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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티풀 군바리>는 왜 매번 논란이 될까? 얼마 전 트위터에선 웹툰 <뷰티풀 군바리>에 대한 연재중지 청원이 다시 화제가 됐다. 서명 인원이 4만 명을 넘어갔고 일각에선 연재중지 반대 청원이 새로 등장하기도 했다. 연재 초반부터 시작된 작품의 윤리적 논쟁은 연재 횟수론 127회, 기간으론 2년 5개월이 넘어가는 지금까지 꾸준한 화제였다.

그중 가장 크게 논란이 됐던 건 역시 '배빵(배를 때리는 행위)'과 '아헤가오(성적인 쾌락을 느끼는 표정)'를 연상시킨다는 특정 장면이었지만, '여군'이라는 민감한 소재와 성 상품화 이슈를 아우르는 전체 맥락을 생각한다면 이야기의 양상은 좀 더 복잡해진다. 웹툰 <뷰티풀 군바리>의 문제 지점은 무엇이며 연재중단 청원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알아보기 위해 핵심적인 세 가지 논점을 들여다보자.

[뷰티풀 군바리] 연재중지 청원 현재 시민 청원 사이트 아바즈에 게시되어 있는 연재중지 요청 페이지
▲ [뷰티풀 군바리] 연재중지 청원 현재 시민 청원 사이트 아바즈에 게시되어 있는 연재중지 요청 페이지
ⓒ https://secure.avaaz.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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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군 폭력 고발인가, 성 상품화인가?

상업만화로서 <뷰티풀 군바리>가 자신의 문법을 충실하게 이행하는 부분은 가상의 여군 집단을 설정하고 그들의 (특히 주인공 수아의) 외모와 몸매를 귀여운 그림체로 성실히 묘사한다는 점이다. 문제 또한 거기서 발생한다.

여군에 대한 현실적이고 세밀한 설계는 배제된다. 2006년 남성 군부대와 동일하게 설정된 무대 속에서, 소위 '서비스 컷'의 개념으로 주인공의 가슴과 엉덩이 따위가 노골적으로 제공되는 동안 여군에 대한 상상력은 오로지 그들의 신체 (혹은 아주 전형적인 여성성)로만 재현된다. 제목의 '뷰티풀'이 일부 의도하는 것처럼 보이는 '진정한 군인정신'이나 '폭력에 대한 고민' 같은 거시적 주제도 매 화마다 상품처럼 진열되는 여성의 신체보다 직관적이지 못하다.

환복장면마다 분절되어 제시되는 가슴과 엉덩이, 컷의 중심을 차지한 채 출렁이는 몸매 등은 여성 신체를 하나의 향유 대상으로 이용하는 만화적 성 상품화를 그대로 답습했다. 그 '상품'이 구매자에게 전달될 때 작품은 독자를 텍스트의 비판적 수용자가 아닌 수아의 외모와 몸매에 열광하던 훈련소 남자 군인들로 만든다.

찬반 논란이 제기되는 '배빵'과 '아헤가오' 문제 또한 이 전반적 맥락을 통해 바라보면 쉽다. 여성의 신체를 상품으로 포장하는 상업적 맥락 아래서 그 포장방식(분절되고 부각되어 연출되는 성적 대상으로서의 여성 신체)을 그대로 답습하여 연출하는 폭력 장면은 '혹사당하는 여성의 신체'마저 성적 대상으로 변질시킬 위험이 있다.

웹툰 [뷰티풀 군바리] 여성의 가슴은 여러 장면에서 적극 부각된다
▲ 웹툰 [뷰티풀 군바리] 여성의 가슴은 여러 장면에서 적극 부각된다
ⓒ 네이버 웹툰 [뷰티풀 군바리](설이/윤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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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폭력 문제를 책임감있게 다루겠다는 2015년 당시 작가의 발언이나, 비슷한 시기에 성 상품화를 문제 삼아 연재중단을 청원하는 것에 문제를 제기한 한 평론가의 글 또한 이 지점에서 무효가 된다.

텍스트 비판이 작가의 의도에 상반되는 엉뚱한 방향이라 지적하기 전에 텍스트의 방향이 그 의도와 맞게 설정되었는지를 먼저 검토하는 것이 옳다. <뷰티풀 군바리>가 '군 폭력 문제'를 상세히 다룬다고 보기에는 2006년의 무대를 2017년의 현실로 연결해 줄 세밀한 설계는 부족하고, 여성을 매개로 한 유희적 오락거리는 과하다. 그리고 그 둘이 합쳐질 때 작품이 구현하는 '10년 전의 군부대'는 고발보다 전시의 성격이 강하다. 작가 개인의 진실성과는 별개의 문제다.

2. 여군 설정은 가치중립적인가?

논쟁이 되는 설정 '여군'이 과연 가치중립적인 '군인'인가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만화적 설정으로서 여성 입대나 여군부대 같은 소재 자체가 비윤리적인 건 물론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떻게 설계됐고 또 재현되어 가는지는 그와 별개의 문제다.

이미 언급했지만 여군에 대한 상상력이 한정적이고 편향적이다. 만화가 여군 캐릭터를 조명하는 방식은 다양한 컷으로 부각된 여성의 신체와 진부한 '여성성'으로 제한된다. 가령 조교와 동료들의 질투를 유발하고 '왕찌찌'라는 별명을 만들어내는 주인공 수아의 풍만한 가슴은 남성에게는 부재한 '대중적으로 수용 가능한 섹슈얼리티'의 상징물로 존재한다. 이는 현 사회의 젠더 지형을 확인케 한다.

반면에 여군 징병이 현실화된다면 복잡한 문제로 자리하게 될 생리나 임신 등의 문제는 '고참 생리대'나 '휴가 시 피임' 정도의 단순한 대사 몇 마디로 뭉뚱그려진다. 후임의 가족 구성원(여성)을 소재로 한 성희롱과 협박이 실제 군 폭력 이슈의 한 부분인데도, 수아의 오빠에게 관심을 보이는 상경 류다희의 모습은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성을 기반으로 귀엽게 그려진다.

그러면서도 만화 속 내무반의 전반적 모습은 작가가 경험한 남성 세계를 그대로 복제한다. 필요한 경우에만 제한적 상상을 통해 여성을 호출하는 불균형이다. 현실의 젠더 권력적 시각을 그대로 유지한 채 여성을 군대로 옮겨 담았다는 점에서 작품은 단순한 남녀의 반전이나 충격요법의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 단순히 현실에서 이행 중인 다양한 여성혐오의 '군대 버전'이 된다.

그 과정에서 현실의 여군을 지워낸다. '여성은 군대에 가지 않는다'는 일반적 비난 뒤에서, 역설적으로 '쓸모없는 존재'라며 인터넷 댓글 창에 소환되는 여군 장교의 현실이 사라진다. 5명 중 1명꼴로 성폭력에 노출되지만 고발 자체가 극히 희소하다는 여군 대상 성폭력 문제도 마찬가지다. 오락만화가 사회문제를 다루어야 할 의무는 물론 없다. 그러나 사회문제를 비판적 사유 없이 오락의 소재로 전유하는 건 그와 다른 문제다.

여성들이 군대에 다녀오면서 "남북 관련 뉴스도 보다 냉정히 받아들였다"라거나 "병역비리 연예인의 옹호 글"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는 식의 내레이션은 여성에 대한 편견적 시선을 부추긴다. 또한 제대 남성의 어긋난 보상심리를 부추기는 동시에 '특권자'와 '쓸모없는 존재'를 오가는 모순적인 생각을 복제한다. 매력적으로 그려지는 여군의 가슴과 엉덩이가 여군을 성폭력으로 밀어 넣는 남성 중심적 시선권력을 답습하는 동안 만화의 설정은 가치중립에서 점점 멀어진다.

3. 연재중지는 적절한 처분인가?

웹툰 [뷰티풀 군바리] 127화 '옛날 수경'의 한 장면
▲ 웹툰 [뷰티풀 군바리] 127화 '옛날 수경'의 한 장면
ⓒ 네이버 웹툰 [뷰티풀 군바리](설이/윤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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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에 대한 논박과 별개로 '연재중지'란 단어는 또 하나의 이슈를 만든다. 서명 인원이 4만 명을 넘어갔지만 연재중지가 실질적으로 이루어질지도 미지수다. 네이버의 입장에선 굳이 1, 2위를 다투는 상업만화를 내리지 않으려 할 가능성이 크다. 창작의 자유나 콘텐츠에 대한 독자층의 개입 정도, 연재중지까지 필요한 문제 요소의 수위 측정 등 진행상의 복잡한 이야기들도 물론 고려해볼 것들이다.

'연재중지'가 실제로 실현될지를 떠나 만화에 대한 비평과 문제적 요소에 대한 반대의 움직임으로서 이 청원엔 의의가 있다. 웹툰은 장기간 지속되는 연재 콘텐츠이며, 다양한 연령대의 광범위한 독자층이 수용하는 대중적 콘텐츠다. 거기엔 당연하게도 지속적이고 범용적인 힘이 있다.

<뷰티풀 군바리>의 최근 에피소드에선 수경 설유라가 버릇없는 후임에게 '참고 참다가' 폭력을 행사하는 장면이 연출됐다. 군 폭력을 직접 겪어봤다는 독자들은 베스트 댓글에서 설유라에게 주어진 약간의 정황을 통해 오히려 그 폭력을 정당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폭력의 사유가 아닌 전시를 전략 삼아온 콘텐츠가 어떤 힘을 행사할 수 있는지 상기되는 사례다.

비록 결과는 참담하지만 연재 초 논란의 시작점에서 작가가 군 폭력 소재에 대해 '책임감'을 이야기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128회에 걸친 지속적 노출을 뒷배 삼아 이 '설유라'가 사회적 담론에 대한 상징적 힘을 가지기 때문이다.

작품이 내재하는 여성혐오에도 힘이 있고, 그 힘에는 만화 속 캐릭터 설유라나 정수아로는 질 수 없는 책임이 따른다. 단발성 해명과 원고의 일부 수정이 있었지만 <뷰티풀 군바리>의 '뷰티풀'이 보여주는 폭력적 상징은 여전히 유효하고, 책임에 대한 상상은 이제 '뷰티풀' 너머에 있다. '뷰티풀'의 문제에 대해 다시 이야기하진 않겠다. 그것이 왜 문제인지 1번에서, 어떻게 현실에 적용되는지 2번에서 이미 다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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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마이뉴스 박정훈 기자입니다. stargazer@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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