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레이디 맥베스> 포스터

영화 <레이디 맥베스> 포스터 ⓒ (주)씨네룩스


기교를 배제한 스테디 캠과 핸드헬드의 반복, 저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실내극 구성이 지루할 법도 하건만 그 형식에 담긴 이야기는 틀을 흔들어버릴 정도로 강렬하다. <레이디 맥베스>는 윌리엄 올드로이드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이자 신예 배우 플로렌스 퓨의 첫 단독 주연 영화다. 이 사실이 믿게 하기 어려울 정도로 수려한 영화가 탄생한 것이다.

영화의 주인공은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맥베스>의 맥베스 부인의 특성, 에밀리 블론테의 소설 <폭풍의 언덕>의 주인공 이름을 가져온 캐서린이다. 늙은 지주에게 팔려온 주인공 캐서린은 저택의 부인이지만, 커다란 허상에 갇혀버린 억압받는 존재다. 19세기 사회는 여성에게 수동적인 태도를 강요했고 캐서린 또한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여성으로서 아이를 낳아 가문의 대를 잇는 본분을 다하라는 명령을 받고, 남편에게는 동침을 거부당하며 모독을 받기도 한다. 아침부터 흉부를 압박하는 코르셋은 답답하며, 자신의 의중을 무시당한 채로 옷을 벗으라고 강요당하는 저택의 삶은 당당한 태도를 가진 캐서린에게는 지옥과 마찬가지다.

그랬던 그녀는 남편이 잠시 집을 떠난 사이 억눌렀던 욕망을 터뜨리기 시작한다. 사랑받지 못한 캐서린은 집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세바스찬에게 접근해 연인으로 만든다. 그러자 곧바로 늙은 지주는 사회가 강요하는 코르셋을 앞세워 캐서린을 압박한다. 그러나 그녀는 예전처럼 순순히 복종하지 않고 저택 내 권력을 가진 자들을 차례대로 죽여버린다. 물론 연인 세바스찬과 함께.

극 중 캐서린은 악한 사람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고 생존하기 위해 악착같은 여성처럼 보인다. 젠더의 차별과 계급 간의 권력 차이를 깡그리 흔들어버린다. 흑인 하녀인 애나를 자신과 같은 테이블에 앉아 식사하게끔 하는 장면에서는 묘한 쾌감마저 든다. 기존의 권력 구조를 무시하고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캐서린은 강조된 여성성을 뒤집는 매력적인 캐릭터다. 저택에 갇힌 그녀를 바라보는 스테디 캠은 한 치의 흔들림이 없지만, 자유롭게 산책하러 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카메라는 핸드헬드로 촬영되어 자유로워 보이기까지 한다. 남편인 알렉산더가 성적인 욕망을 세우지 못하는 것도, 성욕에 있어 여성 주도적인 모습을 내보이기 위함이다.

그러나 그녀를 억압하는 남성 중심사회의 권력을 벗어나기 위한 행위들은, 그녀가 그토록 받아왔던 억압과 폭력을 그대로 재현해버리고야 만다. 할아버지-아버지-아들로 이어지는 권력을 끊어내긴 하지만 그 방식은 지금껏 남성들이 휘둘렀고 사회의 계급과 인종 차이에서 나온 권력을 사용한 것이다. 그리고 클라이맥스에 이르러서는 그러한 행동이 절정에 달한다. 악행을 저지른 세바스찬은 압박감에 못 이겨 그녀와의 동행에서 이탈했고, 그녀의 악행을 목격하여 목소리를 잃은 하녀 애나는 종국엔 눈마저 감아버린다.

캐서린은 욕망의 산물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홀로 의자에 앉아 정면을 응시한다. 통쾌해 보이기까지 했던 그녀의 행동은 이미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젠더권력을 전복시켜 모종의 쾌감을 선사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녀 또한 사회적 계급과 인종 차이에서 비롯된 권력을 휘두르며 자신의 목숨을 보전하는 데에 바빴다.

윌리엄 올드로이드 감독은 영화의 만듦새를 철저히 형식에 맞춰 만들었고, 이런 시도는 성공적으로 보인다. 연극과 동일한 구성으로 미쟝센을 펼친다. 대저택을 거대한 감옥처럼 갑갑한 느낌을 내게끔 서늘하고 어둡게 담아냈으며, 건물을 벗어난 인물들은 자유로움과 얽매임이 공존하는 기운을 뿜어내게끔 하였다. 그리고 이런 감독의 연출 의도를 완벽하게 실현하는 플로렌스 퓨의 연기는 가히 충격적이다. 올해 최고의 신인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억눌린 욕망에 뒤틀려 행동하는 그녀의 모습은 순수해 보이기까지 한다.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하다.

결국 홀로 생존하여 저택을 지키는 캐서린의 모습은 흡사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처럼 비극처럼 막을 내리는 모양새다. 캐서린을 악녀를 만든 것은 그녀의 욕망일까, 사회의 억압일까. 어쩌면 둘 다일 것이다. 젠더권력을 전복시키는 데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녀의 내면은 엉망이 되어 버렸다. 지나치게 차가울 정도의 엔딩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건의 시민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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