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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엿새 만에 훌쩍 커져 있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쉰 듯 묵직해진 목소리로 엿새 동안의 낯선 경험을 쉬지 않고 쏟아냈다. 학기 중에는 사춘기를 겪는 아이처럼 어떤 질문을 던져도 매번 심드렁하게 반응하기 일쑤였다. 소풍이나 체육대회 때도, 심지어는 2박3일 수련활동을 다녀와서도 일언반구 말 한마디 없는 목석같았던 아이다.

지난 8월 초, 아이는 지리산 자락의 한 대안학교에서 마련한 여름 캠프에 다녀왔다. 아이가 선뜻 가겠노라 했을 때 슬쩍 들여다보니, 여느 기관에서 운영하는 청소년 대상 캠프와는 조금 다른 점이 있었다. 대안학교에 관심이 있는 아이들이 소문만 듣고 덜컥 지원하기에 앞서 학교생활 전반에 대해 짧은 기간이나마 미리 경험해보라는 취지로 마련된 프로그램이다.

오전엔 텃밭 가꾸기 등 노작활동부터 제과, 제빵, 철학, 토론 등 수업활동이 이루어지고, 오후엔 염색, 바느질, 목공, 밴드, 춤, 비평 등 다양한 동아리활동이 행해진다. 비록 맛보기였을 테지만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그러한 프로그램들이 힘들기는커녕 마냥 즐거웠다고 했다. 수업이 아니라 그냥 '놀이' 같았는데, 그래선지 졸거나 딴청피우는 아이가 단 한 명도 없었단다.

가장 좋았던 꼭지를 물었더니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그는 주저함 없이 점심시간과 저녁식사 후 자유 시간 때 또래 아이들과 나눈 대화를 첫손에 꼽았다. 대화의 주제가 따로 정해진 건 아니었는데, 아이들이 국정원의 정치 개입과 비정규직 문제 등 정치 이슈들을 스스럼없이 꺼내더란다. 자연스럽게 토론 마당이 펼쳐진 것이다. 관심이 없진 않았지만, 중학교 3년 동안 그런 이야기를 친구들과 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는데, 마냥 신기했단다.

삼삼오오 모여 '토론 판'을 벌이다

 매일 짬만 나면 둥그렇게 모여 앉아 누가 교사인지 학생인지 헛갈릴 정도로 자유로운 토론이 이어졌단다.
 매일 짬만 나면 둥그렇게 모여 앉아 누가 교사인지 학생인지 헛갈릴 정도로 자유로운 토론이 이어졌단다.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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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이들 사이에선 선뜻 정치 이야기를 꺼냈다가는 대번에 '진지충'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하긴 아이들이 정치 이야기를 꺼낼라치면 당장 교사들부터 "쓸데없는 곳에 신경 쓰지 말고 공부나 하라"며 나무라기 일쑤다. 그런데, 그곳에선 코흘리개 중1 아이도 귀를 쫑긋 세워 경청하고 자신의 생각을 또박또박 말하는 걸 보고 사람이 달라 보이기까지 했단다.

중간에 말을 끊는 경우도 없고, 상대방의 주장을 하나하나 메모해가는 모습이 자못 TV 토론처럼 진지해보였단다. 특히 아이들 사이의 대화에 묻어가듯 참여한 교사들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고 강조했다. 점심시간이든 쉬는 시간이든, 교사들은 교무실에, 학생들은 교실에 있는 것이 익숙한 풍경인데, 그곳에선 교사들이 늘 아이들 사이에 함께 섞여 있어, 무얼 하든 간에 약방의 감초처럼 끼더라는 것이다.

매일 짬만 나면 둥그렇게 모여 앉아 누가 교사인지 학생인지 헛갈릴 정도로 자유로운 토론이 이어졌단다. 프로그램 자체가 빡빡하지 않다 보니 일과 중 여유가 많고, 그때마다 삼삼오오 모여 '판'을 벌인 것이다. 아이들에게 분신과도 같은 스마트폰이 없고, 기숙사엔 그 흔한 TV도 없으니 즉석 토론은 데면데면한 상황에서 그것들을 대체하는 역할을 한 것이다.

누가 무엇을 가르치지도 않았고, 그저 자투리 시간에 서로의 생각을 나눈 것뿐인데도, 지나고 보니 참 많은 걸 배운 것 같다면서, 아이는 며칠 만에 토론 예찬론자가 되어 있었다. 연간 수업계획을 통해 언제, 누가, 무엇을 주제로 시행한다는 계획된 토론보다, 그때그때 즉흥적으로 만나 다양한 주장을 겨뤄보는 게 훨씬 더 교육적인 것 같다는 생각을 밝히기도 했다. 말하자면, 점심시간 10분 늘리는 것이 토론수업 몇 시간보다 더 낫다는 것이다.

학년을 나누는 것도 별 의미가 없는 것 같다고도 했다. 교과수업이든, 다른 학교활동이든 학년이 아니라 각자의 관심과 호기심의 정도에 따라 수준 차이가 날 뿐이라고 단언했다. 아이는 자신의 주토론 상대가 중2 후배들이었다면서, 생각이 훨씬 더 깊고 성숙해 배울 점이 많았다고 칭찬했다. 아닌 게 아니라 퇴소하던 날, 그 후배는 아이를 친형 대하듯 이름을 부르고 서로 껴안으며 짧았던 만남과 헤어짐을 아쉬워했다.

어디 내놔도 손색없는 '능력자'들을 만나다

교사로서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아이들에게 정치란 가당찮은 것으로 여겨왔다. 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어린 중학생이 무슨 정치 이야기냐며 내심 탐탁찮게 생각해온 것이다. 다 큰 고등학생들도 정치를 수험용 교과목으로 배울 뿐 실생활 속에서는 쉬이 다가서기 힘든 영역이었다. 조금 더 솔직해지자면, 정치란 어른들의 영역으로, 학교에서는 일종의 '금기'로 여겼던 것이다.

아이는 그러한 기성세대의 편견을 꼬집은 셈이다. 그동안 아이들은 입만 다물고 있었을 뿐, 어른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정치의 'DNA'가 있다는 것이다. 아이의 결론은 이랬다. 가정과 학교에서 성적과 대학입시를 볼모로 삼아 억눌러와 발현되지 않았을 뿐, 중학생 정도 되면 멍석만 깔아준다면 각자의 정치관을 거침없이 피력할 수 있다고 단언했다. 전국에서 모인 또래 아이들과 함께한 여름캠프가 '로두스'가 되어준 셈이다.

시나브로 친해지면서 알게 된 거지만, 토론을 벌인 친구들 대부분이 공부엔 젬병이라는 점에 더욱 놀랐다고 했다. 기숙사에서 한 방을 쓰게 된 친구들끼리 서로 내신 성적을 비교하기도 했는데, 내신 성적이 나빠서 지원해봐야 떨어지게 될 거라고 속상해하는 아이도 있었을 정도란다. 학교에서라면 공부를 못한다는 이유로 주눅이 들었을 텐데, 그런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단다.

국영수 위주의 맹목적인 입시공부가 싫어 대안학교를 생각하고 있는 아이들이라지만, 그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는 '능력자'들이 많았다고 했다. 일반 학교 같으면 단지 공부를 못한다는 이유로 대번에 문제아라며 뭉뚱그려졌을 테지만, 조금만 다른 시각에서 보면 하나같이 아까운 인재들이라는 것이다. 아이는 이를 두고 성적으로는 표현될 수 없는 재능이라고 불렀다.

배운 지 불과 2년밖에 안됐다는데 수준급 피아노 실력을 보여준 아이도 있고, 밴드 활동을 해오고 있다며 드럼을 마치 몸의 일부처럼 다루는 경우도 있었단다. 그런가 하면 이름조차 생소한 전통 악기인 태평소를 신명나게 부는 아이도 봤는데, 모두가 '신동'처럼 느껴지더라는 거다. 그런 그들 앞에서 과거 몇 년 동안 배운 악기 연주 실력은 말 꺼내기조차 민망한 수준이었다며 아이는 내심 그들을 부러워했다.

그들보다 단지 하나 나은 게 있다면 학교의 내신 성적인데, 공부를 잘하고도 창피한 적은 처음이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학교 성적은 한 개인의 수많은 재능 중의 하나일 뿐,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을 지금껏 처음 해봤다는 것이다. 아이는 외려 공부와 운동, 운동과 악기 연주 실력, 음악적 재능과 미적 감각 등이 학교에서 등가적으로 평가될 수는 없는지 반문하기도 했다.

아이에게 좋은 기억만 남긴 대안학교 여름캠프

전국에는 온갖 재능을 지닌 '무림의 고수'들이 정말 많은 것 같다면서, 이번 캠프를 자신이 우물 안 개구리였음을 깨우쳐준 소중한 기회였다고 자평했다. 오로지 한 분야를 기준으로 순서를 정하는 건 옳지 않은 것 같다며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굳이 서열을 매기자면, 공부 1등, 피아노 1등, 드럼 1등, 태평소 1등, 염색 1등, 토론 1등, 춤 1등, 손재주 1등 등 모두가 1등이라는 주장이다.

또 하나, 학교에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건데, 엿새 동안 이곳에선 거의 듣지 못한 말이 있다며 맞춰보라고 했다. 정답은 바로 '~하지 마라'는 말. 그 대신에 '~해보라'는 식의 지시가 대부분이었다며 낯설어했다. 떠들지 마라, 지각하지 마라, 낙서하지 마라, 졸지 마라 등 학교생활에는 반드시 필요한 규정일 텐데, 이곳엔 교칙이라는 게 없나 의심될 정도였단다.

예컨대, 급식소에서도 '음식을 남기지 마라'고 말하는 대신, '원하는 만큼 덜어서 맛있게 먹어라'고 돼 있단다. 밥부터 반찬까지 모든 메뉴가 자율 배식인데, 그래선지 음식을 남기는 아이가 단 한 명도 없었다고 놀라워했다. 자율 배식이 음식을 남기지 않는 문화로 정착된 이곳과 편식과 잔반 처리 문제로 자율 배식이 애초 불가능하다는 학교가 비교됐다면서, 그 이유를 '~하지 마라'와 '~해보라'는 차이에서 찾았다.

특별한 일이 생기지 않는다면, 아이는 엿새 동안 많은 걸 깨닫게 해준 그 학교에 지원할 것 같다. 퇴소식 날, 또래 친구들의 작별 인사가 이구동성 "겨울캠프 때도 만나자"였을 정도로, 아이에겐 좋은 기억만 남았다. 딱 한 가지 옥에 티라면, 운동장이 너무 좁아 죽고 못 사는 축구를 마음껏 할 수 없었다는 점이란다. 축구화까지 부러 챙겨갔는데 제대로 신어보지도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눈치 챘겠지만, 아이의 여름캠프 참가후기를 부러 옮겨 적는 이유가 있다. 아이는,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일반 학교에 근무하는 아빠에게 적잖은 '불편함'을 안겨주었다. 아이의 모든 소감들이 '왜 거긴 되는데, 여긴 안 되는지'를 따져 묻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학생 수 차이 때문일까, 교육과정의 자율권 때문일까. 아니면 전가의 보도마냥 대학입시 때문일까. 아이에게 답해줄 마땅한 핑계거리를 찾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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