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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봄, 사회복지를 공부하던 학생들이 처음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 느끼고 깨달은 바가 많았습니다. 페미니즘이 거창하고 무서운 줄만 알았는데, 들여다보니 우리가 꼭 귀 기울여야 하는 소중한 목소리였습니다. 여전히 공부가 부족하지만, 여성으로서 우리들의 생각을 글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소통해보자는 취지에서 총 6명의 목소리를 소개합니다. - 기자말

그림3 나의 말은 그저 소음이였을까
▲ 그림3 나의 말은 그저 소음이였을까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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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친한 사람끼리 성희롱이 어딨어

졸업논문 준비로 인해 단시간에 체중이 5킬로나 빠져 버렸고, 주변에서 수척해진 나의 얼굴을 보며 안부를 묻는 일이 잦아졌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선배가 살이 많이 빠졌다며 안부를 물었고 "특히 가슴살이 많이 빠졌네"라고 하는 게 아닌가 (뜨악- 이게 웬 날벼락).

곧바로 나는, 장난이라는 듯이 웃고있는 그에게 그 발언은 성희롱이니 사과할 것을 요청했다. 내가 미소를 유지하며 이야기했기 때문일까?  그는 "왜 그렇게 예민하게 구느냐"며 그 순간을 아무렇지 않게 마무리하려고 했다. 나 또한 사과할 마음이 전혀 없는 그에게, 잘못한 일임을 강조하며 자리를 떴지만 답답함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며칠 뒤 그에게서 사과하고 싶다는 전화가 왔다. 사과할 마음이 생겼다니! 정말로 반갑지 않을 수 없었다. 곧 그를 만났고 잘못을 인정하는 건 힘든 일인데 고맙다고까지 전했다. 그런데 문득, 선배는 왜 갑자기 사과가 하고 싶어졌을까? 

"선배, 그런데 왜 갑자기 사과할 마음이 생기신 거예요?"
"가만히 생각해보니 네가 기분 나빴을 수도 있을 것 같더라고."

며칠 전 '왜 그렇게 예민하게 구느냐'라는 듯한 그의 태도와는 확실히 다른 모습에, 역시 내가 알던 사람이 맞구나! 안도하려는 찰나.

"복치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하니, 이제 너한테는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어. 뭐 모든 여성들에게 조심할 필요는 없지만... 그런데 사실 난 너랑 친하다고 생각했거든."

나는 깊게 숨을 한 번 쉬고, 그에게 천천히 말했다. 우리가 친하지 않은 사이여서도 아니고 내가 예민해서도 아니다. 당신이 한 발언은 그 발언 자체에 문제가 있으며 이것은 엄연한 성희롱이라고, 그런 발언은 내가 아니라 다른 누구에게도 해서는 안 되는 언어폭력이라고.

그러자 그는 복잡하게 말하지 말라며 언성을 살짝 높였다. 갑자기 내 머리는 복잡해졌다. 답답하고 화도 났지만 무엇보다 학교란 공간에서 계속 만날 그와 관계가 틀어지는 게 싫었던 나는 하고 싶은 말을 억지로 구겨 넣으며 "그래요"라고 답했다.

그리곤 그는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고 혹시 더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언제든 연락하라고 했다. 이때다!

"선배, 마지막으로 하나만 얘기할게요. 제가 화난 이유는 제가 예민해서가 아니에요. 그 발언이 성희롱이기 때문인 거예요. 누구한테 하건 그 발언 자체가 문제라는 거예요. 그뿐이에요."

그러자 그는 작은 한숨을 내뱉었고 우리의 대화는 거기서 끝이 났다.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어색한 인사를 나누었고 돌아선 순간부터 나는, 며칠 전 느꼈던 답답함보다 더한 찜찜함이 나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2. 불편해도 됩니까?

왜 나는 평소에 치를 떠는 성희롱 발언을 듣고도 사과를 요청할 때 미소를 유지했을까? 그리고 아주 잠깐이라도, 상대가 문제를 인식하지 못한 것이 '나의 미소' 때문이라고 자책했을까. 내가 너무 착해서? 혹은 너무 예민해서? 아니면 그것이 사과받을 만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일까?

누군가는 분명, 사과까지 했으면 된 것 아니냐- 라고 할 수도 있겠다.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인정하고 사과를 구한다는 건 힘든 일이기도 하고 동시에 멋진 일이기도 하니까. 그러나 사과의 기본 중 하나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깨닫는 데 있다.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면 사과하는 의미도, 사과를 받는 의미도 없어진다.

그는 '나의 기분이 나쁠 수도 있겠구나'라고 했다. 이 발언 자체는 언뜻 사과처럼 들린다. 그러나 곧 삼천포로 빠져버린 이 사과엔 문제점이 있는데, 발언의 잘못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동안 살면서 성희롱이나 성차별 발언에 대해, 발언자 본인이 사과하겠다고 나서는 경우를 본 경험이 없기에 그의 전화는 정말 반가웠다. 너무 쉽게 '좋은 지인 하나 잃는구나' 생각했던 나의 경솔함을 탓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나에게 '모든 여성들에게 조심할 필요는 없다'라고 하면서 앞으로 조심해야 할 대상을 '나(필자)'로 제한시켰다. 그 말은 즉, 내가 불편함을 표시하지 않았거나, 내가 다른 사적인 공간에서 만난 사람이었더라면 그 발언은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란 말이 된다. 

대상과 장소가 달라지면 성희롱 발언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결국 개인의 예민함이 원인이란 소리다. 너무나도 닮아있었다. 비공식적인 카톡방에서 그 안에 멤버들끼리 음담패설을 나누는 것이 일상화되어있는 사회를, 반성하지 않는 그들을, 그리고 상대가 상처를 받았어도 "농담이야" 한마디면 그냥 넘어가 줘야 '미꾸라지'를 면할 수 있는 사회를. 

이렇게 문제를 지적하는 것만으로 모두가 불편해진다면, 모두를 위해 한 번 참아야 될까?
그 한 번은 정말 한 번만이면 되는 것일까?  

그림2  우리는 너무 쉽게 실수를 저지르곤 하지만 그것을 깨닫기는 어렵다.
▲ 그림2 우리는 너무 쉽게 실수를 저지르곤 하지만 그것을 깨닫기는 어렵다.
ⓒ 페이스북페이지_Mitr 미트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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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농담과 오해

내가 성희롱, 성차별 발언에 대응하는 것은 그 무엇보다 힘든 일이었지만(발언자가 친한 지인일 경우는 더욱) 그렇다고 '지적'을 안 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내 지적이 무용지물이 되고 내가 물 흐리는 '미꾸라지'가 되는 상황은 무척이나 빈번했다. 발언자에게는 늘 '농담'이라는 방패와 '오해'라는 창이 있기 때문이다. 실로 많은 상황에서 '농담'이란 것은 마음대로 지껄여도 되는 발언쯤이라고 여겨지며, 흔치 않지만 발언자의 마음대로 되지 않는 상황이 오면 그는 늘 '오해'란 말로 상황을 급 마무리 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오해라는 변명은 쉽게 받아들여진다.

불과 얼마 전에도 카톡방에서 '농담'으로 던진 성희롱적인 발언을 지적한 적이 있었는데 발언자는 여지없이 "술자리에서 자주 하는 비공식적 농담인데 왜 오해를 하고 그러냐"고 말했다. 아 레파토리가 어쩜 이리 똑같을까. 이 진부한 변명이 얼마나 '구리냐'면, 일단 해명이라고 명명하기도 민망할 정도다.

그들의 변명은 "그냥~"과 다를 바 없는 비논리적인 내용이다. 또한 비공식적 농담이라고 강조하는 것은 공식적으로는 하면 안 되는 발언이라는 것을 본인도 알고 있다는 것인데, 안 보이는 곳에선 '내가 이렇게 구리게 놀아요'라고 홍보하고 다니는 꼴이라는 걸 정녕 모르는 것일까?

자신의 이중성을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한다.

#4. 미꾸라지가 될 거야

나의 변화된 가슴 사이즈로 안부를 물었던 그 선배는 참 좋은 사람이었다. 나에게도, 주변 모두에게도 평판이 좋은 사람이었다. 조용하면서도 유머감각이 있고 진중한 모습이 신뢰를 갖게 했었다. 그런데 그것이 나를 더 속상하게 만들었다. 그에게 인성과 젠더감수성은 별개였으니까.

혹자는 '그렇게 좋은 사람이였다면 네가 이상한 거 아냐?'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지적한 부분이 틀리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확실히 친한 이들에게 '지적'하는 건 쉽지 않다. 문제를 제기하는 것만으로 모두가 불편해질 수 있으며 사람을 잃게 될 것이란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문제제기를 듣는 것을 불편해하는 상황과 문제제기 하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는 게 싫다. 특히나 그 문제가 '젠더 감수성'과 관련된 것일 때 더욱 어려워지는 그 분위기가 싫다.

성희롱 발언이 문제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일은, 성희롱이 '농담'이 되는 사회에서 너무나 익숙한 일이다. 내가 '지적'한 그 발언이, 분명 별것 아니라고 그 선배는 여겼을 것이다. 단지 본인 생각보다 복잡해진 상황이 싫었을 뿐이다.

'지적'당하지 않았더라면 그렇게까지 불쾌해질 상황은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그러나 농담이라고 한 말에 안 웃는 사람이 있으면 농담이 아닐 수 있겠구나 알아차려야 한다. 더불어 성희롱과 성차별 발언이 '농담'일 수 없는 사회로 바뀌어야 한다. 더이상 젠더 감수성이 별개이면 안 된다. 우리는 이제 무엇이 문제인지를 인지해야 하며, 문제를 먼저 인지한 사람을 '유별난 사람'이라는 낙인을 찍거나 '물 흐리는 미꾸라지'라고 비난하는 일을 멈춰야 한다.

그리고 더욱 적극적으로 미꾸라지가 되어야 한다. 우리 모두 미꾸라지가 되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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