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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럭이는 체험용으로 이용되던 햄스터였다.
 물럭이는 체험용으로 이용되던 햄스터였다.
ⓒ 전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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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6년 5월, 인터넷에 떠도는 사연 하나가 있었다. 어린이날 기념 동물체험행사를 진행한 업체가 파충류 등은 전부 챙겨갔지만, 햄스터들은 전시관에 그냥 두고 갔다는 내용이었다. 파충류는 가격이 비싸므로 대부분 대여해서 행사를 연다. 반면, 햄스터는 대형마트에서 3000원 정도에 파니 도매가는 훨씬 더 쌀 것이다. 가격이 저렴한 햄스터는 어린이들을 위한 체험행사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동물 중 하나다.

전시관은 햄스터들을 책임질 이유가 없었다. 햄스터들은 모두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운명이었다. 그런데 당시 전시관에서 일하시는 분이 햄스터들이 불쌍하다면서 동물보호소로 보냈고, 나는 보호소에 가서 햄스터 한 마리를 데리고 왔다. 이 햄스터가 동물을 위한 행동 1호 구호 동물인 셈이었다.

이름은 물럭이. 주물럭주물럭 만지는 체험전에서 구조했다는 의미로 지은 이름이었다. 햄스터에 대한 책을 찾아보았다. 수명이 2년 정도인 햄스터는 야행성으로, 땅에 굴을 파고 안에 들어가서 노는 것을 좋아한단다.

햄스터는 굴을 파고 그 안에서 노는 것을 좋아한다. 그 습성을 이용한 풍부화 시설물 터널
 햄스터는 굴을 파고 그 안에서 노는 것을 좋아한다. 그 습성을 이용한 풍부화 시설물 터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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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스터의 습성을 반영한 케이지를 구했다. 케이지 옆에 굴처럼 생긴 터널이 있는데, 이 터널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케이지를 전부 빼 닦고 말리고 다시 조립해야만 했다.

그런데 7월 즈음 손목을 다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터널을 돌려 빼고 다시 조립하는 일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한의원에 갔더니 2주 정도 침을 맞아야 한다고 했다. 물럭이에게 "2주만 참자"고 말하고 그동안 터널을 빼놓기로 했다.

그때 나는 보았다. 햄스터의 당황하는 표정을. 물럭이는 재미난 장난감이 없어지자 짜증이 났는지 밥통에 들어가 밥을 한참 먹고 자기 집에 들어가 자기 시작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먹거나 자는 사람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작은 햄스터도 본능이 있었고, 본능이 억압되거나 좌절되면 짜증을 냈다.

작고 싼 동물이라도 감정이 있고 습성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동물복지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다. 동물복지란 건강과는 다른 개념으로, 일반적으로 삶의 질을 의미한다. 햄스터의 복지가 지켜진다는 의미는 햄스터가 가진 본래의 습성에 맞는 환경을 조성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체험' 위해 희생되는 동물의 '생명'

햄스터 물럭이는 주인이 다가가면 철창 앞으로 나와 먹이를 받아먹거나 철창에 매달리기도 했다.
 햄스터 물럭이는 주인이 다가가면 철창 앞으로 나와 먹이를 받아먹거나 철창에 매달리기도 했다.
ⓒ 전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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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럭이는 구조 후 몇 달간 자신의 몸에 손을 대는 것조차 싫어했다. 등을 만져도 '찍찍' 소리를 내면서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체험행사에서 아이들에게 시달린 탓이었을 것이다.

아이들을 데리고 동물체험전에 가는 어른들의 시선은 이렇다.

'개를 키우는 건 부담이니 싸고 작은 햄스터라도….'
'직접 사서 집으로 가져와 키우는 것은 귀찮고 번거로우니 가서 만지기라도 해보자.'
'아이들이 자연을 보고 배워야 하는데 시간은 없고…. 가까운데 가서라도 체험해봐야지.'

그러나 햄스터는 키우기 수월한 동물이 아니다. 햄스터 사육방법을 모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햄스터는 단독 사육하는 동물이라서 여러 마리를 함께 키우면 서로 잡아먹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또한 동물체험장은 자연 생태계가 아니다. 체험전에 나온 동물 중 상당수는 야생동물도 아니다. 체험의 방법이란 것도 먹이를 주거나 만지는 것에 불과하다. 

작고 싸기 떄문에 체험전에 이용되는 햄스터들. 대부분 자유롭게 만지게 해 아이들이 부주의하게 다루기 쉽다.
 작고 싸기 떄문에 체험전에 이용되는 햄스터들. 대부분 자유롭게 만지게 해 아이들이 부주의하게 다루기 쉽다.
ⓒ 전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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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체의 주장과는 달리 아이들은 매우 부주의하게 행동한다. 햄스터가 매우 에민한 동물이라는 사실은 알려주지 않는다.
 업체의 주장과는 달리 아이들은 매우 부주의하게 행동한다. 햄스터가 매우 에민한 동물이라는 사실은 알려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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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이런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 햄스터를 왜 만지는가? 햄스터를 여러 사람이 만지면 햄스터는 괜찮은가? 햄스터가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게 돼도 사람에게 이익이 된다면 어쩔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물어봐야 한다. 그것은 어떤 이익인가? 과도한 스트레스는 면역력을 약화해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 햄스터의 고통과 맞바꿀 정도로 체험은 인간에게 절박한 일인가? 햄스터 물럭이는 지난 7월 25일 세상을 떠났다.

햄스터는 영역동물이다. 자신의 집, 밥통, 놀이터가 있는 공간 안에 누군가 들어오는 것을 싫어한다는 의미다. 외로워 보인다고 다른 햄스터를 사서 집어넣으면 햄스터의 유혈투쟁을 보게 될 수 있다. 만지는 것은 3~4일에 한 번 베딩(bedding, 햄스터가 사는 케이지 안 톱밥을 의미)을 갈 때 잠깐 만지는 것으로 족하다.

그렇다고 햄스터가 사람과 교감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케이지 앞으로 다가서면 아무리 졸려도 물럭이는 벌떡 일어나 케이지 앞으로 왔다. 해바라기 씨 한 알, 사료 한 알을 주면 밥통에 밥이 가득해도 보호자가 주는 한 알을 맛있게 받아먹었다. 베딩을 갈고 나면 표정이 달라졌다. 편백 향이 나는 상큼한 톱밥으로 갈아주면 만족감이 넘친 표정으로 케이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곤 했다.

솜은 굴을 파기 좋아하는 햄스터의 습성을 이용한 풍부화 시설물이다. 작은 동물이라도 무료함을 느끼지 않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솜은 굴을 파기 좋아하는 햄스터의 습성을 이용한 풍부화 시설물이다. 작은 동물이라도 무료함을 느끼지 않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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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침대에 누워 잠을 자고 함께 산책하고 일하는 책상 위로 폴짝 뛰어올라 만져달라고 그르렁거리는 개나 고양이와 다르다고? 물론 다르다. 케이지 안에서 키우는 동물과 케이지 밖에서 키우는 동물이 주는 만족도는 질적으로 다르다. 햄스터는 개와 고양이처럼 스킨십을 통해 교감하는 동물이 아니다. 케이지 안 햄스터가 좋아하는 시설을 만들어주고 햄스터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 보호자는 그제야 행복해진다.

동물의 복지를 지켜준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의미다. 모든 동물에게는 본능이 있고, 그것은 종마다 다르고 개체별로도 다르다. 우리가 햄스터를 사랑한다는 것은 햄스터의 본능을 제대로 알고 그 본능에 맞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다. 햄스터의 만족감 넘치는 표정을 보게 된다면 우리도 행복해진다.

만약 아이들에게 자연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면 진짜 자연을 보게 해줘야 한다. 힘들게 오른 산의 정상에서 바라보는 하늘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우리가 그 위에서 바라본 도시는 얼마나 삭막한가. 우리가 아이들에게 보여줘야 하는 것은 왜곡된 자연이 아니라 파괴돼 가고 있는 자연의 현실이다. 그중 한 요소를 떼어내 만지고 자연체험에 성공했다고 자족하는 것이 과연 교육에 도움 된다고 볼 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전채은씨는 동물을위한행동(http://www.actionforanimals.or.kr) 대표입니다.



태그:#동물체험, #햄스터, #동물복지, #동물을위한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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