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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온뒤무지개재단
 비온뒤무지개재단
ⓒ 비온뒤무지개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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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온뒤무지개재단은 2014년 1월 출범하였다. 창립총회에서 사단법인으로 설립하는 것이 결정되었다. 그러나 비온뒤무지개재단은 2017년 7월말, 출범 3년 6개월이 지나서야 그 결정을 이행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다시 스타트라인에 설 수 있게 된 것이다.

2014년 당시 법무부가 비온뒤무지개재단의 사단법인 설립을 허가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그러한 법무부의 행정처분이 부당한 것이라는 법원의 판단이 대법원 상고기각으로 최종 확정되었기 때문이다. 3년 6개월의 시간차, 이것은 한국의 성소수자가 처한 기본적 인권까지의 거리이다.

현행 민법상 비영리 사단이나 재단은 주무관청이 허가를 해야만 법인 설립이 가능하다. 성소수자 인권단체 중 최초로 사단법인으로 출범하고자 한 비온뒤무지개재단은 정부부처 중 인권옹호를 그 사무로 하는 법무부에 사단법인 설립을 위한 서류를 제출하였다. 그러나 법무부는 성소수자 인권단체가 법무부 소관인 단체가 아니라고 주장하며 불허하였다.

신청 후 5개월을 넘겨서 돌아온 법무부의 이러한 행정처분에 비온뒤무지개재단은 2015년 5월 법무부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하였고, 2016년 6월 24일 1심에서 승소하였다(관련기사: 성소수자 재단은 안 된다던 법무부, 틀렸다). 법무부는 이에 항소하였으나 2017년 3월 15일 고등법원에서 역시 비온뒤무지개재단이 승소하였다(관련기사: '성소수자 재단 불허' UN도 우려하는데 버티는 법무부). 그리고 법무부가 다시 대법원에 상고하였으나 2017년 7월 27일 대법원은 심리불속행으로 상고를 기각하였다.

대법원은 원심판결이 헌법에 위반되거나 헌법을 부당하게 해석한 경우, 대법원 판례와 상반되는 법령 등의 해석이 있는 경우, 대법원 판례 변경이 필요한 경우, 기타 중대한 법령위반에 관한 사항이 있는 때 등이 아니라고 판단하면 상고를 기각한다('상고심절차에 관한 특례법'). 다시 말해, 대법원이 법무부의 상고를 기각한 것은 앞서의 법원 판결에 위와 같은 이유는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무관청이 어디인지, 법무부는 답하지 못했다

이 사건에서 비온뒤무지개재단과 법무부의 다툼의 직접적인 이유는 법무부가 주무관청인가 아닌가에 대한 입장 차이이다. 정부부처 중 성소수자 인권정책을 담당하고 있는 부처는 어디인가? 현재 한국 정부부처 중 성소수자 인권정책 추진을 위하여 명시적으로 예산을 배정하고 구체적인 정책을 개발하여 실행하는 곳은 없다. 이 경우 인권정책 전반을 총괄하는 부처가 이를 담당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논리적 귀결이다(관련기사: 공개 '커밍아웃', 국가는 왜 막는 걸까).

예산이 없다거나 정책개발에 시간이 소요되어서 어떠한 정책을 추진하지 못하는 상황은 있을 수 있어도, 그것이 그 상황을 정당화시켜주는 것은 아니다. 인권 증진은 그 자체로 국가의 존립기반임을 우리 헌법이 천명하고 있으므로, 정부는 이에 대해 '못 하고 있다'고는 할 수 있어도, '안 하겠다'고는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법무부는 법원의 계속된 질문에도 불구하고 비온뒤무지개재단의 주무관청이 어디인지를 마지막까지 답변하지 못하였다(이는 1심과 2심 판결문에 잘 나타나 있다). 1심에서는 판사의 위 질문에 무언으로 응답하고, 2심에 와서는 애초에 처분사유가 아닌 이유(설사 주무관청이라고 하더라도 합리적인 재량권 행사를 한 것이라는 주장)를 들어 주장을 할 수 밖에 없었던 법무부의 모습은 차라리 안타깝다.

법무부 스스로도 성소수자 인권 다루기를 '안 하겠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 사건 자체는 사실 법무부가 주장할 수 있는 논거가 없기 때문에 법적인 다툼이 일어날 쟁점이 거의 없는 사건이다. 그래서 비온뒤무지개재단의 승소는 당연한 결과이다. 문제는 왜 법무부가 이러한 시간적, 행정적 낭비를 하면서까지 무리수를 둘 수밖에 없었나이다.

스타트라인에 다시 서기까지 3년 6개월

모든 국민은 어떤 단체를 언제 어떻게 설립할지에 대한 자유, 즉 헌법상 인정되는 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이 사건은 정부에 의해 결사의 자유를 부당하게 제한받은 국민이 헌법상 권리를 구제받은 사례이다. 혹은 법무부 스스로 지난 국회에 민법개정안을 제출한 취지와 같이 비영리법인 설립 허가주의의 문제점을 드러낸 사례이기도 하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왜 다른 단체가 아니라 하필 성소수자 인권단체가 그 사례가 되는가를 반문해보아야 할 것이다.

현대 입헌주의 국가는 실질적 평등을 추구한다. 헌법이 국가에 대해 국민의 실질적 평등을 실현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한편으로 사회적 약자 혹은 소수자에 대한 국가의 적극적인 지원과 지지를 통해 달성된다. 어떠한 사회적 환경이 그들을 옥죄고 위협하며 침묵시킨다면, 국가권력은 그에 함께 대항하거나 개선시키기 위해서 행사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과거 법원은 성소수자가 '우리 사회의 주류로부터 오히려 지지·동의될 수 없(다)는 것을'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이 사회에서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행복의 추구를 가능하게'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으며, 여기에 '윤리적 또는 종교적 신념 등에 기반한 사회적 통념 또는 인식을 앞세워서는 [그러한] 법적 의미는 현저히 퇴색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이야기하였다(2011년 트랜스젠더 성별정정 사건의 반대의견).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인권 증진을 위한 노력에 국가는 다른 변명을 댈 수는 없다는 것이다.

흔히들 비유하듯 삶을 마라톤 완주로 표현한다면, 다른 사람들보다 상대적으로 걷거나 뛰기 힘든 사람에게 완주를 위한 최소한의 물질적 지원과 심리적 응원을 보태는 것이 국가의 의무이다. 스타트라인에서 뒤떨어져 서있는 사람을 스타트라인까지 앞서 길을 열어 주어야 하는 것이지, 그 사람이 아예 뛰지 못하게 하거나 더 멀리 떨어져서 오라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스타트라인에 다시 서기까지 3년 6개월, 정부뿐만 아니라 국회와 다른 국가기관들 역시 이 시간의 의미를 곱씹어 보아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도, 이 시간을 지나와야 했고 지켜보아야 했던 모든 이들에게 지지와 응원을 보낸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이승현씨는 비온뒤무지개재단 이사이자 법학박사입니다.



태그:#비온뒤무지개재단, #결사의자유, #법무부, #사단법인설립, #성적소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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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온뒤무지개재단은 한국 최초의 성적소수자들(LGBTAIQ)을 위한 재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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