 성실하게 소임을 다한 충신이었다. 그리고 왕가의 후예임에도 소박하고, 청렴한 관직생활로 청백리로 존경을 받았다.

선생은 임진왜란 당시 평양이 함락되었을 때에 평안도순찰사로 있으며 평양 탈환의 공을 세우고, 사도도체찰사로 군무를 총괄했다. 이에 선조가 선무공신까지 인정하려 했으나, 사양하고 임금을 보필한 공만 받겠노라 했다. 그런데 이 호성공신도 스스로 일등이 아닌, 이등으로 받을 정도로 치적을 자랑하지 않는 성품을 지녔다. 당시 받은 교서는 분실되었는데, 유성룡이 받은 교서에 오리 선생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선생은 호성공신으로 녹훈, 완평부원군에 봉해졌다.

 '바람에 목욕한다'라는 낭만적인 이름의 '풍욕대'

관감당(觀感堂은 인조가 은퇴한 충신 오리 이원익이 비가 새는 2칸 초가에 거주하는 것에 감탄하여, 경기감사에게 명하여 1630년(인조 8년)에 하사한 집이다. 공훈과 청백리로 임관한 자세가 모든 사람에게 귀감이 된다 하여 “모든 신민들이 보고 느껴야 할 것”이란 의미에서 ‘관감(觀感)’이란 이름이 붙었다. 이후 훼철되어 1916년에 관감당을 다시 지었다.
▲ 관감당의 정경 관감당(觀感堂은 인조가 은퇴한 충신 오리 이원익이 비가 새는 2칸 초가에 거주하는 것에 감탄하여, 경기감사에게 명하여 1630년(인조 8년)에 하사한 집이다. 공훈과 청백리로 임관한 자세가 모든 사람에게 귀감이 된다 하여 “모든 신민들이 보고 느껴야 할 것”이란 의미에서 ‘관감(觀感)’이란 이름이 붙었다. 이후 훼철되어 1916년에 관감당을 다시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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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가 은퇴하고 내려간 충신의 근황이 궁금하여 승지에게 명해 알아보니, 선생이 비가 새는 2칸 초가에 거주하는 것에 탄복했다. 이에 경기감사에게 명하여 1630년(인조 8년)에 집을 하사했다. 공훈과 청백리로 임관한 자세가 모든 사람에게 귀감이 된다 하여 "모든 신민들이 보고 느껴야 할 것"이란 의미에서 '관감(觀感)'이란 이름이 붙은 관감당(觀感堂). 1658년(효정 9년)에 집터에 사당이 건립되어 충현서원으로 사액되었으나, 후에 서원이 훼철되어 1916년에 관감당을 다시 지었다.

한편, 부친인 함천군 이억재는 왕실 후손의 관직 진출 제한에 따라 역사와 운율에 재주를 지녔음에도 공직에 나갈 수 없었다. 하지만 아들이 공신이라 사후에 이등 공신으로 추대되었다. 충현박물관에 가면 함천군 내외, 작은아버지 등 인척의 묘를 접할 수 있는데, 오리 선생의 묘와 신도비는 오리서원 쪽에 있는데, 신도비의 글씨를 선생의 손녀사위이자 진서체의 1인자인 허목이 썼다고 한다.     

경기도 광명시 소하2동 소하공영주차장 앞 사거리에서 충현교회와 엔젤세탁소 샛길로 가다보면 기와집이 보인다. 여기가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90호에 지정된 오리 이원익 종택으로, 충현박물관이기도 하다. 오리로 주변의 주택가에 ㄱ자형 안채와 ㄴ자형 문간채가 안마당을 중심으로 튼 ㅁ자형으로 배치되어 있고, ㅡ자형 관감당이 따로 떨어져 있다. 1917년에 종택의 안채를, 1940년 즈음에 문간채가 건립되었다.

충현박물관은 국내 유일의 종가박물관으로, 오리 선생의 13대 손인 이승규 박사와 종부이자 관장인 함금자 부부가 종가에 건립했다. 종가박물관답게 오리 선생과 후손의 유품뿐만 아니라 종가의 살림살이도 전시되어 있다. 전통적인 놋쇠 제기가 관리가 힘들기에 종부를 위해 특별히 만든 스텐 소재의 제기에서 종가의 배려가 느껴진다.
▲ 종가의 제기 충현박물관은 국내 유일의 종가박물관으로, 오리 선생의 13대 손인 이승규 박사와 종부이자 관장인 함금자 부부가 종가에 건립했다. 종가박물관답게 오리 선생과 후손의 유품뿐만 아니라 종가의 살림살이도 전시되어 있다. 전통적인 놋쇠 제기가 관리가 힘들기에 종부를 위해 특별히 만든 스텐 소재의 제기에서 종가의 배려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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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현박물관은 국내에 유일한 종가박물관으로, 오리 선생의 13대 손인 이승규 박사와 종부이자 관장인 함금자 부부의 노력으로 건립되었다. 종가는 종손이 조상의 제사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집안의 전통과 가풍을 이어가는 곳이기에, 이곳에서는 오리 선생과 후손의 흔적뿐만 아니라 경기도 전통 종가의 생활상에 부부가 수집한 가구나 생활용품 등도 구경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를 방문할 생각이라면, 꼭 느긋하게 즐기길 권한다. 왜냐하면 다른 박물관과 달리 내부에 전시된 물품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바깥을 거닐다 보면 자연과 벗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바람에 목욕한다'라는 낭만적인 이름의 풍욕대에 앉아 가만히 내려다보면, 세상살이에 지친 마음과 더위가 바람결에 훌훌 날아간다.

충현박물관과 종가를 제대로 '즐감'하고 싶다면

충현박물관에 자리잡은 정자인 '풍욕대'는 "바람에 목욕을 한다"라는 의미를 지닌 정자이다. 이곳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면 세상의 근심과 더위가 바람결에 흩날려 어느새 사라진다.
▲ 풍욕대에서 내려다 본 풍경 충현박물관에 자리잡은 정자인 '풍욕대'는 "바람에 목욕을 한다"라는 의미를 지닌 정자이다. 이곳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면 세상의 근심과 더위가 바람결에 흩날려 어느새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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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뒤편으로는 제법 높은 아파트 한 채가 어색하게 우뚝 솟아있는데, 2003년 충현박물관 승인 이전인 1994년도에 입주한 미도아파트이다. 입주민들은 근사한 종가의 풍경을 매일 즐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인숙 문화관광해설사에 따르면 5월 목단이 필 때는 한 폭의 그림이 된다고 한다. 그런데 목단이 오래 피지는 않으니 미리 물어보고 방문하라며 귀띔해주었다. 그리고 올 가을에는 이케아 가기 전에 <잎 속의 검은 잎>으로 유명한 시인 기형도 문학관이 개관할 예정으로 충현박물관, 오리서원과 연계하여 문화벨트로 조성된다고 한다. 
   
충현박물관은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관람이 가능한데, 오전 10시 30분, 오후 1시 30분, 오후 3시 30분 총 3회에 걸쳐 해설사와 동행하며 설명을 들을 수 있다. 단, 단체는 1주일 전에 예약해야 한다. 1박 2일로 광명시를 여행 중이던 기자는 문이 열리길 기다린 덕에, 첫 관람객으로 해설사를 독대하는 행운을 누렸다.

그런데 여기에는 사연이 있다. 전날에 광명동굴 등을 구경한 후 버스를 타고 오다가 오리서원을 충현박물관으로 착각하여 방문했다. 서원의 직원이 오후 4시까지 가면 박물관 입장이 가능하다고 알려줬는데, 이미 4시가 가까운 데다 더위에 지쳐서 다음날에 가겠노라 말했다. 그러자 직원이 해설사 설명을 들으면 좋다고 시간을 알려주었다.

충현박물관과 종가를 제대로 '즐감'하고 싶다면 꼭 해설사와 동행하길... 기자의 경우 해설사와 동행을 마친 후에 다시 혼자 사진을 찍으며 즐겼다. 일화까지 곁들여 세세하게 설명을 해주기에, 집중하려면 따로 사진을 찍는 시간을 마련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투어 일정에는 없으나, 꼼꼼하게 돌아다니다 보면 정원의 동물 조각상도 볼 수 있다.

한편, 다음날 머물렀던 아파트 단지 인근 찜질방에서 기아자동차 소하리 공장을 지나 충현박물관을 향해 걸어오면서 5명의 주민에게 길을 물었다. 그런데 초등학생과 어르신만 제대로 위치를 알았고, 다른 동에 산다는 성인 2명은 충현박물관 위치를 전혀 몰랐다. 심지어 박물관 인근에 사는 것으로 추정되는, 등굣길 유아와 있던 30대 주부는 오리서원을 박물관으로 착각하고 길을 가르쳐주었다. 이에 전날 뼈저린 실수를 한 외지인 기자가 아니라고 알려주는 역전까지 발생했다.

아마도 주택가에 자리 잡아 주민들이 잘 모르는 것 같다. 걸어오면서 버스정류장 곳곳에서 오리 선생 광고도 봤다. 오리란 이름의 길까지 있으니, 이곳 광명시에서 "이름이 빛나는" 분이건만 기념하는 박물관의 위치를 모르는 것이 안타까웠다. 좌우당간 외지인 입장에서 조언컨대, 헤매지 않고 가장 빠르게 찾는 방법은 소하공영주차장 앞 사거리와 미도3차아파트를 찾아오는 것이다. 기와집과 기다란 담이 계속 보이고 나무가 많으면 100% 충현박물관이다. 자가용으로 온다면 네비에 "광명시 오리로 347번길 5-6"을 입력할 것. 홈페이지(http://www.chunghyeon.org/)가 있으니 사전에 정보를 찾아봐도 된다. 전시물에 대한 정보 검색도 가능하다. 

끝으로 여기에 가면 꼭 비교해서 감상할 것이 있다. 바로 나란히 좌우에 전시된 오리 선생의 영정 두 작품이다. 이건 직접 확인해보길... 음. 살짝 팁을 주자면 당시의 네일아트(?) 스타일을 구경할 수 있다. 

마지막 여행 팁. 개인적으로 서울 구로디지털역 찜질방이 광명 소하동보다 시설이 더 좋았다. 가격은 2천 원 더 비싸긴 하다. 현지인은 줄여서 구디역이라 하는 그 주위에서 광명시까지 버스가 다닌다. 기자는 5536번 버스를 타고 광명시에 왔다.

아낀 숙박 경비로 코스트코 광명점에서 지름신을 제대로 영접했다. 충현박물관에서 코스트코까지 걸어가는 것도 좋다. 중간에 이케아랑 롯데아울렛도 구경할 수 있다. 마지막 여정으로 코스트코에서 또 걸어서 인근 광명역에서 KTX를 탔다. 근처에 버스터미널도 있는데, 기자가 사는 시까지 운행하는 고속버스가 없어서.


태그:#오리 이원익, #충현박물관, #경기도 광명시 여행, #종가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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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어로 '좋아할, 호', '낭만, 랑', 사람을 뜻하는 접미사 '이'를 써서 호랑이. 호랑이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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