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동막분교 전경
 동막분교 전경
ⓒ 이준수

관련사진보기


 
작은 학교 통폐합은 강원도 사람에게 늘 가슴 아픈 이야기였다. 교육부 기준을 적용하면 도서 벽지, 면 지역의 학생수 60명 미만 학교는 통폐합 대상이었다. 강원도에 있는 394개의 초등학교 중 220개 학교가 문을 닫아야 한다는 의미였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라고 반발하면서도, 아이들이 열 명 미만으로 남아있는 학교들은 하나 둘 조용히 사라졌다. 근덕초등학교 동막분교장도 그런 학교였다. 
 
"동막 조만간 폐교 된다는 소식 들었지? 공문 하나 온 거 있으니까 출장 내고 같이 짐 좀 가지러 갑시다."   
 
폐교라는 말을 듣는 순간 기분이 이상했다. 같이 근무하는 선배들이 거쳐왔던 학교였고, 가끔 대화의 소재로 오르고 내렸던 곳이 사라진다 하니 마음이 허했다. 출장의 목적은 동막분교에 학교 동문들이 기부한 민속자료가 있는데, 2학기에 있을 전통놀이 관련 발표회에 쓰려고 몇 개를 빌리러 가는 것이었다. 50여 분을 내달려 도착한 동막분교는 7번 국도 언저리에 있었다. 
 
"매앰! 매애앰~ 매애애앰"
 
학교는 쏟아지는 한여름 뙤약볕 아래 매미 울음으로 가득했다. 주위를 두리번거려도 인기척이 없었다. 가끔씩 나무와 나무 사이를 날아다니는 날벌레들이 눈앞을 스쳐갈 뿐이었다. 문득문득 새삼스러운 풍경이 있다면 학교 가장자리에 심긴 굵은 나무들이었다. 참나무와 소나무, 은행나무는 언제 심었는지 둥치가 성인 남자 한 아름이 넘었다. 
 
"안녕하세요? 도계에서 오셨지요?"
 
체육관을 꺾어 나오자, 보호복 차림으로 예초기를 돌리던 주무관님이 땀을 뻘뻘 흘리며 인사를 건넸다. 담당 교사에게 미리 연락을 받으셨는지 우리를 곧장 본동으로 안내했다. 주무관님 혼자서 이 넓은 학교를 모두 관리한다 생각하니 남의 일인데도 까마득했다. 
 
전교생은 3학년 1명과 5학년 1명, 단 둘이었다
 

 

  교무실은 아담하고 단촐했다. 구석에 학교를 거쳐간 선생님들의 성함과 연락처가 적힌 안내판이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쌓여있었다. 시간이 최근으로 올수록 교사 수가 줄어들고 있었다. 한쪽 벽에는 커다란 화이트보드가 걸려있었다. 월중행사표와 출결사항을 말해주는 게시판은 여백이 무척 많았다. 전교생은 3학년 남학생 1명과 5학년 여학생 1명 이렇게 단 두 명, 그들은 남매였다. 이 오누이가 동막분교를 지키는 마지막 어린이였다. 
 
'이 아이들은 학교가 문을 닫으면 어디로 가야하지?'
 
두 아이가 생활하는 복식학급을 떠올리며 마음이 복잡해졌다. 게시판을 빤히 바라보고 있으니 2010년 무렵에 동막분교에서 2년 간 근무를 하셨던 교무부장님이 어깨를 두드리셨다. 그때만 해도 상황이 이렇게 심각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자꾸 통폐합이다 뭐다 얘기가 나오고, 친구들도 떠나고 하니까 통학 불편해도 근덕 본교로 전학 가는 거야."
 
2017년 동막분교는 신입생을 받지 못했다. 신입생이 없으면 교직원이 줄고, 예산편성에서 불이익을 받는다. 이런 단계를 밟으며 근덕 일대에서만 교곡분교장, 마읍분교장, 양평분교장, 노곡분교장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동막분교도 한때 존재했던 학교 목록에 이름을 올리게 될 터였다. 올해 강원도에서 동막처럼 신입생을 받지 못한 학교는 17개교였다. 
 
처음부터 학교가 사라지길 바라는 주민과 학생은 없다. 동막은 산골 음악회도 열고, 희망의 책 나눔도 하며 잘 버티다가 결국 폐교 수순을 밟게 된 것이다. 창밖으로 오후의 햇살을 받은 짙푸른 나뭇잎이 산들산들 흔들렸다. 푸르름에 둘러싸인 시골 학교의 마지막 모습은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아름답고 쓸쓸한 정취가 있었다. 

70년, 지나온 날들의 흔적을 간직한 학교



 


학교는 지역민들의 추억이 담긴 곳이자 졸업한 후에도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중요한 끈이다. 지역민의 정서와 사고방식은 교육계획과 학교 운영에 녹아든다. 최근 교육계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마을학교도 같은 맥락이다. 동막분교가 사라지면 함께했던 사람들의 연결고리도 사라진다. 단순히 두 명만 다니는 학교니까 없애야 한다고 결정하기에는 학교의 존재감이 이토록 큰 것이다.
 
과거 삼척은 일제의 수탈을 위한 공업도시였다. 서해안의 군산이 그러했듯 항구와 인접한 삼척의 해안가에는 마을이 속속 들어섰다. 동막분교도 그즈음에 세워졌다. 70년이 넘는 역사 속에 학교는 지나온 날들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었다. 
 
본관 앞뜰에 동상 두 개가 서 있는데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반공소년 이승복 동상이다. 한때 전국의 모든 학교에 세워졌던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의 주인공은 이제 찾아보기 힘든데 여기에는 남아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삼척은 1968년 북한의 무장공비들이 실제로 침투한 지역이다. 직접 총칼 든 공비들과 마주했으며, 전설 같은 전투담이 어르신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동네라는 점에서 이승복 동상의 끈질긴 생명력을 유추할 수 있었다.
 
반대편에는 운동복 차림으로 달리는 학생 동상이 있다. 동상 하단에는 "체력은 국력"이라는 산업시대의 슬로건이 양각으로 새겨져 있다. 모두가 가난하여 헐벗고 굶주리던 시절에는 중요한 구호였을 것이다. 더구나 같은 근덕면에서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인 황영조 선수가 나고 자랐으니 그 의미가 각별하게 다가왔다. 
 
건물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니 제법 구색을 갖춘 향토자료관이 눈길을 끈다. 소규모 박물관처럼 꾸려진 전시관은 동막분교 동문들이 가정에서 보유하던 옛 물건들을 기증해 전시품을 채웠다고 했다. 물품의 종류와 질이 학교단위로 운영하는 전시관 수준을 상회했다. 쓰러져 가는 모교를 지키기 위해 선배들이 마련한 일종의 자구책이었을 것이다. 손때 묻은 물레와 닳고 닳은 천자문이 정겹고 간절했다.
 
학교 뒤편에는 체육관이 자리 잡고 있다. 주민 설명회가 열리거나, 시골 지역 무료 진료 봉사단이 오면 체육관은 동막마을의 중심지가 된다. 마을의 크고 작은 행사와 운동회가 여전히 체육관에서 진행되고, 2017년 현재까지 근덕면 일대 선생님들이 뉴스포츠 연수를 받는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겉보기에 조용했던 학교는 나름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었다. 

농어촌학교에는 너무 가혹한 교육부의 '적정인원'



 

 


학생수 60명이 안 되는 학교는 모두 없어져야 하는 걸까? 교육부가 말하는 적정인원은 농산어촌 학교에 지나치게 가혹하다. 학교 통폐합 실적이 시도 교육청 평가 지표에 들어있는 까닭에 사실상 교육부의 통폐합 정책을 받아들일 수 없는 강원도는 하위권 신세를 면하기 힘들다. 더욱이 평가 결과를 바탕으로 예산 지원을 달리하니 작은 학교가 버티고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삼척 마읍천 상류에는 버들치와 돌매기가 산고, 오십천 중하류에는 은어가 산다. 물고기가 저마다의 공간에서 건강한 생태계를 이루며 살듯 교육 생태계도 지역에 어울리는 존재 양식이 있다. 전교생 840명이 넘는 삼척 정라초등학교가 있으면, 29명이 다니는 원덕읍 임원초등학교도 있는 것이다. 통폐합 기준 60명이라는 숫자에 담을 수 없는 소중한 가치들이 너무 많다.
 

 



 


태그:#학교통폐합, #동막분교, #삼척, #강원도, #작은학교살리기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초등교사입니다. <선생님의 보글보글> (2021 청소년 교양도서)을 썼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