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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봄, 사회복지를 공부하던 학생들이 처음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 느끼고 깨달은 바가 많았습니다. 페미니즘이 거창하고 무서운 줄만 알았는데, 들여다보니 우리가 꼭 귀 기울여야 하는 소중한 목소리였습니다. 여전히 공부가 부족하지만, 여성으로서 우리들의 생각을 글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소통해보자는 취지에서 총 6명의 목소리를 소개합니다. - 기자말

지난해 5월 22일은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 피해 여성을 애도하기 위해 강남역 10번 출구에 마련한 추모 장소를 볼 수 있는 마지막 날이었다.
 지난해 5월 22일은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 피해 여성을 애도하기 위해 강남역 10번 출구에 마련한 추모 장소를 볼 수 있는 마지막 날이었다.
ⓒ 김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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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살아남은 것이다."

2016년 5월 17일,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에서 발생한 여성 살해 사건 이후 붙었던 수많은 추모 포스트잇 중 하나다. 이 사건에서 논란이 된 건 범인이 '아무 사람'이 아닌 '여성'만을 범행 대상으로 잡았다는 것이다. 이는 여성들이 느끼고 있었으나 표출하지 못했던 불안과 공포를 드러내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현재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여성들은 왜 이제야 나타났을까. 여성들이 어떤 불안을 가지고 살아왔기에 지금 목소리 내는 걸까. 그리고 왜 그들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은 아직도 불편한 것일까?

그것은 결코 드문 일이 아니다

3년 전 일이다. 나는 미용실에서 내 차례를 기다리다 한 남성과 말싸움을 했다. 경과를 말하면 이렇다. 그 남성은 머리카락을 자르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대기 시간이 길어졌다. 미용실 직원들이 자신을 무시하는 것 같아 화가 났다. 남성은 그 분노를 카운터 업무를 보고 있던 실장에게 표현했다.

그녀에게 손찌검하려는 그를 보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저 폭행을 말리려고 했던 게 그 남성에게 거슬렸나 보다. 갑자기 분노가 나에게로 향했다. 그는 미용실에 배치돼 있던 잡지책으로 날 폭행하려 했다. 그에게 "이 미용실에 4대의 CCTV가 있으며, 사람들이 다 당신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직원들의 만류에 싸움이 끝났다.

나는 그 짧은 순간 여러 감정을 느꼈다. 먼저 여성 직원이라는 이유로 하대하는 남성을 보니 같은 여성으로서 분노스러웠다. 그 남성을 설득하려는 내 의도와 달리 그가 점점 무섭게 변해가는 데선 공포감을 느꼈다. 그리고 남성 직원들의 만류에 싸움이 끝났던 건 애초부터 이러한 실랑이는 내가 여성이기에 말릴 수가 없었던 상황이었다. 그런 현실은 나를 너무 슬프게 했다.

또한 나는 그 짧은 순간 너무 놀랐다. 첫째, 자신의 차례가 빨리 오지 않았기 때문에 여자 실장을 화풀이 대상으로 삼고 폭언할 수 있다는 것에 둘째, 그런 일이 벌어짐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말리려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랬다.

심지어 그 미용실의 원장은 실장의 남편이었는데, 그러한 상황을 목격만 할 뿐 방관했다. 더 심해졌을 때쯤에서야 그 사람을 말렸다. 아내가 폭언으로 인해 공포에 떨며 울고 있는데, 어느 수준에서는 '괜찮다'라는 기준이 있는 것 같아 놀라웠다. 그리고 그 남성과 내가 싸우는 과정에서 '대학 어디 나왔느냐', '여자 주제에 남자가 말하는데 끼어드냐', '대학이나 잘 나왔겠느냐, 난 수능 만점자다' 등 어이없는 말을 퍼부었다. 한마디로 '여자 주제에 끼어들지 말라'는 것이다.

나는 그런 언행에 기분이 나빴고, 무서웠지만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방패 삼아 열심히 대응했다. 이 에피소드를 주변에 얘기하니 '너 그러다가 정말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 '얘가 미쳤어, 왜 그랬어'라는 우려만 들었다. 내가 만약 더 대응했다면, CCTV가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내 행동은 여성인 나에게 왜 또 다른 불안을 안겨주는 걸까? 그리고 이런 불안은 어디서 온 것일까?

죽음과 생존이라는 갈림길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 중 일부는 앞서 언급한 강남역 살인사건과 내 에피소드가 여성이 겪는 불안과 공포에 어떤 관련이 있는지 의아할 것이다. 강남역 살인사건의 경우, 피해자는 기분 좋게 지인들과 술을 마시다 화장실에 갔을 뿐이고, 나는 미용실에서 내 차례를 기다리다 싸움을 말렸을 뿐이다. 두 사건 다 불시에 갑작스럽게 일어난 것이 아니며, 언제든지 '경험 가능한' 사건들이다. 그 결과가 '죽음' 혹은 '생존'이라는 다른 결과로 나타났을 뿐이다.

내가 겪은 일에 대한 반응을 살펴보면 "잘했다"라기 보다 "왜 대들 생각을 했느냐"는 걱정과 우려의 목소리가 더 많다. 그리고 그러한 반응들에 다들 공감하였다. 큰 맥락에서 봤을 때, 보이지 않는 사회적 동의가 있어서 그랬던 것 아닐까? 

길 가던 남성이 어느 여성이 마음에 들어 전화번호를 물어본다고 가정해보자. 분명 호의를 보이는 여성도 있겠지만, 그 남성이 악의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서워할 여성이 있을 것이다. 왜 일부 여성들은 갑작스런 행동을 무서워할까? 여성 10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여성 10명중  6명이 최근 데이트 관계에서 폭력피해(통제/언어적/정서적/경제적/신체적/성적)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고, 모든 유형의 폭력피해 경험이 있다고 답한 비율도 10명 중 1명꼴로 나타났다(한국여성의전화, 2016).

2016년에 언론에 보도된 사건으로만 분석한 조사에 따르면, 2016년 한 해 동안 남편이나 남자친구에 의해 살해되거나 살해당할 위협에 처한 여성은 최소 187명이다(한국여성의전화). 다시 말하면, 최소 이틀에 한 명꼴로 가까운 관계에 있는 남성이 여성을 죽였거나 죽이려다 실패했다는 거다.

언론에 보도된 살인 사건만을 분석했기 때문에 이 수치는 어디까지나 '최소치'다. 이렇게 가까운 관계의 남성에게 폭력을 경험하는 여성들이 대부분인데, 어떻게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없을 수가 있을까? 그렇다면 처음 보는 낯선 남성에 대한 여성의 생각은 어떻겠는가?

남성을 혐오하는 것이 아니다

강남역 살인사건은 여성혐오범죄로 규정하는 것에서부터 어려움에 봉착했다. 남성의 입장에서는 '여성을 좋아하는데 어떻게 여성을 혐오하는 것이냐'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여성혐오는 여성을 열등한 존재 혹은 연약한 존재로 생각하고, 차별이나 폭력을 휘두르는 일이다.

여성혐오적 행동은 우리 사회에서 너무 쉽게 목격할 수 있다. 김치녀, 된장녀, 맘충 등 언어로 여성을 차별하는 언어폭력, 미디어의 젠더 차별, 이에 익숙해지는 사람들... 우리가 사용하는 사고, 언어, 행동으로 각인된 '왜곡된 젠더 의식'은 무의식적으로 내재화된다. 이는 또 다른 차원의 젠더 차별로 드러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얼마나 무서운가. 여성혐오 범죄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우리가 모르고 지나간 것도 많을 것이다.

이에 대해 계속 목소리를 내고자하는 사람들은 결코 남성들을 혐오하는 것이 아니다. 젠더 불평등한 구조에서 느끼는 공포를 해소하기 위해 집단적으로 목소리를 높이는 것일 뿐이며, 그 목소리를 듣는 사람들이 많아지길 소원하는 것이다. 함께 안전하게 공존하기 위해서다. 여성들은 자신들을 보호해달라고 하는 게 아니다. 그들의 얘기를 계속 듣기만 해도 고마워할 것이다. 이 목소리조차 불편하다면, 어찌해야 할까. 


태그:#여성 살해, #죽음에 대한 공포, #여성 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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